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 몸 페미니즘프레임 2
김명희 지음 / 낮은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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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털, 눈, 피부, 목소리, 어깨, 유방, 심장, 비만, 자궁, 생리, 다리, 목숨 등에 대해서 그간 사회에서 여성의 것을 어떻게 다르게 취급했는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얘기해준다. 그간 다른 페미니즘 서적들을 읽어온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말하는 바에 새로운 내용은 없다. 여기에서 더 깊게 들어가 더 풍부한 사례를 가져온 책이 아마도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될 것이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여러가지 부분에 대해 의학적으로 가져온 것은 '마야 뒤센베리'의 《왜 의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가 될 것이고, 자신의 몸을 굳이 학대해가며 성적 대상화 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쉴라 제프리스'의 《코르셋》이 될 것이다. 


도대체 왜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페미니스트가 되는지, 그리고 이미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정체화한 사람이 왜 어쩔 수 없이 래디컬이 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그런데 막 두껍고 복잡한 책 읽기는 싫다!!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 될 것 같다.



각 꼭지마다 생각할 지점들이 당연히 있지만 특히나 아프리카의 여성 생식기 절단, 한국의 소음순 성형 파트 읽을 때는 진짜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고, 《여성 괴물》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생식력 없어서 열등감에 쌓인 개새끼들이(니가 낳은 애가 내 애인걸 확실히 하려면 너는 정절을 지켜야 해, 쾌락을 느껴선 안돼!) 세상을 똥판쳐놨다는 생각 밖에 들질 않는다. 


주목할 점은 남성의 경우, 포르노그래피 접촉이 많을수록 제모 비율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남성의 패션 트렌드와 섹슈얼리티 규범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 P39

특히 구강성교를 선호하는 이들에게서 음모 다듬기/제모 비율이 높았다. 여성의 경우에는 특정한 성교 행태보다는 ‘파트너의 선호‘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실제 파트너의 선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들은 현재 파트너뿐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잠재적‘ 파트너에게 매력적으로 비칠 것을 기대하며 제모를 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남녀 상대 성별에 대한 체모의 승인 정도를 실제로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를 보면 정작 남성은 여성의 음모에 대해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여성의 음모 다듬기/제모는 남성 요구에 대한 직접적 부응이기 이전에, 스스로 가상의 남성 시선을 내면화한 행도이자, 스스로에 대한 ‘성적 대상화‘로 볼 수 있다. - P40

일반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는 톤이 높아야 매력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매력이란 어디까지나 성적 존재로서의 매력이지, 공적 영역에서 그러한 목소리는 핸디캡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영국 신자유주의의 선봉장 마거릿 대처는 선거를 앞두고 로열국립극장의 스피치 코치를 영입하여 목소리를 낮추는 레슨을 받았다. 그녀의 설득력 있는 목소리는 이후 커다란 정치적 장점으로 평가받았다. - P82

여성이 필요 이상 높은 톤으로, 멀쩡한 성인 여성이 아기 같은 목소리로 말하도록 요구하는 사회는 제정신이라 볼 수 없다. 또한 목소리의 높낮이에 대한 편견이나 선호야 어쩔 수 없다 해도, 그것이 실제 공적 영역에서의 차별적 결과로 이어지도록 방치하는 사회도 제대로 된 사회는 아닐 것이다. - P83

도대체 왜 이런 시술(생식기 절단술)을 하는 걸까? 여성생식기의 일부, 특히 성감의 중추인 음핵을 제거하지 않으면 여성이 성적 탐욕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혼전 순결과 이후 정절을 보장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 금속으로 만든 정조대를 여성에게 씌웠다면, 이 방법은 여성의 성기 입구를 문자 그대로 ‘꿰매 버려‘ 일탈을 원천 봉쇄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성의 외부 생식기를 불결하고 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위생과 심미적 이유로 절제를 하기도 한다. 생식기 절제는 공동체에서 소녀가 여성이 되는 일종의 ‘의식‘으로 간주되는가 하면, 결혼을 위한 전제 조건인 경우도 있다. 과학적 타상성이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보건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아동 학대 행위이다. - P149

(소음순 성형)광고들은 공통적으로 부인과 질환에 탁월한 효과, 여성의 성감 회복을 위한 방법이라는 소개로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파트너 남성의 만족으로 귀결된다. 표준적 혹은 적절한 사이즈와 모양, 색깔을 지니지 못한 성기는 비정상이다. 그러면 남성 파트너의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헤픈 여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 그런데 성기 성형 시술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결혼 준비 단계에서 웨딩플래너가 소개해 주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 P152

국가, 시장, 종교, 전통문화(?)가 연합군을 결성하여 엄밀하게 통제하고, 남성 권력이 호령하는 이곳, 여성생식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기어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 P161

정신질환자의 망상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법이다. 예컨대 조선시대 조현병 환자가 ‘독재 정권이 나를 미행하고 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망상에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당대의 사회적 관습 안에서 망상의 내용도 구성된다. 그것이 정신질환자의 망상일지라도 불특정 여성을 증오하여, 여성을 표적으로 삼아 범죄를 저지른 이 사건(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은 개인적 수준에서는 아닐지라도 사회 수준에서 여성혐오 범죄임이 분명하다. - P194

예전에 한국과 일본의 자살 비교 연구를 진행하면서, 세계가치조사의 젠더 역할 설문 결과를 살펴본 적이 있다. ‘일자리가 부족할 때,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은 일자리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이 일본보다 한국에서 10% 포인트 이상 높았다. 그런데 ‘남편과 아내는 둘 다 가구 소득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한국이 일본에 비해 거의 20% 포인트 가량 높았다. 대체 어쩌라는 건가? 남자한테 일자리는 양보하되, 돈은 벌어 와야 한다는 것이 한국 여성들이 직면한 ‘사회적 기대‘이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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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6-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 제모와 망상의 사회적 구성이 특히 놀랍네요!! 조선시대에 없었을 ‘내 귀에 도청장치‘로 단박에 이해가되는.
여성에게는 늘 이중적 요구가 있는것 같아요. 어디선 하이톤이어야하고 또 어디선 남성과 비슷한 톤으로 낮출수록 신뢰도를 높이고요.

다락방 2022-06-24 11:04   좋아요 1 | URL
사람은 다른 사람 그리고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인스타에 맛집 포스팅이 주르륵 올라오면 맛집 가보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처럼 포르노를 반복해 보면 포르노에서 추구하는 것에 자신의 가치관 역시 물들지 않겠습니까. 너무 싫어요. 그래서 덩달아 여성들도 포르노 세계를 살아가는 현실이요. 아아 포르노 너무 싫고 포르노 중독인 남자들도 너무 싫어요 ㅠㅠ

공쟝쟝 2022-06-24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똥판쳐 놓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시원해라 ㅋㅋㅋ

다락방 2022-06-24 11:48   좋아요 1 | URL
절반 이상이 사라져도 아깝지 않을 존재들이여, 저쪽 성별은..

공쟝쟝 2022-06-24 11: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일단 절반은 사라져도 된다는 데에는 동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지들이 망쳐놓고 지들이 구원하는 줄 아는 데 ㅋㅋㅋ 그것 제대로 못해서 여자들이 저리 비켜 ㅋㅋㅋ 했는데 안비킬라고 ㅋㅋㅋㅋ 징징대 ㅋㅋㅋ 아휴 ㅋㅋㅋ

다락방 2022-06-24 13:11   좋아요 0 | URL
세상은 여자 죽이는 데에만 진심이야. 아오 빡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