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거 아니야.
















일전에 유연석 주연의 영화 《그날의 분위기》를 보고 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유연석은, 기차의 옆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여자에게 '나는 오늘 그쪽이랑 잘겁니다'라고 말한다. 미친 개소리를 씨부린건데, 이 장면에서 어떤 남자들이 '야, 유연석 정도면 여자들도 자겠지'라고 생각한다는 걸 보고는 기가 찼다. 잘생겼기 때문에 저런 발언이 허용될 것이고 여자들도 섹스를 허락할 것이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그리고 저 자리에서 '미친놈아 웃기지마' 라고 내가 대답한다면, 나는 '처음 만난 남자와 자지 않는 조신한 여자'같은 게 되는걸까?



당연히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가 만나, 그 만난 첫 날 섹스를 할 수 있다. 나 역시 만난 첫날 섹스를 한 적도 있다. 그 날 그 남자랑 하고 싶어서 그랬다. 처음 만난 날 섹스를 하자는 상대의 말에 나도 너무 하고 싶어서 갈등을 한 적도 있다. 할까, 말까? 오늘 내가 이 남자랑 섹스를 하면 나는 이 남자랑 어떤 관계가 될까? 망설이다 고개를 저은 적도 있다. 나를 포함한 여자들도 처음본 사람과 당연히 섹스할 수 있고, 섹스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가 상대의 제안에 응하거나 혹은 내가 제안했을 때는, 상대를 그 날 처음 본거라 하더라도 얼마만큼은 '괜찮은'사람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상대가 나에게 그런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유연석이 그랬던것처럼,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갑자기 '나는 오늘 너랑 잘겁니다' 하면, 내가 걔를 뭘 믿고 '오케바리, 나도 오늘 섹스 땡겨, 고고씽!!' 하겠는가? 어디서 저런 생각을 하지? 미쳤나? 상식 같은 거 1도 없나?



그리고 마리 루티의 책에서, '여자들은 하룻밤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근거로 멍청한 연구를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연구자는 여자들의 '삶'을 1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갑자기 모르는 남자가 다가와서 '너 몇 번 눈에 띄더라, 오늘 나랑 잘래?' 이러면, '오 네 눈에 띄었다니 기뻐. 그래 자자' 하는 여자가 어딨냐. 그 남자가 강간범일지 살인범일지 어떻게 알고. 내가 마실 물에 약을 타서 납치를 할지 불법촬영을 할지 어떻게 알고... 어떻게 저런 실험을 해서 여자들이 '아니'를 말했다고, '여자들은 첫만남 섹스를 안좋아해' 라고 결론을 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너무 멍청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무슨 데이트앱에서 설문조사 하니, 여자들은 자신이 만나게 될 상대가 강간살인범일까봐 가장 무섭다고 했고 남자들은 상대가 뚱뚱한 여자일까봐 가장 무섭다고 했다. 와...진짜 남자들 인생 편하게 사는구나..뚱뚱한 여자 만나는 게 가장 무섭다니... 아무튼,


나와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고, 스토리도 없고, 대화로 알아가는 과정도 없이, 심지어 나는 본 적도 없는데 나를 여러번 봤다는 스토커 같은 새끼랑 내가 어떻게 자냐...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그런데 여기에 안잤더니 여자는 갑자기 남자보다 성욕 없는 사람 되어버리고.......



여자가 처음 본 남자와 섹스하지 않는 건, 섹스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에 따른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에휴.....



엊그제부터 매일, '오늘 책을 사자', '오늘 사자' 이러면서 지금까지 미뤄왔다. 미루다보니, 장바구니 목록이 자꾸 달라진다. 도대체 나는 어떤 것들을 정해야 하는가. 북마크도 살거라서 오만원이상 구입하면 잉천점 마일리지가 생겨...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까...























《성폭력을 다시 쓴다》는 이미 읽었고 가지고 있고 밑줄도 박박 그어져 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책이 구판으로 너무 오래된거라... 2018년 개정판이라는 책으로 새로 꽂아 놔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야하지 않는가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순결한 피해자'라는 것에 나 역시 갇혀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 이 책 읽으세요.


《비바, 제인》은, '개브리얼 제빈'의 책이다. 《섬에 있는 서점》과《마가렛 타운》을 읽어본 나로서는, 비바 제인 역시 읽어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불온한 검은 피》는 내가 '허연' 시인의 <오십 미터>라는 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다른 시들을 읽고 싶어졌다.


오십 미터를 옮겨 놓으면서 이 페이퍼를 마치기로 하겠다. (어쩐지 숭고한 마지막...)




오십 미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너머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 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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