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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과 포퓰리즘 ㅣ 베스텐트 한국판 9
에디 하르트만 외 지음,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 엮음, 고지현 외 옮김 / 사월의책 / 2023년 3월
평점 :
책의 절반은 가정폭력에 대한 논문이고 독일 연구자들이 썼다. 논문인만큼 어려운 내용도 있긴 했지만, 남성을 대상으로 한 가정폭력을 언급한 것도 의미 있었고,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들을 향한 신뢰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내용을 읽는 것도 좋았다. 그런 한편 시재에 대한 것도 인상 깊었다.
어린아이일 당시 '인간'이라는 보편적 관리를 가져야 함이 마땅하나 그렇지 못하고 또 '아이'라는 약자임에 보호받아야 하나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폭력에 노출될 때, 그리고 주변에 그 사실을 알려도 모두가 침묵할 때 아이는 폭력 속에서 자라게 된다. 훗날 어른이 되어 그 상황에 대해 뒤늦게 고발하게 되면, 과거의 그 시절을 재소환해 이야기 해야하고 또한 그 폭력은 미래의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현재 역시 이 영향을 받는다는 거다. 고발하는 생존자 뿐만이 아니라 현재 계속 일어나고 있을 아동 학대를 언급함으로써 그 앎을 건드린다는 것.
비밀이 보장되는 경청회에서 피해당사자는 전형적으로 상실된 아동기 및 그의 전체적인 삶의 과정에서 성적 아동 학대가 가져온 결과들에대해 말하곤 한다. 그들은 현재로 이어지는 부담들을 주제화하기도 하지만, 또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주제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보고들은 아동기와 연령의 축소라는 현상을 인지하게 해주는데, 왜냐하면 경청회에서는 예를 들면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기관에 위탁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언급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구조에 대한 규명은 또한 항상 예나 지금이나 일어나고 있는 성적인 아동 학대에 대한 앎을 건드리게 된다는 점에서 현재는 매우 현재적인 성격을 갖는다(Jud 2014). 과거의 일이 규명되면서 지금 현재에도 성적 아동 학대가 일어나고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 P84
책의 뒷부분 절반은 포퓰리즘에 관한 것이며 한국 연구자들이 썼다. 한국 연구자들이 써서 그런지 번역된 논문보다 더 잘읽혔고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포퓰리즘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리더가 필요한데, 이는 리더가 없다면 그 결속력이 유지되지 못함을 뜻하기도 한다. 각자가 가진 약자성 혹은 소수자성은 모두 다르고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분노가 일치하여 결속되는데, 누군가 앞에서 그 결속력을 계속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쉽게 해체된다는 것.
그런 내용들을 읽다가 뜬금없이 리더에 대해 생각했다. 요즘 내가 리더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데, 확실히 작은 집단이나 큰 집단이나 리더의 역할은 중요하며, 리더를 아무나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내가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백종원을 얘기하게 되는데, 요즘 방송중인 <장사천재 백사장>에서 백종원은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면서도 이내 자신이 맡았던 일을 하나씩 하나씩 아랫사람에게 넘겨준다. 이는 일을 더 잘 진행되게 하면서 아랫사람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또한 자신은 그 시간에 또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실수가 발생하면 일단 혼내거나 윽박지르기보다는 그 원인을 찾고자 하고 그 후에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거다. 나는 내가 리더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다가 백종원을 보면서 그래 내가 저게 안되지, 하고 구체적인 능력부족을 실감한다. 리더는 정말이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그런데 포퓰리즘이, 그러니까 왜 우리에게도 인권이 있는데 우리를 배제하느냐는 약자성의 발언, 동시에 자신과는 입장이 다른 약자를 배제하고자 하는 혐오의 표현까지 그 모든 것이 표현되고자 할 때, 거기에도 그 나름의 리더는 필요한 것이었다. 일단 여러명이 모이면 리더가 필요했던 것처럼, 이 책에서는 트럼프가 분노한 사람들을 모은게 아니라 분노한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도자로 세웠다는 것을 언급한다.
일견 이상한 정치인이 갑자기 나타나 교묘한 말을 던지고 우둔한 유권자들이 그 말에 현혹되면서 포퓰리즘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런 면이 있다. 분명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거친 말을 쏟아냈고, 분노한 러스트벨트는 이에 호응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부상하는 포퓰리즘을 으레 비정상적이고 이례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고 만다. 현상을 달리 진단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말 덕분에 러스트벨트가 분노한 것이 아니라 러스트벨트의 분노 덕분에 트럼프가 말을 할 수 있었다. 포퓰리즘을 있게 한 것은 바로 이 분노이다. - P114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베스텐트 한국판 9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던데, 다른 것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페르디난트 주터뤼티(Sutterlüty 2002 und 2004)는 아버지에게서 반복적으로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한 어린 여성의 상황을 조사함으로써 이 점을 명백히 밝혔다. 즉 가족 구성원 전원이 계속 그녀에게 연대감을 보임으로써 폭력 가해자인 아버지는 권력 지위에 있으면서도 가족 내에서 주변화되는 듯했다. 상호작용 속에서 표현되는 그런 연대감은 특정 상호작용 맥락에서 폭력이 어떻게 정당성을 잃는지를 보여준다. - P46
물론 수치심은 남녀 모두의 폭력 피해자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는 결국 주변 사람들이 자주 가정폭력을 오랫동안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수치심을 가리는 방식에서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여성 피해자는 자신이 남성 파트너와 폭력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아주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자기 파트너의 폭력에 침묵한다. 이에 반해 남성의 수치심은 여성 파트너로부터 폭력을 당한다는 사실이 자신의 유약함과 남성답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하여 침묵한다(Wil-liamson, Morgan und Hester 2018:57 이하). - P65
종종 장기간에 걸쳐 공고화되는 상호작용의 역학을 고려하지 않을경우 파트너 간의 폭력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없다. 노먼 덴진(Denzin1984)은 폭력적 부부관계의 역학을 만들어내고 유지해가는 결정적 메커니즘을 모범적으로 분석했다. 사례들을 세밀하게 설명하는 가운데 그는 남성의 폭력이 잃어버린 것, 즉 여성과 이들의 온정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기 위한 시도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남자는 여자의 의지와 자유를 획득하고자 그녀의 몸에 강압을 행사하고자 할 수 있는데, 그가 폭력적일수록 그는 이 문제에서 더 실패하게 된다. 결국에 그의 폭력을 촉발한 것은 더욱 강화된다. 즉 그 실패는 그가 통제하고 싶었던 관계를 더욱 파괴한다. 남자와 그의 파트너는 부정적인 감정에 쌓이게 되고 폭력의 징조 아래 서로를 묶는 상호작용의 역학으로 얽혀 들어간다(같은 책: 488 이하). - P66
일어난 일에 대한 부인, 사과, 불성실, 폭력의 발생에대한 책임의 전가, 억압, 희망적인 생각 및 새로운 폭력 사건 등은 장기적 관계의 전형이다. 남성 파트너와 여성 파트너는 폭력이 어떤 면에서 실재하지 않으며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기만적인 믿음으로 하나가 된다(같은 책: 507). 이후에 등장한 연구들은 덴진의 분석을 확증해주고 있으며, 폭력이 멈출 것이라는, 심지어 질투하는 남자의 사랑을증명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저 거짓된 믿음이 낭만적인 관계의 내러티브와 엮여 있음을 보여준다(Lloyd und Emery 2000:45 이하). - P66
상호작용의 역학과 정서적 얽힘은-경제적 의존성 외에도 여성이폭력적인 파트너와 함께 지내는 이유나 여성의 집의 전문 인력의 면전에서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는 이유를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일은 자주 여러 면에서 파트너 폭력의 희생자인 아이들에게도발생한다. "폭력의 순환에 관한 현재 널리 퍼진 문헌(Steinmetz 1977: 98이하)은 어린 시절의 폭력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부모 사이의 폭력 행위를 목격하는 것도 종종 어린이에게 새로운 폭력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P67
따라서 희생자에서 가해자로 되는 것이다. 그들의 직접적인 경험에서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결과의 측면에서 볼 때도, 부모의 폭력을 목격하는 것은 직접적 희생과 비슷하다. 이에 대해서는 부모 간의 폭력, 아동에 대한 폭력 및 아동 간의 폭력이 서로 조건으로 작용하지 않은 경우에도 한 가정 안에서 중첩되어 등장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보다 더 좋은 증거물은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이런 폭력 형태들은 가족 안에서의 상호작용을 서로 강화할 뿐 아니라 아이들의 경우 이후의 삶의 단계에서 더 많은 폭력을 초래한다. 이 모든 것은폭력에 대한 일반적 연구에서 사회화 이론의 중요성을 시사하는데, 최근의 사회화 이론의 탐구에서 이 부분은 아주 소홀하게 다뤄진다(Sut-terlüty 2017). - P67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주인은 우리인데 왜 우리의 목소리가 대변되지 않는가?‘라는 주변화된 이들의 물음에 민주주의 정치가 제대로 응답하지 못함에 따라 생겨난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위기의 한 원인으로 꼽히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위기의 결과라는 점이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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