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렛 퀄리'가 주연한다는 <Love of your life> 를 보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지난 <서브스턴스> 이후로 이 배우가 눈에 띄기도 했고, 무엇보다 당신 인생의 사랑 이라는 제목도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다. 다른 정보는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이것이 그냥 인생 사랑 찾는 로맨스 영화인줄로만 알았다. 그건 어느 정도는 맞고 또 어느 정도는 틀렸다. 아니, 어쩌면 내 인생의 사랑은 나 자신 이라고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마야(마가렛 퀄리)'는 26세이며 보스턴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앤티크한 가구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데, 그렇게 오래된 서랍장을 사러 갔다가, 그 판매자인 '찰리'랑 사귀게 된다. 마야는 굳이 인생에 사랑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다정한 남자 찰리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그의 가족들도 소개받게 되고 또 결혼까지 하게 된다. 찰리는 마야가 가고 싶은 곳을 메모해두고 우리 같이 가보자, 라고 말해주며 일에 지쳐 돌아온 마야를 위로해줄 줄 아는 다정한 남자이다. 마야는 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많이 웃게 되었다. 소리내서 깔깔 웃는 일이 많았다.
여기까지는 내가 생각한 영화의 흐름 그대로였다, 그런데,
코로나가 창궐했다.
마야는 응급실 간호사였고 코로나 환자들을 간호하고 돌보느라 매일 진이 빠진다. 지친 하루가 연속되고, 찰리에게 '너 본가에 가있는게 좋을 것 같아' 라고 말하지만, 찰리는 '네 옆에 있을거야' 라고 한다. 그리고, 마야와 찰리 모두 코로나에 감염된다. 문제는, 찰리는 이미 천식을 앓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마야는 양성이지만 이겨내는데, 찰리는 이 코로나를 버텨내지 못한다. 병원에 입원하고 사망하는 동안 마야는 곁에 있을 수 없었고, 그리고 찰리는 죽는다. 마야는 찰리가 죽었다는 상실감도 크지만, 찰리의 가족과 또 친구들이 자기를 원망할까봐 두렵다. 마야는 모든 연락을 받지 않은채로 도망친다.
그녀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포르투갈에서 머문다. 그곳에서 온라인으로 일을 하고 또 온라인으로 상담 치료도 받는다. 그리고 저녁에는 술을 마신다. 남자들은 그런 그녀에게 접근한다. 일을 하고, 상담을 받고,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하고.. 그러다가 '펠릭스'를 만난다. 어린 딸이 있고 이혼한 경력이 있는 펠릭스는 마야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그녀의 마음을 열고자 시도한다. 그녀도 점점 그를 받아들이지만,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는거, 누군가의 가족이 되는거 못하겠어.. 그렇게 그녀는 자기를 봐주던 사람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 혼자가 된다. 다시 소리내어 웃게 되었지만, 그게 좀 더 긴 웃음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녀가 펠렉스와 처음 만나 대화를 할 때, 그녀는 3년전에 남편이 죽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렇게 얘기해도 남자들은 그냥 (섹스를)하더라고요."
오늘 하룻밤 이 여자랑 자야지, 라고 생각한 남자들에게는, 상대방의 사연 따위 궁금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섹스하자, 라는 생각뿐이었던 것.. 하, 인생은 무엇이고 남자란 무엇이고 여자란 무엇이며 섹스란 무엇인가.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그녀는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지만, 회복으로 가는 과정 중에 있다. 이제 그 때 도망쳤던 곳으로 다시 가서, 자신이 도망쳤던 사람들을 볼 용기를 내볼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절친이었던 제이슨에게 연락해서, 그 때 내가 정말 미안했다고 얘기하고 또 찰리의 가족을 찾아가서 정말 죄송했다고 말하며 돌아가는 길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아직은, 아직은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지만, 노력중이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간호 현장에서의 웰빙>이란 주제로 강연도 하게 되는데, 강연중에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환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녀는 환자를 돌보듯이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상실과, 번아웃과, 트라우마가 그녀를 휩쓸었을 때, 그녀는 무조건 도망쳤다.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끊어냈으며 혼자 훌쩍 먼 곳으로 가서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간신히 삶을 이어나가는 것 말고는 술을 마시고 아무나랑 자면서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녀는 이제 우리가 환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된거다.
그녀는 펠릭스를 다시 찾아가서 이제 다시 관계를 시작해볼 수도 있겠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펠릭스는 네가 떠나있었던 건 꽤 오랜 시간이었고, 나는 전부인과 다시 새로운 관계를 이어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사이엔 뭔가 있었지만"
이라고. 그런데 끝났다고.
마야는 이 관계가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자기 삶에 이 사람이 그리고 이 관계가 중요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니까 인생이란 그런거다. '뭔가 있는' 사이를 만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뭔가 있는 사이는 '그저 지나갈 수도' 있다는 거다. 뭔가 있는 사이라면 그 관계가 특별하게 이어질 것 같지만, 그러나 중간에 훅, 끊어져 버릴 수도 있다. 그것은 외부의 영향일 수도 있고 또 나나 상대의 어떤 지점들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뭔가 있어도', 우리는 서로 각자의 길을 가야할 수도 있다. 뭔가 있는 사이는, 쉽게 만들어지거나 만나지지 않는다. 그런데 쉽게 만나지지 않는 사이라고 해서, 쉽게 헤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뭔가 있어도, 우리는 그저 '뭔가 있었던 사이' 그 자체로 굿바이, 사요나라 할 수도 있는거다. 뭔가 있었고, 그것은 특별했고, 또 중요했지만, 그러나 끝.
나는 영화가 상당히 밝은 로맨스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면에 집중한 조용한 영화였다. 마가렛 퀄리가 사랑을 만나고 상실을 겪고 그리고 그 시간을 버텨내다가 결국 회복하기까지를 그린 영화였다. 보면서도 참 좋으네, 했는데, 특히 좋았던 지점은, 그녀가 사랑을 잃고나서 회복하는 과정 혹은 회복 후에 다른 남자랑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걸로 끝맺지 않는다는 거다. 남자 때문에 슬펐는데 남자 때문에 다시 삶을 찾았다, 이런거 너무 진부하지 않나. 삶은 남자로 무너지고 남자로 다시 일으켜세워지는, 그런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좋았는데, 그런 흐름은 영화에서도 작게 또 이어진다. 포르투갈에서 춤을 배우려고 하는데, 학원에서 강제로 파트너를 정해준단 말이지. 이때 마야의 파트너는 할머니이다! 할머니에게 포르투갈 말을 잘 못해요, 하는데 할머니는 상관없다면서 자기를 잘 따라오라고 한다. 그렇게 같이 춤을 추고, 그리고 춤 춘 후에는 둘이 식사도 같이 한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반드시 로맨스 상대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학원에서 만나게 된 댄스 상대가 할머니인 것도 너무 좋지 않은가! 따뜻한 마음으로 마야를 바라봐주고,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지만 다정한 말을 건네주는 거,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댄스 학원에서 어줍잖게 남자 파트너 정해주지 않아서 또 그게 참 좋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마야가 제이슨에게 이렇게 말할 때 좋았다.
"나 룩셈부르크에 집이 있어. 2년 됐어. 텃밭도 있고 이웃들과도 알고 지내."
지금은 미국에 일 때문에 그리고 제이슨을 만나기 위해 잠깐 와있지만, 이제 그녀는 룩셈부르크로 돌아가는 거다. 그곳에 가면 마야의 텃밭이 있고 그리고 그곳에 가면 마야의 이웃이 있다. 하, 너무 좋아. 나는 그녀가 이렇게 훌쩍 룩셈부르크로 날아가 집을 구했다는 사실이 진짜 너무 좋았다. 와, 홀가분하겠다, 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내가 여행으로 룩셈부르크를 간 적은 있지만, 그러나 실제 그곳에서 삶은 어떤 식으로 꾸려지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들 사는거야 어디든 먹고 입고 자는거 다 비슷하겠지만, 문득 궁금해져서 챗지피티에게 룩셈부르크 가정집 풍경 보여달라고 했다.



와... 여기도 진짜 집만 있네.. 아름답지만 집만 있네.
내가 현지 집은 멜버른에서 앤드류 집을 가봤었는데, 앤드류 집 근처에는 진짜 다 집만 있다. 차 타고 어느만큼 나가야 마트가 있고, 집 밖으로 나오면 다 집이다. 서울의 내가 사는 동네처럼, 집 밖으로 나와서 조금만 걸으면 편의점이 있고 다이소가 있고 메가커피가 있는 그런 풍경이 아니다.
찰리가 자신의 본가에 마야를 데려갔을 때, 그곳은 케이프 코드에 있는 마을이었다.

이 사진도 역시 채경이가 찾아주었는데, 영화에 나온 것과 풍경은 좀 다르긴하지만, 집 바로 앞에 이렇게 해안가가 펼쳐진 것도 참 독특하게 아름다웠다. 저 마을에 산다면 어떤 고민을 끌어안고 살까?

찰리와 마야.
뒤에 보이는 풍경이 찰리의 본가가 있는 케이프 코드 마을이며, 그들 집 앞.

찰리 어머니와 마야.
여기가 바로 케이프 코드에 있는 찰리의 본가, 그 집이다.

포르투갈의 마야
영화가 생각보다 좋았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마야가 젊어서. 영화의 마지막에 마야는 고작 서른넷이 되었거든. 물론 마야 나름의 상처와 상실을 끌어안고 삶을 살아가야겠지만, 마야는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려나가고 있다. 아마 뭔가있는 사이를 또 만날 수도 있고 자기 돌봄에 더 집중할 수도 있을것이며 텃밭에서 고수를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 안에 놓인 무거운 짐, 그걸 끌어안고 살다가, 드디어 큰 용기 내어 미안하다고 말할 사람들에게 찾아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그 장면도 좋았다. 내가 다 무서웠다. 그 사람 만나 미안하다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리고 이제 텃밭과 이웃이 있는 룩셈부르크에 살고 있다니. 텃밭과 이웃이 있는데, 또 뭐 다른게 필요할까.
다른 남자를 만나 치유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내년에 나도 다시 룩셈부르크 가볼까?
뭔가 있는 사이, 에 대해 생각했다.
내 인생에도 '뭔가 있는 사이'가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뭔가 있다, 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특별한 경험, 중요한 경험을 내게 주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우리 사이에 뭔가 있었다는 말은, 몇 년 후에 재차 물어도 마찬가지의 대답을 끌어낼 것이다. 펠릭스가 마야에게 그런 것처럼. 마야는 펠릭스에게 몇 년후에 다시 물을 것 같진 않지만, 고맙다고 말한다. 우리 사이에 뭔가 있었던 것, 그것은 반 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지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뭔가 있었던 사이였을 뿐. 그러나 그것으로도 좋지 않은가. 뭔가 있었던 사이, 는 내게 중요한 경험들을 선물했고, 그리고 뭐 어쨌든, 그런 것을 내 안에 가져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 아니겠는가.
뭔가 있었던 그 사람의 얼굴을 오늘은 조금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