사무실 동료 직원 한명은 기욤 뮈소에 푹 빠져있다. 이 책을 읽고서는 울컥 거렸다고 했다. 『구해줘』를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한편의 헐리우드 영화 같았던 느낌이 강해서 그의 다른 책들을 읽지 않고 있다가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를 그 동료 직원에게 빌려 읽었다.  

『구해줘』와 비슷한, 여전히 헐리우드 영화 같은 느낌.책장은 빠르게 넘어가지만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내 가슴 깊이 무언가 파고들지는 않는, 그래서 나는 이 작가가 참 좋아, 라고는 결코 말 할 수가 없는 책. 

그런데 이 문장이 참 좋더라.  

"그렇긴 해도 이 불안한 세상에서 제시를 돌봐주는  어른이 셋이라면 그리 많은 게 아니잖아." (p.367)

 

기다리던 책, 이클립스가 도착했는데(생전 처음 예약 주문이란걸 해봤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쓸데없이 예약 주문 같은걸 하는거야, 하던 나였는데. )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서 에드워드와 벨라의 이야기를 읽다가 그만, 뜬금없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책장에서 꺼내왔다. 그리고 침대에 다시 비스듬히 앉아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에드워드와 벨라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홀든 콜필드. 이 책에는 예전에 읽으면서 내가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너덜거리고, 예전에 읽으면서 그었던 밑줄도 여러군데. 아, 그런데 나는 또 새로운곳에 밑줄과 포스트잇을 추가한다.  

난 이제까지 두 번밖에 싸워보지 못했고, 두 번 다 졌다. 난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사실 난 평화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p.67)

 

악. 악. 오스카도 평화주의자라고 했는데, 홀든도 평화주의자로구나. 나는 왜 몰랐지? 나도, 나도 평화주의잔데!!  

그런데 정말, 센트럴 파크 연못의 헤엄치는 오리들은 연못이 다 얼어버리면 어디로 가는걸까? 누군가가 모두가 잠들 때 그 오리들을 옮겨 주는 걸까? 아니면 얼음이 얼어있는 연못의 저 깊고 깊고 깊고 깊은 어딘가에서 여전히 헤엄치고 있는걸까? 나도 궁금한데 왜 사람들은 답을 해주지는 않을 망정 화를 내는거야! 왜!! 

 

그리고 존 치버 , 존 치버의 기괴한 라디오.

 세번째 단편까지 인가 읽었다. 그러니까 이걸 읽다 말고 이클립스를 읽고, 이클립스를 읽다 말고 갑자기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존 치버는 처음 만나는 작가. 얼마전 시사인의 책 소개를 보고 찜해두었었는데, 세번째 단편까지 읽고 나니 역시 단편의 대마왕은 피츠제럴드야, 라고 새삼 되뇌이게 된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을 보셨나요? 안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요. 단편의 대마왕은 피츠제럴드. 

 

악. 존 치버를 읽고 있고 존 치버의 기괴한 라디오를 이야기 하면서 피츠제럴드의 단편을 얘기하면, 어쩐지 반칙같잖아!! 

피츠제럴드의 모든 단편이 지독하게 좋지만 컷글라스 보울은 정말이지!! 

 

 

크리스마스에 영화 『렛 미 인』을 보았고 영화를 다 보고 돌아가는 길,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다. 무얼읽을까 여기저기 서성이다가 주이란의 『혀』를 집어 들었다. 

 

 나는 이미 조경란의 『혀』를 읽었더랬고, 그래서 조경란이 표절했다는 주이란의 『혀』를 한번 읽어보자 했던 것. 주이란의 『혀』는 단편인데 다 읽고 나니 어, 표절은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는 같고 결말도 거의(?) 같지만 딱히 표절이란 생각은 들지 않더라. 표절이란 무얼까. 어떤게 표절인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표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실 이런말을 하기는 좀 조심스럽고 무서운데, 조경란의 혀가 조금 더 재밌다. 

 

올해 12월에 내게는 그다지 재미없었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다시 읽어볼까 했는데 음, 걍 내년 12월에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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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27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결산(?)을 매달 해 주세요. 너무 즐거워요. 다락방님은 문학의 메신저에요~

다락방 2008-12-27 17:36   좋아요 0 | URL
오와~ 문학의 메신저라니! ㅎㅎ
마노아님은 천사에요. 우히힛.

책 이야기를 막 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저기 저 위에 "그렇긴 해도 이 불안한 세상에서 제시를 돌봐주는 어른이 셋이라면 그리 많은 게 아니잖아." 라는 문장을 읽고는 너무 좋아서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거든요. 자주자주 얘기하도록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어요.
:)

네꼬 2008-12-27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의 파수꾼은 친구가 꼭 읽으라며 사준 게 3년 전인데 이상하게 시작도 못했어요. 난 명작이나 고전을 잘 못 읽거든요. 하지만 다락님이 말씀하시니 이참에 읽어볼게요. 무엇보다, 다락님도 다시 읽기 시작한다고 하니 나랑 같이 읽는 셈이잖아. : )

다락방 2008-12-28 22:21   좋아요 0 | URL
명작이나 고전을 어릴때부터 강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못읽는 것 같아요. 사실 그런 작품들은 어른이 되서 볼 때 무언가 더 제대로 느껴지는데 말이죠. 불만이야, 불만. 어릴때는 황순원의 소나기 하나면 충분하다구욧!

천천히 읽고있어요, 홀든은. 아주 푹 빠져서. 네꼬님도 빠졌으면 좋겠지만, 또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건 내가 어쩔 수 없지. 홀든에 빠지든 안빠지든 네꼬님은 네꼬님이니깐. :)

플레져 2008-12-27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욤씨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를 읽고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이 궁금하지는 않았어요. 나두 다락방님처럼 무언가를 파고드는 호미의 느낌이 없었거든요. 프랑스 사람치고 할리우드 영화 마니 보셨네 하는 느낌? 피츠 제럴드의 단편 안 읽고 개츠비만 읽었지만 이런 말 슬쩍 해도 될까요> 단편의 대마왕은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를 읽지 않고서는 말을 하지 말게 이사람아~~ 캬캬. 존 치버 소설 몇 편 읽은적 있는데 마이 스타일이 아니어서 일단 보류...다락님도 왠지 그런 거 같으니까 조금 더 보류 ^^

다락방 2008-12-28 22:23   좋아요 0 | URL
악악. >.<
레이몬드 카버의 특히 [대성당]을 좋아해요. 대성당을 다 읽고나면 무언가 심하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지요. 몇년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어봐야 겠어요. 하하. 아, 카버의 그 단편도 좋은데. 왜, 돈 없는 남자한테 자꾸 돈 없다고 가족들이 전화하는 그 단편이요. (제목이 생각이 안나요 --) 그거 읽으면서도 입에서 쓴물이 나왔는데 말이죠.

존 치버는 오늘 침대에서 다시 읽으려고요. 훗 :)

Jade 2008-12-27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츠제럴드 단편 꽂혔어요 ^^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은 책 읽고 좋아서 원서를 산 세권중 두권이랍니다. ㅎㅎ 다락방님도 좋아하셨군요!

다락방 2008-12-28 22:25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원서를 읽을 수 있기를 얼마나 희망하는지요! 그러나 늘 희망뿐 원서를 읽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고 있질 않죠. 위대한 개츠비는 세번 읽고나니 좋아지더라구요. 두번 읽을 때 까지는 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세번 읽고 아, 했어요. 그런데요 Jade님. 피츠제럴드의 단편은 더 좋아요. 완전 환상이예요. 최고예요, 최고. 그는 천재예요!

순오기 2008-12-28 23:04   좋아요 0 | URL
호밀밭의 파수꾼은 읽을때마다 달랐어요. 엄마가 돼서 읽으니 더 실감났지요.
위대한 개츠비는 영화의 로버트 레드포드에 완전 필이 꽃혔던 여고시절~~~ㅎㅎㅎ반했거든요.
그남자가 입은 색색의 드레스셔츠가 왜 그리도 멋져 보였던지...^^

L.SHIN 2008-12-28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는 소리지만,
얼마전에 [원티드] 영화를 봤습니다. 물론, 줄리양♡을 보러.ㅎㅎㅎ
역시나 멋있더군요. 총알이 변화구처럼 휘어져 날아가도록 특이하게 쏘는 방법이 인상 깊었고,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의 매력도 멋졌습니다만...마지막에 죽을 때는 안타까웠습니다. ㅜ_ㅡ

저도 어릴 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주인공의 개성이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쓰면서
책을 오랜만에 들춰봤더니, 맨 앞장에 제가 뭐라고 써놓은게 보여서 당황하고 있는..-_-
아무래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끄적거려 놓았는지,
가끔은 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지금은 색이 많이 바랬지만, 5년 전만 해도 나는 '염세주의자' 측이었니까요.


다락방 2008-12-28 22:27   좋아요 0 | URL
다시 읽고 싶어지고, 다시 읽었을 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책이 있죠. 혹은 다른 매력을 주는 책. 제게는 하루키의 모든 책들이 그렇고 그리고 지금 이 [호밀밭의 파수꾼]도 그래요. 또,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도 그럴테구요.

그나저나, 그러게요. 졸리는 왜 그 영화에서 안타깝게. 흑 ㅜㅡ 번쩍, 하고 살아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졸리양을 보면서 제 생각 하셨어요? ㅎㅎ

메르헨 2008-12-2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에 필이...오네요.^^
저 글을 좀 늦게 읽은 탓에 ... 그쯤에 또 행복만땅인 상태라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럼에도...그래...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던 기억이...^^
저도 다시 빛바랜 그 책을 꺼내봐야겠어요.^^

다락방 2008-12-28 22:27   좋아요 0 | URL
다시 꺼내 읽어보면 그 전과는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줄 것 같아요. 제가 과거에 밑줄 그었던 부분과 지금 밑줄 긋게 되는 부분이 다르듯이.

전 홀든이 정말정말정말 좋아요! >.<

비로그인 2008-12-28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그렇게 피츠제럴드 단편은 진도가 안 나가는지 모르겠어요. 맘 먹고 읽어도 눈을 저절로 페이지 수에 가 있고...호밀밭의 파수꾼은 예전에 실비아 플라스 '벨자'를 살 때 공짜로 받았던 건데 몇 년 간 먼지만 쌓여가고 있습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3년 동안 세 번 도전했는데 고작 반밖에 못 읽고 내년에 또 네번 째 도전을 하든지 누굴 주든지 해야겠어요;;;

다락방 2008-12-28 22:29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어질인님도 스밀라가 확 다가오지 않으시는군요! 급반가움이 ㅎㅎ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나는 유독 진도가 안나가는 책이 있죠. 스밀라도 그런책이 아닐까 싶어요.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스밀라를 좋아하시거든요. 진도가 안나가는 책을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더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책이 확 다가올 수도 있고 말예요. 고등학교때와 20대 초반에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벌』을 읽으려고 몇번이나 시도했다 포기했는데, 20대 중반에 읽혀지더군요. 그것도 꽤 지미있게.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마저 들었고 말이지요.

책도 사람처럼, 만나야 할 때가 있는건 아닐까요.

순오기 2008-12-28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책도 만나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다락방님, 혹시 레이디경향 안 왔던가요?
내 친구가 구독하신 분들께 다 보낸것 같던데...

다락방 2008-12-30 22:36   좋아요 0 | URL
아. 잘 받아보았습니다 순오기님. 무거워 돌아버릴 것 같았는데 꾸역꾸역 엄마 읽으시라고 집에 가져왔지요. 고맙습니다. :)

순오기 2008-12-31 20:32   좋아요 0 | URL
ㅎㅎㅎ무겁긴 엄청 무겁죠.
저도 대충 보고 집앞 미용실 가져다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