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내용이었기에 영화도 궁금했다. 그렇게 보기시작햇는데, 시작한 지 10분도 안돼서 벌써 아, 역시 좋구나, 하고 잠깐 멈췄더랬다.


'줄리엣'은 작가인데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책이 전세계적으로 고작 28부 팔린 '앤 브론테' 평전이었다. 지금은 '이지'라는 필명으로 잘 나가는 작가가 되어 돈도 많이 벌고 서점마다 작가의 낭독인가, 뭐 그런거 돌아다닐 정도로 스케쥴도 바쁘다. 그녀에게는 '마크' 라는 돈 많은 군인 남친이 있는데, 일전에 책에서 왜 돈 많은 남친 말고 섬의 가난한 남자를 택하는가..하고 한 알라디너가 탄식햇을 정도로, 이 돈 많은 남자친구의 존재는 정말이지 무시할 수가 없다. <타임>지에서 '독서'에 대한 글을 의뢰받고 그녀는 '감자껍질파이클럽'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서클럽을 방문하고자 건지섬에 가기로 하는데, 배를 타기에 앞서 '마크'가 청혼을 한다. 앞서 그는 청혼할 기미를 보였는데, 그게 바로 이런 거였다.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을 구했거든요. 호수가 보이고 연못에서 모형 배를 타는 꼬마들까지 보이죠. 제가 사는 도시를 보여주고 싶어요. 고민해 봐요."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좋은데? 사실 책을 읽는 나는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도시' 파이긴 하지만, 도시랑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긴 하지만, 아니, 책에서도 센트럴 파크가 보이는 집이 있다고 얘기했었나? 그랬으면 나도 마크 파가 됐을 것 같은데?! 센트럴 파크라니, 와, 이것은 내가 꿈에 그리던 바로 그거잖아? 뭐 어쨌든.



줄리엣은 독서에 대한 원고청탁을 받고 어떤 글을 써야하나 고민하던 차에 건지섬에 사는 농장주 '도시'의 편지를 받게된다. 책방에서 구한 찰스램 선집의 책 안쪽에 원래 소유주였던 줄리엣의 이름과 주소가 있었던 것. '찰스 램'이란 공통 분모로 묶인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찰스 램의 셰익스피어 선집을 사고 싶은데 그걸 살 수 있는 런던의 서점 주소(전화번호였나) 를 알려달라고 하는 거다. 이에 줄리엣은 기쁜 마음으로 그 책을 구해 도시에게 보내게 되고, 도시가 건지섬에서 속해있다던 감자껌질파이 클럽에 대해 듣게 되는 거다. 그 클럽에 직접 가보고 싶었던 그녀는 그 섬에 방문하고, 거기에서 클럽에 참석해 함께 책을 읽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약혼자인 마크와 언제 돌아올거냐는 통화도 하게 되는데, 어느날 문학클럽에서 친해진 친구가 '네 약혼자가 좋아하는 책은 어떤 책이야?' 라고 물었을 때 답할 수가 없어 머뭇거린다. 좋은 걸 먹고 좋은 반지를 받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지만 그들은 공통된 대화가 없었던 것. 


그러다 도시의 침실을 살짝 엿보게 되고, 거기에서 자신들을 아는 사이가 되게 만들어준 찰스 램의 책을 발견한다. 그 책을 들고 가만 바라보는 그녀를 도시가 보게되는데, 그 때 줄리엣은 그런 얘길 한다.


" 책 한권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네요."



이 인연은 매우 특별하다. 그러니까 이런 계기로 알게된 거. 물론 모든 만남에 저마다의 처음이 있고 그것은 각자의 이유로 특별함을 안겨주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유독, '유독' 특별한 만남은 있기 마련. 그 처음에 물론 너무 많은 의미를 둬서 그것이 마치 운명인줄 알고 질질 끌려다니면 안되겠지만, 그렇지만 그 특별한 만남을, '뭐 특별할 수도 있지 거기에 연연해하지 말자' 하고 무시할 수만도 없다. 나는 사실 이런 특별한 첫 만남에 매우 끌리는 편이고, 그런 것들이 내 인생에 찾아들었다면, 그건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것은 내게 지금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이런 일이 내게 괜히, 그냥 일어났을 리 없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다. 그러니 내 서명이 적힌 책 한 권이 건지섬의 누군가에게 날아들어 그 섬에서 그 책을 읽은 사람이 편지를 보내오다니, 정말이지 얼마나 특별한가. 우리가 책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데! 


북클럽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보니 중간에 책 읽는 장면도 나오는데, 사람들이 책 읽는 장면을 보는 건 난 또 왜그렇게 좋은지! 게다가 이 영화속에서 좋은 장면은 '쓰는' 장면도 나온다는 거다. 줄리엣이 작가이다 보니, 자료조사를 하고 거기에 대해 열심히 막 수첩에 메모를 하고, 나중에 타자기로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글을 쓰는데, 그게 진짜 너무 좋은 거다!


게다가 마지막에 약혼자랑 파혼하고 지금은 싱글이며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글을 일절 쓰지 않은 편지를 읽으면서도, 도시는 그녀가 그렇게 됐다는 것, 그래서 자신이 그녀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확신을 갖는다. 클럽의 다른 회원이 그 편지를 자신이 읽어보며 '도대체 그런 문장이 어디 써있어?' 하지만, 도시는 안다. 그래서 도시는 슈웅- 줄리엣을 찾으러 간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뉴욕의 센트럴 파크가 보이는 집을 포기할만한 가치가 도시에게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너무 소중하거든. 같은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거. 진짜 너무 소중하잖아! 물론 우리가 언제나 같은 책을 읽을 수만은 없다. 게다가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생각이 존재할 수 있고. 그럴 때도 우리가 책을 읽는 사람이고 상대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며 내 얘기도 역시 전할 수 있는 거잖아. 


그 작가는 어떤 작품을 썼는데?

그 작품은 어떤데?


우리가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저런 질문들조차 가능해지는 게 아닌가. 그러나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책에 대해 관심이 1도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책을 읽든 혹은 그 책이 어느 재미를 가지고 있든 거기에 대해 묻지도 않을 것이도 들을 생각도 없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책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 또한 나에 대한 애정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와 좋은 대화상대가 될 수 있어. 그런 사이라면 '책 한권으로도' 특별한 인연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고 썼지만 센트럴 파크가 보이는 집에 대한 미련이 너무 남네?)



아, 너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다. 아닐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 여등들이 나오는 게 너무 좋고, 책 읽는 사람들의 책 읽는 풍경이 나오는 것도 좋다. 도시도 그리고 줄리엣도 힘든 시간에 책이 있어 위로를 받았던 사람들이고, 책 속으로 빠지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책이 다른 사람과 연결시켜준다는 데도 동의하고. 이런 것들을 말하는 영화는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아하하하.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몇 년전에 누군가에게 빌려준 뒤로 그 책이 내게 다시 돌아오질 않고 있다... 하아- 뭐 그런 책이 한두권이냐만은... 그래서 다시 사서 읽어야겠다. 마침 개정판도 나왔던데!!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한 알라디너가 리뷰에 그렇게 썼었다. 이 책으로 청혼을 할 거라고. 그런데 지금 그 리뷰를 다시 읽고 싶어 찾아보니 눈에 띄지 않는다. 당시에 그 리뷰를 읽으면서 '근사하다!'고 생각햇는데, 애인이 있는데 청혼을 하겠다는 거였는지, 애인이 생긴다면 청혼하겠다는 거였는지 모르겠다. 음...



아무튼 또 사야지, 이 책!

















그나저나 센트럴 파크가 보이는 집이라니....내 평생 그런 집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그런 집에서 사는 게 책 읽는 남자 만나는 것보다 더 힘들듯.....내 월급으론 택도 없지, 여기서도 한강 보이는 집도 못사는데 ㅠㅠ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8-08-20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보라고 보라고 하는 리뷰에는 !!! 봐야겠네요~~ ㅎㅎㅎㅎ 굿밤되세요~^^

다락방 2018-08-20 07:55   좋아요 1 | URL
책 읽는 모습이 나오는 거 너무 좋아요. 그리고 글 쓰는 모습도요. 저는 영화에서 그런 장면들이 좀 더 많이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

비연 2018-08-20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넷플릭스에 이 영화(?) 떴던데 봐야겠군요 ㅎㅎ

다락방 2018-08-20 19:49   좋아요 2 | URL
저도 넷플릭스로 봤어요!!

비연 2018-08-20 20:12   좋아요 2 | URL
넷플릭스는 완전 요물이더이다.. 아주 신나게 보게 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