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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10-01
야만인을 기다리며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야만인'. 그들을 기다리며 혼자 치르는 혹은, 내부에서 벌이는 전쟁. 현실세계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게 섬득하다. 이중적 위치에서의 인간으로써의 고뇌. 그 경계에 서서 온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는 삶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고, 아픔이고, 딜레마이지 않을까. 특히, 후반부 내면의 독백들을 읽으면 가슴이 저리다. 최고의 책! 아끼게 될 작가!
*"제국의 국민들은 새로운 출발, 새로운 장, 새로운 페이지를 믿는 사람들이다."라는 글을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에서 재인용해서 썼던 적이 있다. 각주에 J.M 코엣지 라고 썼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 작가, 이 책에서 나온 말이었다. 책을 읽다가 깜짝 했는데, 오늘 들고 있던 글을 들쳐보니 그렇다. 꽤 오래전이었는데, 이렇게 스쳐갔었구나....
나는 희미한 조소가 내 입가에 어리는 걸 느낀다. 나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이 질문이 염치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면, 날 용서하게. 당신은 사람들을 그렇게 다룬 다음,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가 있는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이 질문을 하고 싶네그려. 이건 사형집행인들과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내가 늘 물어보고 싶었던 걸세. 잠깐! 조금만 더 들어주게. 나, 정말로 진지하게 질문하는 걸세. 자네에게 이런 질문을 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네. 나는 자네가 무서워 죽겠네그려. 내가 자네에게 새삼스럽게 그 얘기를 할 필요도 없겠지. 자네도 그걸 알고 있을테니까 말이야. 여하튼, 일이 끝나고 나서 음식을 먹는 게 쉬운 일인가? 내 생각에는, 그런 사람들은 손부터 씻고 싶어할 것 같거든. 하지만 손을 씻는 것도 보통의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성직자가 끼어들어야 할 정도의 일이거든. 일종의 정화의식이 필요하다는 말일세.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않나? 영혼을 정화시키는 의식 말일세. 여차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 그렇지 않고서냐 어떻게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겟나? 가령, 식탁에 앉아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빵을 잘라 먹는 일 같은 일상적인 삶 말이네"
그가 돌아선다.
그들이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을 대하고 있다는 걸 알도록 만들자! 무서우면 무섭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자! 저 자들은 완강한 침묵을 먹고사는 인간들이다. 침묵을 지키면, 저자들은 개개인에 대해, 그들이 인내심을 갖고 열어야 하는 자물통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물속의 고기들이나 허공의 새들이나 아이들과 같은 시간 개념 속에 사는 걸 불가능하게 만드는가? 그건 제국의 잘못이다! 제국은 역사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제국은 부드럽게 반복되는 순환적인 계정의 시간이 아니라, 흥망성쇠와 시작과 끝, 그리고 파국이라는 들쭉날쯕한 시간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제국의 속마음에는 오직 한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그 생각은 어떻게 하면 끝장이 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시대를 연장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역사의 바깥에 살고 싶었다. 나는 제국이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아니 행방불명된 백성들에게조차 강요하는 역사의 바깥에 살고 싶었다. 나는 야만인들에게 제국의 역사를 강요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것이 수치스러워할 이유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읽은 두 권의 책
만들어진 신
그래, 그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종교'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라는 확인. 그렇다고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신 분들이 회의에 빠지거나 '신은 없었다'로 돌아서지도 않을 것 같다는 확신. 종교란 그런 것.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아프리카라는 곳은 원래 빈곤한 곳.이라는 생각이 왜 자리하고 있었던 걸까. '타인의 고통'에 이렇게 무감해져 있었다니.
세계 곡물 생산량을 보면 지구 전체 인구를 먹여살리고도 남는다는데, 굷어 죽는 인구가 세계 1/6이 된다는 아이러니를 읽는 안타까움. 이 곳에까지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의 손길이 미치고 있었다는 건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같이 산 '빈곤의 종말'을 읽을 엄두가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