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같이읽기 도서인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는 정말이지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다. 짜릿하기까지 해서 어떤 페이지에는 벅찰 정도로 밑줄을 많이 긋게 된다. 1장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2장 성적 권력을 지나면, 3장은 내가 들어본 적 없는 이름, 혹은 들어봤어도 잊었던 이름인 '조세핀 버틀러'에 대해 언급한다. 이 책의 저자인 캐슬린 배리는 저항의 첫 번째 물결이 '조세핀 버틀러'라고 보았고, 3장 전체를 조세핀 버틀러가 한 운동과 그 의의(부작용도 있었다)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캐슬린 배리는 조세핀 버틀러에 대해 꼭 얘기하고 싶어했다.


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조세핀 버틀러를 들어본 적이 없고 들었다 해도 기억에 없는데, 이렇게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그리고 기억하지도 못하는 여성운동가는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게 됐다. 캐슬린 배리도 20년간 연구하고 운동하면서 이 책을 써냈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성의 권리를 위해 애썼던 여성학자들, 여성운동가들이 존재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묵직해진다. 캐슬린 배리는 아마 내가 지금 캐슬린 배리에게 느끼는 이 감정을 조세핀 버틀러에게 느꼈던 것 같다.


조세핀 버틀러는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제도화된 매춘과 싸운' 사람이다. 매춘 여성 구제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이고.


1798년 의사 두 사람이 파리의 매춘부를 검진한 뒤 성병 감염 사실을 경찰에게 보고하는 임무를 맡았다. 1802년에는 진료소가 생겨났고, 경찰은 모든 매춘부들을 등록하기 시작했으며, 일 주일에 두 번씩 의무적인 검진을 하도록 요구했다. 1871년 비엔나에 있는 국제의학협회(International Medical Congress)에서 전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매춘 관리를 위한 국제법이 상정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이 법 체게는 국가가 매춘을 지원하는 형태의 관리로 발전했다. (p.123)



매춘 관리법이 생겨나면서 매춘은 합법화 되고, 매춘이 합법화 되면서 미성년자를 유인하거나 성인 여자를 납치해 성매매에 끌어들이는 일이 생겨났다.



관리를 통해서, 국가 행정 기관이 매매춘 지역의 매춘을 허가하는 것은 세 가지 지속적인 효과를 낳았다. ① 매춘을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것으로 다루게 되었고, ②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학대와 여성 매매를 은폐하였으며, ③ '강제적' 매춘과 '자발적' 매춘 사이의 새로운 구별을 만들어 냈다. (p.124)



합법화된 매춘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응할 수 없었다. 버틀러는 합법화된 매춘에 반대했다. 개인적으로 학대당하는 매춘 여성들을 자신의 집에서 돌보아주기도 했으며 외적으로 캠페인을 벌여 실상을 알리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강제적 매춘과 자발적 매춘을 구별해버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긴 했지만, 버틀러는 매춘을 합법화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결국 여성에 대한 폭력에 다름아니기에 국가와 남자에게 정화를 요구한거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애써도 사람들이 실상을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고 운동이 크게 확산되지도 않아, 그녀는 자신과 뜻을 같이한다는 남자들의 힘을 빌린다.


그중에 다이어라는 남자는 종교,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을 출판하는 사람이었는데, 버틀러와 뜻을 같이한다며 실상을 알리는데 함께하겠다고 한다. 버틀러의 말이 사실인지, 정말 세상이 그렇게 국제적으로 미성년자를 유인해 매춘에 끌어들이는지 확인한 후 그걸 책으로 쓰는 과정에서 다이어는 피해자를 만났고 피해자는 다이어가 그녀의 탈출을 도와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대신 당국에 신고했고 그녀의 탈출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경찰은 대충 조사하고 모든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다이어가 탈출하고 싶다고 말하는 여성들을 자유롭게 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경찰이 업소에 전하도록 함으로써 그 여성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주목해 보아야 할 일이다. 남성이 매매춘 관리에 반대하는 캠페인, 특히 구제 사업과 조사 연구에 참여했을 때, 이들은 피해자들의 운명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자신들은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정의로운 영웅심에 지배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강제된' 매춘과 '자유로운' 매춘을 구분하는 것은 온정주의에서 드러나는 남성들의 영웅 심리를 조장한다. (p.139)



언론인 스테드(W. T. Stead)는 어떠한가. 버틀러는 스테드의 작품과 신문이 존경을 받고 있었기에 그의 캠페인 참여를 받아들였다. 힘있는 언론인이 캠페인에 참여해 도와준다면 그녀의 운동이 더 힘이 실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미성년자 피해자와 성인 여성 피해자를 만들어낸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그대로 반복하는 과정을 거친 거다. 스테드라는 저 남자의 뜻은 글쎄 처음에는 버틀러와 함께 했을지 모르겠으나 결국 매춘여성을 구해주는 스스로에게 도취된 것 같다. 피해자를 구제한다면서 피해자를 만드는 것이 대체 무슨 막짓이란 말인가.




조세핀은 자신의 운동을 확립하기 위해서 온정주의적인 남자와 정치적인 연대를 모색하는 전술상의 과오를 범했다. 필연적으로 이것은 그녀가 반대해왔던 순결 운동가들을 자신의 깃발 아래로 끌어 모으게 되었다. 그녀가 그들과 어느 정도의 신념을 공유했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정치적인 목표는 그녀와 명백히 달랐다. 그들은 영웅처럼 행동했고, 사회적으로 주목받기를 원했으며, 여성과 소녀는 남자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시켰다. 그들은 여성의 의존성을 강화시켰고 여성의 조건으로서 순결을 강조하였다. (p.145)




나는 순수하고 명징하게 조세핀의 뜻에 함께하는 남자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성들이 여성을 위해 연대할 때, 순수하게 진심으로 그 연대에 뜻을 함께하는 남자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지, 실제로 많은 남성들은 자신의 영웅심에 도취된다. 설사 처음엔 순수하게 제도화된 매춘에 반대한다는 뜻을 가지고 참여했을지언정, 어느순간 그들의 그 뜻은 '제도화된 매춘에 반대하는 나를 봐!'가 되어버리고 만다. 다른 부분들에서도 영웅심리가 작동하겠지만, 특히나 이 매춘에 대해서라면 남자들은 그 영웅심리를 도무지 어쩌지를 못하겠는가보다. 그들은 매춘여성 구원서사에 등장해 반드시 그 영웅이 되고자 하지 않나.




자, 매춘여성을 구해주고자 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면도날》을 볼까? 우리의 백남 '서머싯 몸'은 얘기한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나쁘진 않을 거야.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매춘부하고 결혼한 친구들이 있지. 한 명은 스페인 사람이고 두 명은 동양 사람인데, 전부들 아내를 현모양처로 바꿔놨다구.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줬으니 고마워서라도 잘하겠지. 게다가 남자를 만족시키는 방법까지 잘 알고 있으니까." (p.343)



매춘부와 결혼해 현모양처로 바꾸는 것은 이토록 선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여자라고 할 순 없지. 존경받는 사람들 중에서도 술을 좋아하고 아무하고나 자는 사람도 많아. 물론 좋은 습관이라고는 할 수 없지.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 난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사람, 혹은 불친절한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거든." (p.341)



매춘부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니까? 나쁜 여자라고 할 수 없지. 그렇지만 현모양처로 거듭날 수 있어. 빠샤!!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남자들의 영웅심리. 약한 여자를 구원해주고 영웅이 되어 이름을 떨치자는 그 영웅 심리. 애초에 그 여자들의 성을 사고자 한 것도 남자고, 성을 사겠다고 납치하고 유인한 것도 남자다. 게다가 아내가 있든 없든 여자들 찾아가서 성을 사는 것도 남자고, 자기들이 성을 사놓고서는 매춘부를 매춘부라 험담하는 것도 남자다. 지들이 몰아넣은 구멍에서 설사 꺼내줬다한들, 그게 그렇게 자랑할만한 일인가. 아주 놀고들 있다.





매춘 여성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아니 꼭 매춘 여성에 대한게 아니어도, 여성주의 모든 부분에 걸쳐 결국 언어에 대해 궁금해진다. 자유라는 것은 그 단어가 품은 뜻이 긍정적이기에, 자유라 이름 붙이면 반박의 여지를 없애버리는 효과가 있다. 선택도 마찬가지. 성적 자유의지라는 것은, 결국 누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매춘을 선택한다는 것은 역시 또 누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자유와 선택이라는 능동적인 단어가 정말 능동으로 쓰이는가. 그것의 뜻에 갇혀 오히려 억압받지 않는가.


나는 언어가, 그 언어가 가진 힘이 궁금하다. 더 많이 알고 싶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언어는 항상 그래 왔듯이 이런 특징을 아주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너는 우리를 선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렇게 지켜 주어야 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너를 위해 기도할 시간이(하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에 네가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만 해. 우리의 일상을 편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야만 해. …… 어떻게 해서든 너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고, 종국에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야만 해. 어떻게 하는지 알지! 우리는 너에게 그걸 맡기겠어. 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해."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자신의 영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도덕적·영적 책임을 여자에게 맡기는 것을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조세핀 버틀러, p.129)




상류 계급 여성들은 남성들의 부와 지위 때문에 매춘을 했다는 혐의를 거의 받지 않는다. 마차를 타고 거리를 다니는 숙녀들은 괴롭힘당할 아무 위험도 없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여성은 어떠한가? 노동자 계급 남자의 딸, 누이, 아내들이 밤에 외출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험난한 세상에서 아버지, 어머니, 친구 들을 잃게 되었거나, 그들과 멀리 떨어진 채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소녀들은 어떤가? (조세핀 버틀러) - P134

매춘 경험과 관련하여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은 섹스를 거래될 수 있는 것으로 환원시킨다는 문제이다. 제삼자의 개입은 여성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인데, 버틀러는 매매춘에서 제삼자인 포주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바라‘과 ‘강제된‘ 매매춘의 구분을 강조했다. 일단 매춘이 이런 식으로 구별되면 ‘강제적‘매춘에 반대하는 캠페인은 제삼자에 의해 강요되지 않은 매춘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버틀러는 매매춘을 용인한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새로운 캠페인의 기본적인 약점이다. - P148

남자가 섹스를 하기 위해 여자의 몸을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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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19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이 가요. 가치 중립적인 언어는 없는것같아요. 또 절대선으로 여겨질 언어도 마찬가지고요.

다락방 2020-08-19 14:51   좋아요 0 | URL
단어 그 자체가 선한 단어라 할지라도 맥락에 놓고 보면 억압의 수단일 수 있더라고요. 그런걸 보면 모든 학문, 모든 지식은 결국 다 연결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언어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또다른 학문을 여러모로 뒷받침 해줄 것 같아요. 세상에 알아야할 건 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요..

단발머리 2020-08-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정리를 잘해 주셔서 따라 읽기 좋을 것 같아요. 남성들의 선의가 어떤 식으로 변해가는지, 저도 관찰해 봐야겠어요.
제가 진도가 지지부진해서 이런 말하기 참 부끄럽지만, 이 책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좋은 책을 우리가 같이 읽고 있네요.

다락방 2020-08-19 16:49   좋아요 0 | URL
큰일났어요. 벌써 완독한 분이 계신데 저는 아직 159 라서... 물론 저보다 느린 분들도 계시지만.....
좋은 책인건 분명합니다. 속도가 더디지만 읽는 건 참 신나는 일이에요. 단발머리님도 부지런히 읽으시고 좋은 글 많이 많이 써주세요!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