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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운 세상 속 부서진 나를 위한 책 - 우울한 나를 돌보는 법 ㅣ INFJ 데비 텅 카툰 에세이
데비 텅 지음, 최세희 옮김 / 윌북 / 2023년 4월
평점 :
이번 책에서 데비 텅은 자신에게 찾아왔던 우울증과 불안, 자책, 그로 인해 괴로웠던 경험과 상담을 받으며 서서히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고, 세상에 자신의 경험을 알렸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같은 사람이 또 있네요'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우울한 나를 돌보는 법'이란 부제가 붙었으니 아마도 우울한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데비텅이 언제나 내세우는 MBTI 인 INFJ 인 사람들은 더 공감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그간 데비텅 읽고 좋았던 적은 없었지만, 이번 책은 그중 제일 별로였다. 내가 우울하지 않아서 그런건지 성격이 너무 달라서 그런건지 읽는 내내 친구라면 관계 끊고 싶어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뭐가 됐든 살을 붙이지 않고 뼈대만 말하자면, 그러니까 인정사정 없이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렇게 아픈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는 게 싫다.
자기가 가진 부정적 감정들 혹은 고통스러운 감정들, 그것이 크던 작던 표현하지 못하고 차곡차곡 감추고 쌓다가 우울증으로 터져나온 걸로 데비 텅은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데비 텅이 자기 자신을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몫의 행동들을 해내지 못함으로써 자신을 혹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행동들이 분명 사소하게 나타나는데-그래서 내가 친구하기 싫은거임- 자기가 표현을 안한다고 혹은 감춘다고 생각하는 게 나로서는 영 수긍이 되질 않는 거다. 중간까지는 읽다가 그냥 팔아버릴까 생각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사랑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한 사람이 1인분의 몫을 살아가는게 제일 좋고, 그게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가끔 이렇게 우울증이든 뭐든 어떤 연유로 채 1인분을 못해낼 때, 0.7인분 정도의 몫만 해내고 있을 때, 그럴 때에 짜증내거나 돌아서는 게 아니라 부족한 0.3인분을 채워갈 수 있도록 옆에서 머물고 들어주고 감싸 안아주는 것. 데비 텅이 서서히 세상 속에 다시 섞여들어가고 자기를 돌볼 수 있게 된 건, 너 상담 선생님 찾아가면 어때? 너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오늘은 기분이 어때? 라고 물어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은 거다. 한결같이 옆을 지켜주는 사람, 0.7인분이 되어도 떠나지 않는 사람.
데비 텅은 전작에서도 INFJ 인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는 건 자신의 애인이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에 어떤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가 연결해줘야만 세상과 이어지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때에도 그 연결을 내가 해주고 싶진 않다는 생각을 했다.
또 이번 책에서 데비 텅 보면서 데비 텅 옆에 나는 못있겠다 싶은거다.
역시 나는 사랑을 못하는 사람이군, 사랑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자신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옆을 지켜주는 애인이 데비 텅 옆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데비 텅이 보냈던 시간을 마찬가지로 보내는 사람들이라면, 성향이 데비 텅 같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맞춤한 연인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나 말고. 나는 그런 사람 아님.
아무튼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저마다 다른 사람들과 친구하고 사랑도 하고 그래서 천만다행이다. 0.7인분 한다고 떠나버리는 나같이 싸가지 없는 사람만 있으면 세상 각박해서 어찌 사누.. 온정없는 월드가 되겠지. 데비 텅 같은 사람이 더 많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으로 감싸주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데비 텅의 작품이 한국에 번역도 되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겠지.
조카가 데비 텅 좋아해서 신간 나왔다길래 주려고 산거였는데 나는 여태 읽은 데비 텅 중에 제일 별로였다. ㅎㅎ
그래도 조카는 내가 아니고 내가 조카도 아니고, 조카 엠비티아이 뭔지 모르겠지만(다른 사람꺼 들어도 까먹고 내꺼 외우는 것도 3년 걸림), 조카는 또 좋아할 수 있으니,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임을 존중하며 조카에게 역시 계획대로 주도록 하겠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