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기 전에는 에이미와 이저벨을 읽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읽었는데 하아. 잠들기 전 내가 읽은 부분에서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제발 그러지말라고 바랐던 나의 마음을 로버트슨은 자비없이 짓밟았다. 이 아이를 어떡하나 어떡하나. 로버트슨이 한 짓에 대해 너무 고통스러웠고, 이 일을 알게된 이저벨 때문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기분이 엉망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차 안에서 로버트슨이 에이미에게 한 짓이 바로 떠올랐고 개쓰레기 자식이라고, 이 나쁜새끼를 알아보지 못하고 여전히 착각에 젖어있는 에이미를 어쩌면 좋으냐고, 그런 생각에 휩싸이다보니 출근길에 에이미와 이저벨을 읽는 걸 잠깐 보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그래서 7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를 펼쳤다. 총 228페이지의 얇은 책이니 후딱 끝내버리자, 라고 생각한거다. 그렇지만 ㅠㅠ 저자 서문부터 스트레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뭐 이렇게 어려워.




유물론적 레즈비어니즘, 이것이 내가 이 에세이 선집의 초반부의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을 지칭하는 말이다. 나는 이성애를 제도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억압과 전유에 기댄 정치적 레짐으로 설명한다. -저자 서문, p.5



유물론적, 레즈비어니즘, 정치적,철학적, 전유, 레짐.... 책을 펼치자마자 시작하는 가장 첫 문장이 저모양이다. 아, 내가 어제 에이미 때문에 마음이 안좋아서 그런지 너무 빡이 치는거다. 레짐은 뭐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걍 무시하고 읽으려는데 그 뒤의 <해제>에서도 레짐은 등장한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스트레스가 찾아오고 있다... 그러니까, 그간 책을 읽느라고 열심히 읽었는데, 이만큼이나 읽었는데도, 아직도, 여전히, 펼치자마자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책이 있다니... 내 독서인생은 무엇인가. 그런 한편, 만약 내가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다면, 레짐 같은 단어 나왔을 때 훗, 레짐 따위.. 이러면서 넘길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면서 공부를 못했던 나를 원망했다. 세상은 똥이고 나는 빵꾸똥꾸다 ㅠㅠ



자꾸 등장하는 레짐 때문에 사전을 찾아봤다.





뭐여... 가치와 규범 및 규칙들의 총합... 뭔말이여...... 앙시앵 레짐이 퍼뜩 떠올랐다. 앙시앵 레짐 뭔데 이렇게 입에서 맴돌지? 나 레짐은 몰라도 앙시앵 레짐은 알아? 그렇지만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그런데 나는 앙시앵 레짐은 익숙하지만 그것이 뭔디? 물으면 답할 수가 없는 거다. 작가 이름인가? 만약 그것이 작가 이름이라면 나는 그의 책을 댈 수 있어야 할텐데 아무것도 댈 수 없는 거다. 유명한 작가인데 내가 작품을 안읽어서 기억을 못하나? 뭣여? 나는 하는수없이 앙시앵 레짐도 네이버에 쳐넣어본다.





........프랑스 혁명 전의 '구제도' 같은 걸 내가 알 리 없잖아....... 도대체 이 단어를 내가 어째서 익숙해하는거지? 어쩌면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 언급된 단어인가 보구나.



모니크 위티그는 이성애를 제도라고 생각하고 여성을 계급이라 생각한다. 해제에 보면 그녀의 에세이중에 몇 구절이 인용되어 있는데, 양미간을 모아가며 집중 뽝-하고 지하철에서 읽다가 나는 이런 구절을 만난다.




이처럼 성교 의무와 그 의무가 사회 구성에 필요한 것으로 생산하는 제도를 거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하다. 이는 타자의 구성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이고 "상징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 제도 없이는 누구도 내부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기에 의미 형성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즈비어니즘, 동성애 그리고 우리가 만든 사회는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다. 이성애적 사유는 계속해서 근친상간을 승인하고, 동성애 금지가 아닌 근친상간 금지를 주로 재현한다. - <해제>, 허윤, <이성애적 사유>中 재인용, p.26




모니크 위티그가 주장하는 바는 《여자는 인질이다》에서 더 명확하고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나는 '이성애적 사유'가 '근친상간을 승인'이라는 구절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아버렸다. 근친상간, 을 떠올렸을 때, 예외없이 '이성간'에 발생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딸, 할아버지와 손녀, 삼촌과 조카, 오빠와 여동생... 그러니까 근친상간은 '이성'사이에서만 행해진 폭력이었다. 근친상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여성인 경우를 나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던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애적 사유는 계속해서 근친상간을 승인하고'라는 구절이 나올 수밖에 없었겠구나! 대충격이었고 개싫었다...



아직 해제만을 읽었을 뿐인데, 옮긴이 '허윤'은 이 책에 실린 모니크 위티그의 에세이 중에서 이런 구절을 또 언급한다.



"우리가 잘 자라는 것은 남성을 위한 것이고, 우리가 사는 것은 남성에 의한 것이다. 남성은 우리의 몸을 구매할 수 있고, 욕망이 충족되면 버릴 수도 있다." 이처럼 성적 착취, 성별 분업과 여성 노동에 대한 멸시 등을 고발하면서 여성을 노예 계급으로 명시하고, 계급 해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외친다. -<해제>, 허윤, p.28




얇은 책이라서 후다닥 읽어버릴랬더니 해제만 읽는데도 가진 에너지를 다 쏟아야 한다. 해제까지만 읽고 잠시 멈춤하겠다. 에이미가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되는지, 자신이 그토록이나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착취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날이 올런지, 그걸 좀 읽어야겠다.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현재 37쪽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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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0-07-0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저도 에이미와 이저벨 읽었어요..

다락방 2020-07-01 11:12   좋아요 1 | URL
로버트슨 찢어죽이고 싶어요 ㅠㅠ

테레사 2020-07-0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나쁜새끼입니다

단발머리 2020-07-0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짐/근친상간/37쪽... 이렇게 요약되네요.
전 ‘여성을 하나의 계급으로 본다’는 부분에서 <성의 변증법> 생각했지만.. 이 책은 더 어려울것 같다는 예감 가득... from 32쪽

다락방 2020-07-02 08:06   좋아요 0 | URL
얇다고 무시했다다 호되게 당하고 있어요. 저 37쪽 이후로는 안펼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