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 얘기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어느 얘기를 먼저 할까. 


금요일에 만난 친구와는 제법 오래된 사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의 만남은 2009년 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에겐 우리 둘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더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여러명이서 만났었고 따로 둘이서만 만나기도 했었다. 지금까지 아마도 그 친구가 외국에서 거주할 때를 빼고는 일 년에 두어번 정도 만나면서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아니다, 외국에 거주하던 친구가 한국에 들르러 오면, 그 때도 나를 만났다. 유럽에 머물다 들어왔을 때는 친구의 피부가 까매져있었는데, 그걸 보고 내가 좋아서 꺅꺅 거리던 기억이 난다. 너무 멋있어, 하면서! 그 친구는 유럽에도 있었고 북미에도 있었다. 나를 알기 전에는 서호주에도 있었다. 

금요일에 친구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만나던 그 때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그 때 마음이 뜨거웠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를 벗어난 다른 관계들에 대해 얘기하며 어떤 마음은 집착이 되었고, 집착은 사랑이었을까, 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런데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너를 엄청 많이 좋아했는데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너로부터 응답을 받았기 때문인것 같아."


나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무슨 말이야, 너는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한 적이 없어! 아니야, 나 너 되게 많이 좋아했어, 해서 아니야, 나는 그렇게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 이러면서 투닥거렸다. 좋은 시간이었다. 깔깔대고 우리는 웃었다. 그리고 친구는 사실 이 모든 대화의 전에, 몽상가들의 그 친구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몽상가 친구와는 안 본지 오래되었고, 그 친구가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나랑 이제는 아무 상관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는데, 그리고 그 친구의 손을 놓은건 사실 나였는데, 그런데 그 소식은 내게 충격이었다. 나는 양꼬치를 구우면서 소주잔을 들고, 그 자리에 없는 몽상가 친구에게 건배했다.


잘 가라, 잘 살아라. 굿바이.


한동안 나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충격이었을까.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결혼하지 않고 살아갈거라 생각한걸까. 나는 친구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 북플을 열고 글을 썼다. 뭐라도 해야 했다. 몽상가들 그 사람이 결혼했다고. 그 충격이 나를 그 술자리 내내 감싸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소식을 내내 모른 채로 살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몽상가와 나 사이에 친구가 있어서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친구는 내게 말하지 말아야 했을까, 물었고 아니 잘 말했다고 했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낫다. 집에 돌아와 자고 일어나니 다음날 아침, 모든게 다 제자리였고 나는 괜찮았다.


그리고 어젯밤,

오, 윌리엄을 읽었다.

















몽상가 친구에 대해서라면 우리 사이에 다른 관계들이 있어 이렇게나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신변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든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식이 궁금한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서 내가 그 사람의 소식을 알 수 없는 경우. 그 사람의 소식을 알고 싶다면 기어코 내가 손을 뻗어야 하는 경우. 그러면 참고 참고 참으면서 그저 잘 지내겠지,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 때 그 사람을 괴롭히던 것들은 해결됐을까?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가끔은 우연히라도 마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다면 반갑게 인사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어머님은 건강하신지, 그런걸 묻고 싶은데. 가끔, 아주 가끔씩이라도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좋을텐데.



그래, B 라고 하자.


B와 헤어지 뒤 반년쯤 지났을 때, 나는 그에게 갑자기 말을 걸었다. 그가 응답을 해줄지 어떨지 모르면서 말을 걸었다. 그는 바로 응답해주었고, 우리는 헤어지고 반 년이 지난 뒤에 깔깔대며 통화를 했다. 그리고 그 통화에서 그가 내게 사과를 했다. 우리가 헤어졌던 방식에 대해서, 그 때 그렇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 일에 대해 그를 원망하긴 했지만, 그건 그 방식 때문은 아니었다. 헤어짐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런 한편, 그렇게 말하기까지 그에겐 얼마나 많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을까를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그가 내게 사과를 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반 년이 지난 뒤에, 그 때 그 일에 대해서 사과하고 싶어, 그는 내게 사과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사랑한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헤어진 뒤로 우리는 이런거의 정확히 이런ㅡ대화를 꽤 오랜 세월에 걸쳐 나누었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그런 말이 튀어나온다. 서로에 대한 사과의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윌리엄에게도, 내게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이루고 있는 직조물의 일부다.

우리에게는 그 순간 그런 말을 하는 게 전적으로 적절한 일 같았다. - P164



어제 오, 윌리엄을 읽는데 어김없이 B 의 생각이 났다. 윌리엄과 B 는 공통적인 지점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같이 했던 시간에 대해, 고통을 주었던 과거의 시간에 대해 사과를 한다. 윌리엄은 루시와 결혼 시절 바람을 피웠다. 윌리엄의 사과는 반드시 이 일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루시도 윌리엄에게 사과를 한다. 루시는 자신이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그 순간 옳지 못한 행동을 해서 잘못된 엄마였던 것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 루시와 윌리엄이 이혼한 뒤 윌리엄도 루시도 다른 결혼을 했고 다른 배우자와 살고 있는데, 그들은 아직 가끔 만나고 이렇게 가끔 사과를 한다. 여전히 어떤 순간에는 상대가 밉기도 하다. 그리도 다시 어떤 순간에는 바로 이 지점이었어, 라는 감탄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사과하는 그들이 있었고, 그리고 루시의 자책-나는 그때 못되게 굴었어-에 윌리엄은, 당신은 나쁜 사람인 적이 없다고 달래준다. 물론, 당신은 당신에게만 몰두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한다는 서운함에 대한 토로도 다른 시간엔, 있다. 오랜 시간 그들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이어져왔다. 루시 바튼의 말대로, 


그것은 우리를 이루고 있는 직조물의 일부다.



어릴 적 한 동네에 사는 친구의 엄마는 베틀로 직조하는 분이셨다. 그 집에 놀러가면 친구의 엄마는 발로 밟아가며 세로로 쭉 늘어진 선들 사이로 다른 선을 넣고 딱딱 각을 맞추고 또 발로 밟아 여기로 온 선을 저 방향으로 넣는 일을 반복하며 한 장의 직조물을 만드셨다. 이미 세로로 펼쳐진 실들 사이로 다른 실을 집어 넣는일, 그것을 꾹꾹 누르는 일, 그리고 발로 밟는 일, 그것의 반복이 한 장의 직조물에 필요하다. 


내가 사람들과 맺는 관계, 내가 친구 1과 친구2와 그리고 B 와 맺는 관계. 이것이 우리 사이를 이루는 직조물의 일부일 터. 우리는 꾸준히 오래 함께 그 직조물을 이루어가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끊어져버리기도 한다. 더이상 직조하기를 원치 않는 한 쪽의 의지가 발현되면 별 수 없다. 먼훗날 우리가 돌이켜보며 이것이 우리의 직조물의 일부야, 하기 위해서는 직조하는 너와 내가 필요하다. 


윌리엄은 일흔한살이다. 그에게는 세 번의 결혼이 있었다. 모든 아내들이 그를 떠났지만, 그러나 윌리엄은 처음 결혼했던 아내 루시와 여전히 연락하고 그가 무서운 순간에 루시를 찾는다. 루시 역시 두번째 남편이 죽고나서 무얼 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 윌리엄에게 연락한다. 어떤 관계들은 왜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지 그리고 왜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지 그리고 왜 그런 식으로 끝맺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만든 것은 당신과 나이며 함께한 시간들이다. 일흔한살의 상대를 여전히 만나는 일이, 그러니까 지금은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지 않아도, 내가 말이야 비행기를 타고 저기를 가야 하는데 혹시 같이 가줄 수 있어? 라고 물어보는 게 가능한 사이가, 도착해서는 이제 각자의 방을 따로 잡아야 하지만 그렇게 함께 가는 사이가, 나는 좀 좋다. 여전히 실망할 게 남아있다 할지라도 인간은 원래 나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실망하고 또 다시 사랑하면서 사는 거잖아. 무엇보다 그들 에게는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고, 사실 나는 그 지점이 좀 아프게 부러웠다.


















친구들과 함께《Oh William!》 을 읽기 시작했다. 아마도 읽는 동안 할 말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오래된 관계와 그들 사이의 사람들, 어린 시절과 그 시절이 어른이 된 내게 미친 영향, 가난에 대한 이해, 나랑 완전히 다른 사람에 대한 욕망부터 비슷한 사람에 대한 안정까지. 그리고 사랑받고 싶었던 욕망도.


어제 한자리에서 번역서를 다 읽었다. 아껴 읽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너무 좋아서 너무 좋다는 말도 부족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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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2-05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겁나 읽고 싶네요 ㅜㅜㅜ 하지만 저는 빌레뜨 빼들었습니다. 벌써 12월도 5일이네요 ㅜㅜ 다미여 달리고난 뒤에 나에게 상주는 마음으로 읽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쨌든 잘 읽었습니다. 나랑 완전히 다른 사람에 대한 욕망부터 비슷한 사람에 대한 안정과 사랑 받고 싶었던 욕망..이라니. 끝내준다.

다락방 2022-12-05 10:40   좋아요 0 | URL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계급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너무 좋네요. 마틴 에덴에서도 너무 좋은데 스트라우트도 정말. 샐리 루니까지. 사랑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빈부의 격차- 너무 훌륭하게 펼쳐주셔서 진짜 땡큐 베리 머치고요. 스트라우트는 어떻게 이렇게 책을 읽을 때마다 좋은건지. 오 윌리엄 진짜 좋네요. 짱 좋다.
나도 이제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가야하는데...

공쟝쟝 2022-12-05 10:51   좋아요 1 | URL
루시바턴에서 가난한 집 딸인 거 ㅠㅠ 나올때 부터 난 스트라우트 사랑했어요 ㅠㅠㅠㅠㅠ 계급 ㅜㅜ 나 계급 좋아 ㅠㅠ 근데 진짜 스트라우트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장난 없고… 그걸 정말 아무렇지 않게 써내는 거 같은 게 진짜 치임 포인트예요. 진짜 천재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쓰더라고요? ㅋㅋㅋ 갑자기 또 진짜 천재 한 분 생각나네요 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2-12-06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자리에서 원서 한 권을 다 읽으시다니... 완전 부럽!!! 저 이 책도 얼마 전에 사두었습니다. 서재에는 들어오면 안 된다니까요. 책을 사기만 해, 분명 이렇게 좋은 글을 읽고 이 책 읽고 싶어서 샀으면서 말이죠. 욕망과 안정.... 멋진 말입니다. 막 읽고 싶습니다. 저 책갈피 꽂아 둔 책만 엄청난데 큰일입니다. 인간은 왜 잠을 자야만 하는 걸까요ㅠㅠ

다락방 2022-12-06 13:46   좋아요 1 | URL
아뇨, 꼬마요정 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번역서를 다 읽은 겁니다. 원서는 현재까지 두 장 읽었나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것도 사전 검색해가면서 이틀간 두 장 읽은 겁니다. 그런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ㅋㅋㅋㅋㅋ

꼬마요정 님, <오, 윌리엄> 은 너무 좋네요. 아, 진짜 이 맛에 소설 읽는 것 같아요. 너무 좋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천재천재 대천재 되십니다.
저도 어제 책 좀 읽고 잘라고 침대 헤드에 딱 기대고 앉았는데 한 장도 채 읽지 못하고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열 시에 잤습니다. 흠흠..

꼬마요정 2022-12-07 21:26   좋아요 0 | URL
아, 난독인가 봅니다. ㅋㅋㅋ 사진이 원서라 그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천재로군요. <올리버 카터리지> 재밌게 봤어요. 기대합니다^^

책 읽으려고 커피까지 마셨는데 왜 눈 뜨니 새벽인가요...ㅜㅜ 그것도 고양이가 깨워서 깹니다...ㅠㅠ

바람돌이 2022-12-0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윌리엄을 한국어로도 읽고 원서로도 읽고.... 너무 좋네요. 물론 저는 못하지만..... ㅎㅎ
저는 뭐랄까 인간관계에서 한번 인연이 끊기거나 마음이 떠나면 사실 다시 그 사람 소식을 듣거나 연결되거나 이런거 좀 싫어한달까요? 옛날 애인 소식도 안듣는게 최고라는 마인드라.....ㅎㅎ
다락방님의 애틋한 마음은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네요. ^^

다락방 2022-12-08 12:05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로 한 번 인연이 끊기면 다시 연결되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우연히 마주칠까 두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에 대해서만은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고 소식을 듣고 싶다, 예외가 있죠. 아마도 헤어짐이 나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왜 그 심리학자 있잖아요, 이고은이요. 이고은이 <마음 실험실> 에서 이렇게 말했거든요.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 이고은, 《마음실험실》,P207>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저는 이 케이스인것 같아요. 크- 아련해지네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