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리플리(맷 데이먼)'는 피아노를 치는 일로 돈을 벌고 있다. 하루는 다른 반주자를 대신해 한 파티에서 잠깐 연주를 하게 되는데, 그때 그 연주자의 자켓을 빌려입었고, 그 자켓은 '프린스턴' 대학의 자켓이었다. 그 자켓을 보면 누구나 '아 저사람은 프린스턴을 나왔구나'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자켓.
그걸 보고 조선업계의 어마어마한 부자 미스터 그린리프 씨는 그에게 '내 아들도 거기 다녔다'며 알은체를 하고, 그런 인연으로 그에게 '이탈리아에서 돈이나 흥청망청 써대는 아들을 좀 데려와달라'고 부탁한다. 여비를 챙겨 주면서.
리플리는 프린스턴에 다닌 적이 없지만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아들인 '딕키 그린리프(주드 로)' 역시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지 않은 채로 여비를 챙겨 이탈리아로 떠난다. 딕키를 만나기 전 딕키에 대해 공부하고, 딕키가 좋아한다는 재즈에 대해 공부한다. 그리고 우연히 이탈리아에서 만난 척 딕키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프린스턴 동창이라고 말한다. 그 일로 그들은 친해지게 되고, 딕키는 자신이 약혼녀 마지(기네스 팰트로)와 함께 사는 집에서 함께 거주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형제처럼 둘도없는 친구가 된다.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먹고 마시고 좋은 집에서 생활하고 호화로운 개인 요트를 타고 항해를 하는 것 모두는 그동안 가난하게 살아온 리플리가 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이 생활은 그에게 너무너무 좋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딕키는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말한다. 자신들은 이탈리아 북부로 옮길 것이고, 너도 이제 네 갈길로 가라, 고. 돈 한 푼 없이 자신들에게 붙어 사는 게 너무 싫다면서 그에게 지루하고 지겹다고 말한다. 이 부유한 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았던 리플리는 그와 다툼 끝에 그를 살해한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살아있는 척 연기를 한다. 로마로 가 호화로운 호텔을 잡아 그곳에서는 딕키가 된 자신이 살고, 허름한 호텔을 잡아 그곳에서는 리플리가 되어 산다. 그러면서 서로를 찾는 연락을 하면서 그가 계속 살아 있는 듯 딕키의 행세를 하며 딕키의 반지를 끼고 딕키의 옷을 입고 딕키의 돈을 쓴다.
그러나 이 생활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딕키를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친구인 '프레디'는 단번에 리플리가 딕키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걸 눈치챈다. 그의 행동이며 딕키의 집이라고 마련해둔 곳이 수상하기만 하다. 눈치챘다는 걸 알게된 리플리는 프레디도 죽여버린다. 그리고 계속 딕키인 듯 행동을 한다.
이 영화 역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을 듣고 보게 됐다. 이 영화는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의 리메이크 작품이고,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시리즈가 이 영화들의 원작이다. 이 책으로 '리플리 증후군'이란 말이 생겨났는데, 리플리 증후군이란 병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을 말한다. 이수정 교수님은 이렇게 병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자존감이 지극히 낮아서라고 말씀하셨다.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지금 초라하다는 자존감 낮음이 자신의 신분에 대해 거짓말을 해도, 그렇게 해서 교수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해도 만족할 수가 없어서 더 나은 것, 더 나은 위치로 거짓말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
나 역시 이런 거짓말들이 자존감 낮은 데서 시작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리플리가 프린스턴 대학 조끼를 빌려입었다 해도, 만약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어? 우리 아들도 프린스턴 나왔는데?' 라는 누군가의 알은체에 '아, 이거 내 조끼 아니야~ 나는 거기 안나왔어~' 라고 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거기를 나오지 않았으니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괜히 프린스턴 나온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 순간에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 날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이야' 하고 굳이 고쳐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만약 계속 그렇게 오해를 하게 된다면 고쳐줄 것이다. 아, 사실은 내가 그날은 말을 안했는데~ 하면서. 그러나 리플리는 프린스턴 대학생이 되고, 딕키의 친구가 된다. 그러다 결국 딕키까지 되어버려. 그러면 그가 딕키가 되었다면, 그렇게 딕키와 프레디를 죽였다면, 그러면 끝일까?
누구나 살면서 거짓말을 해본 경험은 있을것이다. 그리고 거짓말을 해봤다면 당연히 거짓말하는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페이퍼로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거짓말은 보통의 에너지로 되는 게 아니다. 가장 좋은 것, 가장 편한 것은 정직하게 사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머리를 써서 말을 꾸며내지 않아도 되고, 언제나 진실을 말할 수 있다. 정직하다면, 진실을 말하는 게 어렵지 않다. 내가 하버드를 나오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물음에 '나 하버드 안나왔는데' 라고 말하면 된다. 왜냐면 나는 하버드를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내가 하버드를 나왔다고 거짓말을 해버리면, 다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계속 그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그 거짓말 위해 또다른 거짓말을 쌓고 쌓고 쌓아야 한다. 친구도 알아야 하고 교수도 알아야 하고 전공도 말해야 하고 교정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고..... 아, 이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쉽계 예로 들면 양다리를 걸치는 게 거짓에 거짓을 쌓는 일 아닌가. 왜 '쿨'의 노래에도 있잖아. 같은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겉과 속의 이름이 달라서 양다리 들통난 일...
한번 받던 영화 또 보고,
했던 얘기 다시 또하고,
저녁 식사 두번 했더니 왜 이렇게 헷갈리던지~
같은 편지 적어 보냈어. 며칠 후에 날 벼락이 떨어졌어.
겉과 속에 이름 틀렸었나봐
이 영화를 보는 일은 대단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다. 거짓말을 하면 누구나 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갖고 지내야 하잖아. 혹여라도 이게 탄로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리플리 역시 스트레스 였겠지. 경찰의 압박이 오고 딕키의 약혼녀인 '마지' 마저도 눈치채는 것 같을 때, 그 스트레스는 얼마나 극에 달했을까. 거짓말이 탄로 나는 것도 스트레스지만, 자신은 그 거짓말을 지속하기 위해서 살인도 저질렀다.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으면서 고생 안하고 사는 걸 지속하기 위해, 그는 살인자가 되었고 계속 쫄린채로 딕키인 척 살아야 하는데, 대체 왜 그렇게 사는가.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도 없고 그러니 리플리의 그 순간순간의 선택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없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리플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으으 나였다면 어땠을까, 를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대입해서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하잖아? 리플리는 되기 싫었다. 초반에 거짓말 할 때부터 이미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이렇게나 스트레스가 심한데 리플리는 왜 대체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가. 그렇게 계속 거짓에 거짓을 쌓다가 리플리는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도 잃어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도 뭔지 모르고, 그건 엉망이 된것에 다름아닌데 대체 왜...
딕키의 아버지도 딕키의 아버지가 고용한 사립탐정도 진실로부터 멀리 있어 리플리를 신뢰한다. 딕키의 약혼녀였던 마지만이 리플리가 딕키를 죽였다는 걸 의심하지만, 딕키의 아버지는 마지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오히려 '남자에겐 여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고 하면서 진정하라고 해... 하아- 이 얼마나 상징적인 장면인가. 진실을 아는 여자는 미친 여자가 되어 침묵을 강요당해버려. 그렇게 세상은 남자들에게 계속 범죄를 저지르게 또 판이 돌아간다.. 아, 이 얘기 하니까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 얘기로 이어가고 싶지만, 아직 다 읽지 않았고 페이퍼가 너무 길어질 것이니까 그러지 말기로 하자.
수사는 종료됐고 딕키가 프레디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있고, 딕키의 아버지는 리플리를 신뢰하여 많은 돈을 그에게 주기로 한다. 리플리는 이제 피아노 치는 일을 업으로 삼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뜻밖의 행운에 활짝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딕키를 아는 사람이 또 있고, 리플리를 아는 사람도 또 있고, 그리고 그를 의심하는 일들은 또 생길텐데, 그럴 때마다 리플리는 어떻게 할것인가.
분명한 건, 자신의 거짓말을 지속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부유함을 지속하기 위해 살인을 한 사람은, 그 다음 살인까지 결정하기가 더 쉬워진다는 거다. 진실을 아는 자를 죽임으로써 거짓말을 견고히 하려는건데, 진실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거짓에 거짓을 쌓고 또 거짓을 쌓아 이룬 세상은 결국 악으로 가득차게 된다. 아니, 대체 스트레스로 가득한 그 삶을 왜 선택하는가.
나는 예전부터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같은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어느 학교 졸업했어?'라고 묻는다면 '하버드 나왔어' 라고 심드렁하게 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로망은 로망일 뿐, 하버드 근처에 가본적도 없으므로...
정직하게 사는 게 답이다. 정직하게 사는 게 결국은 자신을 위한 선이다. 정직하게 사는 게 자신에게 가장 편한 길이야. 정직하게 산다면 언제나 진실을 말할 수 있다. 갑자기 누가 뭘 물어도 그러하다. 고민하지 않아도 돼. 거짓을 말하면 잠깐 하버드 졸업한 사람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내게 남는 게 무어람? 하버드 졸업했다한들, 남들이 그렇게 믿는다한들, 나는 지금의 나인데..
대학시절 편의점 알바할 때 다른 알바생들한테 이런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원래 재벌집 딸인데 아빠가 서민의 삶을 체험해보라 해서 알바하는 거야' 라고. 물론, 아무도 믿지 않고 다들 빵빵터지기만 했다... 흐음.. 이 직장에 들어와서도 다른 직원들한테 이렇게 거짓말 해보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