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런'은 데이트앱을 통해 '패트릭'이란 남자와 만나게 되고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만날수록 더 좋아지는 남자. 결국 내 연애가 그간 실패로 끝났던 것은 결국 이 사람에게 닿기 위한 게 아니었나 싶게 만든 남자.



엘런은 실패로 끝난 자신의 과거 연애를 늘 뭐랄까, 정말로 실패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 엘런은 그 세 번의 연애가 사실은 지금 이 해변에서의 순간이라는 운명적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기초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패트릭 스콧이라는 녹색 눈의 측량사에게 닿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p.37)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하고나면 늘 언제나 슬프고 힘들지만, 언젠가의 연애에서는 '결과적으로 그 모든 연애들이 그런 식으로 끝난 것이 내게 행운이었다' 라고 생각하게 됐던 거다. 만약 그 연애들 사이에 결혼이라도 끼어있었어봐, 나는 지금 이 남자를 만날 수 없었을 거 아냐!

분명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는 힘든 시간들을 겪었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좋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내게도 분명 있었던 거다.


그러나 연애를 하고 헤어졌다고 해서, 다시 싱글이 됐다고 해서 그 사랑이 '실패한' 사랑은 아니라고, '마리 루티'가 자신의 책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러니까 사랑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고 나는 마리 루티의 말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장기적인 안정성을 기준으로 연애의 성공을 측정하곤 합니다. 남녀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지속석 외에도 다른 목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영혼을 건드리지 않는 밋밋한 관계를 오래 끌고 가느니 아주 잠깐이라도 무모한 열정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불안정한 관계를 좇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안정감, 편안한, 신뢰감이 추구할 가치가 없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의 가치를 이런 식으로만 평가한다면 우리는 사랑의 근본적인 소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감동적인 통찰은 사랑의 좌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좌절은 인생의 방향을 전체적으로 재평가하게 만듭니다. 그것이야말로 좌절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보상인 셈이죠. (pp.22-23)




엘런은 패트릭을 만나기 위해 결국 이렇게 돌아온 것일까, 를 생각하는데 패트릭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과연 그 말은 무엇일까. 나는 혹시 프로포즈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할 말이 있다고 한 뒤에 나쁜 말을 듣고 싶진 않으니까.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 뒤에 고백을 들은 적도 있어서, 당연히 흐름은 그렇게 가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엘런은 '우리는 아닌 것 같다, 그만 만나자'는 말을 듣게 될까 두려워한다. 잠깐 그가 화장실 간 틈을 타, 그는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려는 거구나, 그만 만나자고 말하려는 거구나, 두려워하고 겁을 먹는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처럼 '너를 사랑해' 하는 고백도 아니고, 엘런이 생각한 것처럼 '그만 만나고싶다'는 고백도 아니었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 그에게 스토커가 있다고 한다. 스토커가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패트릭은 '사스키아'란 여자와 사귀었고 함께 살기도 했다. 사스키아는 패트릭의 애인이면서 동시에 패트릭의 아들인 '잭'의 엄마 노릇을 했다. 사스키아가 채 준비되지 않았는데, 사스키아는 아직 사랑으로 가득찼는데, 그런데 패트릭은 사스키아에게 '그만두자'고 말을 했던 거다. 그 후로 계속해서 사스키아는 패트릭의 뒤를 따라다니고, 그가 없는 동안 집에도 들어갔다 나오고, 아들의 축구경기를 보러가고, 이메일을 보내고 문자메세지를 보낸다. 패트릭이 그만하라고 해도 막무가내. 그녀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신에게 패트릭이 없는 게, 잭이 없는 게. 그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사귀려고 하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결국 그녀는 패트릭이 새로 만나기 시작한 '엘런'이 최면술사란 직업을 가진 걸 알고 그녀에게 찾아가 가명을 대고 최면을 받으며 엘런의 내담자가 되기까지 한다.



'리안 모리아티'의 책은 읽을 때마다 항상 수다스럽게 느껴졌다. 조용히 은근히 감상할 수 있는 책이라기 보다는 헐리우드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은, 그것도 시끄러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딱히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그런데 나 마니아..), 그녀가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쓰는 건 사실이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놓기가 힘드니까. 게다가 수시로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지만, '엘런'에게 이입이 되지 않아 초반부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좋아하기 시작한 남자가 전여친으로부터 아직 정리되지 못했다는데, 나는 너무 짜증이 나는 거다. 그런데 엘런은 그녀가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는거다. 좀 재미있게 생각한달까. 나는 이런 엘런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아서 너무 싫은 거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나에게 '전여친이 스토커가 되어서 쫓아다녀, 지금 여기에도 와있어' 라고 하면 너무 스트레스 받고 무섭고 걱정될 것 같은데, 그리고 이 관계를 어쩌나 고민할 것 같은데, 엘런은 그렇지가 않은 거다. 왜 스토커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 아 스트레스...



그런데 놀라운 건, 읽다 보면 나 역시 스토커인 '사스키아'에게 이입하게 된다는 거다. 나는 아직 사랑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런데 왜 그는 내게 끝났다고 하는거지, 나는 여전히 그의 옆자리가 내자리인것 같은데, 왜 그는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두려고 하는거지. 노이해... 이런 마음, 너무 잘 알겠는거다. 그를 향한 집착,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 그게 뭔지 너무 알겠어서, 그래서 또 스트레스인거다. 내가 사스키아, 이 스토커랑 다른 게 뭔가, 이 집착, 이 열정, 이 미련... 모두 다 내것인데, 나나 사스키아나 별다를 바 없는 거 아닌가. 스토커에게 이입하다니, 그래도 되는 것인가... 막 이렇게 되어가지고 스트레스가 대박 찾아오는 거다. 나.. 스토커 가능성 있는건가. 이래서 너무 스트레스 ㅠㅠ



누구나 사랑을 잃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힘이 든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이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가깝고 친근했는가, 얼마나 많은 걸 나누었는가. 우리가 그저 친구였다면 계속 그렇게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여전히 다정할 수 있을텐데, 우리가 애인이었으므로 다시는 이 뜨거운 사랑을 줄 방법도 없고 그의 다정함을 느낄 수도 없다니. 가장 가까운 사이가 어떻게 이토록 가장 먼 사이가 되었나, 다시 보지 않을 사이가 되었나, 너무 슬프잖아. 아, 이별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한 사람과 아주 친근한 관계를 맺고 매일같이 함께 자고 일어나고 주기적으로 엄청나게 사적인 일들을 함께하다가 갑자기 그 사람의 전화번호는 물론, 어디에서 사는지,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지난주에는, 작년에는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이가 되다니, 엘런에게는 가끔 그런 상황이 아주 기묘하고도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p.38)



매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매시간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주말에는 무얼하는지 죄다 알고 있다가 이제는 어디에서 사는지, 무얼 먹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는 거, 엘런 말대로 너무 기묘하고 잘못된 것 같잖아. 그렇지 않은가요, 여러분... 슬픔의 새드니스.....




엘런과 패트릭의 사랑은 무럭무럭 자란다. 사스키아가 졸졸 따라다녀도 그들의 사랑은 무럭무럭 자라. 그렇다고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엘런은 '나는 사스키아만큼 패트릭을 사랑하지 않는다, 내 사랑의 크기는 그보다 작다' 라고도 생각하고,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는 게 맞나, 나는 그저 사랑에 빠지고 싶었던 건 아닌가'도 수시로 자신에게 묻는다. 사랑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깊어가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 남자 때문에 짜증도 난다. 아아..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지금 아버지 사진은 하나도 없냐고 물은 건가? 그러니까 내 얘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거네? 내가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한지 벌써 몇 년은 됐다는 듯이,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거야? 엘런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또다시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스꺼워졌다. 내가 이 사람하고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에 절실하게 매달려 있는 거면 어쩌지? 이 사람에 대한 모든 생각이 내 지나친 망상이면 어쩌지? 이 사람이 사실은 그저 피상적이고 이기적인 멍청이라면 어쩌지? (p.124)




그 사랑은 무럭무럭 자라나 이제 그들은 같이 살기로 한다. 그렇게 패트릭과 그의 어린 아들 잭은 엘런의 집으로 짐을 싸가지고 들어오는데, 아아, 여기서 또 한번 스트레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데이트 할 때는 몰랐는데, 데이트 할 때 그의 집에 가서 자고 그럴 때는 몰랐는데, 이 남자가 세상에,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사람이었고, 오래된 짐을 가져와서 놓고는 그걸 치우라고 치우라고 잔소리를 해도 치우지 않는 사람이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엘런은 이제 딥빡이 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씨양 내가 뭘한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스트레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되어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아, 이 부분에서 나 엘런하고 같이 대박 스트레스 받았다. 그러게, 혼자살아 이 여자야!! 막 이렇게 일어나서 소리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달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패트릭 거지?"

매들린이 덥석 그 주제를 잡았다.

"맞아. 계속 옮겨달라고 부탁했거든. 상자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잔소리를 하지 않고 남자가 일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엘런이 물었고,

"오호, 그거야말로 10억짜리 질문이군."

매들린이 대답했다. (p.408)



아아 스트레스 스트레스. 엘런은 그러지말자고 스스로에게 속삭이지만, 자꾸만 상자는 언제 치울거냐고 묻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외조부가 살던 이 집이 패트릭의 짐으로 좁아지고 지저분해졌어, 아 빡침이... 이렇게 되어버림 ㅋㅋㅋ


그러나 무릇, 사랑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살게 되는데 어찌 순탄하기만 할것이요, 이렇게 마찰이 일어나면 해결해 가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짐을 치우지 않는 패트릭과 거기에서 빡침 오는 엘런을 보면서 건지 아일랜드 생각을 했다. 건지 아일랜드에서도 약혼자가 같이 살러 들어오기 때문에 책장의 절반을 내어줬더니 거기에 트로피만 잔뜩 진열하는 남자가 나왔더랬지. 나중에 여자는 약혼자랑 헤어지지. 후훗.



그러나 사실 엘런이 패트릭과 결혼하게 되는데 가장 망설이는 이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은 따로 있었다. 어쩌면 그가, 패트릭이, 죽은 그의 아내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신과 비교하며 자신을 그만큼 사랑할 수는 없을 거라는 것. 그 점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늘상 그녀를 괴롭힌다.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 남자가,그러나 나를 '가장'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것.

슬픔의 새드니스..

우리는 이렇게 다들 각자의 슬픔을 안고 사는건가요..






한편,스토커 사스키아는 패트릭의 애인으로서 그리고 잭의 엄마 역할까지 잘해내면서 행복했다. 게다가 패트릭의 부모님들까지도 자신을 좋아하고 다정하게 대해줬고. 그런데 패트릭과 헤어지니 잭도, 그리고 패트릭의 부모님도 잃게된 것이다. 자신은 이곳에 다정하게 지냈던 사람, 소속감을 느끼던 사람이 이들 뿐이었는데, 그런데 한꺼번에 이들을 모두 잃게된 것이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잃었지만, 그 사람들을 대체할 사람들을 나는 충분히 알지 못해. 나에게는 이모도, 고모도, 사촌도, 조부모도 없단 말이야. 나는 백업이 되어줄 사람들을 마련해두지 못했어. 이런 상실을 겪었을 때 나를 지탱해줄 보험을 들어놓지 않았어. (p.225)



사스키아가 패트릭을 정리하지 못하고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 그의 집에 침입하고 그의 새로운 애인을 감시하는 것 모두, 그녀에게는 패트릭 외에 다른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항상 같이 있고 싶고 생각나고 보고싶고. 헤어진 뒤에 상실감 역시 어마어마할 것이다. 늘 친근했던 그의 소식을 이제 알 수조차 없다니 얼마나 미칠 노릇인가. 그러니 어떻게해서든 그의 삶을 엿보고 싶고 누구를 만나는지 알고 싶은 건 당연한 욕망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사스키아와 내가 같다. 그러나 사스키아는 그러기 위해 상대의 스트레스와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한다. 누굴 만나는지 보고 약속장소에 따라가고. 그녀의 삶은 온통 그로 채워져있다. 나는 그녀가 갈 데까지 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토킹을 하면서 그녀가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녀는 여전히 '그의 옆엔 내가 있어야해' 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녀를 보면 화가 난다. 제발 날 따라다니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게 스토킹을 하면서 그녀가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그녀의 바람대로 '역시 너만큼 날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어' 하고 그녀에게로 돌아올 것인가. 아니. 이제 패트릭의 새로운 여자친구는 임신했다. 그 사실마저도 사스키아는 알게 됐고, 이 때는 정말 그녀가 미칠지경에 놓인다. 아이고.. 참... 몰랐으면 미치지는 않았을텐데. 게다가 초음파 사진 찍으러 패트릭과 엘런이 잭까지 함께 데리고 갔는데 거길 따라가서 통곡을 한다. 이 때는 정말이지 너무... ㅠㅠ 아니 이 여자야, 거길 왜 따라가서 자기한테 스스로 상처를 줘, 몰랐으면 됐잖아, 몰랐으면...

몰랐으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스토커에게도 스토커의 사정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이 이야기를 시작한걸까, 싶었는데,

마지막에는 스토커가 상대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얘기해준다.

사스키아 역시도 자신이 자신의 감정, 자신의 사랑에 빠져서 상대가 자신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은 패트릭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패트릭이 어떤 기분일까'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다.


나는 상대를 괴롭히는 사랑은, 그것이 상대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스토커의 경우에도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해', '내가 너를 이렇게 잊지못해', '나는 늘 너랑 있고 싶어' 라고 표면적으로 상대를 사랑해서라 말하지만, 그러나 스토킹을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너무 지나치게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지마', '하지마', '니가 그러면 괴로워'라고 누누이 말해도 그걸 들을 생각조차 없는 거다. 자신의 사랑에 갇혀서 거절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리고 그 사랑이 너무 커서 도무지 상대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거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리는데, 네, 그 사랑 크죠, 너무 큰데, 그거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이에요. 상대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괴롭히면 안되는거죠. 괴롭게 하는 게 무슨 사랑이에요.



사스키아가 뒤늦게라도 이걸 깨닫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당신이 계속 전화를 걸었을 때, 패트릭은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당신이 갑자기 나타나면 패트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패트릭은 그날 밤 두려웠을까요?"

이상한 건, 지난 3년 동안 나는 패트릭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작 패트릭이 어땠을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거야.

"폭력을 휘두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육체적인 폭력만 폭력인 건 아니에요. 당신은 패트릭을 무기력하게 만든 거예요."

"무기력하게 만들다뇨? 나는 패트릭을 사랑했어요. 그저 다시 함께하기를 바란 것뿐이에요."

"다시 생각해봐요, 사스키아."

내 정신과 의사는 나를 어디로든 달아나지 못하게 했어. 마치 나를 거울 앞에 세워놓고는, 내가 자꾸 외면하고 다른 곳을 보려고 할 때마다 내 어깨를 붙잡고 다시 거울 앞으로 돌려놓는 것처럼 느껴졌어. 내가 손으로 눈을 가릴 때마다 그녀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고 내 옆에 가지런히 내려놓는 거야. 마침내 나 스스로 거울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게 말이야. (p.621)






진짜 반복해 말하지만, '너 없이 안돼' 는 안된다. '너가 없어도 된다'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씩씩하게. 다른 사람들과도 다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돼. 물론 당신이 있으면 내 삶은 더 즐겁고 행복해지겠지, 가급적이면 당신하고 같이 살고 싶겠지. 그러나 '너 없으면 난 못산다' 로 살아가면, 헤어짐을 견디지 못할 뿐더러 상대를 괴롭히게 된다. 범죄자가 되는 겁니다.

사스키아가 자신이 '백업해둔' 인간 관계가 없다고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없으니 미치는 거다.

그러나 사스키아의 경우, 없다고 생각한 것 역시 자기 자신이었다. 그녀 곁에도 다른 사람들이, 친구랑 회사 동료들이 있었는데, 그녀가 몰랐다. 그녀가 그들을 관계라고 생각하지를 않은 거였어. 이게 그녀가 자신의 사랑안에 너무 갇혀 있어서 그렇다. 자기 사랑에, 자기의 큰 사랑에 갇혀 있으니, 상대으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따라다니고, 주변에 있는 사람을 보지도 못해. 그것은 그렇다면 '상대를 향한 이토록 큰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내 사랑은 사랑이되 상대의 사랑은 타이밍일 수 있다.

나 역시 내 사랑이 타이밍이고 상대의 사랑이 사랑이었던 적도 있고.

사랑이 그저 순수한 사랑이라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게 시작되고 또 끝나는 관계는 드문 것 같다. 사랑이 식어서 헤어지기도 하지만, 사랑이 식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이유들로도 헤어질 수 있다.

사랑은 중요하고 또 많은 것들을 해결해주지만, 사랑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순간순간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홀로 서는 것도, 살아갈 방향을 바라보는 것도, 때로는 애인과의 사랑보다 더 중요한 거니까.





내 정신과 의사는 패트릭이 나와 헤어진 이유가 사실 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어. 그녀는 패트릭이 나와 헤어진 건 그 자신의 문제, 콜린을 잃은 슬픔 때문일 거라고 했어.

"만약 그때 회의장에서 만난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 엘런이었다고 해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헤어졌을 거예요."

내 정신과 의사는 그렇게 말했어.

"아니에요. 두 사람은 소울메이트인걸요. 두 사람은 정말 서로를 사랑해요."

내가 말했어.

"타이밍의 문제예요." (p.623)





어디에서 어떤 타이밍이 어떤 방식으로 끼어든걸까, 나는 계속 생각한다. 멈추지 않고 생각한다.

이토록이나 큰 사랑을 품고서, 아무도 이렇게 큰 사랑을 품을 수 없다고 자부할만큼 큰 사랑을 품고서는, 그러나 사랑하고 헤어지게 된 것은 어디에서 어떤 우연이 끼어든걸까. 어쩌면 운명이란 큰 틀에서 이 시기에 누군가 들어오고 또 이 시기에 누군가 나가고 하는 것들이 다 정해져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것이 정해져있다면, 그래서 이 시점에 헤어져야 했던 거라면, 그렇다면 큰 사랑은 남겨두지 말고 같이 거둬갔어야 하는 건 아닌가. 이 감정은 남겨둔채로 관계만 정리하라고 하면 그건 너무 엉망진창의 운명의 흐름 아닌가. 헤어지는 게 운명이었다면 고통스럽지 않아야 운명을 받아들일 거 아냐.

나에게는 사랑이었고 상대에게는 타이밍이었던걸까.




누군가를 뒤에서 한참 응시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돌아보게 돼. 실제로 쳐다보는 사람을 보지는 못하지만 공기를 흐르는 기운이 다르다는 걸 느끼는 거야.

그게 바로 내가 패트릭을 오랫동안, 충분히 오랫동안 생각하면 패트릭이 나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이유야. 같은 방에서 한 사람을 오랫동안 쳐다봤을 때 그 시선을 느낄 수 있다면, 아무리 떨어진 지역에 있어도 엄청난 감정을 계속해서 보내면, 수많은 감정을 해일처럼 보내면, 그 감정을 느낄 수도 있는 거잖아. (p.145-146)




겁나 텔레파시 쏘고 있는데, 느껴지니?







사스키아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문안 온 친구가 사스키아가 받은 초콜렛을 먹어봐도 되냐고 묻고서는 하나씩 계속 먹는 장면이 있다.




나는 봉투에서 카드를 꺼내려고 했지만, 아주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손이 너무 떨려서 꺼내지지가 않았어.

"내가 해줄게요."

랜스가 부드럽게 말했어.

"초콜릿 한 개만 먹어도 돼요?'

케이트가 말했어.

"나중에 할게요."

내가 말했어.

"초콜릿 하나 먹으면 안 돼요?"

케이트가 말했어.

"케이트!"

랜스가 말했어.

"미안해요."

케이트가 말했어.

"당연히 드셔도 돼요."

내가 말했어. (p.523)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우리가 가져다 줄게요."

케이트가 초콜릿을 두 개쩨 먹으면서 말했어. (p.524)



나는 다시 랜스의 아내를 봤어. 정말로 말랐고, 가슴은 평평했어. 엄마가 봤다면 '남자아이처럼 매력적으로 생긴 여자구나'라고 했을 것 같아. 케이트는 산림지대에서 온 사람처럼 머리가 정말 짧았고 눈이 컸어. 그리고 아주 이상한 각도로 의자에 앉아서 여전히 내 초콜릿을 먹고 있었어. (p.524-525)



아이고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나는 평소에 늘상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초코릿을 좋아한다. 어느 날에는 되게 먹고싶어질 때가 있는 거야. 그렇지만 매일 그런 건 아니야. 초콜릿보다는 와인을 더 사랑합니다. 아니 근데 저 장면 읽는데 갑자기 나도 하나씩 꺼내먹는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은 거다. 고디바라든가 길리안 이라든가, 왜 그렇게 하나씩 작게 들어가 있는 그런 초콜릿. 아 너무 먹고 싶어, 나도 하나씩 꺼내먹다가 정신을 차린 다음에 '헐, 내가 이거 다 먹어버렸네..' 이렇게 하고 싶은 거야. 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장면 읽은 뒤로 머릿속에 초콜릿 생각만 하다가 잊고 있었는데, 아까 페이퍼 써야지, 하는 순간 '아 초콜릿 먹고싶어!' 이렇게 된거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에게는 얼마전에 동료로부터 받은 초콜렛이 있지.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허겁지겁 그 초콜릿을 먹기 시작했는데, 이건 내가 원한 그 낱개 초콜릿이 아니라 뭐라고 하지, 막대 초콜릿이라고 해야 하나 통 초콜릿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부러뜨려 먹어야 하는 허쉬초콜렛이고, 아아, 초콜렛이 순수하지 못하고 피넛버터랑 캬라멜 크림.. 어쩌고 막 이렇다. 아쉬우나마 이거라도 먹긴 했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그 초콜릿이 아니야,진짜가 아니다! 아아, 고디바 낱개 박스째 열어놓고 하나씩 집어 먹고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런거 부러뜨려 먹는 거 말고, 그런걸로 하나씩 집어 먹고 싶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리고 제일 하고 싶은 건 다 먹은 다음에


Oops!! I did it again!!



하는 것이야...











길게 쓰긴 했는데 뭘 썼는지를 모르겠다. 킁킁.





엘런은 그런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알고 있을까? 엘런은 특별히 운동을 좋아하는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아. 엘런이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거리는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어. 나에게 엘런은 그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찬가를 읊는 사람일 뿐이야. 요가는 하겠지. 태양을 보고 합장하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할 것 같아. - P148

엘런은 언제나 엄마가 늘 엘런 자신을 그렇게 날카롭고 맹렬하게 쳐다보는 이유를 안다고 생각했다. 그건 엄마가 엘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감추려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들키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항상 사랑을 감추려고 하는 것이 엄마의 사랑스러운 단점이라고 생각해왔다. 언제나 엄마에게 ‘나를 조금만 더 좋아해봐. 사랑에 좀 더 너그러워지란 말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가 사랑에 저항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감내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엘런도 사랑이 얼마나, 문자 그대로 얼마나 아픈지를 안다. 가슴 한가운데가 사랑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 P613

"패트릭이 널 보는 눈길이 참 좋더라. 네가 옳아. 존은 재미있기는 했지만, 패트릭이 바라보는 것처럼 너를 보지는 않았어."
"패트릭이 나를 어떻게 보는데?" - P541

"난 항상 패트릭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그를 더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냥 내가 훨신 사랑하면 되는 거니까." - P498

엘런의 혈관 속으로 따뜻하고 평온한 감정이 퍼져나갔다. 엘런의 마음을 움직인 건 패트릭이 한 말이 아니었다. 엘런의 이해가 너무나도, 너무나도 절실하다는 듯이, 말하는 내내 패트릭의 미간에 잡혀 있던 두 가닥 굵은 주름이었다. - P571

존과는 4년을 함께 살았지만, 그의 입에서 ‘결혼‘이라는 말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엘런은 존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엘런한테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존은 엘런하고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였다.
엘런은 정말로 상처를 입었다. 도자기 컵 여러 개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것처럼 감정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예리한 통증이 파편이 되어 온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콧구멍 속을 따끔거리게 만든 고통들이 커다란 통증이 되어 쐐기처럼 가슴 깊이 박혔다. - P192

"그만두라고요?"
"맞아요. 그게 내가 주는 아주 끝내주는 충고예요. 그만둘 것!"
"그냥……그만두라고요?"
케이트는 웃기 시작했어.
"내가 치료사라면 그렇게 말할 거예요. 사스키아, 그냥 그만둬요. 스토킹은 관두고 뜨개질이나 해요!" - P588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전혀 다른 방법으로 치료했어야 했어요."
엘런은 걸어가는 로지를 보면서 말했다.
"뒤늦은 깨달음이라. 항상 문제가 생겨야 알게 된다는 거구나."
엘런의 아버지가 말했다. - P585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내 마음을 다해서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반쪽 마음도 아니고, 두 번째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당신을 사랑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남은 평생을 다해서 그걸 당신에게 증명해 보이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 미친 최면술사님?" - P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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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로이트 콤플렉스] 스토커와 아버지
    from 마지막 키스 2020-10-15 10:37 
    프로이트에 따르면, 일반적인 경우에 나르시시즘은 발달의 한 단계로 간주될 수 있는데, 결국 자신에 대한 사랑은 다른 대상에게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지적하는 것처럼 이러한 사랑은 보통 부모 중 한명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자기애를 다른 사람에게로 전이시키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원래의 건강한 나르시시즘이 심각한 정신 질환을 초래하게 되고, 이는 정신병의 발달 과정을 따라 진행된다.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 정신병의 징후들에는 자기 자
 
 
jeje 2019-03-29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낱개 초코렛 하나씩 집어먹고싶은 최면에 걸렸습니다아아아아.....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3-29 22:24   좋아요 0 | URL
가까운 시일내에 고디바를 꼭 사먹고 싶습니다!!! 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19-03-29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사랑학 수업 꼭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19-03-29 22:25   좋아요 1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후회하지 않으실거라 말씀드려요. 후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