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책을 사랑하고 책 읽는 행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아주 많은 책이다. 저자가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한 줄 한 줄에서 그 애정이 뚝뚝 떨어진달까. 나는 아마 직장을 관두고 책읽기에 몰두한다 해도 저자만큼 많이 또 깊이 읽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필사도 한다는데, 그러니 읽는 책들을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하기가 더 쉬웠을 테다. 그런 사람에게서 나온 책에 대한 글, 책 읽기에 대한 글이니, 책에 대한 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반겨 읽을 만한 책이 아닌가. 부끄럽게도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도 이 책에 인용되어 있어, 저자가 정말 아주 다양한 분야를 읽는구나 생각도 했다. 어휘력도 상당한데, 내가 이날까지 독서해오면서 알지 못했던 단어들이 이 책에는 잘만 나와 있더라. 각주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단어들이 수두룩. 아마도 깊이 있게 책을 읽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깊이 읽기 다양하게 읽기. 이 저자는 그 모든 걸 갖춘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남자 작가의 한계' 같은 걸 느꼈다.
이쯤되면 나는 '남자들은 여자의 신체를 질투한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약자의 편에 서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며 반원을 그리는 모양을 '어머니 젖가슴'에 비유한다. 어머니 품에 안겨 위로받던 기분을 책 읽으며 느낀다는 글을 쓰면서 표현한건데(책이 나를 위로한다는 뜻은 알겠다), 일전에 존 스타인벡도 《분노의 포도》에서 산봉우리였나..젖가슴에 비유하던데.. 둥그란 거 그냥 젖가슴으로 쓰는 거.... 너무 상상력이 빈약한 것 같다.
게다가 이 책에서 저자는 '한 사람을 내 관심의 자궁에 오래 품어야만 그에게 알맞은 책 선물이나 추천이 가능하다'고 한다. 왜 본인에게 있지도 않은 자궁을 가져올까? 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굳이, 부러, '자궁'에 빗댈까? 남자들 자궁 너무 갖고 싶나? 나는 책을 내는 행위를 '자식을 낳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거슬린다. 예전에 문희준은 라디오에 나와 앨범 한 장 내는게 자식 낳는 거 같다고 하던데, 자식 낳는 거 세상 부러운 행위인가? 자식 낳아봤는가? 그래서 책이든 앨범이든 그렇게 자식에 갖다 대는거야?
SF 소설을 쓰라고 하면 대부분의 남자작가들이 그렇게나 섹스 로봇 얘기를 쓴다는데, 머릿속에 그냥 여자 신체, 여자와의 섹스 이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작가들이 뭐 특이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남자들이 다 그런데 작가들은 단지 그걸 글로 써내는 것 뿐인 것 같다.
미래에는 우리가 어떤 모습일까?
섹스로봇하고 섹스할 수 있어!
너나할 것없이 섹스로봇 얘기만 해대는데, 너무 다 거기서 거기잖아? 상상력이 발휘되는 지점, 비유하고자 하는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다 자기들이 성적대상화 시키고 물화 시키는 여성의 신체나 여성의 신체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섹스인걸까? 너무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너무 많이 보고 접해서 그런 것 같다. 너무 많이. 세상에 태어나 남자라는 성별로 살아가면서, 여자가 성적대상화 되는 걸 너무 많이 봐서, 너무 많이 경험해서. 여자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물화 시켜서, 그래서 뭘 하든 가져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너무 익숙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안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여성의 신체를 마치 자기것인듯 가져오지 말고, 여성의 고통을 자기 것인듯 굴지말고, 여성이 섹스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때, 한국 남자들이 쓸 수 있는 글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글을 쓸 수나 있을까? 김훈은 자신의 책에서 어린 여자아기 기저귀 갈아주면서도 저 안은 따뜻할 것이다.. 같은 말을 해대는데, 여성의 신체, 여성과의 섹스를 제외한 채로 한국 남자작가들은 글을 쓸 수 없는걸까? 글을 완성했다면 여자의 신체가 나오는 부분은 의식적으로 들어내고 살아남는 부분을 공개하는 게 그들이 앞으로 계속 문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 거 들어내고 남는 게 있다면 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