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제대로 자지 못해 어제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정이 되기 전에 또 잠에서 깨어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아니 대체 왜..혹시 비염약이 이렇게 만드는 것인가. 분명 이 약 먹으면 졸릴 거라고 했는데 어째서 더 또렷해지는 것인가..

자느라 싸우지 말고 책을 읽자, 해서는 어제 읽고 있던 의지와 증거를 다 읽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니 오늘 아침, 아주 신나는 시간, 무엇을 읽을지 책을 정할 시간. 후훗. 쌓여있는 책들 중에 무얼 읽을까 고민하다가, 이 책, '그래디 헨드릭스'《호러 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을 가지고 나왔다.


나야 워낙에 뱀파이어를 좋아하는데다가 게다가 북클럽이라니. 사실 '호러'에는 딱히 관심 없지만 그래도 코믹하고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 들고 나온거였는데, 아니, 이 책 뭐야? 책을 펼치면 바로 나오는 <작가의 말>을 보자.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북클럽에 나가는 주부였다. 어머니와 그 친구들은 늘 허드렛일을 하고, 운전을 담당하고, 어린 우리가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규칙을 강요했다. 어머니들은 그저 한 무리의 어중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당시의 내가 존재조차 모르던 일들을 그들이 얼마나 많이 감당하고 있었는지. 그들이 궂은일을 도맡은 덕분에 우리는 망각 속에서 흐르듯 살아갈 수 있었다. 그게 거래 조건이었다. 부모로서 고통은 당신이 견딘다. 당신의 아이들은 그럴 필요가 없도록. -p.10



아아, 그러니까, 어릴 때는 몰랐지만 엄마가 무엇을 얼마나 감당해야 했는지 이제는 안다는 거다. 그래서 이 작가의 말이 어떻게 끝나냐고?



뱀파이어는 타고난 연쇄살인마이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걸 상실했다. 친구도, 가족도, 뿌리도, 자녀도 없다. 가진건 허기뿐이다. 먹고 또 먹지만 결코 배부를 수 없다. 나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식욕을 제외하고 그 어떤 책임도 질 일이 없는 남자와 삶 전체가 끝없는 책임으로 점철된 여자들을 싸움 붙이고 싶었다. 드라큘라와 내 어머니를 싸움 붙이고 싶었다.

이제부터 보게 되겠지만, 그건 공평한 싸움이 아니다. - <작가의 말> p.10-11



아니, 이 작가 뭐야!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지 않은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짱이다.

나는 예전부터 뱀파이어 드라큘라 엄청 좋아해서 영화도 막 보러 다니고 책도 읽고 그랬는데 그게 어쩐지 뱀파이어가 섹시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에드워드를 봐라. 얼마나 멋지냔 말이다. 그러니까 벨라도 자기도 뱀파이어 되고 싶다고 막 그러잖아? 게다가 우리는 늙지 않고 미모를 그대로 간직하는 사람을 뱀파이어라고 막 부르고 그러잖아. 그래서 키에누 리브스가 뱀파이어 외모로 유명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아아, 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그래디 헨드릭스 좀 보시게나.


타고난 연쇄살인마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걸 상실한 놈이 뱀파이어란다. 자신의 식욕을 제외하고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남자와 뱀파이어를 비교해서는, 삶 전체가 책임으로 점철된 여자들과 싸움을 붙이겠대. 와, 너무나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 시선이 너무 좋지 않은가. 너무 씐나는거다. 아침부터 막  씐나가지고 오오 출근길 책 선택 졸라 탁월! 막 이러면서 흥분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롤로그가 나오고 본문이 나오기 전, 나는 한 단어를 만난다. 영어사전에 풀이가 되어 있는 것을.






아아, 그래디 헨드릭스. 당신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쳐가렵니까. 와-



그리고 본문을 시작했다. '퍼트리샤'는 북클럽에 들어갔다. 이번주 발표는 자신의 차례이고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 이다. 그러나 그녀는 1페이지밖에 읽지 못했다. 아이들에 남편까지 집안일은 또 얼마나 수두룩해. 이러저러한 사정들이 자꾸만 연달아 생기고 급박하게 처리할들이 눈앞에 쌓여있다보니 발표 당일날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한 상태로 가게 되었고, 그래서 모임의 대장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모임의 그 어떤 멤버들도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는 게 아닌가. 사실 모임의 책 자체가 주최자가 거의 독단적으로 정하는 것이고 그 책들의 목록이 딱히 다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이 부분에서 나도 혹시 그런 사람이 아닌가 몹시 쫄려했더랬다. ㅠㅠ 


아무튼 그래서 모임의 대장이 너무 빡이쳤단 말이야? 그런데 멤버들이 슬쩍 밖에 나가 담배를 피면서 읽지 못한 내가 잘못이다, 라고 생각하는 퍼트리샤에게 그 책이 따분해서 첫장도 읽지 못할 책이고, 이건 다 저 모임 대장 탓이라면서 다른 북클럽을 하자고 하는 거다. 나는 북클럽을 두 개나 할 수 없는걸, 이라고 하자 이 모임은 끝내고 자신들의 모임으로 오라는게 아닌가. 그래서 퍼트리샤는 묻는다. 무슨 책을 읽을 건데?



"『사랑의 증거-교외에서의 격정적 죽음의 실화』."

퍼트리샤는 깜짝 놀랐다. 그건 저질적인 범죄실화소설이었다. -p.33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나는 저 제목 들어본 적도 없지만, 저질적인 범죄실화 소설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오늘 출근길 지하철안에서 딱 여기까지만 읽었는데 진짜 미치겠다. 저거..뭔데. 뭐가 어떻게 저질인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책 읽고 무슨 얘기할건데. 장담하건대, 사랑의 증거-교외에서의 격정적 죽음의 실화가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보다 이천배쯤 더 잘 읽힐거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들 케어하느라 남편 출장 챙기느라 그 외에 가사노동하느라 내가 책을 한 장 펼수 없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 여서 그렇다. 사랑의 증거-교외에서의 격정적 죽음의 실화 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모두가 잠든 밤에 자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이 교외에서의 격정적인 일에 대해 읽고 싶지 않을까. 왜. 뭔데. 어떻게 격정적인데. 나도 다 궁금하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핳.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을 것이므로 얼마나 격정적일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움화화화화화화화화화화홧



그러먼 식욕밖에 없는 남자와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이만 총총.


댓글(6) 먼댓글(1) 좋아요(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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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아직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있다
    from 마지막 키스 2021-09-08 08:55 
    격정적 이야기는 딱히 격정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그런 책을 읽었노라 지나가면서 북클럽 멤버들 일상의 얘기, 그 동네 분위기 얘기가 나온다. 도대체 뱀파이어는 언제 나오고 어떻게 처단한다는건가 싶은데, 오오 이제 나오는 것 같다. 주인공 퍼트리샤의 옆집에 새로 살게 된 남자가 아마도 뱀파이어인 것 같다.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인해서 퍼트리샤는 옆집의 새이웃 제임스와 인사하게 되고 그의 몇가지 일들을 도와주게 된다. 그리고는 책을 좋아하는 그를 자신들의 북클럽
 
 
공쟝쟝 2021-09-07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00책방 가서 표지보고 꼭 읽어야지!!하고 왔던 책 인데 요롷게 맛깔 나게 미리 맛봐 주신다니 감사감사링!!

다락방 2021-09-07 09:30   좋아요 4 | URL
저 이거 읽고 싶어서 조퇴하고 싶네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격정적 뭘까. 얼마나 격정적일까. 나 격정적 너무 오랜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9-07 09:40   좋아요 3 | URL
책에 대한 열망 격정적.. 격정 격정적…ㅋㅋㅋ 피자와 맥주 앞에서의 제 표정, 격정 격정적.. 좋은 책이면 좋겠다.. 조퇴하지는 말고 빨리 읽어봐요 ㅋㅋㅋ 땡투할지 말지 따져보자 ㅋㅋ

다락방 2021-09-07 16:03   좋아요 2 | URL
빨리 읽어야 빨리 쓰고 그래야 쟝님도 빨리 땡투를 할지말지 결정하는데 이놈의 회사를 다니느라 생각대로 안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시 퇴사가 답인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독서괭 2021-09-07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목만 보고는 상상하기 힘든 시작이네요!! 작가의 말 너무 멋져요. 다락방님이 이 책 읽고 쓰실 글도 너무나 기대됩니다!!

다락방 2021-09-07 16:02   좋아요 1 | URL
퇴사하고 싶네요 진짜 ㅋㅋㅋ 퇴사하고 이렇게 재미있는 책만 골라 읽으면서 살고 싶어요.
얼른 읽어야 얼른 글도 쓸텐데 이거 원 회사 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