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려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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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여인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평점 :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책은 《남과북》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읽진 않았고, 그러나 드라마로 몇해전에 보았기에 그것이 사회의 불공평과 로맨스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일전에 그 드라마를 보고(영화였나) 엄청 다다다닥 페이퍼를 썼던 기억이 있는데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니 책으로 엘리자베스 개스켈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흄세 시리즈로는 이디스 워튼에 이어 두번째인데, 이디스 워튼에 대해서라면 와 진짜 글 잘 쓴다 감탄하며 읽었지만, 엘리자베스 개스켈에 대해서라면 글이 좀 늘어진다는 생각을 해 다소 아쉬웠지만 그러나 소설을 읽은 후에 오는 감상에 있어서라면 결코 그 크기가 작지 않다. 그렇다. 내가 대단히 빡쳐있다는 거다. 휴.. 특히 두번째 단편 <마녀 로이스> 읽으면서는 중간중간 한숨을 얼마나 쉬어야 했는지 모른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그랬다.
<회색 여인>은 이 남자랑 딱히 결혼하고 싶진 않은데, 아닌것 같은데, 하면서도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성화에 못이겨 결혼하는 다소 우유부단한 여주인공이 '아나 셰러'가 등장한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이 여자가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데 있다고 해도, 지금의 내가 읽는데에야 아나의 성격은 어쩔 수 없이 답답하다. 어쨌든 돈도 많고 잘생기고 누가 봐도 훌륭한 신랑감인 남자였건만, 그 남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산적이라는 것을 아나는 알게 되고 아나는 하녀와 함께 남편을 피해 도망을 가게 된다. 남편은 아내를 추적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내를 닮은 여자를 죽이기도 하고 아내가 아닌 여자를 죽이게도 된다.
여자가 잘 모르고 결혼했어도 혹은 잘 안다고 생각해 결혼했어도 그 남편이 연쇄살인범이나 강간범인 경우는 일어난다. 스티븐 킹도 자신의 단편 소설에서 남편이 연쇄살인범인 것을 이십년 이상 살게 된 후에 알게 된 여자가 나오고, '레이철 케인'의 소설 《스틸하우스 레이크》에도 알고 보니 남편이 연쇄살인범인 걸 알게 되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사랑하거나 혹은 사랑하지 않았어도 나랑 한동안 함께 살았던 남자가 사람을 죽이는 범죄자라면 그걸 알고 나서도 그 남자랑 계속 사는 게 가능할까? 아마 정체를 알게 된 여자를 죽이게 될 거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사실 이런 상황의 해결책은 무조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연쇄살인범이 다시는 나를 쫓지 못하도록 하는 것일테다. 그런데 어떻게?
《스틸하우스 레이크》에서도 연쇄살인범은 남편이었는데 사람들은 이 아내에게 정말 몰랐을 리가 없다며 계속해 아내를 괴롭힌다. 오히려 연쇄 강간과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있는 남편은 영웅화 되고. 세상의 범죄자들이 남자만 있는 게 아니고 범죄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게 여자들에게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분명히 '여자라서' 죽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왜 살인을 저지른 건 남자인데 그 남자의 아내가 도망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여자들이 이유 없이 죽어야 될까. '내가 나쁜놈인걸 그 여자가 알고 있으니 그 여자를 죽일 거야' 라는 마음에서 출발해 그 여자랑 닮은 여자를 죽이고 그 여자를 돕는 여자를 죽이고. 여자들은 왜 나쁜 짓을 한 게 아니어도 이렇게 죽어야 될까. 그 과정에서 이 남편과 맞서 싸우는 것은 남편을 두려워하는 여자가 아니라, 그 나쁜놈에게 아내를 잃은 다른 남자이다. 죽는 건 여자인데 싸우는 건 남자인 아이러니. 언제까지 놀림 당하거나 맞거나 죽는 건 여자인데 남자들끼리 싸우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야 할까?
<마녀 로이스>는 내가 이 단편집을 통해 가장 답답해했던 단편이고 한숨을 많이 쉬어야 했던 단편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던 것처럼 실제 있었던 마녀 재판, 마녀 사냥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로이스가 마녀로 몰리는 이야기. 이야기의 시작, 어린 로이스는 동네에서 마녀로 몰리고 살해 당하는 여성을 보게 되는데, 그 여성은 로이스에게 '네 아빠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18세의 로이스를 마녀로 몬 것도 로이스가 함께 지내던 외삼촌네 가족이었고, 그러니 누군가 마녀로 언급되고 사형을 당하기까지 그 마녀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없다. 그건 실제로 그녀가 마녀이거나 아니거나와는 별 관계가 없다. 일단 저 사람이 마녀다, 라고 했으면 그 사람은 무조건 죽어 마땅한 것이다. 마녀가 아니라는 본인의 부르짖음은 닿지 않고, 고문을 당하면서 억지 자백만이 남아있으며, 그 자백 후에는 공개 처형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누군가의 한마디 말로 마녀가 되어가는 세상을 다들 어떻게 살아냈을까. 그런 상황에서라면 내가 마녀가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마녀라고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걸까.
1692년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한 후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뉘우치고 반성을 했다고 한다. 그 반성은 그런데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는데. 죽여 놓고 하는 반성엔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로이스는 아직 성인이 되기 전 부모를 잃고 외삼촌 댁에 가게 된다. 자신을 따뜻이 맞아줄거란 기대와 달리 외삼촌은 병들어 누워있고 가족들은 로이스를 싸늘하게 대한다. 외삼촌의 아들 머내시는 로이스와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로이스는 머내시를 전혀 좋아하지 않고 결혼하고 싶지도 않아 거절하는데, 아니 이 미친 머내시는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거다.
"분명 하나님의 목소리가 내게 말했어. '로이스와 결혼해' 라고. 그래서 내가 답했지. '네, 주님.'"
"하지만 네가 말하는 그 목소리가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로이스가 대답했다.
"로이스 곧 듣게 될 거야. 그러면 복종할 거지?"
"아니, 절대 그럴 수 없어!" 로이스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걸 오래오래 생각하면 꿈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격다짐으로 결혼할 수는 없어." -p.145
아 진짜 이 정신나간 놈이. 자기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결혼을 하자고 한다. 그런데 이 상대인 로이스는 그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을 뿐더러(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결혼을 그런 식으로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니 저렇게 세상 미친놈을 만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자기가 믿는 종교, 자기가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신이 자신에게 그렇게 일렀다는데, 그렇다면 어떻게든 그 뜻을 이루려 하지 않겠는가. 아니나다를까 볼 때마다 목소리 아직 안들렸냐고, 나는 점점 더 확실하게 들린다고 숫제 환영도 본다고 얘기하는거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왜 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바로 자기 앞에 서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질 않는거야 세상 꼴통이네 진짜.. 휴..
아아, 과거의 여자들이여, 그런 세상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내고 견뎌낸 겁니까. 여자들이여 ㅠㅠ
뭐, 그렇다고 현재에 저런 꼴통들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ㅠㅠ
<늙은 보모 이야기>는 유령이 나오는데, 유령이 왜 나오냐? 유령에게는 다 유령 나름의 사정이 있고 자신의 풀지 못한 한을 담고 한맺힌 공간에 오는 것.. 이 이야기 속에서도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자매가 나오는데, 그 남자는 딱히 정착하는 남자는 아니었고 자매들의 마음을 가지고 놀면서 한 쪽 여자에게 임신 시키고 그러나 양육의 책임은 지지 않고 자매들로부터 떠나버린다. 만약 그가 자신의 아이와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자에게 책임을 다했다면 죽음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억울함도 끼어들지 않았을 것이며, 엄하게 자매들끼리 싸우거나 가족들의 불화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 잘못은 무책임하게 아이의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 한 남자가 저질렀는데 그 후의 고생과 고통과 불화, 죽음은 여자들의 몫일까. 대환장하는 지점인 것이다. 하아. 왜 여자들은 자기 잘못이 아닌데 자꾸 죽냐, 왜... ㅠㅠ
죽지마, 여자들아.. 살자, 어떻게든 살아남자.
여자들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러니까 곁에 남자들이 있으면 존재 만으로도 죽음의 대상이 되어버려서, 오래 살기 위해서라면 남자 없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건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혼을 하면 한대로, 결혼을 거부하면 거부한대로, 사랑을 하면 사랑한대로, 다 죽어나가네..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건지 모르겠다.
똥같은 세상, 페미사이드로 넘쳐나는 세상.
아무튼 살자, 살아남자, 여자들이여..
너무 마음이 무겁다.
너무 무겁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여자로서 살아남기 힘든 세상을 들려준다. 그것이 그녀가 보았던, 그리고 살아냈던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