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몇 장 읽지도 않았을 때부터 나는 '이 작가에겐 있고 나에겐 없는 것이 대체 뭘까'를 생각해야 했다. 왜 이 작가는 글을 잘 쓰고 나는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어떤것에서 오는 무슨 차이인가. 이 작가에게 있고 나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가, 자꾸 문장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읽었다. 몇 장 읽지 않았을 때 느낀건, 이 작가가 나보다 훨씬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거였다. 가지고 놀 수 있는 단어가 많다. 게다가 그것들을 어떻게 써내야 하는지도 알고. 그래서 문장들이 화려하다.


작가는 자신의 문체가 건조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몇 번이나 '이게 건조하다고? 건조해?' 되물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김 살로메 작가의 문체는 건조하지 '않다'는 거였다. 건조한 문체가 나쁘다거나 혹은 좋아서가 아니라,- 건조한 문체는 나도 참 좋아하고요-, 그러니까 나쁘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 한 권의 책으로 느낀 김 살로메 작가의 문체는 건조하지가 않다는 거다.



프로이트 역시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인간 과제 중의 하나라고 보았다. 언제나 나보다 타인이 나를 잘 알며, 이웃보다 내가 이웃을 잘 아는 수가 있다고 했다.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제 마음을 타인이 더 잘 읽는다는 것. 대체로 인간은 자신보다 타인을 분석하는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p.175)



타인인 나는 이 작가의 문체가 건조하지 않아. 게다가 작가는 지나치게 겸손하다.



평범한 우리말 단어 하나도 제대로 부리지 못하는 건 내 안의 정서가 외국어 낱말처럼 서툴기 때문은 아닐지. 두껍게 언 마음 호수에다 도기로 바람구멍 한 점 내고 싶다. (p.126)





네???????????

나는 몇 장 읽지도 않고 이 작가가 어휘력이 풍부하구나, 생각했고 그래서 '사전을 따로 읽고 들여다보는 건 아닐까' 했는데, 작가는 자신이 '우리말 단어 하나도 제대로 부리지 못'한다고 한다. 음...



에세이라는 장르는 작가에 대해 너무 잘 드러내기 때문에 장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그대로 에세이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이 책 한 권을 읽고 이 작가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건 말도 안되지만, 이 책 한 권을 읽고 나는 이 작가가 굉장히 욕심이 많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욕심과 노력은 좋은 글을 쓰는데에 집중되어 있어서 일상의 하나하나 사람들과의 대화들까지 고스란히 글의 소재가 되고 생각의 거리가 되는거다. 매일 일천자의 글쓰기를 했다는 것은 당연히 성실하다 말할 수 있지만 단순히 '성실하다'는 것만이 이 작가의 특징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잘쓰고 싶다는 욕심. 그게 이 작가에겐 굉장히 크고, 그것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나는 작가를 알지 못하면서 작가의 욕심이 느껴졌는데, 그게 내가 '이 작가는 굉장히 노력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런데 뭔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 책이 만족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계속 생각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던 욕심이 한 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사전을 따로 보는걸까 싶을 정도로 단어도 많이 알고, 책 한 권을 읽어도 꼼꼼하게 읽는가보구나 싶을 정도로 문장도 잘 써내는데, 그런데 단어가 모여 문장을 이루고 문장이 모여 단락을 이루고 단락이 모여 한꼭지를 이룰 때, 그 모든 것들이 과한 느낌을 주는거다. 많은 것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느낌이랄까. 작가는 자신의 문체가 건조하다 했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건조하게 느끼지 못한건 아마도 그 과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금팔찌, 은팔찌, 진주 팔찌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팔찌를 팔에 껴버린 느낌이랄까. 책장을 넘기면서 사진은 대체 왜 넣은걸까, 없는 편이 더 나앗을텐데, 라는 생각도 했다. 사진이 글의 맥락과 딱히 어울리질 않아 사진을 보면서 어떤 의미로 넣은걸까를 자꾸 멈추어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책을 읽다가 흐름이 끊겨버리는 것. 중간중간 사진을 삽입한 것 역시 좋은 책, 원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는데, 오늘 다시 생각나 이렇게 페이퍼를 쓰게된 건, 오늘 점심시간에 본 한 편의 다큐 때문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무얼 볼까, 하다가 고른 프로그램이었는데, 아무런 정보도 없어서 다큐인줄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재생시켰다. 음식구경이나 실컷하자, 하고. 내가 본 프로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토시'라는 쿠키와 파이의 장인이었다.





크리스티나 토시는 학창시절 공부를 엄청 잘해서 늘 A 만 받는 학생이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건 너무 싫었다고 했다. 뭘해야 할까, 뭘 해야 내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행복할까, 를 고민하다가 그 길로 요리를 배우게 되고 뉴욕으로 가 식당에도 취직하게 됐다는 거다. 요리를 하는 게 너무 좋고 또 뉴욕에서도 요리로 성공하고 싶어서, 취직한 직장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 일하면서 디저트도 만들어보고 직원들의 식사도 챙겼다고 했다. 그런 자신에게는 다른 것들을 볼 여유도 없었다고. 가족도 친구도 보이지 않아 외로웠는데, 그 외로움마저 일로써 이겨내자고 생각했다는 거다. 여기까지가 내가 본 30분 정도의 시간동안 나온건데, 나야 '크리스티나 토시'라는 이름을 이 프로를 보며 처음 알게된 거지만, 그녀는 엄청 유명한 파티쉐인것 같았다.



최근에 '노력'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멋진가,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기초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일기까지 일본어로 쓸 수 있게된 친구 생각을 오래 했고, 이 다큐를 보면서 '이렇게 하고자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정말이지 얼마나 근사한가 생각했다. 그러다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까지 생각하게 된것. 최근에 읽으면서 '작가가 진짜 노력하는구나', '머릿속에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엄청나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터다. 게다가 엄청 열심히 살고 있어!!


크리스티나 토시는 턱까지 다크가 내려와도 쿠키를 굽고 파이를 만드는 게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성공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나 노력을 하는데 성공은 당연한 보상이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노력하는 파티쉐, 친구, 작가를 보고나니 자연스레 내가 나를 돌아보게 되는 거다.



나는 무슨 노력을 했지?



아무리 물어도 내가 노력한 게 없는 거다. 크리스티나 토시처럼 오래, 계속, 끊임없이 하는 게 도대체 나는 뭐가 있지? 천재도 아닌데 노력도 안하면 어떡하지? 글 쓰는 게 삶의 낙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건 뭐가 있지? 한 권의 책을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읽지도 않고 사전을 펼쳐놓고 단어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하는 게 뭐지? 요가도 고작 일주일에 두 세번밖에 안가는데 실력이 늘 수가 있나? 머리서기 마흔다섯에 하겠다고 했지만, 쉰에는 될까? 모르겠다. 매번 다이어트 하겠다고 설레발 치는 건 뭐지? 그건 매번 실패하기 때문이 아닌가? 난 대체 어디에, 무엇을 노력하지? 나는 너무 막 사는게 아닌가? 내가 오래, 끊임없이, 계속 하고 있는 것, 쉬고 싶은데고 계속 하는 게 뭐지?



앗!


나는 그렇게 묻고 또 물었는데 답할 수 있는 게 '회사 다니기' 밖에 없는 거다. 맙소사...그렇다면 내가 이 일이 좋아서, 기뻐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우앙 - 오늘도 회사 가네~ 넘나 신나는 것. 울라울라 울라울라~'


이래서 하는건가? 노노. 아침에 눈뜰 때마다,


'도대체 이 지겨운 짓을 언제 그만둘 수 있나' 만 생각하는 거다.



그런 내가 직장생활을 20년 가까이 하고 있는 건..나는 내가 먹고 살아야 할 돈을 내가 마련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나 먹여살려달라고 누구에게 의지하기도 싫고 부탁하기도 싫어. 그렇지만 먹고싶고 마시고 싶다. 그러면 어째야 하나.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은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가진 게 없으니까... 애초에 돈이 없으니까 누군가의 밑에서 누군가가 출근하라는 시간에 출근하면서 꾸역꾸역 일을 해야해. 이것은 노력이 아니다. 나의 살고자하는 의지가 넘나 강해서 이어져온 것....


살아야 한다.

어떻게?

가급적이면 즐겁게!

뭘 해야 즐거워?

먹고 마셔야 즐겁다!!



이래서 끈질기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 내가 내 의지로, 내 행복을 위해 꾸준히 하는 건 뭐가 있나... 물론 책 읽고 글 쓰기가 있지만, 그걸로 무슨 성공을 한다거나 할 수도 없어. 나는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가는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씁슬하게 계속 해야 했다. 이렇게 노력하지 않는 내가 무슨 소설가람... 이렇게 된 것.


성공은 뭐지?

성공하기 위해 그럼 나는 무슨 노력을 해야하지?

음..

딱히 성공을 안하면 되지 않나?

그러면 노력하지 않아도 되잖아?




막 이렇게 의식의 흐름이 제멋대로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티나 토시..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에너지를 받고 그렇게 미친듯이 쿠키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었나요... 나도 쿠키 만들어 볼까요? (네?)



일단 주말에 집에서 소떡소떡이나 만들어 먹어봐야겠다.




어떤 사안 앞에서 그것이 잘못되어 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진실하다면 제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겉 물결이 역류한다고 물길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본질의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묵묵히 흐른다. 그 깊은 속은 결코 역류를 허락하지 않는다. (p.68)

쓰는 말의 틀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맘은 그렇지 않은데 자꾸 상대가 오해하거나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해싿면 그것은 말을 잘못 부린 탓이다. 돌팔매질이 들어간 말보다는 봄바람 같은 상쾌함이 깃든 말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그런 이의 말은 나이테가 늘어나도 말의 심지가 훼손되지 않으룬더러 부드럽고 따뜻하기만 하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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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2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무슨 개똥소리냐 싶으시겠으나, 포기하면 편하더라구요. 하지만 다락방님은 포기하지 마세요. 뭐든지. 뭐든지 나 혼자 편할테다....

다락방 2018-08-24 15:12   좋아요 0 | URL
이게 무슨 개똥소리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포기할거지롱. 같이 편하자~~~~~~~~~~~~~~~~~~

syo 2018-08-24 15:28   좋아요 0 | URL
훠이~~ 훠어어이~~
포기는 나의 것. 나만의 포기.

다락방 2018-08-24 16:08   좋아요 0 | URL
날 두고 혼자 가지 말란 말예요. 엉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같이가요 포기의 길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18-08-2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 문장 말이예요.

아무리 물어도 내가 노력한 게 없는 거다.

너무 맘에 와 닿아요. 제가 무엇을 얼마나 못 하는지를 따질것도 없이 그냥... 전 게을러서 ㅠㅠ
같이 가요, 포기의 길로.... 저도 데려가세요~~~

다락방 2018-08-24 22:16   좋아요 0 | URL
ㅎㅎ 포기하면 편해질텐데, 그 길이 분명 편한길일텐데, 저는 가만 생각해보니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어요. 그것들을 포기하지 말자고, 단발머리님의 포기하자는 댓글을 읽고 오히려 다짐하게 됐어요. 이상하게 의욕적이 되는 밤이에요. 아마 하루키를 다 읽어서, 마지막에 큰맘 먹고 헤어진 아내(유즈)에게 묻고 싶은 걸 묻는 걸 읽어서 그런가봐요, 단발머리님. 헤헷.

카알벨루치 2018-08-24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은 소떡소떡 ㅋㅋㅋㅋㅋ우아 정말 락방락방 다락방님입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8-24 22:17   좋아요 1 | URL
소스를 미리 만들어두는 게 좋다고 해서 제가 지금 막 소스를 만들었는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두근두근... 소떡소떡한 토요일 되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8-10-28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8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8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9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