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새로운 책을 늘 사는데도 책장 앞에 서면 읽고 싶은 책이 없을까? 어제도 책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이 책을 꺼내왔다. 그래, 뜨거운 로맨스를 읽자! 주군의 여인 이라니 제목이 너무나 그 뭣이냐.. 너무...... 아무튼 뭔지 알죠? 여튼 제목이 흐음... 좀 그렇지만..주군의 여인이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이것이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인만큼 작가가 다 뜻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겠지. 어디 한 번 읽어보자.
그렇게 작가 소개를 먼저 읽기 시작하는데, 작가 '알베르 꼬엔'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주군의 여인은 작가의 쏠랄 시리즈 중 제일 인기 있었던 작품이라고. 그래. 잘 알겠다. 시작.
하고 읽는데 처음부터 좀 읭? 스럽다. 그러니까 쏠랄이란 이 남자가, 늠름하고 잘생기고 프랑스에서 주는 훈장도 받은 이 남자가 한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용기를 내고자 한다. 무릇 사랑을 얻기 위해서 용기를 내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가. 아직 용기를 내기 전이고 이제 용기를 낼건데, 그 여인에게 아직 고백하기도 전이면서 '오늘, 이 5월의 첫날에 그는 용기를 낼 것이고,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p.11) 라고 포부도 당당하다. 자뻑이 대단하군. 그는 하인을 시켜 말 두마리를 지키게 하고 여인의 집에 도착한다. 그렇다면 독자로서, 그리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짐작하는 것은, 이 남자가 여인의 집에 도착했다면 벨을 누르고 여인을 만나고 내가 너를 보고나서 반했는데 너랑 교제할 수 있겠니, 만나볼 수 있겠니? 묻는게 아닌가. 그러면 여자가 응 그래, 하던가 아니 싫은데 하든가.. 뭐 여러가지 반응이 있겠지. 여튼 그런 걸 생각하고 읽는데 이 미친 유럽 또라이가 글쎄 여자의 방이 있는 2층으로 가 발코니를 타고 3층 창문을 넘어서 여자의 방에 몰래 숨어드는거다. 이런 개 좆같은... 이게 뭐하는 짓이여? 이 책이 두꺼우면서 두 권에 이르니 아마도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하겠지마는, 아니 .. 여자도 어느 순간 남자에게 반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그렇게 되겠지마는.... 방안에 숨어드는 남자라니. 대단히 돌아버린게 아닌가.
여자의 방으로 몰래 숨어들어 그는 심지어 분장을 한다. 흰 턱수염을 붙이고 너덜너덜한 외투를 입고 이빨에 검은색 스티커 붙여서 이빨도 없는 늙인이인것처럼 분장하는 거다. 그리고 여자의 시어머니(그렇다, 유부녀인 것이다!)의 통화를 듣고는 이 집에 잠시후에 여자 혼자 남게 될것임을 짐작하고, 여자의 방안에서 여자가 써둔 일기를 훔쳐 읽는다. 진짜 가지가지한다, 가지가지해...
'아리안'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었고 시어머니가 아들과 통화하면서 전화를 바꿔주겠다고 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피아노 연습중이라 안된다고 하며 전화를 안받는다. 이 장면에서 아, 남편을 싫어하는구먼...하고 알 수 있었는데, 어쨌든 시어머니도 외출하고 남편도 직장에 가서 혼자 남았다고 씐나가지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욕조에 몸 담그고 샤워도 하고 거울 보면서 혼잣말로 난 정말 예뻐 너무 예쁘지~ 막 이러는데-나중에 남편도 거울보고 자기가 자기 잘생겼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다들 나보다 자뻑이 심하다-, 그 장면을 다 커튼 뒤에 숨어서 쏠랄이 보고 있는거다.
그는 다시 커튼 뒤에 숨었고, 여인이 나타나자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우아한 나이트가운 속의 황홀하도록 멋진 몸매를 경탄하며 바라보았다. (p.47)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그리고 목욕하고 나온 아리안은 그 늙고 추한 남자를 자기 방 안에서 발견하는거다. 이 얼마나 깜짝 놀랄 일이고 무서운 일이란 말인가. 누군가 나 몰래 내 방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끔직한데, 그런데 이 늙고 추한 남자가 자신에게 반했다고 사랑을 고백하는거다. 며칠전 연회에서 너를 보았지, 나는 그때 너에게 반했어, 이러면서 사랑 고백을 하는데, 어느 미친 여자가 오오, 당신의 나이와 겉모습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내 방에 몰래 들어온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당신의 사랑이 그렇다니 나는 당신의 여자에요, 이러겠는가. 그걸 상상한 것 부터가 또라이 끼가 너무 심하게 들어있는거 아닌가 말이다.
당연히 아리안은 끔찍해한다. 방문을 잠갔는데 들어와있다니 바들바들 떤다. 당연히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괜히 소리질렀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침착하게 상대의 말을 그저 들어주자고 생각한다. 남자는 그 연회 이후로도 너를 보았고, 너는 나를 위해 수태된 연인이고, 사랑은 원래 오래 걸리는 일이겠지만 나는 너를 사랑하고 그러므로 너로부터 사랑을 받기를 기대한다, 내 사랑을 받아주겠냐, 묻는다.
내가 왔습니다, 늙었지만, 그대로부터 기적을 기대합니다. 내가 왔습니다, 허약하고 가난하고 수염이 허옇게 셌고 이는 두개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를 잘 아는 내가, 더없는 사랑으로 그대를 찬미하겠습니다. 이는 두개밖에 없지만, 그 두 이를 내 사랑과 함께 그대에게 바치겠습니다, 내 사랑을 받아주겠습니까? (p.57)
이러고 무서워서 알겠다고 하는 여자에게 키스를 하기 위해 다가가는거다. 아리안은 너무 무서워서 뒷걸음질 하다 침대 협탁에 부딪치고 마침 거기 있던 잔을 들어 그 노인에게로 던진다. 노인은 유리잔은 얼굴에 맞고 피가 나고 이 일로 빡이쳐서 여자에게 돌아서라 한다. 여자는 시키는대로 돌아섰고, 아아 나는 총맞는가, 나는 이대로 죽는가 두려워하는데, 잠시후 남자는 다시 돌아서 앞을 보라는거다. 그렇게 아리안이 앞을 보니, 거기엔 외투와 분장을 지운 잘생긴 남자가 서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아- 어쩌라고 진짜.
그리고 남자는 여자의 방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때, 머지않아 찾아올 그 때, 나는 두시간 안에 그대의 마음을 빼앗겠다, 모든 여자, 더러운 여자들이 좋아하는 방식, 더러운 방식으로 유혹하겠다. 그대는 어처구니없이 어리석은 사랑에 빠지게 될 테고, 그렇게 나는 늙고 추한 남자들, 그대들의 마음을 빼앗을 줄 모르는 순진한 남자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 그대는 황홀경에 젖어 넋 나간 눈길로 나와 함께 떠나게 되리라! (p.59)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이것은.... 유럽 또라이? 프랑스 훈장 받았는데 여기는 스위스인데 그렇다면 스위스 또라이? 미친거아냐 진짜? 그러니까 그녀가 얼마나 '개.념.있.는' 여자인지 테스트 해보려고 늙고 추하게 분장했고, 그러나 너는 나의 겉모습 때문에 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늙고 추한 남자들의 복수를 너에게 하겠다! 이러는 거 아녀 지금... 그런데 이 상빠가야, 너도 아리안의 겉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방에 몰래 숨어들었잖아. 와 이거 진짜 순수결정체 100프로의 또라이네. 니가 그여자랑 말을 해봤냐? 대화를 해봤어? 지도 연회에서 처음 보고 쑝 갔으면서, 그러면 뭘 보고 쑝갔냐, 얼굴이랑 몸매보고 쑝갔잖아..그래놓고 무슨 자기는 늙고 추하게 분장해서 여자가 자기 사랑을 받아주길 바라는거야. 내 순수한 마음만은 알아줘, 라는건가. 그러면 나는 당신의 겉모습은 필요없어요, 당신의 내면이 중요하죠, 이러면서 덥썩 받아들일거라고 생각한거야? 외모가 소용이 없어지는 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이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나 좋아한다고 네, 해야 되냐. 그리고 거기서 뭐야 난 너 싫어, 이러면 무조건 늙고 추한 남자를 혐오하는 게 되는거야? 개념없고 싸가지 없는 여자 되는거야? 진짜 미친 또라이네. 게다가 너는 심지어 여자의 방에 몰래 들어갔다고, 여자도 모르게! 그래서 여자를 놀라게 했다고! 야, 경찰에 신고해서 유치장 들어갈 새끼가 잘도 복수 운운하네. 남자들은 진짜 복수를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여자친구와의 섹스 동영상도 '리벤지' 포르노라고 유출하고 공유하질 않나. 니네는 복수가 뭐니? 어휴.. 어릴 적에 내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아 복수하겠다, 이런 게 복수 아니여? 무슨 흉측하게 꾸며서 방에 몰래 침입한 다음에 내 사랑을 안받아줬어? 복수닷! 이러고 그래. 마침 어제 기사에는 짝사랑하던 여성이 자기 사랑 안받아줬다고 사제폭탄 만들어 찾아갔다가, 여자의 아버지를 보고 놀라 달아나다가 폭탄 터져 손목 나간 27세 남성에 대한게 있던데... 남자들에게 복수라는 것은 매우 이상하게 정의되어 있는 것 같다. 정신 똑바로 차려 새끼들아...
하, 진짜 어이없네. 그렇게 몰래 들어가서 흉측하게 꾸미고 일방적으로 사랑 고백을 해놓고 두려워하는 여자에게 추한 남자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더럽게 유혹하겠다!! 이러고 있네. 진짜 새로운 형태의 또라이..인가 했더니 뭐 사실 새롭진 않고 걍 유럽 또라이인걸로...
그런데 이게 60쪽 남짓의 이야기이고, 이 책은 640페이지이며 심지어 이런 게 2권으로 한 권 더있다.. 아마도 남은 부분들에서는 정말로 더럽게 유혹하고 더럽게 사랑에 빠지는 게 나오는것이겠지.. 이 유럽 또라이의 이야기를 내가 읽어야 하는가.. 아..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어쨌든 이것은 사랑 이야기이겠지만, 이 시작이 너무나 싫다.. 그래서 이 사랑을 내가 좋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처음 읽는 순간부터 범죄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는 상태로 나는 아리안의 사랑에 쏠랄의 사랑에 나를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범죄도 뛰어넘는 세기의 로맨스...이런거 될 것인가......
역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가 짱이야.. 히융-
토요일에는 엄마랑 둘이 오랜만에 일자산을 찾았다. 코로나 때문에 일자산에 안가게된지 오래인데 이 좋은 가을날을 그냥 보낼 수가 없더라. 그렇게 마스크를 쓰고 산을 걷는데, 와, 가을 산은 역시 너무 좋았다. 아직 단풍이 지기전이어서 초록이 절정을 이뤘다. 초록초록한 산을 보는게 왜이렇게 좋은건지!
마지막 사진 빨간 자켓은 우리 엄마 *^^*
산에서 돌아와 엄마와 함께 열라면에 순두부 넣어 끓여 먹었고, 책을 좀 읽었고, 낮잠을 잤고, 일어나서는 갈비를 먹으러 갔다. 엄마가 갈비 사준다고 해서 그래 그러면 나는 양꼬치 사줄게, 약속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2차로 와인을 꺼내서 홀짝 홀짝 먹었는데 너무 많이 마셔가지고 다음날 일어나서 겁나게 후회했다. 다시는 이러지말자, 다시는, 다시는.......
그렇게 주말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