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랜드 열다 페미니즘 총서 5
게일 다인스 지음, 신혜빈 옮김 / 열다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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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코타 존슨' 주연의 영화 《하우 투 비 싱글》에 보면 여자1이 여자2와 싸우나에 가서 그녀의 음모를 제거하지 않음에 대해 언급한다. 니가 거기의 털을 제모하지 않았다는 것은 연애(섹스)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인즉슨, 섹스를 위해서라면 음모를 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성인여자가 연애를 위해서 좀 더 정확히는 섹스를 위해서 보지의 털을 밀어야 하는가.

'게일 다인스'는 그것이 세상에 만연한 포르노 때문이라고 몇 번이나 사례를 들어 언급한다.

한 대학에서 여자 대학생들이 '그건 내가 원한거야' 혹은 '나를 위해서야'라고들 말했지만, 얘기하다 보니 '보지 털을 밀지 않으면 남자친구가 섹스 하기 싫어해' 라는 대답이 나왔던 것. 그것을 마치 부수적인 것처럼 얘기했지만, 여자들이 자신의 신체를 변형하면서 포르노를 산다고 얘기하는 거다.


몸에 대해 변형을 가하는 것은 모든게 끔찍하지만, 특히나 보지털을 미는 것에 대해서라면 나는 더 끔찍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성인 여성에게 온 몸의 털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보지라고 다를 것도 없다. '게일 다인스'는 이 책에서 여러가지 포르노를 다루면서 당연히 '아동 포르노'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자, 음모 제거에 대해 보자.



여자의 몸을 아동화하는 또다른 기법 하나는 음모를 전부 제거해 외음부가 사춘기 전 여자의 그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수년간 포르노에서 여자의 외음부 전체 제모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이 기법이 그 표지의 기능을 크게 상실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한 한가지 결과는, 현재 사실상 모든 여자 포르노 배우가 아동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려스러운데, 이용자가 유사-아동 이미지를 검색할 마음이 없더라도 포르노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그런 이미지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p.291)



나는 많은 여자들이 자신이 원한다는 명목으로 음모를 제거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걸 얼마나 자신이 원하는지도 얘기한다. 위생과 청결을 언급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음모 제거가 시작된 건, 포르노였다는 것을. '김이설'의 소설 [환영]을 봐도 남자가 여자에게 '거기 털을 밀어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까 남자와 섹스하지 않는 여자라면,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여자라면, 감히 '흐음, 보지털을 밀어볼까' 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누군가는 거기에 대해서 충분히 싸인을 보냈기 때문에, 그게 반드시 내 남자친구가 아니라도, 내 여성친구를 통해서 그리고 이렇게 영화나 책을 통해서 남자가 여자에게 더 즐거운 섹스를 위해 보지 털을 미는 것을 요구하는 걸 보기 때문에, '자, 왁싱샵에 가볼까' 로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싸인들이 없었다면 내 성기의 털을 대체 왜 민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진정 '내가' 원한 것이 맞는가. 왜 여자들은 포르노를 본 적도 없으면서 포르노속의 여자들을 닮아가는가. 예쁘게 보이고 싶고 섹시하게 보이고 싶은 그 모든 기준이, '내가 꾸미는 걸 좋아해, 이러면 기분이 좋거든요' 하면서 가꾼 내 외양이, 어째서 포르노 속의 여자들을 닮아가는가. 아이처럼 입는 것도 마찬가지. <유사 아동 포르노>라는 포르노의 장르는 성인을 미성년자처럼 꾸며 만들어지는 포르노다. 그 포르노를 보는 남자들은 거기에서 보여주는 내용(이랄 것도 없지만), 설정, 고통을 본다. 저 미성년자가 나이든 남자 어른의 꼬임에 넘어가서 처녀성을 빼앗겼어! 이 자극은 좀 더 큰 자극으로 더 큰 자극으로 옮겨간다.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 감상 후기 게시판도 수시로 찾아 들어가본다. 거기에 보면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더 큰 고통과 울부짖음을 표현할 때 쾌락을 느끼고 명장면이라 일컫는 감상이 수두룩하다. 처음에는 여자들이 진짜 고통스러워 보여 그것을 보는게 힘들었다고 말했던 남자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이제 그거야말로 명포르노다, 라고 감탄하는 것들이 바로 그 안에 있었다.


무엇보다 포르노 감상후기를 올린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건 본인이 포르노를 본다는 사실이 곧 숨겨져야 할 것이 아님을 의미했다. 포르노 감상후기 게시판에서 남자들은 서로 좋았던 포르노를 공유하고 추천한다. 그리고 '토론'한다. 한 여자에게 두세명의 남자가 들러붙어 얼굴에 정액을 뿌려대고 그걸 먹고, 목구멍에 고추가 들어가 여자가 오바이트를 하면서 울면, 그걸 보고 좋다고 환호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야 말할 것도 없고, '사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세게 박아주는 걸 좋아해' 라는 고정관념부터, 그렇게 박히고 우는 여자들이 '걸레이고 창녀' 라고 말하면서 이분법을 강화하고, 미성년자 역시 순진하지만 큰 자지를 좋아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루밍이 필요하다는 것도 포르노가 알려준다. 겁먹은 미성년자가 성인 남자의 어떤 그루밍에 쭈뼛쭈볏 옷을 벗는지. 인종 차별도 마찬가지. 인종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도 포르노가 강화한다. 흑인들은 대물을 가졌고 아시아인들은 작은 고추를 가졌으며 백인은 그 중간 어디쯤. 포르노가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편견, 인종에 대한 편견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영상을 보는 이용자들에게 침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공유된다.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광고까지. 포르노가 깔리지 않은 곳이 없다. 영화속에서도 포르노를 이용하는 것은 공공연히 등장하고, 포르노에서 설정을 가져온 뮤직비디오들도 나온다. 포르노를 보지 않았던 여자들도 그런 영상들을 본다. 저렇게 허리를 비트는 게, 저런 옷을 입는게, 저런 표정을 짓는게 남자들한테 사랑받는 것이라는 걸 여자들도 습득한다. 아이들도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고 괴로워하고, 나를 위한 것이라며 털을 민다.


만약 여성이 아닌 다른 대상이, 그러니까 흑인이나 유대인이 맞고 입에 이물질이 들어가 토하는 영상이 반복적으로 보여진다면, 사람들은 집단으로 항의를 할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그 일을 당하는 영상에 대해서는 환호하며 이용된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아주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서양 남자와 교제하는 여자들을 보며 한국남자들이 욕했던 것, 유학이나 어학연수에 다녀온 여자들을 놀았던 여자로 표현했던것, 어린 여자들에게 다가가 그루밍했던 것. 모두 포르노의 영향이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던 내 많은 여자친구들은 한국에 와 교제한 남자들로부터 '너 거기 갔다 왔다며, 그럼 너도 서양놈 좀 알거아냐' 하면서 큰 좆을 맛본 여자로 후려치기 했다. 아, 이게 다 포르노 영향이구나.

섹스 도중 정액을 먹으라고 했던것도, 목구멍 깊숙이 고추를 넣는 것도, 항문에 넣고자 한것도, 얼굴에 싸면 안되느냐 묻는 것 모두, 포르노를 보았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들이었다. 포르노를 전혀 접하지 않은 남자라면(현실속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의 얼굴에 정액을 뿌려댈 생각을 감히 어떻게 할까.



'조셉 고든 래빗' 주연의 영화 《돈 존》에서 남자는 포르노 중독에 걸려있다. 그는 당연히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는 것에만 능하고, 그래서 '젊고 예쁘고 쭉빵한 여자'를 사귀게 되었을 때 뿌듯해한다. 그 여자를 집에 데려갔더니 아버지는 '니 여친 귀엽다'며, 당연히 성적 대상으로만 평가한다. 그러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라도 돈 존을 만족시킬 수 없다. 돈 존은 여자친구와 섹스 후에 여자친구가 자는 틈을 타 포르노를 본다. 포르노를 찾아 봐야만 비로소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일은 비단 영화에서만 보여주는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 게일 다인스도 이런 남자들에 대해 언급한다. 좀 더 큰 자극, 좀 더 큰 자극을 찾는 남자들.



포르노는 강간문화를 형성한다. 여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고 여성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좋아한다고 보기 때문에 여성에게 그렇게 고통을 가하는 것을 해보고 싶어하게 만든다.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를 본다'는 것이 곧 '강간범이 된다'는건 당연히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포르노는 강간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한다. 유사 아동 포르노도 마찬가지. 유사 아동 포르노를 만드는 이들 조차도 '아동에 대해 이러면 안된다'고 동참하지만, 그러나 이게 얼마나 모순인가. 여자를 아동처럼 꾸며서 딸로, 순진한 옆집 소녀로 만들고 성적 폭력을 가하는 일을 보여주는게. 유사 아동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진짜 아동 포르노를 찾게 된다는 것도 역시 아니지만, 그러나 유사 아동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이 진짜 아동을 성학대 하는 영상으로 가게 될 확률은 매우 높다는 거다. 역시, 현실 폭력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 포르노를 보는놈이 강간범이다, 라고도 말할 수도 없고 유사아동 포르노를 보는 놈들이 아동 성학대범이 된다는 것도 아니지만, 게일 다인스는 실제 아동성학대범 재소자들과 만나면서, '원래는 성인과 정상적 연애를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남자들의 경험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포르노는, 성학대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일전에도 SNS 를 통해 아주 짧은 여성학대(포르노) 영상을 보고 신고하면서, 한 사람(여자)이 다른 사람(들, 남자)에게 고통을 당하는 장면을 도대체 왜 보고 싶어하는지, 이런걸 만들고 보는 사람들의 영혼이 괜찮은건지 오래 생각한 적이 있다. 그날 밤에는 엄마 옆에서 자면서, '엄마, 이나라 남자들... 정신이 찢어진 것 같애, 건강한 정신이면 그런 걸 보면서 어떻게 견뎌'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엄마, 남자들 다 영혼이 찢어졌어.



한 여성이 고통을 당하는 걸 '보면서' 자위를 한다는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거 아닌가. 이게 왜 '나의' 상식이기만 해야할까. 토하고 똥구멍에 찔리고 얼굴에 배설물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는게, 그게 어떻게 건강한 삶을 형성할 수 있을까. 지나가는 여자를 보는 시선을 대체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당신들의 영혼은 파괴되었다.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에 한 번이라도 노출된 남자는, 그 이전으로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전과 같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당신들의 영혼은 찢어졌다. 그리고 보고, 보고, 또 볼때마다 영혼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거다.




나는 포르노를 보는 남자들이, 포르노를 '소비하는' 남자들이 '누구 좋으라고' 그걸 보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걸 보는 그들 자신을 위한 걸까? 포르노를 제작하는 사람들, 그들이 아주 큰 돈을 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포르노 '제작자'들이다.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도 '저 영상속의 여자는 괜찮을까' 같은걸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걸 만드는 제작자들은 그걸 보는 남자들에 대해서도 역시 아무 생각이 없다. 더 큰 쾌락을 너희에게 안겨줄게, 라고 광고하지만, 그것은 남자들의 정신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게일 다인스는 십대 포르노를 구글에 검색하면 몇백개가 뜬다고 했다. '십대 포르노'라는 게 말 자체가 형성되어서도 안되지만, 그런데 몇 백개나 된다고?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구글을 열어 똑같이 검색해보았다.




관련 글이 20억개가 뜬다. 이 책이 2010년에 쓰여진 책이니 그로부터 십년이 지났고, 십년동안 이렇게나 급속하게 확산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영상속의 여자들 역시 더 많음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게일 다인스'의 멘탈은 괜찮을까, 를 걱정했다. 활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언급되는 포르노의 장면들은 내 멘탈을 찢어지게 만들었는데, 이걸 직접 연구한 게일 다인스는 괜찮을까. 남자들과 연애하면서 '이 남자가 내가 보기엔 황당한 요구를 하는데' 라며 걱정하는 여자들을 보면서 괜찮았을까. 포르노는 그저 판타지일 뿐이에요, 우리는 조금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죠, 라고 말하는 남자들을 보는게 괜찮았을까. 무엇보다 그 영상들을 보았던 것들은 괜찮았을까.



이 책의 결론은 기운이 빠진다. 게일 다인스 역시 해결책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집단으로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




우리 문화의 포르노화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내게 마법 같은 해결책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다. 우리는 거대한 경제 구조와 맞닥뜨리고 있다. 포르노 산업과 싸우려면 개인으로서, 그리고 집단적 운동으로써 저항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저항은 개인적 층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희망적인 시작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는 포르노를 이용하는 남자와 데이트하지 않겠다는 여자 청년, 자녀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길러주는 모부, 체계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교사, 섹슈얼리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포느로를 보이콧하는 남자도 있다. 더 넓은 층위의 사회적 움직임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러한 개인적 형태의 저항이 현재로서는 가장 의미 있다. (P.320)



하아- 한숨부터 난다. 할 수 있는게 고작 이것뿐이란 말인가.


다시, 영화 《돈 존》에서 남자도 나이든 여자를 만나 '눈을 보고 대화하는'것의 기쁨을 아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서서히 포르노 중독을 치료해가는 것. 섹스를 위해 섹스를 했던 사람이 진정한 교제를 시작하는 거다. 그건 그 남자에게 그전까지 몰랐던 일이었다. 사실 이거야말로 판타지 아닌가 싶지만, 그러나 대화의 기쁨을 알아가는 것, 눈을 마주치고 애정을 담는 것이야말로 포르노에 저항하는 방법일 것이다.

몇년전까지 나 역시 포르노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이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건 내가 생각하는 포르노가 그저 섹스를 위한 섹스 정도였기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섹스하고 싶어서 섹스하는 걸 보는게 뭐가 잘못이야, 라고 생각한건데, 그건 내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영상을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와 또 많은 여성들이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칠게 저항하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편에 서게 되는 거다. 현실을 몰랐다. 아주 몰랐다.



나의 개인적 저항,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그런 포르노를 보았던 남자이면서, 그러나 포르노를 옹호하는 새끼들에 대해 경멸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일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봤자, 학대당하는 여자를 보는 걸 즐기는 놈들임에 틀림 없으니까. 나는 그런 놈들의 영혼이 말짱할 리 없다는 타당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게일 다인스는 자신과 같이 포르노를 연구했던 '로버트 젠슨'에 대해 언급하는데, '로버트 젠슨'을 검색해보니 국내에는 그의 저서가 번역된 게 없는 것 같다. 《절정의 순간:포르노그래피와 남성성의 종말》의 저자라는데, 이 책도 꼭 읽어보고 싶으니 누군가가 어서 빨리 번역해서 내주었으면 좋겠다.



포르노는 혐오 표현이다. 여성과, 인종과, 아이에 대한 혐오 표현이다. 표현의 자유로 허락할 수 없는, 혐오 그 자체이다. 여성차별을 견고히하며 아동학대를 인정하고 인종차별을 강요하는 혐오 표현이다. 포르노를 보고 또 보는 당신들은, 강간으로 가는, 아동성학대로 가는 바로 그 중간을 살고 있다. '나는 그런 놈이 아니야'라고 확신하는가? 지금 감옥에 가있던 아동성학대범들도 그랬다. 당신들은 강간범이 되기 직전에 놓여있다. 아동성학대범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2008년 3월 나는 코네티컷주 교도소에서 아동 포르노 소지죄로 수감 중인 남자 일곱 명(이 중 셋은 아동 성폭력 가해자였다)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들 중 누구도 소아성도착자의 정의에 들어맞지 않았다. 일곱 명 전부 자신은 성인 여자와의 섹스를 선호하지만, 일반적인 포르노에 질렸다고 말했다. 이 중 다섯 명이 처음에는 PCP(pseudo-child pornography) 사이트에 접속했고, 그러다가 실제 아동 포르노로 넘어갔다. 이는 소아성도착자와 비소아성도착자 모두에게 PCP 사이트가 "성인 포르노와 아동 포르노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는 러셀과 퍼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현재 이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실증적 연구가 없으므로 특정 연구 결과를 지목해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러셀과 퍼셀의 주장이 맞는다면, 그리고 일화적 증거가 그 주장의 타당성을 뒷받침한다면, PCP의 인기가 계속되고 또 더 많아지는 현상이 아동 성폭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실제 아동 포르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 제작 과정에서 학대당하는 아동의 수가 늘어날 것이다. 둘째, 아동 포르노를 실제 아동과의 섹스를 시도하는 데 디딤돌로 삼는 남자들에게 성폭력을 당할 위험에 노출되는 아동의 수가 증가할 것이다. (P.314)



대규모 연구가 그 뒤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일 다인스의 이 주장은 현실이 됐다. 위에 내가 검색해본 것처럼, 십대 포르노의 영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우리는 어제, 오늘의 뉴스에서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자들에 대해 지겹게 듣고 있지 않은가.


퀘일과 테일러는 아동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일부 응답자에게 포르노는 실제 가해를 대체하는 대응물이었지만, 다른 일부에게 그것은 실제 가해를 위한 청사진이자 자극제로 작용했다." 아동 포르노 이용자 중 실제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비율은 연구마다 다르며 낮게는 40%, 높게는 85%까지 나타났지만, 이러한 증거가 중요하게 시사하는 바는 아동을 성애화한 이미지를 보고 자위하는 행위는, 상당 비율의 남자에게 있어 실제 아동 성범죄와 연관된다는 점이다. (P.315)





 

남자들은 자신의 의지로 포르노를 살고 있고, 여자들은 의지는 아니었으되 끌려가서 포르노를 살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두 혐오를 살고 있다.


나는 포르노에 반대한다.

그리고 포르노의 편을 드는 사람들에 반대한다.

나는 반포르노주의자다.

나는 포르노를 살고 싶지 않고, 다른 사람들 역시 포르노에 살지 않기를 원한다.

나는 포르노에 반대한다.



이 실험의 설계자는 포르노 제작자로, (대부분)남성이며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은 시장을 형성하고, 팔릴 만한 상품을 찾아내고,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장기 사업 계획을 구상한다. 이 책에서도 곧 다루겠지만, 한 마디로 말해 포르노 제작자는 철두철미한 사업가지, 우리의 성적 자유를 위해 힘쓰는 혁신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 P18

컨벤션홀 내부를 돌아다니며 포르노 제작자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이들이 섹스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는 점이 매우 분명해진다. 이들을 흥분시키는 건 돈이다.
(…)
내가 인터뷰하는 포르노 제작자 중 많은 이들이 이 산업에 종사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지, 우리에게 성적인 힘을 부여하거나 창조성을 증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다.
(…)
나와 대화를 나누는 이 남자들 중 그 새로운 극단이 어떻게 실제 여자의 몸에 작동하는지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 P29

"고급화 상품이 밀려나고 더 수위가 센 아마추어 느낌의 영상물이 그 자리를 채우면서 우리가 형성한 이 시장은 내가 보기엔 ‘포르노 올림픽‘의 현장이다… 이제 중요해진 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다. 영화 한 편에서 얼마나 많은 남자와 동시에 섹스할 수 있는지, 구멍에 페니스를 얼마나 많이 집어 넣을 수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정액을 먹을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이다. - P39

야동의 세계에 사는 여자는 자신에게 경멸과 혐오만을 표출하는 남자와의 섹스를 진심으로 즐기는 것처럼 보이며, 대개는 그 모욕이 심하면 심할수록 당사자 모두가 더욱더 황홀한 오르가슴을 느끼는 듯하다. 이곳은 여성에게 동일 임금, 의료 및 보육 서비스, 은퇴 후 계획, 자녀를 위한 양질의 교육, 안전한 주거 환경 같은 건 필요치 않은 단순한 세계다. 이 세계는 일차원적 여성, 구멍의 집한에 지나지 않는 여자들로 가득하다.
포르노가 전달하는 남자에 관한 메시지는 사실 훨씬 단순하다. 포르노 속 남자는 영혼도, 감정도, 도덕 관념도 없이 발기한 음경만을 위해 존재하는 생명 유지 체계로,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여자를 이용할 권리를 갖는다. - P42

"나는 남자들이 진짜 보고 싶어 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 여자에 대한 폭력이 바로 그거다. 그걸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센 수위가 얼굴 사정이다." - P46

포르노 문화에 의해 변화화는 집단은 남자뿐만이 아니다. 여아와 성인 여자는 모두 포르노의 주 소비자층은 아니지만, 10년 전만 해도 소프트코어 포르노로 분류되었을 이미지가 대중문화에 범람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6장에서는 여아와 성인 여자에게 던져지는 여성성의 이미지가 얼마나 획일화되어 가는지 진단한다. 그러한 이미지에 따르면 매우 엄격한 문화적 기준을 충족하는 대상은 ‘섹시한‘ 몸뿐이다. 일부 집단은 이 과잉성애화가 여성에게 힘을 부여한다고 찬양해 마지않지만, 이 유사-힘키우기는 진정한 권력의 모습과 동떨어진 빈약한 대체재일 뿐이다. 진정한 권력이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성적 평등으로, 여성에게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제도를 통제할 힘을 주는 것이다. - P51

내가 「걸스 곤 와일드」에 출연한 여자들(대부분 십대 후반)과 얘기를 나눈 후 분명히 알게 된 점은 프랜시스와 촬영팀이 이들을 교묘히 조종하여 자기 상품을 위한 원재료로 이용하는 데 실로 전문가라는 사실이었다.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들이 자신을 성적 대상물로 보도록 하는 문화에 이미 길든 상태라는 점이다. 프랜시스와 촬영팀은 이를 발판으로 삼아 그들이 얼마나 예쁘고 섹시한지, 몸매가 얼마나 끝내주는지 등의 찬사를 퍼부으며 그들을 압도한다. - P102

나와 대화를 나눈 여자 청년 중 많은 이들의 삶이「걸스 곤 와일드」출연 이후로 180도 바뀌었으며, 일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가까운 증상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중 어떤 사람은 친구와 ‘여-여 섹스‘장면을 촬영하고 나서 "멍청한 걸레"가 된 기분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자꾸만 쳐다봤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학교에선 지나가는 남자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고 그건 정말 끔찍했다." 무모했던 한순간이 영상에 담겼고, 그들은 그것이 남은 평생 그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른 모든 요소보다 우선해 자기를 규정할 거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 중 일부는 다른 학교든 새로운 직장이든 어디를 가도 「걸스 곤 와일드」이미지를 털어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자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며, 실로 많은 이들이 깊은 수치심을 느낀다. 이들은 학업이나 커리어 계획이 좌절되면서 삶이 틀어지기도 했다. - P107

미디어가 내보내는 제임슨(포르노 업계의 간판 배우)의 인생 이야기에서 그의 실제 삶이 어떠했는지는 대부분 빠져 있다. 그의 실제 삶은 대외 이미지보다 훨씬 덜 화려하다. 『포르노 스타처럼 사랑하기』에서 그는 방임과 학대로 얼룩진 유년기와 초기 성년기를 상세히 기술한다. 두 살 때 어머니가 사망한 후 그의 유년기는 혼란으로 가득했는데, 이는 아버지의 방임 탓이 컸다. 십대 때 집단강간과 폭행을 당한 후 그 자리에서 죽도록 방치되었으며, 후에는 학대를 일삼던 남자친구의 삼촌에게 강간당했다. 열여섯 살 때는 아버지에게서 쫓겨나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그에게 스트리퍼로 일하라고 부추긴 사람이 그 남자였다.
- P110

기사에서도 가끔 그가 받은 학대를 언급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느 정도였는지, 그러한 경험이 이후 그의 삶의 선택과 결정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는 대충 얼버무린다. 가정에서 방치된 십대가 집에서 아버지에게 쫓겨나 남자친구의 강권으로 스트립쇼에 서게 되었다는 인생사는 포르노 산업을 긍정적으로 그려내기에는 너무 추한 이야기다. 그 대신 기사는 대부분 그의 부유한 라이프스타일과 포르노 제국을 건설한 1인 여성으로서의 면모에 초점을 맞춘다. - P110

경험을 통해 남자에 대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묻는 말에, 제임슨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남자를 조금은 증오하게 되는데, 왜냐면 남자를 정말 끔찍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죠. 다들 취했고, 무례하고, 완전히 통제 불능이에요. 거기서 술을 조금 더 먹이면 정말로 추해지죠." 그는 이어서 스트리퍼로 일했던 경험을 통해 "그들[남자들]이 뭘 잘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한다. 리건이 "뭔데요?"라고 묻자, 제임슨은 답한다. "철저한 폄하요." 그 후 제임슨의 갑작스러운 시인이 이어진다. 폄하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리건의 질문에, 제임슨은 이렇게 답한다. "네, 아직 어리고 지금 뭐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으면 그렇게 되죠.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몇 번 겪었고, 그러다가 금방 철이 들어서 내가 한 일에 대해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이해하게 됐어요." - P112

『맥심』같은 남성잡지-십대를 겨냥한 조악한 콘텐츠 때문에 영국에서는 ‘청년잡지lad mag‘라고 불린다-도 유사한 방식으로 젊은 남자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핀업 사진 같은 이미지와 섹스, 술, 스포츠에 관한 기사를 통해, 이들 잡지는 여자가 오로지 성적 대상물로만 존재하는 남성 판타지 세계를 구축한다. 이런 잡지의 기조는『맥심』의 창간 멤버인 숀 토머스Sean Thomas가 잘 설명했다. "『맥심』같은 잡지는 뉴스 보도를 위한 잡지가 아니다. 그런 건 신문이나 텔레비전 방송사의 일이다. ‘청년잡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남자들에게 남자답게 굴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맥주를 마시고, 다트 게임을 하고, 여자를 쳐다봐도 된다는 거다. 『맥심』을 창간할 당시 우리는 페미니즘의 과도한 조롱에 반격하는 흐름의 선봉에 있다는 의식을 갖고 시작했다. 나는 우리가 성공했다고 믿는다." - P123

포르노 산업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설립된 또 하나의 단체로는 아동보호를 위한 웹사이트 협회(ASACP)가 있다. 1996년 발족한 ASACP는 다음과 같이 홍보된다. "인터넷에서 아동 포르노를 근절하기 위해 힘쓰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ASACP는 아동 포르노 신고 핫라인을 구축함으로써, 그리고 극악무도한 아동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온라인 성인 산업의 노력을 조직함으로써 아동 포르노와 싸우고 있습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들이 온라인으로 연령 등급에 맞지 않는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한편 표현의자유연합은 2002년 아동 포르노 관련 법 개정을 위한 로비에 성공했고, 포르노 업계에서 18세이기는 하나 그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여자를 배우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이 ‘아동보호를 위한 웹사이트 협회‘의 회원 중에는 「허슬러」도 있는데, 이보다 더한 위선이 또 있을까? - P143

「허슬러」는 『베일리 리걸』을 운영하며 "십대 미녀들의 최대 컬렉션을 보유한 세계 1위 틴 매거진"이라고 홍보하는 그 「허슬러」가 맞다. - P143

어떤 집단을 비인간화함으로써 그 집단에 속한 개인에게 가하는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방식은 포르노 제작자들이 처음 생각해 낸 게 아니며, 이미 수많은 압제자가 그 유효성을 증명했다. 나치 선전기구는 유대인을 ‘카이크kike‘라고 부르며 폄하하는 데 성공했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아프리카게 미국인을 인간이 아닌 ‘깜둥이nigger‘로 규정했으며, 동성애 혐오자들은 레즈비언과 게이에게서 인간성을 벗겨내는 용어를 거의 무제한으로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폄하되는 집단에 속하는 개인의 인간성을 일괄적으로 비가시화하면 그들에게 폭력적인 행위를 가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 P158

남자들은 포르노 이미지가 뇌에서도 ‘판타지‘라고 표시된 구역에 갇혀 있으며 현실 세계로 새어 나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나, 나는 남자친구가 점점 더 포르노 섹스를 요구한다는 여자 학생들의 사연을 지겹도록 듣는다. 그것이 얼굴 사정이 되었든, 항문성교가 되었든, 이 남자들은 현실 세계에서 포르노를 해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남학생의 경우, 처음에는 그 두 세계를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산업이 생생한 포르노 이미지가 실제로 자신의 사적 관계에 스며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점점 더 많이 들린다. - P162

이들 중 많은 팬들이 느끼는 쾌락은 여자가 자기 입에 뭘 넣어야 하는지 깨닫는 바로 그 순간 얼굴에 잠깐 스치는 날것의 불신과 역겨움, 혐오감을 보는 행위에서 오는 듯하다. 이것은 누군가가 완전히 비인간화되고 굴욕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얻는 쾌락이다. - P165

아이러니하게도 "포르노는 판타지"라고 주장하는 측이 놓치고 있는 점은, 실은 포르노가 우리의 상상력과 성적인 창조성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포르노가 전달하는 이미지가 사고를 마비시킬 정도로 내용이 반복적이고, 정신이 둔해질 만큼 단조롭기 때문이다. - P189

해방을 위해 싸워 온 집단이라면 누구나, 미디어 이론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깨달은 사실, 즉 미디어 이미지가 억압당하는 집단을 체계적으로 비인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안다. 이 이미지는 결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집단에 가해지는 지속적인 억압을 합리화하는 메시지의 더 광범위한 체계 안에 연루되어 있고, 그것이 가진 권력은 대개 태도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묵인하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정상화하는 데서 나온다. - P194

남자가 처음 포르노를 접할 때쯤이면 대부분은 우리 문화의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이미 내재화한 상태고, 포르노는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대신 그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생각을 굳히고 공고히 한다. 게다가 이는 그들에게 강렬한 성적 쾌락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성ㅇ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섹시하고 화끈한 것으로 프레이밍하는 행위는 포르노에, 다른 형식이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여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자격을 부여한다. - P194

텔레비전에서 예컨대 흑인이나 유대인을 계속해서 인종차별적, 혹은 반유대주의적으로 그리는 드라마나 시트콤이 쏟아져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백인 남자가 이들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얼굴을 가격하고, 목을 조르며 그들의 입에 이물질을 집어넣는다면 어떨까? 추측건대 격한 항의에 부딪힐 것이고, 그러한 이미지는 단지 판타지라는 이유로 옹호받지 못할 것이며 보이는 그대로 간주될 것이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가하는 가혹행위다. 포르노는 폭력에 성적인 외피를 덧씌우며 그것을 비가시화하며, 결과적으로 그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은 반폭력주의자가 아니라 반섹스주의자로 규정된다. - P195

내가 남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자기가 성적으로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얘기다. 그들은 대학에 가면 섹스 기회를 쉽게 얻을 거라 기대했고, 당연히 다른 남자들은 "하고 다닐"거라 생각하며, 결국 자기한테 뭔가 문제가 있거나 혹은 자기가 한 번 해 보려고 시도하는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결론 내린다. 그들은 자기가 충분히 잘 생기지 않아서, 말주변이 없어서, 혹은 남자답지 않아서 점수를 따지 못하는 걸까 봐 걱정하며, 포르노의 세계관이 여성을 언제나 접근 가능한 존재로 그리는 탓에 거절에도 몹시 당황한다. 그들은 대개 여자와 자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에 깊은 수치심을 표출하며, 이 수치심은 ‘야동녀‘와는 다르게 ‘싫어‘라는 어휘를 가진 여자 학우들을 향한 분노로 바뀐다. - P196

음모는 분위기를 깨는 요소가 되었고, 특히 오늘날에는 여자 청년이 많이들 음모를 제거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며, 그렇기에 음모를 ‘관리‘하지 않은 여자는 매력이 떨어진다. 조시는 지난 수년간 자신이 선호하는 여자 신체 유형이 점점 포르노 배우와 닮아가고 있다며, "제모하고 오일을 바른 탄탄한 몸"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여자친구의 몸이 그런 몸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으냐고 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기 관리를 안 한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좀 더 자신을 가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현실 세계의 여자들이 포르노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도 불만의 원인 중의 하나다. 거친 섹스를 해달라며 애원하지도 않고, 만질 때마다 오르가슴을 느끼듯 반응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 P200

여태껏 강연하면서, 발표가 끝난 후 내게 찾아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기가 어린 시절 당했던 강간 장면이 찍힌 사진이 분명 화면에 뜰 거라 생각했다고 말한 여자가 최소 스무 명은 있었다. 이 불안감에서 이들이 겪은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지가 드러난다. 나는 강연에서 아동 포르노 사진을 보여주지도 않을뿐더러,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수백만 장의 사진 중에서 특정 사진을 고를 확률은 극히 낮다. 하지만 확률의 법칙은 트라우마를 겪는 개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이들은 자기를 강간한 사람이 전능하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찍힌 사진이 의심의 여지없이 반드시 수면 위로 떠 오를 거라고 확신한다. - P207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는 포르노를 여성,아동, 일부 남성을 대상으로 나쁘게 사용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들었다. 나는 포르노를 본 남자에게 삶을 파괴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들 생존자에게 있어 포르노는 판타지가 아니라 악몽 같은 현실이다. - P208

포느로를 이용하는 남자들이 모두 이러한 강간 신화를 통째로 삼킨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식의 주장은 이용자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포르노의 영향에 관한 논의를 단 하나의 영향-강간-으로 축소하게 될 것이다.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그러한 신화가 홍보하는 문화가 수많은 방식으로 남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일부는 강간을 저지르겠지만, 더 많은 이들이 파트너에게 섹스 혹은 특정 성행위를 해 달라고 애원하고, 조르고, 강요할 것이며,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다른 인간 존재와의 섹스 그 자체에 흥미를 잃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여자를 이용하고 다 끝나면 그를 무시할 것이며, 또 어떤 이들은 파트너의 외모나 성 기능을 평가할 것이고, 많은 이들이 여자를 일차원적인 섹스 대상이자 남자만큼 존중할 필요도, 존엄하지도 않은 존재로 볼 것이며, 이는 침실 안이든 밖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 P210

그 영향이 무엇이든, 남자가 포르노 이미지를 접한 이상, 다시 멀어진다 한들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 P210

남자(그리고 여자)대다수는 성 불평등이 자연스러우며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현실인 것처럼 느낄 정도로지배적인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매일 주입당하며 살아간다. 포르노는 이 이데올로기를 최대한으로 뽑아 먹을 뿐 아니라, 그것을 포장해서 고도로 성애화한 형태로 남자에게 돌려준다. 그것에 대항하는 반이데올로기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같이 달콤한 성차별 이데올로기는 지배적 사고방식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포르노는 사회화의 유일한 행위자는 결코 아니지만, 그 강렬한 이미지와 우리 신체에 미치는 영향 덕분에 강력한 설득의 도구가 되었으며, 남자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자기가 당연히 갖는 인권을 마찬가지로 당연히 가지는 존재로 보는 능력을 잠식하고 있다. - P211

현실에서 여자들은 포르노를 보지 않고도 그것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데, 오늘날 포르노의 이미지, 재현, 메시지가 대중문화를 통해 그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자들은 여전히 하드코어 포르노의 주요 소비자층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게 모르게 포르노의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하고 있으며, 대개 이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하면 섹시하고, 도발적이고, 쿨하게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지(또 가능하다면 붙잡아 둘 수 있는지)에 관한 충고의 모습으로 위장한다.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음부 왁싱이다. 음부 왁싱은 포르노에서 처음 보급되어 『코스모폴리탄』같은 여성 매체로 흘러 들어갔는데, 이 잡지는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려면 해야 할 ‘자기 관리‘방법에 관한 기사와 팁을 정기적으로 싣는다. - P217

거의 추종자에 가까운 팬층을 형성하며 대성공을 거둔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도 왁싱을 소재로 삼았다. 예컨대 「섹스 앤 더 시티」영화에서, 미란다는 음부를 제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맨사에게 "막 나간다"는 꾸지람을 듣는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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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4-1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내가 원하는 일이야˝의 범주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확장될 수 있을지 생각하면 할수록 더 절망하게 됩니다. 남자친구가 샵에 다녀오라고, 자꾸 다녀오라고, 그게 좋겠다고 할 때 좋아하는 사람의 그 ‘권유‘를 계속해서 거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구요.
이 모든 일이 가장 개인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많은 여성들이 ‘똑같은‘ 강요 속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정치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뷰를 읽는 것 마저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힘드네요.
다락방님도 그러셨을 것 같아요. 쉽지 않은 독서였을텐데, 이렇게 기록으로도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읽는 것만으로도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희진쌤이 그러셨죠. 우리, 읽는 이 일을 통해 연대합시다, 다락방님!!!

포르노에 반대합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포르노에 반대합니다.
포르노 속 학대당하는 여성의 소비에 찬성하는 모든 의견에 반대합니다.

다락방 2020-04-10 12: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단발머리님.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아니‘라고 말하는 게 결코 쉽지 않죠. 결국 그렇게 서서히 어느 정도까지 원하는 바대로 해주게 되는것 같고, 결국 그래서 지금은 브라질리언 왁싱샵이 따로 생긴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식으로 대부분의 것들이 서서히 침투하게 된거겠죠.
최근에 반포르노 삼종셋트 읽으면서 앞으로도 계속 읽자 다짐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렇게 읽고 쓰는 일이 어떤 효용을 가져올까 좀 회의가 들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이렇게 읽고 글로 쓰는 일이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칠거다, 라는 생각이 들면 또 게을리 할 수 없기도 해요. 아무튼 계속 하겠습니다.

단발머리님 이 책 사셨다니, 어휴... 힘든 길 가시겠습니다. 영상 묘사 하는 거 읽으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성인 여성들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미성년 그루밍 성폭력은 울것 같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읽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 때문에 펑펑 울것 같았는데 말예요. ㅠㅠ

포르노에 반대합니다. 반대합시다.

잠자냥 2020-04-1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개 드리고 싶은 리뷰입니다.

현실적으로 이 포르노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반포르노주의자들이 많아지는 방법밖에는 없군요. :(
야동이라고 부르면서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하던 문화도 정말 잘못 되었고, 여자들도 포르노 보는 남친(또는 자신)에 대해 관대한 자신이 ‘성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갖고 있는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포르노는 혐오표현이라는 말, 여성, 인종 아동에 대한 혐오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해요.

다락방 2020-04-10 12:52   좋아요 0 | URL
반포르노주의자들이 많아지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지만, 그 방법은 너무 느릴 것 같아요, 잠자냥 님. 그래서 답답합니다. 포르노를 전파하고자 하는, 돈욕심에 눈이 먼 제작자들이 활개를 치는데, 과연 개인이 반포르노주의자가 되는것이 어느 속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맞아요, 잠자냥 님. 야동이라고 부르면서 별 거 아닌 것처럼 취급하던 문화가 결국 이렇게 만든게 아닌가 싶어요. ‘주체적 섹시‘가 정말로 ‘주체적‘인것인지에 대해서, 여성들도 스스로 끊임없이 물어보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포르노문화가 없었다면, 사방천지에 포르노가 침투해있는 게 아니라면, 과연 우리는 주체적으로 ‘섹시하고‘ 싶었을까요?

책 뒷표지에 영국 페미니스트 저술가 ‘줄리 빈델‘의 한 줄이 실려있거든요.

<단 한 번이라도 포르노가 혐오 표현이 아닌가 의심해 본 적이 있다면 『포르노랜드』를 반드시 읽어볼 것.>

이라고요. 저도 보면서 확 오더라고요. 포르노는 혐오 표현이라는 말, 깊이 공감했어요.

(그리고, 별 다섯개 접수합니다!)

건조기후 2020-04-10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본 트윗이 생각나서 보고 그대로 옮겨봐요. 물론 다락방님도 보셨을 거에요...

진짜 나라 꼬라지하고는. 미성년자 애들은 성착취물 만들고, 젊은 성인 남성들은 그거 사고, 그러다 걸리면 국가기관 전반에 걸쳐 온갖 결정권 다 쥐고 있는 늙은 남성들이 ‘남자가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부둥부둥 무마하고 용서하고 기회주고...

진실로 무엇이 잘못된 것인 줄을 전혀 모르는 거죠, 과거에도 지금도. 얼마나 뿌리가 깊고 튼튼한지... 종종 암담해요.
단발머리님 말씀처럼, 이렇게 리뷰만 보아도 힘든데 책을 끝까지 읽어내시고 기록으로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성주의 책읽기 꾸준히 해오시고 이렇게 훌륭한 리뷰를 쓰고 계시다니 너무나도 리스펙이에요, 다락방님.
함께 하기로 말만 얹어놓고 바로 하차해버렸던 저도 -_ㅜ 부지런히 곁눈질이라도 해가면서 열심히 공부할게요.

별 다섯 개 받으셨으니 이번엔 하트 백만 개 받으세요! :)

다락방 2020-04-12 11:28   좋아요 0 | URL
이 리뷰에 대해서는 다들 긴 댓글을 달아주시네요. 아마도 그간 포르노에 대해 나름 생각했던 것들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 책도 그렇고 다른 책에서도 그렇지만 ‘외모 권력‘에 대해서도 언급하거든요. 그러니까, ‘여성의‘ 외모권력이요. 그런 포르노배우 같은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가 마치 여자들의 권력인듯 보이지만, 그것은 전혀 권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잠시 그 앞에서 숭배하는듯한 모양새를 보일 수는 있으나, 자기랑 자주지 않거나 사귀어주지 않으면 금세 강간해도 좋을 성적대상이 되어버리니까요. 애초에 네 미모가 너무 아름답다 하는 것은 성적대상으로서 최고의 가치다,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것이고요.

사람마다 끈기를 보이는 방면이 다르잖아요. 저의 경우만해도 모든걸 이렇게 계속하진 못하고요. 방통대는 반학기 다니다 말았고, 외국어 공부는 하겠다고 교재만 수두룩하게 사놓고 펼쳐 보지도 않았는걸요. 그런데 여성학에 대해서라면 제가 하면 할수록 갈증을 느껴요. 여성학에 대해서라면 흡수도 빨라지는 것 같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계속 해보고 싶어요. 포르노에 대한 책도 더 읽어보려고 장바구니에 더 담아뒀어요. 저는 제가 좋아서 하는것이니만큼 모두가 저처럼 할 순 없겠죠. 그렇지만 단발머리님이 말씀하셨듯이, 이렇게 누군가가 읽었던 기록이라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보다는 더 나으니까요.


건조기후님의 하트 백만개도 접수합니다. 후훗.
세상이 좀 나아지면 제육볶음 먹으러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