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취향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좋아한다는 건 성애를 의미하는 게 아니고, 연인으로서의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고, 인간으로 끌리는 점을 의미한다.
음, 아마 모두가 비슷하겠지만,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이 말한 바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말뿐인 사람이 아닌, 행동으로 그걸 증명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그 사람의 말이 아닌 행동이 보여주는 것이니까. 순간순간의 기분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싫어한다. 내 기분이 좋든 나쁘든 좀 더 신중이 생각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 혹은 그 사이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좋고, 너와 나 사이에 나누는 말들에 무게를 두는 사람을 당연히 좋아한다. 무언가 하고자 했다면 거기에 책임감을 갖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결코 완벽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순간순간 무너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휘청이기도 하겠지만, 그 사람이 그간 내게 보여준 행동으로 내가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면, 휘청이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도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계속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집스럽고 꼿꼿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라서, 신뢰를 가지고 있다면 대체적으로 그 신뢰를 오래 가져가는 편이다. 한 번 내가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을 오래 좋아하는 것이 내 꼿꼿함의 증거다.
이런 성향은 책속 인물 혹은 이야기에도 반영된다. 나는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를 읽고 주인공의 그 어리석을 정도로 꼿꼿한 면이 답답하면서 나같았고 안타까우면서 응원하게 됐다. 물론 그 사람이 맞이한 그 다음의 일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어도, 그래서 순간 '어쩌면 다른 사람들처럼 혐오와 배제를 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을 하고 의심할지언정, 아니야 다시 돌아가도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라고 돌이켜보게 되는 그런 꼿꼿함이 거기 있었다. <헤어질 결심>에서 내가 좋아했던 장면은, 그토록이나 자기 신념을 가지고 일에 몰두한 사람이 누군가를 향한 애정 때문에 흔들렸을 때, 그래서 그동안 자신이 지켜온 자신의 모습이 흐트러졌을 때, '나는 붕괴됐어요' 라고 말하는 바로 그 지점에 나는 흠뻑 반하고 만다. 그런 면들이 내게도 있는 면이라서 그렇다. 내게도 있는 면이라서, 그 고지식함이 꼿꼿함이, 융통성 없음이 내게도 있는 면이라서, 그래서 가끔은 무너질듯한 기분을 갖게 되어서, 가끔은 인생의 그 지점에서 그런 선택을 하면 안되는 것이었나 지독한 후회와 의심이 찾아오는 것이 바로 내가 가진 것이라서, 나는 그런 인물들에 마음을 주고 만다. 말과 행동에 무게를 싣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행동에 무게를 가득 실어버리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에게로 마음의 축이 기운다.
그런 내가, 모세를 만났다. 올곧은 모세.
모세는 입법자이자 재판관이었으며 공과 사를 막론하고 모든 행위를 올곧음이라는 하나의 틀에 끼워넣는 강한 체제를 설계한 공학자, 즉 영적 전체주의자였다.
모세의 활동을 서술한 성경, 특히 출애굽기와 민수기, 신명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빛나는 광채와 관념 형태가 백성들의 마음과 정신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하는 거대한 통로 역할을 한다. 아울러 모세는 깨달음을 안겨주는 두려운 경험들을 통해 점차 아주 창의적인 인물이 되어 세상을 발칵 뒤집고 무수한 세대가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일상적인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다른 곳이 되었으며 예전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 -p.57
모세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모세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데리고 이집트를 나오면서 바다를 만났으나 그 바다가 갈라져 건널 수 있었다는 일화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만화로도 그리고 영화로도 모세의 이야기는 다루어지곤 했는데, 나는 '크리스티앙 자크' 의 [람세스]에서도 모세를 만났었다.
람세스는 람세스 파라오의 이야기였다. 전 다섯권의 책에서,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가물하지만, 모세는 어릴적부터 파라오의 친구였다. 그러나 종교가 달랐던 모세는 성인이 되어 파라오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빠져나온다. 모세와 바다의 갈라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이 성경에서 바다라고 표현되었으나 벼(혹은 보리)밭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때가 되면 물이 빠지는 바다였던 곳이라고도 한다. 람세스에서는 실제 바다가 아니었다고 표현된걸로 기억한다. 밭이었다고, 건널 수 없는 곳이 아니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폴 존슨은 모세를 찬양한다. 위 인용에서처럼 그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거대한 통로 역할을 한 사람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모세를 만났을 때는 그렇게 모세를 대단하게 보지 않았었고 그저 묵묵히 시키는대로 그 길을 따르고 백성들을 인내하는 사람이라고만 받아들였던 것 같은데, 폴 존슨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그러네 그러보고니 모세가 참 묵묵하고 고지식하고 대단한 사람이었네, 하게 되는 거다.
자, 폴 존슨이 모세에 대해 하는 얘기를 계속 들어보자.
인류는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단계를 밟아 조금씩 지속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인물의 역동적인 추진력 아래 엄청나게 도약하곤 한다는 사실을 모세가 증명해 보였다. (................) 모세가 보여준 비범한 정신력은 지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p.57
'너는 모세같은 사람이야' 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내게 있다. 모세를 잘 모를 때(물론 지금은 잘 안다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이 무엇이냐 되물었는데, 사람들을 이끌고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했더랬다. 그런데 그 길을 보여주는 것까지가 내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뒤에 할 일들까지 내게 알려달라고 하면 나는 극도로 피곤해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제 만난 친구도 내게 '너 때문에 내가 이것도 처음 해봤고 저것도 처음 해봤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알게됐어 '라는 말을 했는데 그러고보면 나는 해보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하는 길을 열어주는 쪽으로 모세와 닮았다는 것이로구나 한껏 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내적으로 모세에게 깊이 이입하게 되는 건 폴 존슨의 다음과 같은 문장 때문이었다.
모세는 분명 대단한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초인적인 존재는 절대 아니다.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유대 저술가들과 현인들은 자기 민족의 시조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신격화하는 고대의 강력한 흐름에 맞서 모세의 인간적인 연약함과 실패를 강조하고자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성경의 모든 기록이 이미 모세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경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끊임없이 망설이고, 겁쟁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신이 없고, 실수하고, 완고하고, 어리석고, 짜증을 잘 내는 모세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가슴 아프게도 모세가 자신의 결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는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입법가와 정치가에게 발음이 불분명하다는 약점은 도무지 감출 도리가 없는 최악의 결격 사유다.
더 놀라운 것은 마지못해 맡은 막중한 임무에 따라오는 멍에를 지고 어렵게 씨름하면서 책임을 다하려고 무서울 정도로 노력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고립된 모세, 심지어 자포자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비능률적인 모세의 이미지다. -p.58
인간적인 연약함, 실수하고, 완고하고, 어리석고, 결점을 인식하고,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고립되고, 비능률적이고.
하아- 가슴이 아프다. 나는 고지식하고 꼿꼿하면서 책임감이 강하지만, 비능률적이다. 나는 비능률적이며 융통성이 없다. 책임을 다하려고 하다보면 어깨가 무거워진다.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고, 그런데 순간순간 나의 부족함을 느끼노라면 이 일을 하기에 나는 너무나 부적합한, 부족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숱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고독함이 찾아온다. 크-
성경을 한 번 읽은 걸로는 당연히 그 모든 내용이 기억나지 않고 모세에 대해서도 별다른 기억이 없는데,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 읽다말고 벌떡 일어나서 책장 앞으로 가 성경을 꺼내왔다. 모세오경을 다시 읽어봐야지 싶어져서. 성경에 나와잇는지 모르겠지만, 모세, 고독하고 외로웠을 것 같다. 내 앞에 내가 맡은 일이 있고 그것을 해야하고 그런데 나는 부족하고 이것을 계속 하는 것이 맞을까 의심하고. 모세는 고독했을 것이다. 내게 모세같다고 한 사람은 나에게 반드시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낮에 부지런히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면 저녁엔 반드시 혼자 앉아 먼 바다를 보는 일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를 며칠전에 시작했는데, 공포의 권력 읽다가 펼친 유대인의 역사는 어렵지 않고 게다가 모세 칭찬하는데 갑자기 내 마음이 거기에 기꺼이 따라가고 있다. 모세한테 감히 '모세, 나야?' 막 이러고 싶어진다.
성경이 소개하는 모세는 모든 의구심을 덮을 만큼 확신이 넘치는 영웅의 모습과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섞여 있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p.59
나.. 그렇다면, 매력적인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대주의자 일 리 만무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마지막 저작 [모세와 유일신 신앙 ]에서 한 말 역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모세가 이집트인 제사장이었다는 마네토의 이야기를 근거로 모세의 종교 사상이 아크헤나텐의 일신교적 태양 숭배와 입증되지 않은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저속한 억측을 덧붙였다. -p.61
위의 부분을 읽고 내가 또 이 책 있지, 하고 프로이트의 [모세와 유일신 신앙] 꺼내올려고 책장 앞에 갔는데 결국 찾진 못했다. 흐음... 나, 이대로 괜찮은가.
아,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 3월말까지 읽기로 했는데, 현재 74쪽까지 읽었고 ㅋㅋㅋ 이 책은 총 1,064 페이지라고 한다. 내가 읽어야할 천 페이지가 남은 셈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세!!
한 번 해보는 거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