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파묻힌 여섯개의 왼쪽팔이 발견되면서 실종된 사건 전문자인 '밀라'는 범죄학자 '고란'의 팀에 합류하여 수사를 돕게 된다. 놀랍게도 여섯개의 팔 중 하나의 주인은 아직 살아있을 거라는 법의학자의 말에, 수사팀은 범인을 잡고 여섯번째 아이를 구해내려한다.


사건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야기를 너무 잘 진행해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책을 놓고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서 624쪽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을 이틀만에 읽어버렸다. 결론은 지금 졸리다는 얘기.... 그렇지만 금요일이니까, 내일 늦잠잘 수 있다!


책에서는 시종일관 선과 악이 명쾌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를테면 저 여섯개의 팔의 주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자기 대신 잡히게 만든 사람은 아동성애자였다. 그 아동성애자가 잡히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아동 피해자들이 생길터였다. 그렇다면 연쇄살인범이 아동성애자를 경찰에 넘겨준 것은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더 발생하게 하지 않는 선한 일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연쇄살인범은.. 연쇄살인을 저질렀는데?


이런식의 사례들을 계속 던지면서 선하기만 한것도 없고 악하기만 한것도 없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를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은 채 들려주어 마지막에 반전에 이르면 '아 이런식으로 설득력에 힘을 더하는구나' 싶다.


무엇보다 며칠전에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속의 내용이 이 소설책의 내용과 겹친다. 트라우마에서 주디스 허먼은 '완성된 회복'은 없다는 얘기를 한다. 우리는 그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해서 가능해질 수 있지만, 그러나 외상이 없었던 것처럼 살 수는 없다고. 그 트라우마의 증상을 '밀라'가 이 책, 《속삭이는 자》에서 얘기한다.



"누군가를 데리고 나오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다시 빛의 세계로 나와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했거든요. 아주 강력한 이유를. 그건 다시 되돌아 나오는 데 사용할 구명로프 같은 거예요. 거기서 깨달은 건, 어둠이 우리를 부른다는 거였어요. 현기증이 나도록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다는 거. 그 유혹을 떨치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거예요 ……. 그리고 어둠 속에서 구해야 할 사람을 데리고 나왔을 때, 우리만 빠져나온 게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돼요. 항상 그 어둠 속에서 우리를 따라 나오는 게 있었어요. 신발 밑창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 뭔가가. 절대로 떼어놓기 힘든 그 뭔가가."

고란은 밀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왜 나한테 그런 얘길 하는 거지?"

"왜냐하면 제가 바로 그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가끔씩, 그 어둠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고요." (p.542)



밀라는 실종 사건의 전문가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찾고 구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감정이입을 통 못하는 사람인데, 실종된 아이가 죽는다면 자신만이라도 그 아이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다. 자해를 하는 거다. 자신의 살을 칼로 긋고 피를 내면서 수습하는 것 역시 자신이다. 그 일로 병원을 찾진 않는다. 밀라의 몸에는 그런 상처가 여러개다. 나는 너를 잊지 않아, 결코 잊지 않아.

그리고 그녀는 그 유괴에서 구출된 아이들이 결코 이전과는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 유괴되어 감금된 시간이 길었다면, 그 아이가 구출되어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 가족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도 얘기한다. 아이들은 감금된 상태에서 자랐고, 부모들이 기억하는 아이의 모습과는 달라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구출에 대해, 당연히 구출을 하면서도, 그것이 마땅하여 자신의 온몸을 내던져 아이들을 구출하면서도, 그녀는 이것이 잘하는 것일까 또 의문을 갖는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살리고 싶고 살아있을 때 구출하고 싶고, 그래서 내내 그 생각 뿐이면서도, 그런데 이렇게 데리고 나가면 이 아이들에겐 사는동안 어둠이 들러붙어 있을텐데, 하고 고민하는 거다.

사는동안 어둠이 들러붙어 있고, 다시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이 책에서 나온것 같은 납치범을 포함하여 강간범이나 아동학대의 가해자들이 하는 건 단순히 한 순간 피해자를 어둠에 몰아넣는 걸로 끝이 아니다. 어둠에 던져 넣은 뒤에 평생 그 어둠을 피해자에게 덮어 씌운다. 피해자는 그 어둠에서 빛을 보고 달려갔다가도 다시 어둠으로 곤두박질 치고 빛을 보고 달려나왔다가 또 곤두박질 치고..


아주 재미있게 휘리릭 책장을 넘길 수 있지만 무겁고 어두운 소설이다. 소설 끝까지 악과 선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명쾌하게 분리되는 거 아니야, 악이 선을 부르기도하고 선이 악을 부르기도 해. 우리는 그걸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지, 인간은 그렇게 선과 악으로 섞인 존재야.



이 책은 오래전부터 보관함에 두고 있었는데 여태 사지 못하고 있다가 '김헤수', '주지훈' 주연의 《하이에나》덕에 비로소 장바구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드라마의 처음, 주지훈이 좋아하는 작가로 '도나토 카리시'가 나오는거다. 김혜수는 주지훈에게 접근하고 연애를 하기 위해 그의 취향을 파악했는데, 그래서 도나토 카리시의 책을 들고 주지훈의 앞에 짠- 등장을 한거다. 주지훈은 김혜수가 읽는 책을 보며, '도나토 카리시,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 하면서 알은 척을 하고,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그의 책은 첫책이 최고죠' 하면서 김혜수와 주지훈이 동시에 외친다.



속삭이는 자.



그리고 둘은 연인이 된다는 아름다운 스토리..........(응?)

아무튼 그래서 오호라, 이 책은 청록색 표지의 두권짜리 그 책?? 하고 검색해보니 역시나 맞았다.
















그런데 저 위에 링크한 것처럼 합본으로 개정판이 나온거였다. 오호라, 두 권보다는 한 권이 낫지. 나는 바로 구매할거였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었다고 몇해전에 얘기한 친구 생각이 나 친구에게 물었다. 속삭이는 자 읽었지, 재밌었어? 친구는 그렇다고 했다. 그래, 질러질러질러버렷! 하고 딱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



그렇지만 이 작가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고, 만약 "어느 작가를 좋아하세요?" 물었는데, '도나토 카리시를 제일 좋아해요' 라고 답한다면, '아 이사람 짱멋지다!'를 생각하게 될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아 속삭이는 자 재밌죠' 정도의 반응만 가질 듯. 그래서 생각했다.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고 해야 나는 '우앗, 이런 사람이 있다니, 세상 멋져!' 하게 될까?


나는 줌파 라히리를 좋아하고, 리베카 솔닛, 마리 루티, 마사 누스바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정희진, 이승우를 좋아하지만... 상대가 어떤 대답을 해야 나는 단순히 그 대답만으로도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될까? 나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매해 읽지만(올해는 아직 읽기 전이다. 언제 읽지? 누군가에게 같이 읽자고 해볼까?) 상대가 어떤 책을 제일 좋아한다고 얘기해야 내가 비로소 상대에게 호감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전완근이 근사하면 다 되는 걸지도...



물론 도나토 카리시를 자기 인생의 작가로 손꼽을 수도 있지만, 하이에나에서 이 작가를 굳이 좋아하는 작가로 언급한 건, 하이에나 드라마의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이에나 드라마에서는 두 변호사가 나오는데, 이 변호사들은 결국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싸운다. 의뢰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 돈을 벌기 위해서 명예를 갖기 위해서 이들은 의뢰인의 변호를 맡게 되는 것. 게다가 고소를 진행하는 사람에게 고소 취하를 권유하면서 '정의와 법으로는 너가 못이긴다' 며, '돈을 받으라'고 하는 거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싸움으로 진을 빼느니 돈을 받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라고. 한 가난한 중년여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아님을 알지만, 그러나 아들의 유학비를 대준다는 말에 싸움을 포기한다. 선과 악은 항상 붙어 다니고 '아닌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정의가 아닌 쪽에 서기도 한다. 정의가 고통과 괴로움을 가져온다면 그 선택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이에나의 작가는 아마도 이 책을 읽고 그런 것들을 고심하다가 드라마를 만들고, 드라마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이 실상은 이 책을 읽고 느낀 바와 같다, 를 말하기 위해 부러 도나토 카리시를 끌고 들어온 게 아니고 싶다. 그리고 속삭이는 자를.





사무실에 도착해 결재할 게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결재인이 보이질 않는다. 언제 잃어버린건지, 언제 마지막으로 손에 쥐었는지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대체 어딜간걸까.

나는 다른 부서에 갈 때도 손에 뭘 쥐고 가는 일이 잦다. 그것은 도장일 때도 있고 볼펜일 때도 있고 연필일 때도 있다. 뭔가 손에 들고 왔다갔다 하는 거다. 결재인도 그렇게 쥐고 왔다갔다 했던 사람이라 다른 부서에 가 물었다. 혹시 내가 도장 두고 가지 않았느냐고. 다들 빵터져서 왜 차장님 도장을 여기서 찾아요, 했지만... 왜냐하면 내가 내 도장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여...그리고 왔다갔다 할 때 들고다니니까 여기다 두고 갈 수 있는 거잖아? 빌딩 청소하시는 직원분께도 인터폰해서 여쭈었다. 혹시, 화장실 청소 하시면서 빨간 도장 못보셨나요. 직원 분은 못봤다고 하셨다. 아니, 제가 거기에 둔 건 아니고.. 없어져서... 혹시나 싶어서요... 하고 아아ㅏㅏㅏㅏㅏㅏㅏ모르겠다 그리고 후딱 인터넷에 들어가 새로운 결재인을 주문했단 말이야? 그런데 당장 오늘 결재분들을 어쩌나... 오늘은 그냥 싸인으로 대체해야 하는걸까 싶은데 타무서 직원이 '가방을 보세요' 하는 게 아닌가. 아니, 도장이 가방에 왜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면서 웃고 넘기다가, 아아, 오늘 도장은 포기 싸인으로 대체하자, 아아, 코로나 때문에 툭하면 손 씻어서 손이 너무 거칠어져 흑흑, 사무실에 둔 핸드크림 다 썼어 ㅠㅠ 가방에 넣어다니던 거 꺼내야겠다, 하고 가방을 열었는데, 거기에 도장이 똭-



네?

니가 거기 왜있어?

도장, 왜 가방에 있어?

왜?



다시 타부서에 갔고 도장을 찾았음을 알렸다. 직원들이 어디서 찾았냐 물었고 나는 내 가방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직원들 모두 빵터져버림....... 그러니까, 왜 니가 거기있어?

이제 도장 들고 다니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다시 타부서에 가는데, 아이고야, 내 손에는 연필이 들려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참 나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알라딘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3/3 에 책들가 함께 주문했는데, 무슨 상품이 준비가 안된건지 3/6 배송예정인거다. 힝 ㅠㅠ 그런데 책도 또 사고 싶고 커피도 또 마시고 싶어서, 그래 올 때 한꺼번에 받자, 책탑 쌓자, 하고 어제 또 책들과 함께 커피를 주문했는데, 아니 이건 배송예정일이 3/6에서 3/7로 변경이 된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 아무것도 내뜻대로 안되는거야, 왜, 왜, 왜, 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칠봉아, 네가 사는 나라에서 한국인 입국금지를 하겠다더구나. 혹여나 그곳에서 한국인이라고 인종차별 당하진 않을지 걱정이야. 어제 동생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어.



여동생: 언니, 그 나라 한국인 입국금지 했더라.

다락방: .. 칠봉이 거기서 인종차별 당하지 않을까.

여동생: 그러게..

남동생: 이미 한국와서 결혼해 잘 살고 있다니까..




남동생은 항상 나를 잔인하게 키우곤 해... 막굴린다.....거침없어.....




어쨌든 금요일이고 아침에 빨리 밝아진다. 시간도 흐르고 계절도 어김없이 바뀐다. 점심엔 마라탕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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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3-06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장아 도장아...그리고 가혹한 남동생아...ㅋㅋㅋ 앞에서 묵직 무섭 음울하다가 뒷부분 급 밝아져서 좋네요 밝은 내용이 아닌데 왜 밝아...ㅋㅋㅋ(제 마음이 빠지는 소리 들리시죠...)

다락방 2020-03-06 09:20   좋아요 1 | URL
글쎄 제가 이렇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사람은 날씨만 좋아도 기분이 좋아질까요? 제 자리에서 창밖에 보이는데 밝아요. 그래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3-06 09:29   좋아요 0 | URL
아침 좋은 기분 그대로 좋은 하루 보내시길 진심 기원합니다.

다락방 2020-03-06 09:34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

잠자냥 2020-03-0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전완근‘이군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3-06 13:59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란 사람에겐 역시 문학청년보다는 전완근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