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니는 회사는 제조업이고 몇 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다. 그 공장에서는 인명사고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입사하고 첫 근로자 사망을 맞닥뜨렸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무서웠다. 나와 한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일을 하다 죽을 수도 있다니! 회사의 대처는 내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고, 그러나 회사는 늘 그랬듯이 잘 흘러갔다. 

그때가 근로자 사망의 처음도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니었다. 부상은 그보다 더 자주 일어났다. 하반신을, 손가락을 다치는 근로자들은 계속 생겼다. 당연히, 임원이 그런식의 부상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가난하게 살았던 페인트공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는, 돈을 잘 번다는 친구의 말에 철강 노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제철소에 들어가 신입 직원 교육을 받는데, 그 과정에서 어느 공정에서 어느 노동자들이 어떤식으로 죽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된다. 그러니 당연히 안전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거다. 어쩌면 내가 어딘가에 깔려서 혹은 떨어져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데 그 일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가 없다. 돈을 벌어야 해. 급여 명세서를 보게 된다면 기쁘거든. 내 위로 뭐가 지나가는지 수시로 살피면서 근로해야 하는 삶이 이 드넓은 제철소에 있다. 



삶과 죽음은 운명일 수 있다. 그리고 공장에 다닌다고 반드시 죽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재해로 죽고 어떤 사람들은 교통사고로 죽는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건강하게 살려고 해도 병에 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잘 걸어가다가도, 잘 자고 있다가도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제철소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임원진들은 그리고 경영자는, 이 제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보다 위험에 덜 노출된다. 깔리거나 떨어져서 죽거나 다치는 위험은 노동자들에겐 언제나 있지만, 그러나 임원진에게는 없다. 사장에게도 그런 위험은 없고 회장에게도 그런 위험은 없다. 대통령에게도 그런 위험은 없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환경은 언제나, 돈 없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오늘 밤에 집에 가 잠드는 것이 다행이고 감사한 삶은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들에게만 있다. 누군가에겐 더 많은 죽음의 위험이 있고 누군가에겐 더 많은 안전함이 보장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이거 너무 부조리하잖아?



신입교육을 마치고 엘리스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특별할 것도 없이, 여성인 그녀를 무시하고 비하하는 늙은 남성 노동자가 그 안에 있다. 



"너희 여자들은 돌봐주기를 바라잖아." 그가 내게 말했다. "너희 여자들은 머릿속에 돈 생각밖에 없지." -p.105



에휴 … 정말 답답스럽다. 너희 여자들은 머릿속에 돈 생각밖에 없지. 그러면 너희 남자들 머릿속엔 뭐 특별한 거 있냐? 너도 돈 벌라고 여기 와있는 거 아녀? 니 머릿속엔 뭐 세계평화가 있냐? 환경 보호 있어? 니 머릿속엔 아동성학대 근절 있냐? 뭐 지 머릿속엔 대단한것 있는것마냥 돈 생각을 욕하냐. 지들도 어차피 돈 벌라고 직장 다니고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권력 옆에 빌붙어 살고 사기도 치고 징징대면서 뭐 졸라 고귀한척 하고 지랄이야. 



엘리스는 어린 시절 학교 남자아이가 자신을 성추행 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때 보았던 눈빛을 얘기한다. 엘리스의 성기를 만지던 어린 '남자'아이의 눈빛. 



눈이 내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남자아이의 시선에는 나를 두렵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텅 빈 눈동자는 걸신들린 듯 거칠어 보였다. 당시에는 그 눈빛의 의미를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게 어떤 눈빛인지 알게 되었다. 후일에 나는 남자들의 눈에서 그 표정을 읽었다. 술집의 남자들. 거리 모퉁이의 남자들. 일터의 남자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해소해줄 빈 공간으로 나를 판단하는 남자의 눈빛이었다. -p.109



나는 엘리스의 이 비유가 아주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욕망을 해소해줄 빈 공간'. 여자를 공간으로 보는 것. 그것은 침략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아직 어린 남자아이에게도 그 눈빛은 있다. 당연하다. 그 남자아이가 자라는동안 도처에 그런 눈빛들이었을테니. 



노동자와, 여성으로 이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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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3-05-17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맛보기로 1장만 읽었는데(서문이 없더라고요?)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포스코도 생각나고.

다락방 2023-05-17 12:17   좋아요 1 | URL
네. 이게 이론서가 아니라 에세이라서 그간 읽었던 책들에 비하면 잘 읽힐 것 같아요. 뒤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흥미진진합니다!!

잠자냥 2023-05-17 1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돈 밖에 없지? 어휴 지들은 뭐..... ˝뭐 졸라 고귀한척 하고 지랄이에요.˝ 증말...ㅋㅋㅋㅋㅋㅋㅋㅋ
아래 책도 그렇지만 이것도 읽으면 분통 터질 일이 많겠습니다....

다락방 2023-05-17 12:17   좋아요 2 | URL
돈 생각 하니까 지들도 일하러 나오는거 아녜요. 진짜 어이가 없어가지고,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세상은 너무 똥같아요!! ㅠㅠ

책읽는나무 2023-05-1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1장밖에 안 읽었는데 흥미진진 하겠다는 생각을 했네요.
간만에 에세이류 여성주의 책인 것 같구요.
작년에 읽었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책을 읽는 기분이랑 비슷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문장 와 닿네요^^

다락방 2023-05-17 14:39   좋아요 1 | URL
네, 읽으면서 노동자라는 정체성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겹치는 바람에 아마도 아주 많이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책나무 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