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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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글은 순식간에 읽게 된다. 요것까지만, 이 편지에 대한 답장까지만, 이 편지에 대한 다음 답장까지만...  이렇게 이렇게 읽다보면 책을 놓을 수가 없고, 그냥 하루밤이 꼴딱 가버린다. 나는 또! 새벽 2시에 깬 것인데, 아침까지 그냥 한자리에서 훌라당 다 읽어버렸다. 그러구 보니, 편지글을 읽는데, 유달리 속도가 빠른 것은 남의 것을 훔쳐보는 듯한 스릴과 긴장감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전쟁 중에 만들어진 건지 섬의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 중 한 명이 헌 책에 씌여진 줄리엣의 주소를 보고, 책을 청하면서 이어진 인연의 끈. 전쟁 중 건지섬 사람들과 북클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줄리엣.그리고 그들과 이어지는 편지. 이후에는 건지섬으로 건너간 줄리엣과 사람들의 이야기. 전쟁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줄리엣의 연애 이야기가 어쩐지 더 흥미 진진하다.  

체링스크로스 가 84번지가 어느 정도? 격식을 차리면서 서로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를 느끼게 해서 따뜻하다면, 이 책은 좀더 캐주얼하다고나 할까? 줄리엣은 쉬지않고 조잘조잘 떠들어대니깐. 건지섬 사람들 말고도, 작가인 줄리엣의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 편집자인 (친한 친구의) 오빠, 그리고 친한 친구 소피와의 편지에서도 자잘한 재미가 있다. 뭐랄까, 말하자면 "이건 창피하니깐 읽고 찢어버려 줘."이런 류의 편지를 훔쳐읽는 재미랄까?  

또 하나 맘에 든건, 북클럽 회원들 각자 자신만이 좋아하는 작가를,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책에 관해서라면 뭐든 다 아는 북클럽 멤버들이 아니라는 거.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라는 게 좀 더 인간적이게 느껴진다. 

(물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킷에게 애정이 가는 것, 도시만 등장하면 왠지 듬직해지는 것, 엘리자베스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줄리엣에게 아주 깊이 감정이 이입 되어 있었던 것 같다.     

 

* 줄리엣은 정말이지 글을 재밌게 쓴단 말야. 뼈 있는 말도, 고민도!  

  물론, 간결하게 한마디씩 날려주시는 시드니 오빠님도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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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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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관련한 책은 처음 사 봤는데, 결론은 재밌고 유익했다는 거다. 사실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왜 이런 류의 책을 보는 것에 대해 삐딱했던지.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예들이 마구 등장해주니까 글에선 생동감이 넘치고 킥킥거리면서 웃게 되고.... 공감지수도 올라간다. 그러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큰 줄기를 잃지 않으니, 몸소 좋은 글쓰기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서 이해도 100%. 적어도 내게는 저자가 설정한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을까? 

기억에 남는 조언을 들자면,  

자신의 아는 한계를 또는 모르는 부분을 인정하라. 솔직하라. 자기 글에서 부정직해서는 안된다. 메모하라. 뻐기거나 결심하지 말고 부단히 계속 써 보여라.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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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개정판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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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를 순화하자는 언어순결주의의 주장이 담겨있으려니 했다. 제목만으로는 정반대의 주장으로 읽은 것이다. 게다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감염'을 '오염'으로 읽은 것 같다. 이는 고종석의 이름 석자만 들어봤을 뿐,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고,또한 한국어가 '오염'되었다는 나의 편견과 세뇌당한 사고가 어느 정도 작용한 탓이다. 어떻게 보면, 이 제목은 한국어뿐만이 아니라 언어라는 것에 대한 보편적이고 거스를수 없는 공통의 특질을 나타내고 있다. 언어순결주의나 순수 혈통이라는 것들의 존재자체가 상상 속 신화일 뿐이라는.    

오랫만에 학교 때 국어책을 읽듯 정독했다. 서체도 크기도 딱 교과서만하다. 게다가 적확하고 읽기 쉬운 국어로 잘 쓰여져 있으니 말이다.  수년 전에 뜨겁게 달궈졌던 복거일의 '영어공용화'에 대한 논의가 제일 흥미롭다. 그 자신도 가장 많은 장수를 할애하고 있기도 하고. 복거일의 글은 읽지도 않고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글들만 잠시잠깐 보았던지라,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간다.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니!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리나는대로 읽고 쓰는 독창적인 한글을! 이런 지독한 사대주의가 어딨담! 그런데, 그의 제안(그 용어만으로도)을 거부하고 싶었던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내 안에 민족주의적인 사고와 정서가 자리해,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했던 것 같고, 나야말로 사대주의적 사고에서 기인한 자격지심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앞도 뒤도 없이 무조건 방어적인 거부반응이 일었던 건 아니었을까.   

한국어도 한국어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해 준 책.  

집단적 수준의 주체성이 아닌 개인적 수준의 주체성.

   
  국어 순화의 '순화'는 제 5공화국 초기 삼청 교육대의 저 악명 높은 '순화교육'의 '순화'다. 실상, 순결을 향한 집착, 즉 순화충동은 흔히 죽임의 충동이다. 믿음의 순결성, 피의 순결성, 이념의 순결성에 대한 집착이 역사의 구비구비에 쌓아놓은 시체더미들을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국어순화'의 충동에 내내된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p.150  
   
   
  여기서 강조돼야 하는 것은 영어공용화의 반대가 지닌 계급적 함의다.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반대한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걸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라틴어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중세의 엘리트들이 지식을 독점했듯이 말이다...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 한 사회가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을 특정 계급이 독점하는 사회와 전 구성원이 공유하는 사외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잇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p.206   
   

나는 고종석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앞에 말한 복거일과 관련된 논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좀 흥분을 좀 풀어제끼고 있는데, 욕 얻어먹는 최원식에, 큭... 하고 고소했다.  

   
 

...최원식의 무성의한 글에서 독자를 가장 불쾌하게 하는 것은 논쟁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궤변을 일삼는 것이다. "서구주의와 국수주의는 단순한 대립물이 아니라, 일종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서구주의의 뒤집혀진 형태가 국수주의다."....... "갑와 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갑의 뒤집혀진 형태가 을이다"따위의 말투는 논리와 수사를 멋들어지게 결합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멋쟁이 지식인들이 애용하는 이런 '지적'논법의 명제들이 어떤 맥락에서는 그리고 깊은 수준에서는 더러 진실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맥락, 그런 수준의 진실들은 굳이 말한 필요도 없는 진실이다. 그리고 발언의 맥락이 그런 깊은 수준이 아닐 때는 궤변이 되고 만다. ..... 

예컨대 나는 최원식의 말투를 빌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박정희와 장준하는 단순한 대립물이었던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자유주의의 전화가 파시즘이고, 파시즘의 전화가 민주주의고....그래서 색즉시공이 공즉시생이다...." 이런 말투는 도사들에게나,.....

 
   

 '우리는....'  이외의 다른 챕터들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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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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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와우, 와우! 저 지루한 표지와 책 제목에 속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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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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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 

야만인을 기다리며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야만인'. 그들을 기다리며 혼자 치르는 혹은, 내부에서 벌이는 전쟁. 현실세계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게 섬득하다. 이중적 위치에서의 인간으로써의 고뇌. 그 경계에 서서 온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는 삶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고, 아픔이고, 딜레마이지 않을까. 특히, 후반부 내면의 독백들을 읽으면 가슴이 저리다. 최고의 책! 아끼게 될 작가!  

*"제국의 국민들은 새로운 출발, 새로운 장, 새로운 페이지를 믿는 사람들이다."라는 글을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에서 재인용해서 썼던 적이 있다. 각주에 J.M 코엣지 라고 썼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 작가, 이 책에서 나온 말이었다. 책을 읽다가 깜짝 했는데, 오늘 들고 있던 글을 들쳐보니 그렇다. 꽤 오래전이었는데, 이렇게 스쳐갔었구나....   

 나는 희미한 조소가 내 입가에 어리는 걸 느낀다. 나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이 질문이 염치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면, 날 용서하게. 당신은 사람들을 그렇게 다룬 다음,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가 있는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이 질문을 하고 싶네그려. 이건 사형집행인들과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내가 늘 물어보고 싶었던 걸세. 잠깐! 조금만 더 들어주게. 나, 정말로 진지하게 질문하는 걸세. 자네에게 이런 질문을 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네. 나는 자네가 무서워 죽겠네그려. 내가 자네에게 새삼스럽게 그 얘기를 할 필요도 없겠지. 자네도 그걸 알고 있을테니까 말이야. 여하튼, 일이 끝나고  나서 음식을 먹는 게 쉬운 일인가? 내 생각에는, 그런 사람들은 손부터 씻고 싶어할 것 같거든. 하지만 손을 씻는 것도 보통의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성직자가 끼어들어야 할 정도의 일이거든. 일종의 정화의식이 필요하다는 말일세.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않나? 영혼을 정화시키는 의식 말일세. 여차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 그렇지 않고서냐 어떻게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겟나? 가령, 식탁에 앉아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빵을 잘라 먹는 일 같은 일상적인 삶 말이네"  

그가 돌아선다. 

그들이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을 대하고 있다는 걸 알도록 만들자! 무서우면 무섭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자! 저 자들은 완강한 침묵을 먹고사는 인간들이다. 침묵을 지키면, 저자들은 개개인에 대해, 그들이 인내심을 갖고 열어야 하는 자물통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물속의 고기들이나 허공의 새들이나 아이들과 같은 시간 개념 속에 사는 걸 불가능하게 만드는가? 그건 제국의 잘못이다! 제국은 역사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제국은 부드럽게 반복되는 순환적인 계정의 시간이 아니라, 흥망성쇠와 시작과 끝, 그리고 파국이라는 들쭉날쯕한 시간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제국의 속마음에는 오직 한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그 생각은 어떻게 하면 끝장이 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시대를 연장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역사의 바깥에 살고 싶었다. 나는 제국이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아니 행방불명된 백성들에게조차 강요하는 역사의 바깥에 살고 싶었다. 나는 야만인들에게 제국의 역사를 강요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것이 수치스러워할 이유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읽은 두 권의 책

만들어진 신   

그래, 그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종교'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라는 확인.  그렇다고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신 분들이 회의에 빠지거나 '신은 없었다'로 돌아서지도 않을 것 같다는 확신.  종교란 그런 것.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아프리카라는 곳은 원래 빈곤한 곳.이라는 생각이 왜 자리하고 있었던 걸까. '타인의 고통'에 이렇게 무감해져 있었다니.  

세계 곡물 생산량을 보면 지구 전체 인구를 먹여살리고도 남는다는데, 굷어 죽는 인구가 세계 1/6이 된다는 아이러니를 읽는 안타까움. 이 곳에까지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의 손길이 미치고 있었다는 건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같이 산 '빈곤의 종말'을 읽을 엄두가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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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0-04-2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의 >는 일단 보관담에 담아둡니다. 그러게요, 정말 편치 않은 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