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워서 집에서만 읽으려고 했더니 12월을 며칠 남기지 않았는데도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못해, 아아 안되겠다, 하고 어제부터는 가지고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랬더니 가방이 진짜 겁나 무겁다. 회사의 여직원 1은 요즘 탈코에 힘입어 화장을 안하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러더니 며칠전부터는 가방도 안들고 다니고 빈 손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화장을 하지 않으니 화장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교통카드는 스맛폰에 함께 있으니, 롱패딩 주머니에 핸드폰 쥐고 손만 넣으면 출퇴근이 불편하지 않아. 나 역시 무거운 가방을 들고다니는 건 안하고 싶은데, 이놈의 책 때문에 되지를 않네. 심지어 책이 무거워 ㅠ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자발적으로 무거운 책을 넣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아무튼 오며가며 지하철안에서 부지런히 읽고 있다. 오늘이 12월 27일. 앞으로 나흘남은 12월안에, 이 책 다 읽기가 될까? 되게 만들어야지!



이 책 열심히 읽으면서 여자를 호명하는 것, 그리고 감추는 것은, 언제나 여자들의 몫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레이프 페르손'의 《린다 살인사건의 린다》생각이 났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5월 28일 금요일 리사 마테이는 스톡홀름 대학교 철학과에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논문의 제목은 '피해자 추모?' 였다. 마지막의 물음표는 정말 물음표였다. 언론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와 살인 사건을 다룰 때 어떤 메시지가 함의되어 있는지를 연구한 논문이었다. 리사 마테이는 이 문제를 젠더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오십 년간 이백여 명의 강간 살해 피해 여성이 살인 사건 앞에 이름으로 남았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오십 년은 된 사건만 꼽아봐도 비르기타 살인 사건, 예르드 살인 사건, 세르스틴 살인 사건과 울라 살인 사건이 있다. 2000년대에 일어난 최근 사건으로는 카이사 살인 사건, 페트라 살인 사건, 옌뉘 살인 사건……그리고 린다 살인 사건이 있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여성들은 어느 순간 언론에서 선호하는 기호로 단순 변화되었다. 기호학 용어에 따르면 그들은 일종의 상징이 되었다. 언론은 경찰이 용의자를 검거하는 그 순간까지도 피해 여성을 거듭 활용했다. 

스무 살 수습 경찰인 린다 발린부터, 린다 살인 사건, 린다 살인자 등등, 사법절차의 마지막 순서까지 린다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무엇에 대한 상징일까? 이 여성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언론이 다루고 결국은 스웨덴의 범죄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점은 차치하고 말이다. 성별이 가장 큰 공통점이었다. 남성이 죽으면 살인 사건 앞에 이름이 붙지 않는다. 살인 동기가 성적이든 뭐든 간에 그렇다. 인간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여성이어야만 받는 취급이었다. -2권, 376-377

















여자가 피해자였을 때는 여자의 이름을 제멋대로 호명한다. 자연스레 우리는 피해자로서의 여자를 기억하게 된다. 피해자로서의 여자를 기억하는 순간, 가해자로서의 남자는 잊혀진다. 가해자 지우기.



이 책, 페미사이드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 여성을 연쇄살인한 남성 범죄자에 대해서 언론이 얼마나 교묘히 가해자를 지우는지, 죽은 여성은 보통의 인간이 아닌 취급을 한다. 연쇄살인범인 백인남성은 지우고, 살해된 여성은 매춘부로 명명한다. 자, 피해자는 매춘부야, 를 드러냄으로써 이 '남자'기자는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가.



이 도시 주요 지역신문의 남자 기자는 이 연쇄살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다루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들이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연쇄살인범이란 보통 심리적 동기를 지니고 있으며, 피해자들을 연속적으로 대개 무작위로 골라, 그들의 팔다리를 절단하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피부를 벗기거나, 고문한 채 버려두고 떠난다.

이전에 오클랜드의 한 연쇄살인범은 지방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던 사람들을 쐈다. 어떤 연쇄살인범은 매춘부들을 칼로 찌르거나 구타해서 죽일 것이고, 또 어떤 연쇄살인범은 피해자들을 목졸라 죽일 것인데, 그 전에 의례와도 같이 성행위를 벌이는 경우도 더러 있다. (Harris 1991a) -p.372



이를 언급한 '크리스 도밍고'는 누가 그들을 죽이는지, 제대로 표시하여 이 글을 다시 써보았다.



법을 집행하는 모든 경찰관이 알고 있던 것을 이 기자가 말하지 않기로 결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즉 연쇄살인범들은 거의 언제나 백인 남성이며, 그들이 죽인 사람들의 90퍼센트는 여성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연쇄살인이 '무작위'로 이루어진다고 말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기자는 죽였다거나 죽인다고 하지 않고 죽일것이다라는 표현을 반복 사용한다. 여성이라는 단어가 부재한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그 대신 매춘부 또는 피해자라는 단어가 쓰였다. 성별이 알려지지 않은 살인범이 '피해자들을 고른다', 그리고 팔다리를 절단한 채 '버려두고 떠난다'. 누가 그들을 죽이는가? 기자가 부인한 내용을 채워 넣고 성별을 정확히 표시한 실제 사실이 여기에 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들이 알고 있는 연쇄살인범은 거의 모든 경우 백인 남성으로, 연속해서 사람들을, 보통은 여성들을 살해하고, 팔다리를 절단하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피부를 벗기거나 고문한 채 버려두고 떠난다.

이전에 오클랜드의 한 연쇄살인범은 여성들을 목 졸라 죽였는데, 종종 그 전에 추행하거나 강간했다. 어떤 연쇄살인범은 성매매 여성들을 칼로 찌르고 구타해서 죽였다. 또 어떤 연쇄살인범은 지방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던 사람들을 쐈다. (p.372-373)



언어와 폭력에 대해 생각한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남성들은 타고나길 여성보다 '폭력적으로' 태어난걸까? 그렇기에 그들이 여성을 때리고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페미사이드의 수많은 재판에서 여성을 때리거나 죽인 남자 범인들은, '여자들이 나를 열받게 해서' 그런 상황이 되었다고 변명하고, 대부분의 경우 이 변명은 판사에게 '먹힌다'. 재판은 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향하기보다, 이미 죽어 자기 변명을 할 수 없는, 자기 상황에 대해 말할 수 없는 피해자를 향한다. 이미 죽은 피해자는, 남편(혹은 애인)을 도발한 나쁜년이 된다. 니가 나쁜 짓을 했어, 왜 남자를 열받게 해, 우리는 그렇게 열받게 하면 어쩔 수 없단 말이야.



감각이란 무엇일까.


신문 기사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서, 그 단어가 적절치 못하다, 그 비유가 이상하다는 것을 짚어내는 건 대부분 여성들이다. 여성들이 '문과적으로' 더 뛰어난 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지적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것이 감각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어를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보다는,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가진 감각.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굳이 인지할 필요도 없이, 그저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이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권력이다. 경험하지 않았으면서 후려치는 것(최근의 한 유명소설가가 무통분만에 대한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 안에 담긴 뜻이 대체 어떤 것인지 고려할 필요없이 싸질러버리는 '빚투'라는 단어. 그 단어들을 생각나는대로 내뱉는 것은 그들이 가진 권력이다. '어? 이 단어를 이 때 이렇게 써도 되나?'라는 감각 자체가 부재한 건, 그들이 타고나길 문과적 뇌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었던' 데에서 오는 권력.


폭력도 그런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그래도 되니까', '그래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살아왔던 것. 범죄에 대한 처벌이,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것과 동등하게 가해졌다면, 그들은 '남성은 원래 폭력적인 호르몬을 가지고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한 쪽 성에 일방적으로 더 많은 비난을 한 건 아닌가, 그것이 지금처럼 폭력을 쓰는데 거침없게 다른 한 쪽 성을 유도한 게 아닌가, 그것이 단어와 문장을 사용함에 있어 생각나는대로 내뱉기에 바쁘게 그들을 몰아간 게 아닌가. 왜 한 쪽 성에게는 '이러면 안되지', '그건 좀 아니잖아' 라는 말과 행동이, 다른 한 쪽 성에게는 '니나노 내 맘이야~' 가 되어버리는걸까. 왤까. 이게 우리의 '타고난' 감각 때문인걸까? 진짜?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요즘에는 특히 '팩트폭력'이라는 말로, '감성적인' 혹인 '감정적인' 너희들이 무지하다고 하는 이들은, 정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가. 정말 팩트를 체크하고 있는건가. 이성과 논리 따위 애초에 갖지도 못한 채로 팩트를 교묘하게 감추며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위의 '크리스 도밍고'가 쓴 것처럼, '사실만을' 기술하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여자라는 이유로'죽어가는 지 알 수 있는데?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는 우선 문제를 정직하게 서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훨씬 더 멀리까지 나갈 수 있다. (p.373)




더 멀리 나가는 게 두려워 부러 팩트를 감추고 있는 건 아닌가.




이토록 읽기 힘든 책을 그래도 끝까지 읽어보려 했던 건, [백래시]가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은 무언가 희망적일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이 책의 6장을 읽기 시작했다. 내 기대는 틀리지 않아, 6장의 제목은,


<페미사이드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


이다. 그래, 내가 여기까지 오려고 이 긴 고통을 감수했다. 자, 페미사이드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을 읽어보자. 그리고 나 역시 함께 싸우도록 하자. 이 길고도 오랜 끔찍한 역사에, 다른 여자들과 힘을 합쳐 함께 맞서기로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 크리스 도밍고가 말한 것처럼, 현실에 대해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그게 내가 이 책을 읽는, 그리고 다른 책들을 읽는 이유다.



자, 같이 읽는 친구 여러분,

저는 이 책의 598쪽까지 읽었습니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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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2-27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98쪽까지!! 잘 왔어요, 다락방님!
전 다 읽었구요. 아껴서 30페이지 정도 남겨두었는데 어제 마무리했어요.
페이퍼 하나 더 쓸까 하고 있는데, 어떤 게 좋을까 생각중이예요.
제가 줄 그은 부분이랑 다락방님 줄 그은 부분이 겹쳐져서 기쁘면서도 안타깝네요.
여성의 죽음이 가볍게 여겨지는 이 세상, 이 험한 세상..... ㅠㅠ

공쟝쟝 2018-12-27 20:44   좋아요 0 | URL
완료 하셨군요?? 축하축하 드려요 ❤️👍👍

다락방 2018-12-28 08:17   좋아요 0 | URL
역시 단발머리 님이 예상대로 가장 빠르셨어요! 후훗.
저도 오늘내일이면 완독할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 페이퍼 하나 더 쓸 예정인데 업무가 많아..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진정한 페이퍼란 바쁜 업무중에 쓰는 것이죠...(응?)

자자, 열심히 읽고 써봅시다!

공쟝쟝 2018-12-27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589페이지!! 저두 뒤따라 가고 있습니다~
저도 인용하신 373페이지 접어놨어요. 인간의 보편이 Man인건 그렇다 치자구여! 근데 왜 살해된 여성의 직업과 행실은 명명되야 하는지 한숨 푹푹...
그나저나 무통분만은 어휴...진짜!! 올해의 마지막 존명쎄 해야하는 발언입니다.. 나이고 권력이고 상관없이!!

다락방 2018-12-28 08:20   좋아요 0 | URL
저는 현재 600페이지 넘어섰습니다, 쟝쟝님!

살해된 여성을 굳이 매춘부라 칭하면서(혹은 매춘부로 오해했다고 하면서), ‘헤픈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로 나누고, 그걸 나눈 뒤에는 가치를 부여하죠. 여자를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물화 시키는 것 같아요.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우리는 아마도 무뎌지지 않을까요.

늙은 남자에게 권력은 지나치게 해로운데, 늙었다는 것 자체로 이미 권력이 되는 세상이에요. 이 나라가 그렇습니다.

퍼론 2018-12-28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구매했습니다 뒤따라 꾸준히 가겠습니다

다락방 2018-12-28 08:21   좋아요 0 | URL
오, 따라잡으려면 바싹 힘주셔야겠어요, 퍼론님. 힘 뽝- 내서 따라오세요. 제가 앞서 가고 있겠습니다.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