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은 때에 글을 쓰게 되면 너무 우울한 글을 쓰게 될 것 같아서 쓰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피해 고소자에 대한 2차가해를 보는 일이 너무 괴롭다. 왜 이제야 말했냐, 왜 하필 지금 말하냐, 나도 속옷만 입은 셀카사진 받았지만 그건 그분이 소박해서다, 나도 밤 11시 넘어 가끔 문자 받았고 팔짱도 끼고 껴안았지만 그 분은 원래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시다, 무릎에 뽀뽀한 거 가지고 뭘 그러느냐,까지. 얼마전 기사에는 '박원순'이름 석자를 지운 사건 보도가 실리기도 했는데, 박원순 이란 이름을 지웠어도 사람들은 그런 말들을 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자기 말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들 그러는걸까. 그렇다면 피해자가 말해도 되는 때는 언제인가. 그렇다면 피해자가 받아도 되는 문자는 어느 수위인가. 무릎 뽀뽀는 되고 허벅지 뽀뽀는 안되는가. 밤늦게 비밀 채팅을 통해 직장 상사로부터 속옷만 입은 사진이 도착했을 때, 그것이 상체이면 괜찮은가, 팬티를 벗으면 곤란한가. 그런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내가 브래지어만 착용한 채 내 부하직원한테 밤늦게 사진을 전송하면, 그 남자 직원은 나로부터 무엇을 느껴야할까? 그 직원은 자신의 친구들에게 뭐라 말할까. 만약 내게 남편이 있는데, 내가 브래지어만 착용한 사진을 밤늦게 동료 이성직원에게 보냈다고 했을 때, 내 남편은 '너의 소박함이 보여지네'라고 대응할까?



나는 이곳에서 딱히 내가 하는 일을 밝히고 싶진 않았는데, 내가 바로 비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고, 나 역시 다른 부서에서 일하다가 이 회사 대표의 비서로 차출당했다. 지난 주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이라고 운을 뗐었는데,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모멸감과 괴리감은 어마어마하다. 비서로 일한것만도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어떤 모멸감에 눈물이 차오른다. 다행한것은-이런 것을 다행하다고 말하게 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내가 모시는 상사가 성희롱을 싫어한다는 데 있다. 몇해전 회식을 하는 도중에 다른 임원이 술을 마신 채 내 옆자리로 왔고 평소에 그 분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그날 그자리에서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고심하는데, 나랑 몇자리 떨어져있던 보쓰가 그 임원에게 그랬다.


"야 임마 뭐하는거야!"


소리지르는 보쓰 앞에서 아 평소에 이 친구가 제 일을 잘 도와줘서..라고 임원은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해야했다. 임원이 잘못한 거고, 그것이 잘못된 걸 보쓰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수십명의 직원 앞에서 그렇게 면박을 당한건 임원이었는데도, 나는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고개를 드는 일이 힘겨웠다. 지금 그 때를 생각해도 역시 수치스럽다. 머리로는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 잘못은 그 임원이 한거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수치는 나의 몫이 되었다. 너무 모욕적이다.



보쓰와 나는 오랜 기간 함께 일했고 그래서 서로 어느 정도 신뢰가 쌓여있다. 오랜 세월 보쓰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제 보쓰는 어떤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내 의견을 묻는다. '네가 나보다 더 잘 아니까' 라면서.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쓰랑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고, 서로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이도 아니다. 나는 카카오톡을 설치하지 않았다. 아마 직장을 다니는 동안은 계속 안할 것 같다. 일전에 다같이 회식하는 자리에서 한 임원이 대화도중 애니팡 순위 얘기를 하면서 화면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직원들의 애니팡 순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 때 느꼈던 소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와, 나 카카오톡 안하길 천만다행이구나, 앞으로도 안해야지. 심지어 나는 보쓰의 전화번호도 내 핸드폰에 저장해두지 않았다. 혹여라도 어떤 실수로 연락이 갈까봐 애초에 싹을 잘라버려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업무상 문자를 주고받아야 할 일이 있다면, 주고받은 걸 확인한 뒤 바로 삭제한다. 그 번호에 대한 어떤 흔적도 내 폰에 남기려 하지 않는다. 다만 전화번호를 외우고만 있다. 혹여라도 피치못할 사정으로 연락이 온다면 누군지는 알고 받는 편이 유리하니까. 어떻게든 개인적인 연락을 피하기 위함인데, 최근에도 다른 임원이 너 왜 카카오톡 안하냐, 라고 은근히 카카오톡 설치를 권유하길래, '네 안합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공유하는 메신저가 있으면, 한 번 부를거 열 번 부르게 된다. 이렇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개인적 연락이 싫어 철저하게 막고 있는데, 밤늦게 연락하는 상사라니, 생각도 하기 싫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끔찍하다. 그리고 이런 일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했을 때, '그 분이 그럴 분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도 너무 끔찍하다. 내가 여기 있는데 지금 뭐라는거야.




한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가 어떤 일을 했든, 어떤 업적을 쌓고 어떤 잘못을 했든,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는 그의 존재가 사라짐이 슬픔이고 아픔일 것이다. 가족들은 당연히 상실감이 가득할 것이고, 끝까지 그 사람을 믿고 싶을 것이고, 그리고 그의 존재가 사라졌다고 해서 애정까지 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고인의 죽음에 대해 괜히 피해고소인의 탓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네가 아무말도 안했다면, 이라는 피해자의 침묵을 바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 속에 그런 생각 품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피해고소인에게 가해자인 사람을 대신 변호해주어서는 안된다. 입밖으로 피해자를 향해 '(가해자가)그럴 사람이 아니야'를 말해서도 안된다.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면 피해자는 이럴 사람인가? '그정도로 예민하게 왜그래'를 말해서도 안되고, '왜 하필 지금 얘기해'를 말해서도 안된다. 피해자가 피해를 고발하는 일이, 그렇다면 언제 적당한가. 피해자가 느꼈을 기분을 왜 다른 사람이 정하는가. 왜 그 분의 다정함과 소박함을 피해자에게 강요하는가. 왜 어떤 속옷 사진은 괜찮다고 말하는가. 그걸 누가 정하는가. 그런게 싫었다면 직장을 관둬야 한다는 말들도, 왜 늘 피해자에게 향하는가.'나는 그거 괜찮은데 왜 너는 안괜찮냐'고 피해자에게 말하는 대신, '그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가해자에게 말해야 한다. 증명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피해자에게 요구해서도 안된다.



그 모든 피해자를 향한 날선 말들을 멈춰야 한다.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아야 한다.
















 

"다른 학교로 옮길 생각은 아직도 없는 거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말로 전공 과정이 있는 대학은 영국에 세 곳뿐이야. 벨파스트와 에든버러, 그리고 우리 학교. 게다가 러브록은 단지 그들 중 하나가 아니라, 최고야. 가장 많은 연구비에, 가장 규모가 큰 팀, 가장 높은 명성까지. 이제 와서 전공을 바꾸는 건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제길, 맞아. 왜 네가 옮겨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넌 여기까지 오려고 정말 열심히 했고, 지금 하는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데다, 잘못한 건 하나도 없잖아. 애들고 그 좋은 학교에서 나와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할 테고, 너희 아빠하고도 떨어져야 하고. 빌어먹을!" -《29초》, T. M. 로건, p.31


















 

닐스 비우르만은 그린피스 회원이며, '청소년을 위한 봉사 활동'등을 통해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한 존경받는 변호사로 소개되고 있었다. 한 단에는 비우르만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이며, 그와 같은 건물에 사무실이 있는 루네 호칸손 변호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싣고 있었다. 호칸손은 비우르만이야말로 힘없는 사람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후견위원회의 한 공무원은 "피후견인 리스베트 살란데르에 대한 진정한 봉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구판, 2부-하권, 스티그 라르손, p.129




 
















가해자에 대한 공포는 평생 따라다닌다고 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절대 없어지는 감정이 아니라고 했다. 암울했다. 재판을 진행하며 2차 피해를 심하게 당했다. 가해자 측과 가해자 변호인으로부터, 직장 동료들로부터, 그리고 사회의 숱한 편견으로부터 공격당했다. 가해자 측의 피해자를 공격하는 논리와 패턴은 대부분이 흡사했다. ‘피해자다움‘.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SNS를 모두 털어서는 왜 이날 이렇게 웃었냐며, 왜 아무렇지 않게 일했냐며 공격했다. 피해자의 삶은 잘게 분절되어 해체당했다. 성폭력을 겪었고, 문제를 제기했을 뿐인데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겪는 부당함은 온전히 피해자의 몫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이후에도 피해자는 회사와 학교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이게 내가 만난 미투 이후 피해자들이 겪는 진짜 현실이다. -《김지은 입니다》, 김지은, P296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7-1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공감하고 분노하게 되는 글임에도 ˝내 남편은 ‘너의 소박함이 보여지네‘라고 대응할까? ˝에서는 저도 모르게 그만 뿜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20-07-15 14:34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웃음코드를 넣으려 한게 아니었는데 들어가버렸네요. 이런 ... 하하하하하

2020-07-15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5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5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5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5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5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0-07-15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답답하고 계속 혼란스러웠는데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20-07-15 15:17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

레와 2020-07-1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차 가해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 (이젠 공동가해자라고 부르겠어.)
이미 죽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증명했는데, 뭐가 더 필요해.


글 고마워. 친구.

다락방 2020-07-15 16:18   좋아요 0 | URL
천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