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알라딘 이웃의 파트리크 쥐스킨트 의 《좀머씨 이야기》리뷰를 보고 이십대 중반의 내 연애가 떠올랐다. 당시에 이 책이 엄청 인기 있어서 나도 읽었는데, 읽다보면 중간에 화자인 어린아이가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선생님의 코딱지가 붙은 건반을 누르는 일이 생긴다. 너무 누르기 싫었는데 선생님은 건반을 얼른 치라고 윽박지르고 이에 아이는 할 수 없이 이걸 눌렀다가 치욕스러워 하면서 죽자, 죽어버리자, 하고는 학원을 나가 달려가서는 한 나무 위로 올라간다. 죽을거야, 치욕스러워, 죽겠다, 하고 그 위에서 고통스러워 하다가 지나가는 좀머씨 를 보게 되고, 그러다가 '내가 왜 코딱지 때문에 죽어야하지?' 하고는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장면.


그 장면이 너무 좋고 재미있어서 당시의 애인에게 데이트중 만났을 때 씐나서 설명했었다. 내 얘기를 듣던 그는 껄껄대고 같이 웃었더랬다. 내게 좀머씨는 그렇게 코딱지-이십대 중반의 애인-웃음 으로 마무리되고, 그 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고 결국 내 인생에 오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다고 최종적으로 생각하지만, 그 순간의 즐거움만큼은 남아 있다. 내가 읽던 책 이야기를 해주고 그가 듣고 함께 웃던 장면.



오늘 이 일이 갑자기 떠오르자, '그러고보면 나는 늘상 책 이야기를 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이야기를 하는게 얼마 안된거라 생각했었는데, 나는 그냥 책 이야기 하는 사람이었어.



《올훼스의 창》은 원작이 만화지만 나는 만화의 존재를 모르는채로 세권의 소설로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는데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수업시간에 연습장에 등장인물들 써가면서 짝꿍에게 속삭이다가 선생님에게 걸려서 혼나기도 했었다. 짝꿍 바뀔때마다 얘기해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뿐 아니라 영화 이야기도 그렇게나 많이 했다. 중학교때 한창 빠져있던 영화 《더티 댄싱》얘기도 앞에 앉은 애들 뒤에 앉은 애들 할 거 없이 다 해줬는데, 내가 얘기를 해주면 애들이 모여서 듣고 그러다가 어떤 애들은 꼭 그 영화를 자기가 직접 보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이런 말을 듣게된다.



"야, 니가 말해서 더티댄싱 봤는데 재미없어. 니가 말해준 게 더 재밌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너무 과장했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지간에 그랬더랬다.



















이십대 후반이었나, 친구를 만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얘기를 해주던 것도 기억에 남아 있다. 친구는 내 퇴근 시간에 맞춰 내가 다니는 회사 앞으로 왔고, 나는 친구를 데리고 회사 근처의 삼겹살집에 갔다. 삼겹살을 구우면서 나는 이 책을 읽는 중인데 너무 씐난다고 말을 했던 거다.


주인공의 언니는 주인공이 선물 받은 사랑이 담긴 장미꽃으로 만든 요리를 먹고는 온 몸에 욕망과 열기로 불타버릴 지경이 되어 찬물로 샤워를 하러 가는데 그래도 잠재워지지 않아 발가벗고 춤을 춘다. 저 멀리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던 한 군인이 그녀를 보고는 자기 말에 들어 태우고, 그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언니는 그렇게 그 군인과 떠나버리는 거다.


뭐랄까, 당시에 이 장면이 너무 놀라워서, 대체 소설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상상하고 만들어내는가, 너무 놀라서 친구에게 씐나서 얘기해줬다. 친구는 들으면서 웃었지만 나만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얘기하는 내가 더 씐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한편 점심을 함께 먹던 회사동료와 사무실로 들어가던 길에는, 《피츠제럴드 단편선》의 <컷 글라스 보울> 얘기를 해줬더랬다. 여자와 남자가 사귀다가 헤어지고 여자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는데 이에 전남친이 저주를 담은 컷 글라스 보울을 그녀에게 결혼선물로 주는거다. 그의 저주는 통해서 이 보울에 칵테일을 만들어 손님을 접대하다가 남편은 취해서 실수를 하고, 이 보울에 담긴 편지는 아들의 전사소식을 담고 있었다. 이에 여자가 이게 다 이 보울 때문이야, 하면서 너무 화가나 이 보울을 들고 나가 머리 위로 들고 바닥으로 던지는데, 발을 헛디뎌 그 보울 위로 넘어지게 되는...



이 얘기를 해줬더니 동료가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거다. 그래서 내가 책 읽어봐, 했더니 '차장님이 얘기해주는게 더 재밌더라고요, 제가 읽으면 재미가 없어요'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 동료는..그냥 책 읽기 싫어서 그런것 같다.....




나는 이렇게 늘상 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어. 이렇게 알라딘에 페이퍼를 쓰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책 이야기를 했을 사람이구나, 라고 오늘은 새삼 생각했다. 다, 좀머씨 이야기 때문이다.




귀찮아서 핸드드립은 결코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드리퍼와 필터를 샀었는데, 아아, 나는 오늘 ..그러니까 방금 전에, 서버를 주문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하리오 드립서버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나 오늘 아직 커피를 못마셨어. 주문한 커피가 아직 오지 않았거든. 알라딘 내 커피 빨리 내놔... 내게 올 알라딘 박스가 세 개다.... 자, 차례로 오라, 내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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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6-29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립포트도 추가요....예쁜 걸로 다가...있으면 다른 모양으로 또...

다락방 2020-06-29 12:26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저 진짜 그런 사람 아닙니다. 핸드 드립해 내려먹는 사람 아니라고요. 안살거에요, 안살거란 말입니다. (흐느낀다)

반유행열반인 2020-06-29 15:30   좋아요 1 | URL
드립포트의 가늘고 매끈한 곡선 주둥이로 물줄기를 요렇게 저렇게 낮게 높게 조절하며 달라지는 맛을 음미하며...왜 다락방님 주머니를 털지 못해 안달인 것인가...저만 당할 수 없다...도 포함인 듯...드립포트는 정말 이쁘고 귀여운 게 많습니다. (집요)

페넬로페 2020-06-2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먹으며 차마시며 언제든 책 얘기 할 수 있다는게 참 좋네요^^

다락방 2020-06-29 13:43   좋아요 1 | URL
책 얘기는 너무 재미있죠. 책 읽으면 할 얘기도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