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그래도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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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주디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원제가 《Trauma and Recovery》인만큼, 나는 리커버리를 기대하며 읽었다. 외상의 피해자가 고통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들이 있을까, 를 기대한 것. 책은 기대와 달리 '치료자'와 피해자의 관계, 치료자가 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생존자가 해나가야 하는 방법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으나 그렇다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치료자에게 조력자도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또 집단 치료의 효과에 대해서 말해주기 때문에, 외상의 피해자에게는 역시 전문 치료가나 치료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겠구나, 를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 치료자와 함께 더 나아진 삶을 살게 되고 치료가 됐다고 믿었던 환자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다시 플래시백, 과거로 끌려들어가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외상의 피해자는 그러니까 외상이 없었던 것처럼 살 순 없다는 거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다시 살아가기를 택하는 것 뿐.
외상 피해자들의 사례가 자주 언급되는데 이렇게나 근친강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또 놀라면서 읽었다. 근친강간, 집단강간, 아동학대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치료를 받고 또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해줄 때마다 자꾸 울게 된다. 진심으로 그들이 치료될 수 있기를, 나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품게 되고.
치료자를 찾지 않고 혼자 극복하는 방법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외상의 생존자들이 집단치료하는 그 과정들 속에 나도 가끔식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은 독서였다.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트라우마 없이 살아가는 운좋은 사람들도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이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물음 너머로, 생존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물음에 대면한다. ‘왜 나인가?‘ 운명이 지닌 임의성과 무작위성은 세상이 정의롭고 예측 가능하다는 기본 신념을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외상 이야기를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생존자는 죄책감과 책임이라는 도덕적인 문제를 검토하고, 겪지 않아도 됐을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을 납득시켜 주는 신념 체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생존자는 단지 사고하는 것만으로 의미를 재구성할 수 없ㅂ다. 부당함을 고치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생존자는 무엇을 행할지 결정해야 한다. - P297
애도 과정에서, 생존자는 가해자에게 똑같이 갚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안전한 환경에서 분노를 풀어낼 수 있다면 무력했던 분노는 점차 가장 강력하고 만족스러운 형태의 분노로 변화할 것이다. 올바른 분노. 이러한 전환으로 생존자는 가해자와 함께 남아야 하는 복수 환상으로부터 해방된다. 생존자는 범죄자가 되지 않고도 힘이 있다는 느낌을 회복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복수 환상을 포기한다고 해서 정의를 달성하는 과제에 실패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제 생존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해자가 범죄에 책음을 지도록 그를 포위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 P315
혐오든 사랑이든, 이로써 외상을 몰아낼 수는 없다. - P316
가해자가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이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다행히도 생존자는 이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삶에서 회복되어 가는 사랑을 찾아낸다면 생존자도 치유받을 수 있다. 이 사랑이 가해자에게까지 확장될 필요는 없다. - P316
한번 경계가 침범당하고 나면 치료자는 치료를 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유지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조차 무모한 일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계를 침범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환자를 착취하는 일이 된다. 초기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 P320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신념으로, 생존자들은 말하기 시작한다. - P346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범죄는 공동체의 온전함을 방해하고, 공동체를 중대한 위험에 빠뜨렸다. 그러므로 가해자는 정의 앞에 세워져야 한다. ……수리해야 할 것은 국가 그 자체이며, 복구해야 할 것은 톱니바퀴가 어긋나 버린 공공질서이다. …… 다시 말해서, ㅇ겨야 하는 것은 원고가 아니라 법이다." - P348
완성된 회복이란 없다. 외상 사건의 영향력은 생존자의 일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퍼져 간다. - P351
지위가 높은 남서오가 지위가 낮은 여성이 집단 지도자가 되는 전통적인 지도 형태는 외상 생존자 집단에게 절대적으로 부적절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는 여전히 흔한 일이다. - P369
피해자와 가해자의 충돌에서 도덕적인 중립이란 선택 사항이 아님을 말한다. 그 모든 방관자들과 마찬가지로, 치료자 또한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한다. 피해자와 함께 서고자 하는 이들은 불가피하게 가면을 벗은 가해자의 광포에 대면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것이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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