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이 책 너무 좋다.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있다. 물론 내용이 유쾌한 건 전혀 아니지만 내가 이미 했던 생각과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가득 나와서 너무 즐겁다. 바로 이런게 책 읽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지난 토요일에는 제3장 <미국의 문화적 항변 사례> 부분을 읽었는데, 문화적 항변과 그에 따른 판결에 있어서 법조인들이 지나치게 게을렀던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문화적으로 그렇다니까 오케바리~ 이런 식의 느낌이어서, 실제로 문화적 항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단지 그 순간 빠져나가기 위한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제 3장에서 설명하는 다문화주의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수전 몰러 오킨(Susan Moller Okin)의 표현을 빌리면, 다문화주의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맥락에서 소수 문화를 보호하는 데 있어 그들 구성원의 개인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따라서 ㄱ별한 집단의 권리(special group rights) 혹은 특권(privileges)을 통해 이들 소수 문화를 보호히야 한다는 주장"(Okin, 1999:2)이다. -p.114


그렇다면 위에 언급한 '문화적 항변' 이란 뭘까?


문화적 항변이란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동원하는 한 수단이다. 법률을 위반한 자신의 행위는 자신이 오랫동안 소속되어온 문화 공동체의 전통에 따른 것이며, 현존 법질서가 추구하는 가치를 부정하려는 의도 없이 의식 속에 이미 내재화된 가치 체계를 자연스럽게 따른 행위였으므로 위법 행위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줄여달라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차동욱, 2006) -p.118


쉽게 얘기하자면, 내가 미국에 갔는데 미국의 법을 어겼고 그래서 법정에 서게 됐을때, '나는 한국사람인데 한국에서는 이게 법의 위반이 아니라 자연스러운거고 그래서 내 몸에 익은대로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어, 나는 이게 위법일 줄 몰랐네?" 하는 것. 그 때 법정에서는 "으응 그럴 수 있지 오케, 이거 원래 3년형인데 너는 걍 3개월만 때릴게, 니네 나라에서는 그렇다니까 뭐~" 로 판결을 내리는거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문화적 항변의 사례를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문화가 다른데, 자기네 문화에서는 합법인데, 그러면 다른 나라에서 저지른 위법에 대해 좀 봐줘야 하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사례들.. 왜 이모양이죠?? 포획... 결혼? 아내...살해?? 그러니까 여자를 유괴하고 강간하는 것이, 아내를 죽이는 것이, 문화적 항변으로 처별이 가벼워질 수 있는 것들이란 말이야? 


참 이상하단 말이지, 그 밑에 사건들은 남편의 부정행위에 수치심을 느껴 아내가 자녀들을 살해했다. 사생아를 낳자 아이를 살해했다. 아들의 성기에 입을 맞췄다. 이거 이상하지 않냐. 무슨 말이냐면, 왜 문화적 항변으로 봐달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자신보다 약자를 향한 범죄이냐는 말이다.  이건 너무나 이상하지 않아? 강간이, 살해가.. 어떻게 '우리 문화권에선 이게 돼' 가 될까????????????????? 그게 어떻게 다른 문화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이상하다. 난 너무나 이상하다.


책에서는 위의 두 사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얘기한다.


첫번째 사건에서,


모우아의 변호인 측은 그 지역의 라오스 공동체 센터에서 일하는 몽족 남성이 작성한 몽족의 데이트와 결혼 관습 팸플릿을 증거물로 제시했다. 변호인은 몽족 관습에서 첫 성관계 전에 여성은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라고 말하고 저항해야 하고, 이에 대해 남성은 "넌 오늘 내 것이야"라고 말하며 자신의 강한 남성성을 과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판 과정에서 몽족 문화에 대한 전문인의 진술은 없었다고 한다(Song, 2007) -p.121


몽족에는 포획 외에도 다양한 결혼 관습이 있는데 팜플릿을 들이밀며 우린 이래, 라는 항변 하나 만으로 강간과 유괴 혐의를 기각하고, 불법감즘죄를 적용해 120일 투옥과 1,000달러 벌금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고 한다. 포획이 아닌 다른 결혼 방법 대신 그가 선택한 게 감금과 강간인데, 그것이 문화적항변으로 인정된거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몽족 문화에 대한 증거나 증언은 저 팜플릿이 전부였다. 



결국 모우아 사건에서 문화적 항변이 인정된 배경에는 미국의 주류 문화에도 강간에 대한 남성주의적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Song, 2007).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미국 사회도 여전히 남녀 관계 전반에서, 그리고 특히 성적 접촉에서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수동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주류 문화와 소수 문화의 이러한 공통성 때문에 모우아 사건에서 피고인의 문화적 항변이 비교적 손쉽게 인정될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p.123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미국이 이 판결에서 문화적 항변을 인정한 것은 다분히 인종차별적 이라는 거다. '아, 저들은 감금 강간으로 결혼한대~'라고 쉽게 받아들였다는 부분에서, 나는 그들이 몽족을 그리고 베트남,라오스,중국등에 대해 '그들은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그 나라들에 대한 그리고 그 종족들에 대한 무시가 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두번째 사건에서도 중국에서는 아내의 혼외정사에 대한 폭력적 복수가 용인될 수 있다는 문화적 항변을 인정받아, 아내를 살해했음에도 5년 집행유예를 받았다고 한다. 



미국의 여러 아시아인 단체와 여성 단체는 천(두번째 사건의 가해자)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특히 차이나타운 내 '아시아여성센터'에 근무하는 바버라 창(Babara Chang)은 그러한 결정이 미국 내 아시아인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우리 문화는 가정의 상황이 어떻더라도 남성에게 자신의 아내를 살해할 권리를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미국 내 아시아인 공동체의 가정 폭력 남편들에게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며, 당신이 중국인이라면 아내를 구타하고 죽여도 투옥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매우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Song, 2007). -p.125


또한 이 법정에서는 현대 중국의 법률체계에 대한 검토도 없었는데, 현대 중국의 형법에서는 부정을 이유로 아내를 살해한 남편을 강력하게 처벌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Song, 2007). -p,125



비록 천 사건의 변호인이 아내의 부정에 대해 미국 남성과 중국 남성이 다르게 반응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문화적 차이를 강조했지만, 실제 성 규범에서는 두 문화 간에 놀랄 만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두 문화 모두에서 여성 파트너의 부정에 대한 남성의 폭력적 복수가 합당한 반응으로 여겨지고 있다. -p.126



어떻게 다른 나라에서는 아내를 죽여도 된대, 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심지어 그 나라에서 실제로 그래도 되는게 아니었는데. 이는 이 판결을 앞둔 법조인들이 '응 아내가 바람폈다니 아내를 죽일 수도 있지'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게 아닌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인정한 거 아닌가. '아내를 죽이다니 그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면, 반박할 수 있는 자료, 그러니까 현재 중국에서는 아내를 살해한 남편을 강력하게 처벌한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지 않았겠는가. 결국 그래도 된다고 그들도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를 살해한 남자에 대해 집행유예가 나올 수 있었던 거 아닐까. 거기에는 그 판결에 가담한 사람들의 여성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126쪽의 인용문에서 그런것처럼, 성규범에 있어서 딱히 그들이 다르진 않았던 것 같다. 여기든 거기든 여성을 죽여도 크게 벌받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문화적 항변은 유용성이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당연하다. 문화적 항변이 반드시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을 향한 폭력이나 살인에 있어서 문화적 항변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저 또 하나의 여성대상범죄를 용인하는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세상엔 여성을 죽이는 남성을 용서하는 아주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 것 같다.





기존의 연구 결과를 검토해볼 때 한국에서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의 충돌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주류 문화가 오히려 이민자 집단의 소수 문화에 비해 가부장제적 성격이 더욱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처럼 소수 문화를 용인하고 보호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남성 우위적인 가부장제적 문화 관습 때문에 여성 이민자의 인권이 침대횔 가능성이 크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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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08-20 1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130페이지 단락 보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ㅠㅠ 갈 길 멀다..

다락방 2024-08-21 11:48   좋아요 1 | URL
진짜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휴 ㅠㅠ

2024-08-20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08-21 11:50   좋아요 1 | URL
ㅎㅎ 대단한 건 아니고요, 매달 같이 읽기로 했으니 매달 같이 읽고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여성주의 책을 놓지 않고 계속 읽는 건 제 스스로 정한 룰이기도 하고요. 힘내세요. 그래도 읽다 보면 어느 틈에 좀 더 눈에 들어오는 때가 찾아 올겁니다. 뽜이팅!!

단발머리 2024-08-20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살인, 여성 살인을 ‘일반‘의 것으로 보는 않는 그런 시선 자체가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데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100쪽 부근입니다. 얼른 따라갈게요.

다락방 2024-08-21 13:53   좋아요 1 | URL
이번 책이 잘 읽히고 유익해서 너무나 좋습니다. 역시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살아야 되는 것 같아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책이 하는 일인것 같습니다. 자, 단발머리 님 힘내세요, 힘!!

독서괭 2024-08-20 1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적하신대로 인종차별도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저 미개한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런 시선이요. 아휴,,, 덕분에 문화적 항변이라는 용어를 알고 갑니다!

다락방 2024-08-21 13:54   좋아요 2 | URL
그 나라가 어디든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는 공통적인 정서인 것 같아요. 표현이 조금 다를 뿐... 너무 빡치는 세상인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여자가 돼라!! 늙은 백남은 안된다!!

2024-08-24 0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25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