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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선언 - 일상의 혁명 ㅣ 페미니즘 철학 세미나 1
윤지선.윤김지영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7월
평점 :
- 윤김지영과 윤지선은 이 책에서 탈코르셋의 의미와 의의를 정확히 궤뚫고 있다. 게다가 철학자들이니만큼,
들뢰즈, 마르크스, 부르디외 등을 데려와 글에 설득력을 더한다. 들뢰즈 무엇 마르크스 무엇.. 이냐 라며 그들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해서, 이 작은 책 한 권을 읽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페미니스트라면 이해가 되고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 윤김지영 교수님을 처음 만난 건 몇 해전 책출간 행사에서 였다. '독자와의 대화' 같은 것이었는데, 그 당시 윤김지영 교수님은 긴 머리에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다소곳이 앉아 계셨다.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남자들이 다 죽어야 끝날 것 같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ㅎㅎㅎ 그 때 거기 계시던 다른 독자분께서 '아니에요,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라고 말씀해 주셨더랬지.
그런 윤김지영 교수님이 지금은 브라대신 니플패치를 하고 원피스 대신 바지를 입는다고 하신다.
- 얼마전에 여자 k 가 남자친구에게 불만인 점을 얘기했었다. 자신은 항상 예쁘게 화장하고 옷을 입고 나가는데, 남자친구는 꼭 집에 있다 바로 나온 옷차림이라 화딱지가 난다고.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k 는 그 남자와 헤어졌다. 자신에게 성의를 보이지 않는 남자인데 자신 혼자 성의를 보이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고 했다.
이런 일은 비단 k 에게만 있는 일은 아니다. 나도 데이트 하면서 집에 누워있다 나온건가, 싶은 남자들을 더러 만나기도 했으니까. 편한 게 좋지, 라며 나는 그들에게 옷차림이나 겉모습에 대한 어떤 지적도 한 적이 없다. 나는 원피스에, 힐에, 화장에, 무거운 가방을 들었으면서. 씨부럴..
- 꾸밈노동을 '내 기분이 좋다, 내 의지다' 라고 주장하며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나 역시 내가 좋아서 하는 줄 알았었지. 후훗. 그러나 탈코르셋을 접하고 화장을 하고 다니지 않으면서, 아 내가 그동안 누구 좋으라고 화장 하고 다닌건가, 하는 것에 더 강한 의문을 갖게 됐다.
낯선 나라, 여행지에서의 일이다.
그림을 보러 갔는데 화장을 전혀 하고 가지 않았다. 박물관에는 나 외에도 당연히 다른 사람들, 남자들도 많았는데, 내가 그들의 존재에 대해, 그들의 시선에 대해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홀가분함, 바로 그것이었다! 늬들이 거기 있든지 말든지, 나를 보든지 말든지, 가 내가 화장을 하지 않으니 비로소 가능해졌던 것. 나는 그냥 그림을 보러 온 사람1 이었다.
그간 나는 남자들에게 잘보이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화장한 게 아니라고 내 스스로 생각해왔다. 내 기분 좋으니까 한거야, 라고 당연한듯 생각해왔지. 그러나 그 박물관에서, 이국에서 온 남자들과 더불어 있으면서 내가 얼마나 홀가분한지를 깨닫고는, 아 나는 나도 모르게 의식하고 살았구나, 싶었다. 화장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의식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겠구나, 하는 깨달음. 그러니까, 내가 꾸몄기 때문에 꾸밈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든 바랄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그것이 과연 나의 자유의지였을까?
이 경험은 나에게 굉장히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느낌.
- 인스타에는 숱한 여자들이 사진을 올린다. 날씬한 여자들이 '통통한 몸이지만 뭐 어때' 라고 올리고, 이목구비 뚜렷한 여자들이 '오늘 못생겼어..' 라고 올린다. '운동이 좋아' 라면서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몸매 과시하는 옷을 입어 올리고. 그런 사진들에는 보란듯이 하트가 수백 수천개씩 따라붙고 팔로워도 많다. 누가 봐도 의도와는 다른 멘트로 올려지는 사진들.
반면 탈코르셋을 해시태그로 쓴 사진들에는 거침없는 욕이 따라붙는다. 화장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서 사회가 정해놓은 '미'에 거스르는 것, 못생기거나 뚱뚱하게 되는 건 탈코 당사자들일텐데도, 그걸로 욕을 하는 남자들은 대체 무슨 심리일까. 자기들이 못생겨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뚱뚱하게 되는 것도 아닌데, 왜 '화장 안할거야' 라고 하는 여자들에게 못생겼다, 쿵쾅댄다 욕을 할까. 그여자들이 못생겨서, 뚱뚱해서 싫으면 그 여자들하고 안놀고 안사귀면 되잖아. 저리 가. 니네가 원하는 예쁜 여자 찾아, 쭉빵 여자 찾으라고.
나는 이게 내가 여행지에서 느꼈던 바로 그 자유로움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너는 나에게 예쁘게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남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는 것.
미모에 대한 자연스런 갈망은 애초에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주위 사람들과 매스컴에서 엄청 주입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그러나 남자들에게는 그것이 '너는 나에게 선택받기 위해' 당연해 지는 것이고 여자에게는 '저 남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당연해져 버리는 것.
탈코르셋은 기본적으로 이걸 거부하기 때문에 남자들이 화딱지가 나는 것 같다.
왜 너는 나에게 잘보이기 위해 화장하지 않지?
왜 너는 나에게 잘보이기 위해 날씬해지려 하지 않지?
화장 안해서 못생겨진다면, 다이어트 하지 않아서 뚱뚱해진다면, 그리고 그게 나쁜거라면, 그걸 하는 '당사자'는 탈코르셋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인데, 탈코르셋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면서, 자기는 살던대로 그 얼굴에 그 몸매로 살면서, 화장하지 않고 다이어트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여자들을 비난하다니. 너무 이상하잖아? 같은 나라에서 같은 교육을 받고 사는데 왜그럴까?
- 완전히 코르셋을 버리진 못했지만 나도 탈코르셋을 시작하면서 가장 기이하게 생각됐던 게 볼터치였다. 볼터치라면, 하아- 과어의 내가 '반드시 해야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볼터치 하지 않으면 밖에 못나가겠어, 했었는데. 친구에게도 '우리 볼터치 하며 살자' 며 선물하기도 했는데. 하하하하. 이제는 볼터치한 사진들을 보면 너무 기이한거다. 이렇게 이상한 걸 내가 왜 했지? 너무 이상하잖아. 왜 볼이 발갛게 보여야 해? 왜 발갛게 보이려고 심지어 거기에 색을 입혀? 볼터치한 사진만 보면 미쳐버릴 것 같다. 그거 너무 이상해요...
나는 제일 먼저 볼터치를 갖다 버렸다.
- 요즘은 색조화장을 안하고 산다. 개기름이 끼는 걸 어떻게 방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 고민이긴 하지만, 세상 편해. 일터에서 내가 맡은 자리가 있어 립스틱까지 버릴 순 없지만, 회사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이제 화장을 하지 않는다. 팩트 사둔 건 썩고 있고 파운데이션을 이제 사지 않아도 되니 너무 좋다. 나는 모든 화장품을 백화점에서 비싼 것만 사서 쓰는 사람이었는데, 화장품 비용이 싹 줄어들었지. 게다가 여행지에서 화장을 하지 않으니, 외출 준비도 빨리 끝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팬티랑 속바지 대신 남자 드로즈 하나 입고 원피스 입고 바깥에 나가버리면 끝이여. 이번 여행에서 동행과 함께 나갈라치면 나는 화장하는 동행을 계속 기다려야 했는데, 동행이 자꾸 미안해했다. 아녀, 천천히 하고 싶은 거 다 해. 나는 친구가 화장하는 동안 크레마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든가, 가족들과 연락을 하든가, 스맛폰을 들여다보든가 했지.
남자사람 만날 때도 걍 노메이크업으로 나간다. 코르셋을 벗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여.. 남자 만나기 전에는 약간 고민이 되는 것이다. 하도 화장 안해버릇 하니까 하기 너무 귀찮은데 내가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화장을 해야 하는 것인가...고민이 되다가,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나가자, 그 남자도 안하는데 내가 뭐하러 해. 이런 내가 싫으면 그 다음부터 안만나겠지 뭐, 이러면서 남자 1 만날 때 화장 안하고 나갔더니 그 다음에 남자2 만날 때도 노메이크업이 당연해지더라.
- 책날개에 있는 저자의 이력을 보노라면 그 타이틀의 화려함에 너무 반해버린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이며, '연구자' 이며, '교수' 라니.. 너무 멋져버리는 것. 여자들이 지금보다 좀 더 많이 타이틀을 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의사, 박사, 교수, 국회의원 등등 여기저기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더 많이 보일 수 있기를.
- 인용하는 구절이 매우 많은데, 그냥 이 책 사서 읽어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남성 욕망경제 매트릭스 내에서 교환가치가 일어나지 않는 신체를 가진 여성들은 실질적으로 어떠한 취급을 받았나요? 이 사회에서 그러한 여성들은 소위 게으르고 쓸모없는 자들로 취급되고 조롱받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회가 그러한 여성을 자연적으로 거저 주어진 스스로의 여성-신체자원의 가치조차 제대로 활용·관리하지 못하며 꾸밈노동이라는 의무를 방기한, 나태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폄하하기 때문입니다. - P22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들이 가부장제의 유용한 여성-신체자원(자궁-여성 유기체로서의 대상)으로 동원, 소비, 착취, 억압되는 것을 거부하는 움직임일 뿐만 아니라, 이때껏 스스로의 신체의 교환가치를 더 높이고 적어도 남성의 성애적 욕망의 투여가 일어나지 않는 무가치한 몸(교환가치=0)으로 전락하지 않고자 지속적이며 의무적으로 수행하던, 일체의 꾸밈노동을 집단적으로 보이콧하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거부와 보이콧의 물결이 일으키는 진폭과 파장은 우리 사회의 인식론적 담론 지형뿐만 아니라 정상성 규범의 실천 지형까지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일회적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 판‘에 대한 도전이며 이 사회를 지배하는 ‘지층화 작용‘에서 벗어나려는 탈주의 움직임입니다. - P23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의 신체를 남성석 성애의 투자(investissement)대상물이자 순수한 부계혈통의 성씨를 날인한 세대 재생산의 몸으로 환원시키는 일체의 작용을 거부하는 탈지층화(destratification)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25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여성들은 남성 욕망경제에 철저히 귀속되어 있는 이성애 연애와 섹스, 결혼, 출산의 경로를 자신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욕망의 서사로 받아들이길 거부할 뿐만 아니라, 일상적 성담론 속에서 남성의 성애적 욕망의 대상인 삽입구 기관으로 축소되고 환원·유통-단체 카톡방 내 음담패설, 성희롱,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피해-되는 것을 폭로하며 이와 절연을 선언합니다. 그와 동시에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들이 남성 욕망경제 매트릭스 내에서 성적 대상물-물방울 모양 가슴, 핑크빛 성기, 애플힙, 11자 다리-이란 기호로 부유하는 것을 벗어나, 특이성과 비전 등과 같은 다각적 요소들과 함께 구축해 나가며 새로운 욕망의 서사를 배열, 조성해낼 수 있는 구조적 장을 기획하고자 하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 P27
『자본론』에 따르면 ‘상품‘(commodity)이란 ‘타인과의 교환을 목적으로 생산된 유용한 물건‘입니다. 여성의 신체 역시 남성적 담론과 실천의 장 안에서는 교환을 위한 ‘유용한 물건‘이 되면, 따라서 일종의 상품으로 기능합니다. 그리하여 사실상 여성에게 자신의 ‘신체‘는 남성 욕망경제 매트릭스 속에서 사회경제적으로 교환가치가 인정되는 상품으로 존립시켜야 할 대상이 됩니다. 달리 말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연적으로 여성-신체자원이라는 ‘천연적 노동대상물‘을 타고 났으며 이를 보다 세련되게 관리하고 정교히 세공해내는 기술을 투입함으로써 스스로의 신체를 ‘가공된 노동대상‘으로 탈바꿈하는 ‘꾸밈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 P32
‘늘 젊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란 처절한 꾸밈노동의 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그러한 여성을 그 자체로 아름답게 태어난 존재로 신비화함으로써 인위적 꾸밈노동의 모든 노력들-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화장술과 시술, 지속적 운동과 고강도 식이요법-과 사회적 압력들을 단번에 비가시화해 버립니다.이는 마르크스가 거론한 ‘상품의 물신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품의 물신화 현상은 일종의 착시 현상입니다. 인간 노동의 산물인 상품이 마치 그러한 노력의 과정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상품 자체가 가진 자연적·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교환가치를 발생시키는 독자적·독보적 존재물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 P35
남성의 신체자원이 성적으로 동일한 방식과 강도로 채굴되고 착취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신체가 가부장적 교환가치-남성 욕망경제의 기호품이자 부계혈통의 세대 재생산 도구-로 결코 환원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성의 성적 신체자원은 그들의 노동력의 기본값(default value)으로 설정되어 있기에 업무의 분야에 상관없이 여성들을 향한 아름답고 젊어 보이는 외모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으로 이미 조건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용모단정의 엄격한 규준을 준수해야 하는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성적 신체자원은 노동 상품성의 자격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기본값으로 간주되기에 고용주의 상품판매 촉진과 이윤 창출을 위한 도구와 자원으로 원할하게 동원됩니다. - P39
여성을 보지라는 신체자본(capital corporel)을 통해 신분상승과 부(벼슬, 잉여가치)의 창출을 손쉽게 추구하는 존재로 환원하고 있는 ‘보슬아치‘라는 용어는 매우 문제적입니다. 여성의 신체자원이 채굴, 배분, 활용, 억압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맥락 이해 자체가 상실되어 있고 성차별적 현실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남성들을 여성들에 의해 부와 특권을 탈취당하고 피해를 입는 계층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 P43
‘보슬아치‘는 ‘창녀와 꽃뱀, 된장녀와 김치녀‘라는 여성혐오 용어의 스펙트럼 확장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연애와 결혼의 잠재적, 현실적 상대인 모든 여성들이 성적 매력자원을 미끼로 남성들이 어렵게 취득한 부와 계층적 특권을 손쉽게 탈취하거나 나눠 갖는다는 기묘한 환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상은 사실상 ‘모든 남성이 남근권력의 상징물인 경제적 부와 계층적 특권을 보유한 강력한 팔루스(Phallus)가 될 수 없다‘는 남성 특유의 구조적 불안의 원인을 스스로의 자격미달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여성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 P43
탈코르셋 운동을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어떻게 남성과 구별되는 외형과 속성(propriete)들로 구성되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여성들이 어떠한 역량들(puissances)을 가지고 있는가(여성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문제의 축 자체를 이동시켜 버립니다. 여성을 옥죄며 가동되던 식별(distinction)의 코르셋-남성보다 가녀린 신체, 선이 곱고 예쁜 이목구비, 볼륨감 있는 몸매, 사근사근함, 애교 등-으로부터 스스로의 신체를 해방시키고 새로운 역량과 감각을 발굴하며 더 이상 남들에게 예쁜 인형이 아닌, 다양한 역량의 다발체로서의 자신을 조우하고 탐험해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 P52
예를 들어 급격한 체중감량을 위해 식욕억제제와 이뇨성분이 든 다이어트 약을 섭취하는 여성은 자신의 신체와 해당 약품의 합성(melange)작용이 일으키는 탈수 증상과 복통, 기력쇠진과 두통, 생리불순이라는 부정적인 감각증상에 대해 자신의 존재 및 신체역량의 축소와 하락의 상태(etat)를 느끼며 술픔의 정동(affect)에 놓입니다. 왜냐하면 스피노자가 말하듯이 자신의 신체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신체와의 만남과 합성은 우리의 신체를 불유쾌하고 유해한 방식으로 변화시키며 조화로운 신체 밸런스를 깨뜨리고 파괴한다는 점에서 슬픔의 정동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 P58
개인의 성향과 취향의 체계는 그 개인이 속한 성별, 사회적 위치, 경제적 계층, 교육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고 결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비춰볼 때 여성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별 계층성(sex class)에 의해 침투·각인되어 있는 다양한 습속들-특정 취향과 기호, 소비성향, 행동방식과 습관, 태도, 말투, 걷거나 앉는 방식, 제스처 등-의 총체들을 무의식적으로 체화하고 있습니다. - P74
이러한 관점에서 화장이나 외모 꾸미기에 대한 여성들의 취향이나 관심,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 인형이나 분홍색에 대한 선호, 나긋나긋한 말투나 수동적 태도 등은 여성에게 각인된 ‘아비투스‘(habitus)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아비투스란 사회적으로 범주화된 계층적 가치가 육체에 각인된 상태로서, 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계층성을 온전히 체현한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위하고 무언가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화장과 같은 꾸밈노동을 여성 개인의 사적인 취향이나 기호로 오인하도록 만드는 구조야말로 성별 계층성에 의해 도식화된 개인의 행동패턴과 특정 라이프스타일의 재생산 효과가 얼마나 한 개인의 신체와 사고방식에 온전히 칩습되어 있는가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74
예컨대 남성보다 가녀린 신체, 선이 곱고 예쁜 이목구비, 볼륨감 있는 몸매, 긴 머리, 호전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순종적인 태도와 눈빛, 배려심, 착하고 고운 마음씨, 애교 등은 임의적이고 우연적인 특성들의 총합일 뿐이지만, 이것이 남성과 확연히 대별되는 신체적, 심리적 차원의 성별 특성들의 총체를 형성함으로써 결국에는 ‘여성‘이라는 하나의 균질하고 동질적인 성별 계층성의 고유한 특질(property)로서 고정화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 P75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에 대한 성별 식별체계로 가동되고 있는 아비투스 도식들의 임의성과 우연성을 통렬히 비판하고 사회구조의 차별성과 억압성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는 ‘여성성‘ 분류화의 틀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구심을 제기하고 반기를 드는 행위입니다. - P75
화장과 꾸밈노동이라는 아비투스를 거부하는 행위는 단순히 ‘~하지 않음을 선택함‘을 넘어서 여성의 행동양식과 감각, 활동반경과 인식태도, 욕망과 기호까지 온전히 새로이 발굴하고 주조하게 한다는 점에서 존재론적 탐색을 추동시키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탈코르셋 운동은 성별 식별체계 내부에 식별 불가능한 존재들이자 남성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질적인 몸들을 난입시킴으로써 성별 식별체계의 가동에 거대한 타격을 가하며,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라는 위계적 질서가 새겨진 사회적 공간을 균열시키고 그로부터 탈주를 감행케 하는 것입니다. - P81
대다수의 여성들은 외모 꾸미기는 사회적 강요가 아닌, ‘내가 좋아서‘, 내가 자유롭게 선택해서 하는 일이라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왜 그것을 그만두라고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영화 <매트릭스>에서 이 세계가 구조적 착취와 차별의 시스템으로 가동되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깨달은 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파란 약을 먹고 그 진실을 알기 전으로 되돌아가서 편안하고 자유롭다는 환상에 젖어 살 것인지, 아니면 빨간 약을 먹고 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목도하며 매트릭스의 파괴를 힘겹게 싸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 P92
우리 대다수가 꾸밈노동의 완벽한 수행을 찬사와 무조건적인 박수로 맞이했었다면, 여성들의 민낯과 짧은 머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불편함의 감각‘을 선사합니다. 왜냐하면 짧은 머리를 하고 바지를 입은 여성들은 기존의 여성성 수행 방식에 대한 반란자들이자 이 억압적 사태에 ‘동참하지 않음‘을 선언하고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여전히 꾸밈노동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윤리적 불편함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탈코르셋 운동을 배제와 차별의 정치라고 반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코르셋이야말로 수많은 여성들을 스스로의 신체와 불화케 하고 아름다운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만 합니다. - P99
화장이나 외모 꾸미기라는 행위에 대한 고정화된 기쁨의 정동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코르셋을 전시하는 이들에 대한 일방적 비난과 설득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화장이 주는 기쁨의 정동의 강도보다 탈코르셋 운동을 실천하는 이들이 드러내는 존재역량의 상승의 사진들과 경험담들, 이로 인한 새로운 삶의 양식들의 전략과 태도들이 더 많이 사회적으로 발화되고 공유됨으로써 탈코르셋이 주는 기쁨의 정동의 강도가 더 높아질 때, 많은 여성들은 그 기쁨의 정동의 물결을 스스로 따를 것입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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