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트레스 받는 유형의 사람들은, 뭐든 일단 부정적이고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특히나 다른 사람들의 기쁜 일에 있어서, '그건 분명 나쁜 점이 있을것이다'를 먼저 드러내는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 나는 이것을 혼자 '여우의 신포도 성향'이라고 부르는데, 상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는 친절하게 잘 들어주지만, 좋은일이 생겼을 때는 '어? 그건 이래서 나쁠걸?', '어, 그건 그래서 안좋잖아?'를 얘기해서 기쁜 내 마음을 짓밟아 버리는 행위...
물론, 거기에는 위에 언급한것처럼 자신이 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오는 스스로의 합리화가 작용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우의 신포도 성향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그 포도 어차피 시어서 먹어봤자 맛도 없어, 가 되어버리는 심리.
그런데 이 책, 《J. M. 배리 여성수영클럽》의 주인공 '조이'가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다. 읽으면서 어찌나 짜증이 나는지. 그래가지고 친구가 있겠니,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됐어.
그러니까 '조이'는 설계회사에서 일하는 능력있는 여성이다. 뉴욕의 설계사무실에서 일하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일에서 안정을 찾고 재미도 찾고 그렇게 일 잘하는 거 다 알지만, 그러나 여자이기 때문에 진급이 좀처럼 되지 않는 불공평한 환경에서 일하는 비혼여성. 그런 그녀가 남자 팀장의 사고로 인해 새로 맡게된 일에 책임을 지게 되고 그렇게 새로 고치고 꾸며야할 저택이 있는 영국으로 슝- 출장을 가게 된다.
영국에는 자신의 오랜 친구가 살고 있다. 영국남자와 결혼하고 영국에 살면서 아이 넷을 낳는 동안 사실 그들 사이의 공통된 화제도 거의 사라지기도 했고 연락도 뜸했지만, 그래도 과거에 엄청 단짝이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십몇년만에 만나게 되는데, 조이는 친구의 펑퍼짐한 몸, 꾸미지 않은 모습에 당황하고 그걸 말로도 내뱉게 된다. 네명이나 되는 아이들 너무 시끄럽고, 그래서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영국 관광을 시켜주며 남편이 얼마나 근사하게 프로포즈 했는지에 대해 얘기하지만, 조이는 '낭만적인 사탕발림에 넘어갔'다고 생각하고 또 그걸 말해... 그러니까 친구가 자신에게 좋은 일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마치 '그게 진짜 좋은 일이 아니라니까?' 가 되어버리는 거다. 이 책 읽으면서 연신 '니네 왜 친구하냐, 서로 스트레스 받는데..'이렇게 되어버리는데, 아니나다를까 친구는 화를 낸다. 너가 그런 식이면 너에게 다가오는 사람 모두를 내쫓을 것이라고.
나는 이 책을 계속 읽어야하나 고민했다. 내게 소설은 캐릭터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너무 짜증나는 캐릭터였던 것. 이제 조이가 나이든 여성들로만 구성된 여성수영클럽을 만났으니 앞으로 변화될 것인가, 나는 그 변화를 기대해도 좋은가, 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자 결심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친구와 화해하면서 속마음을 드러낸다. 사실은 니가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사는게, 혼자가 아닌 게 너무 부러웠다고, 그게 너무 부러워서 그랬다고..
뭐랄까, 극적인 변화도 아니었고, 어쨌든 언젠가는 깨달아야 할 것이었지만, 그렇다해도 나는 글쎄.. 조이가 별로.. 그러니까 이야기가 이런 식이었다면 그냥 별로였을텐데, 이 소설은 마지막에 갑자기 내가 원하는 방향의 괜찮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용서가 되어버렸어..소설, 이야기..뭘까...
조이는 영국에서 '이언'이란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된다. 이언에게는 사춘기 딸이 있고, 7년전에 아내와는 사별을 했다. 이언은 아내와 사별하고 나서 지금까지 어떤 여자와도 사랑을 하지도 연애를 하지도 않았는데, 조이를 보고 반하고 들뜨게 된것. 그래서 그들은 다정한 관계가 되어가는데, 조이는 뉴욕에 사는 사람... 그래서 이언은 걱정을 한다. '너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고. 조이 역시 같은 생각을 한다. 이언과 이언의 딸이 영국을 벗어나 사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고 그림이 그려지지도 않아, 그리고 자기 역시 뉴욕을 떠나는 게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이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 생각하는데, 그들 사이에 그들을 멀어지게 할만한 사건이 생기고, 그렇게 그들은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도 없이 그리고 기대도 없이 시간이 되어 헤어지게 된다. 조이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잠깐 다른 얘긴데, 이언의 사춘기 딸 '릴리'는 조이를 너무 좋아하고 따른다. 마을에서 이렇게 젊은 어른 여자를 본 것이 오랜만이고, 그녀의 부츠를 신어보고 그녀와 같이 런던에 가면서 따르고 좋아하게 되는데, 조이와 런던에 갔던 날 생리를 시작하게 된다. 이 일을 조이가 이언에게 릴리를 대신해 말해주는데, 그 말하는 단어 선택이 너무 ..
"오늘 ……."
조이가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가 바로 멈추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 남자 앞에서 갑자기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조이는 여성의 주기를 표현할 때 쓰는 '생리'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유기적이고 목적이 뚜렷한 이 현상을 칭하기에 너무 투박하고 추한 말이었다. 그러나 다른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 이언의 어린 딸이 여자가 됐어요." 조이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이 말마저도 마치 학교의 성교육 수업을 위해 제작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느껴졌다. (p.239)
그러니까 저 때는 아직 조이와 이언이 연인이 되기 전이다. 그러니 어색했을 수 있다. 그럴수록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단어인 '생리'를 써야하지 않았을까. 원서에서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이게 무슨... '여자가 됐어요'가 뭐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 진짜 소름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글오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 이언의 어린 딸이 여자가 됐어요."
"오늘 이언의 어린 딸이 여자가 됐어요."
"오늘 이언의 어린 딸이 여자가 됐어요."
"오늘 이언의 어린 딸이 여자가 됐어요."
아 너무 징그럽잖아 ㅠㅠ 여자가 됐어요, 라니. 아 너무 해괴망측하다... ㅠㅠ 싫어 ㅠㅠ
아무튼,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고 오해와 이해가 생기고 시간은 흘러 조이는 훅- 뉴욕으로, 다시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돌아와서는 집을 좀 더 안정적으로 꾸미면서 자신만의 싱글라이프에 더 충실하고자 한다. 더 집다운 집으로 꾸며야지, 그곳에서의 시간은 좋은 시간이었어, 자, 잘 살자... 이렇게 생각하고 새로운 의자도 장만하고 그러는 와중에,
두구두구둥-
딩동-
벨이 울리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누구게에에에에에에에에~~~~~~~~~~~~~~~~~~~~~~~요? 누가 왔을까아아아아아아~~~~~~~~~~~~~~~~~~요? 누가 벨을 눌렀을까아아아아아아아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을의 할머니들이 수영클럽을 결성해 눈이 오는 추운 날에도 연못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각자의 아픔을 공유하고 또 극복하는 과정을 돕는 것들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특히나 한 할머니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서 따뜻한 코코아에 위스키를 넣어 조이에게 대접하는 장면에서는
'아이쿠야, 이거 꼭 해봐야지. 코코아 타서 위스키 넣어서 먹어봐야지!'
굳은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거 너무 좋을 것 같아. 나는 평생 여름을 사랑했고 겨울을 좋아하지 않지만, 겨울을 조금 더 좋아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코코아에 위스키를 타먹는다면.
딸을 잃고 상실감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할머니를 위해 다른 할머니들이 추모벤치를 만들어줬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고, 무엇보다 조이의 벨을 누르는 사람 때문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역시 이야기는 끝까지 봐야해. 물론, 이 이야기도 사실은 여기서 끝이 아닐 수도 있다. 아직 벨만 누른 것 뿐이니까.
평소 출근할 때 스벅에 들르면 에스프레소에 샷을 두 개 더 추가해 세개로 받아와서는 사무실에서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 먹는다. 아메리카노로 사오면 오는 길에 막 흐르고 넘치고 뜨겁고 그래서, 텀블러에 에스프레소로 받아오는 것. 세상 똑똑해... 그런데 어제 스벅 직원이 '샷 하나에 두개 더 추가하지 말고, 더블샷에 샷 하나를 추가해라, 그게 100원 더 저렴하다'고 알려주는 거다. 어라? 그래서 오늘은 그렇게 주문했는데, 어제의 그 직원분은 날 잊지 않으셨다.
"오늘은 더블로 하셨네요."
"네, 어제 알려주셔서 그렇게 했어요."
"네, 이렇게 하세요."
이러면서 서로 웃었다. 친절해. 다정해. 사람들은 내게 다정해. 사람들은 내게 친절해. 뷰티풀 월드... 고맙습니다. 다정한 세상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난달 부터였나, '여성의 전화'에 후원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며칠전에 책자가 날아오더라. 휙휙 넘기다보니 '쉼터'에 개인이 물품을 기부할 수도 있더라. 기부한 개인의 목록과 아이템이 나와 있었는데 생리대, 서적, 의류, 과일 할 것 없이 아주 많은 것들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쉼터에 보내주고 있었다. 아, 이게 가능해? 나 역시 서적을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 개인으로 쉼터에 책을 기부하고 싶다, 내가 사서 읽은 거라 새 책은 아닌데 가능하냐 물었더니 좋다고, 고맙다고 보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주소와 담당자명을 다이어리에 받아 적었다.
책을 사면 내 방의 공간은 한정적이라 읽고나서 대부분 처분을 한다. 알라딘에 팔기를 하거나, 어떤 이유든 알라딘에 팔기가 안되거나 혹은 저렴한 책들은 개인에게 팔기를 하거나 이 공간을 통해 방출하곤 했다. 나는 개인에게 팔기 목록을 싹 지웠다. 그리고 그 책들을 다 챙겼다. 이 책들 다 보내야지. 나는 책이란 것은 읽힐 때에야 비로소 책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이 읽힌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제나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 여기다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히히. 좋아라. 모든 물건들이 그 물건의 쓰임을 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훗.
냉장고에 마카롱이 있다는 게 너무 좋구먼...
"회사 사람들은 알고 있었어?" "처음엔 몰랐어.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러다가 정말 입이 싼 비서 하나가 4월에 식당에서 우릴 봤어. 그러고 얼마 안 돼서 그 사람이 날 찼지." "두 사람 관계가 알려지는 게 싫어서?" "그 사람 말이 그랬지. 그 사람한테도 안 좋고 나한테는 그야말로 재앙이라면서. 그런데 한 달쯤 뒤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8,9개월 전부터 햄프턴에 사는 어떤 여자를 사귀고 있었더라고." "너 지금 농담하는 거지." 조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자기 기분이 형편없어졌다. 알렉스와 함께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낸터킷 섬에서 보냈던 휴가, 베일에서 스키를 타거나 조이의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었던 일, 센트럴 파크 웨스트에 있는 알렉스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일. 조이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새라는 차를 홀짝이며 딱한 표정으로 식탁 맞은편의 조이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 정말 좋아했구나." 조이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는 자신에게 놀랐다. 쏟아지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며 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바보 같았어." "바보 같았던 거 아냐." (p.70-71)
새라가 나지막하게 말하며 의자를 당기고 식탁 위로 손을 내밀어 친구의 손을 잡았다. "그 사람한테 마음을 연 것뿐이야. 바보 같은 건 그 사람이지." 조이가 눈물을 멈추려고 애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새라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바보였어. 멍청이지. 사는 동안 계속 휘회할 거야." "그럴 일 없을걸." 조이가 속삭였다. "있을걸." 새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p.71)
"전 회사 일이 정말 즐거워요. 낡은 공간을 보고 그 공간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존할지 고민하는 게 좋아요. 창조적이면서도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일이죠. 다른 어떤 일과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 "그런 마음이라니 운이 좋네요. 회사도 조이를 얻게 되어 운이 좋고요." 조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마음을 함께 나눌 특별한 사람도 있나요?" 애그니스의 질문은 뜻밖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조이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있었어요. 남자가." "과거형이네요?" "그 남자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죠." 애그니스가 측은한 눈길을 보냈다. "마음이 움직이는 건 막을 수 없죠. 움직이는 부위가 꼭 마음이라는 법도 없고." "맞아요!" 조이가 높은 목소리로 맞장구 쳤다. 애그니스는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남자 손해예요. 하지만 조이가 어떤 상처를 받았을지 생각하니 안타깝네요. 나도 그 마음 잘 알거든." (p.179-180)
"모든 사람이 남자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 건 아니야, 게일라. 남자의 보살핌을 받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협력자로 사는 데 만족하는 여자들도 많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메그가 대답했다. "어떤 의미에서 좀 더 쉬운 선택이기도 하니까. 자유는 외롭거든.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큰 대라를 치러야 하는 법이야." "자유를 포기하는 쪽보다 더 클까?" 비브가 물었다. 다들 물에 떠 있기 위해 팔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조이는 물 밖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감히 그 말을 입 밖에 내고 싶지는 않았다. "각자의 가정을 생각해봐." 애그니스가 차근차근 따졌다. "여자들이 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가정도 없고 아이들도 없을 거야." "있지, 왜 없어!" 메그가 주장했다. "아이들이 셀 수 없이 많을걸! 보살필 사람이 없겠지! 엄마들은 다른 아이들을 만드느라 정신없을 테니까!" 메그가 짓궂게 웃었다. "그게 남자들이 하는 짓이잖아? 씨를 뿌리고 나머지는 우리 여자들이 알아서 해라? 모든 남자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 애그니스가 말했다. (p.192-193)
"사귀는 사람이 있었는데 잘 안됐어요." 조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누구 잘못이었어요?" 메그가 노골적으로 물었다. "모르겠어요." 조이가 대답했다. "제가 그 사람을 행복하게 못 해줬나 봐요. 충분히 행복하게." "누구도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해요." 비브의 생각이었다. "스스로 자기 안에서 행복하지 않다면요. 그래서 그렇게 많은 결혼이 실패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 메그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그렇구나, 해답을 찾았네! 책으로 쓰지 그래." "그래야겠다!" 비브가 쾌활하게 말했다. "나도 동감이야." 게일라가 말했다. "결혼한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고 서로에게 기쁨과 위안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건 아니지만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의 근본적인 불행을 치유할 수는 없어." "외로워서 불행한 거라면?" 애그니스가 물었다. "그러다가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다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불행을 치유한 게 아닌가?" "그런 다른 경우야." 게일라가 말했다. "다르지 않아." 애그니스가 고집했다. 비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말하는 건 자기 안 깊은 곳에 자리한 불행이야. 그건 외로움과 달라." (p.194-195)
조이는 사진을 내려놓고 침실로 들어갔다. 조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이언의 옷장으로 가서 셔츠와 스웨터에 밴 냄새를 맡는 일이었다. 서랍 속 내용물도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고 책장에 있는 모든 책들의 제목을 일일이 읽어보고 싶었으며 이언의 침대에 누워 그의 사적인 영역을 빨아들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집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조이는 훔쳐보는 사람이 된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존재했었고, 너무나 젊은 나이에 너무나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케이트와 희미한 연결 고리를 느끼고 나니, 이제 조이는 이런 간단한 심부름이나 하면서 실컷 방을 돌아보는 자신을 케이트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지갑은 침대 옆 탁자에 있었다. 조이는 지갑을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집어들었다. (p.358-359)
알렉스는 강박적으로 둘 사이를 숨기려고 했다. 다른 커플과 함께 만나지 않았고 조이의 친구들과 술 한잔 마시지도 않았다. 저녁 식사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도 없었고 친구의 집이나 별장에 간 적도 없었다. 알렉스 와일더와 헤어진 후 조이는 여러 우정이 떠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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