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엄마와 함께 앉아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았다. 나는 그런 프로 잘 안보려고 하는데 엄마가 좋아하셔서.. 어쨌든 봤는데, 정작 엄마는 못보겠다고 들어가시고 나만 남아 끝까지 보았다. 그간 내가 존재도 알지 못했던 '벗방'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벗는 방을 운영한다는건데, 그걸 보던 남자들은 메뉴에 쓰여진대로 어떤 행위를 요구할 수 있고, 그대로 bj가 해주면 거기에 따른 돈을 지불한다는 거였다. 그 안에서는 꽤 많은 돈이 오고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여자들은 그 많은 돈을 다 자신이 벌어들여야 했다. 그러나 그녀들이 거기서 가져가는 수입은 극히 일부. 그 방송의 직원을 모집했던 방송사가 수입의 일부를 가져가고, 기획사가 또 일부를 가져가고, 또 누가 일부를 가져가고...


그저 소통하는 방송일 줄 알고 들어갔다가 벗어야 한다는 걸 알고 여자들이 빠져나오려고 했을 때는 이미 계약서에 묶인 몸이었다. 남은 계약기간 동안 벌어들일 돈을 모두 지불해야만 그 계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했던 피해자중 한 명은, 돈도 안되고 계약서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어 눈감고 딱 한 번 벗는 방송을 찍었는데, 그 영상이 외국에도 유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수습할 수 없었다고.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다보면 성매매 여성에 대해 나오는데, 성매매여성이 일반 여성들과는 다른 사람임을 알리기 위해 신발에 노란끈을 묶었다는 역사가 나온다. 성매매 여성, 너희들은 일반 여성들과는 급이 달라, 하고 그들을 무시했던 성구매 당사자인 남자들은, 그런 여성을 달리 취급하면서 정작 그들 자신은 떳떳했는데, 주말에 본 그알에서도 그랬다. 방송국과 기획사 모두가 떳떳했다. 애시당초 처음 그 벗방의 이상함을 찾게됐던 남자는 그 방송을 시청하던 도중 자신의 약혼녀를 보게 되었다고 했다. 제보자로 나왔던 또 한 남자는 이 벗방은 사기라고 분노했다. 그가 분노한 이유는 여성들의 성을 팔아서가 아니라, 그가 그 방송을 보면서 돈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잃게끔 하는 가짜 아이템과 가짜 회원들이 있다는 것. 그는 그것에 분노했다. 거기에 분노해서 제보를 하고 인터뷰에 응한다는 게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안부끄러워? 여자들한테 벗으라고 돈을 줘놓고서, 그건 안부끄러워?



벗는 것도 여자고 그 영상이 유출됨으로써 자살을 시도하는 것도 여자다. 숨어 사는 것도 여자고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는 것도 여자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 오고가는 돈은 남자로부터 나와서 남자에게로 간다. 나는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를 떠올렸다.






남성에게 자신의 몸을 파는 것보다 더 모멸적인 것이 있다면 또 다른 남성의 이득을 위해 남성에게 몸을 팔아야 할 때이다.- 《페이드 포》, 레이첼 모랜, P124












오늘 구독하고 있는 <뉴닉>에서는 엔번방 소식을 보내왔다. 엔번방 가입자 모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청원은 백만명 이상이 동의를 했다.








여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에 남자들이 돈을 쓴다는 게 너무 괴롭다. 남자들에게서 나온 돈이 남자들에게로 흘러간다. 여자들을 벗기고 괴롭히면서. 그리고 여자들을 협박하면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그러나 이런 일은 지금이 처음도 아니고 유일한 것도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남자들은 여자들을 죽이면서 살았다. 여자들을 죽이고 괴롭히면서 만족을 느끼고 돈을 벌었다. 어제,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는데, 그 오랜 역사, '마녀 사냥'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이미 숱하게 다른 책들에서 읽고 아는 바이지만, 역시나 괴롭다. 반복해본다고 해서 괴로움이 적어지는 것도 아니고 약해지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가 마녀라고 자백해도 죽지만, 마녀라고 자백하지 않아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도 어차피 죽는다. 마녀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고문하고 또 고문한다. 심한 고문에도 마녀라는 자백을 하지 않으면, 마술 때문에 고문을 이겨낼 수 있는 거라고 한다. 고문에 못이겨 나 마녀 맞아, 해도 죽는것이고 나 마녀 아니라니까, 해도 죽는다. 어차피 '저 여자 마녀인 것 같다'고 찍히는 순간, 그녀는 죽는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그 마녀의 재산도 다 몰수당한다.



교회법에 따르면, 마녀의 재산은 상속자가 있건 없건 간에 몰수해야 했다. 몰수된 재산의 절반 이상을 정부가 전유했다. 재판에 든 비용을 공제하고 남은 모든 것은 정부 재정으로 들어갔다. 1532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공포한 '형사법전'에 따르면 이런 몰수는 불법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그저 종이조각일 뿐이었다.

마녀 사냥이 돈과 재산을 모으는 욕망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특별 위원회로 이어졌고, 특별위원회는 더 많은 사람을 마녀와 마술사로 모함했다. 피고가 유죄 선고를 받으면, 가족은 모든 재판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위원회 위원들이 매일 먹는 식비와 술값에서부터 시작해서, 화형에 쓰이는 땔감까지 이들이 지불해야 했다. 또 다른 돈을 버는 방법은 마녀 혐의를 받은 이를 가족으로 둔 부자집에서 그 가족을 석박 시키기 위해 학벌있는 판사와 변호사에게 주는 비용이었다. 이는 또한 가난한 사람이 유독 많이 처형된 이유이기도 했다. (p.195)



봉건계급(특히 좀 더 작은 공국의 제후로, 도시의 신흥 부르자우나 더 큰 공국의 제후와 경쟁하기 힘든 이들)뿐 아니라 도시의 자산가 계급도 마녀재산의 압수를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 (p.197)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남자가 여자들을 죽여서 살았음을, 남자가 여자를 죽여서 부를 축적했음을. 벗방에서도 엔번방에서도 그 어떤 여자도 이익을 보지도 않았다. 부를 축적할 수 없었고 기쁨을 얻지도 못했다. 도망칠 기회를 잡아야 했고, 숨어야 했다. 죽는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들은 웃고, 유출하고, 유포하고, 즐거워하고, 돈을 벌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죽여서, 여자들을 괴롭혀서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엔번방 26만명의 신상공개를 요구한다. 돈 내고 본 게 무슨 잘못이냐고 말하는 남자들이 누구인지, 그렇게 뻔뻔하다면 신상을 공개해 두려울 게 무어랴. 여자들을 괴롭히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자본을 축적한 게 누구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동안 그런 삶을 산 자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면서, 이제 그 일을 더는 못하게 해야 한다. 손가락질 해야 한다. 저거봐, 여자들 괴롭히면서 즐거워한 남자야. 저 남자가 바로 여자를 죽음으로 이르게 하고 자본을 축적한 남자야. 우리는 그렇게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하고 비난을 해야 한다.

어제는 국가공무원 5급 공개채용 합격후 연수 도중 여성 연수생의 신체를 몰래 촬영해 적발된 남자가 연수원에서 퇴학당한 걸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내 승소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여성의 신체를 불법촬영해놓고 퇴학이 과하다며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하다니, 그 뻔뻔함은 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들.

벗방의 남자 제보자들도 자신들이 입은 피해 때문에 빡쳐서 나온거지, 여자들의 고통에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불법촬영 당한 여성이 얼마나 괴로울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남자는, 자신의 퇴학이 과하다고 한다. 무엇이 과하고 무엇이 덜한가. 더이상 여성들이 죽음으로써 남자들이 살고, 남자들이 자본 축적하는 걸 방치해서는 안된다.



엔번방 가입자 전원 신상공개를 요구한다. 그리고 전원 처벌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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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3-23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엔번방 가입자 전원 신상공개 요구합니다.
앞으로도 벌어질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더라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다락방 2020-03-23 10:33   좋아요 1 | URL
시간이 지나도 왜 그들은 나아지지 않는걸까요, 단발머리님...
마녀사냥 부분 읽는데 너무 빡쳐서 ㅠㅠ

추풍오장원 2020-03-2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시패스한 놈이 성범죄 저지르고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소송까지 제기했었군요. 저런 고시 후배 들어올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군요..

다락방 2020-03-23 12:05   좋아요 1 | URL
같은 직장에 근무하게 될 여자들은 두려움과 분노를 느낄테죠.

추풍오장원 2020-03-23 12:59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남자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분노하여야 합니다.

공쟝쟝 2020-03-23 22:26   좋아요 0 | URL
우리 남녀 편가르지 말아요 웅앵웅... 이 이슈가 가시화되고 처벌이 논의 되게되는 과정까지의 여성주의자들의 분노와 목소리를 스킵하면 안되죠 ㅋㅋㅋ 인간으로 분노하기 전에 맥락 살피세요 ㅋㅋㅋ

공쟝쟝 2020-03-23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구한다 요구한다 요구한다!

다락방 2020-03-24 07:41   좋아요 0 | URL
여자 죽이지 말라는 게 왜이렇게 힘든건가요 쟝쟝님. 여자들은 계속 부르짖는데 결과가 되어 나오기는 너무 오래 걸리네요. 그나마 지금도 총선 때문에 부랴부랴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닌지...

공쟝쟝 2020-03-24 08:55   좋아요 0 | URL
그래도 계속해서 공론화하고 목소리 낸 여성들 덕에 이정도의 처벌논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엔번방 함께 청원해달라고 다락방님도 올리고 하셨잖아요!! 저들은 안바뀌겠지만 우리 힘을 키워요 빠워!!!! 다 뚝배기 깨자!!

잠자냥 2020-03-23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주빈과 26만명 다 까발릴 때까지!!!

다락방 2020-03-24 07:42   좋아요 0 | URL
어제는 여러가지로 기운없고 속상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지치지 말아야겠지요. 지치지맙시다, 잠자냥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