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모델과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 한국사회 재인식 시리즈 9
유철규 편 / 함께읽는책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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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략 1980년대부터 97년 외환 위기까지 발전국가 모델의 해체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대략이라고 한 이유는 실제로는 발전국가의 성립과정도 간단하나마 살펴보기 때문에 많은 글들이 5-60년대부터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여덟명의 필자가 글을 썼는데, 그 중, 전창환, 김정주의 글이 다소 겹치기는 하지만 가장 알찼고, 유철규, 김상조의 글도 좋았고, 신정완의 글은 무척 재미있었다.

 

1장에서 박태균은 역사학자답게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의 경제정책주체의 면면을 추적하는데, 사상적 흐름과 일치하는 인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인맥이 갖는 당시의 사회경제적 의미와 논쟁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2장에서 유철규는 두 개의 전환 시점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1980년대 후반 이후 그 이전까지 산업화 체제(1973-80년대 후반)의 발전 논리인 저임금에 기초한 내수억압적 불균형 산업화 전략이 지속적인 자본축적의 장애 요인으로 급속히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80년대 후반을 (1) 내수시장의 확장과 대량소비의 출현, (2) 양적 산업화의 정점, (3)해외직접투자의 본격화 등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둘째,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지배 구조가 이전의 국가-재벌 체제에서 다국적 금융자본-재벌 결합 체제로 이행해 가는 경향을 집어낸다. 이와 동시에 진행된 구조조정 과정은 임금에 초점을 둔 강압적 비용절감 방식에 의존하는데, 그는 이를 이미 수명이 다한 구 산업화 방식의 복귀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3장에서 전창환은 금융자유화의 측면에서 발전국가의 해체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그는 한국이 겪었던 세 개의 경제위기의 성격을 구분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1971-72년 금융위기와 국제(무역)수지위기, 1979-80년 과잉생산위기와 외채위기, 1997년 외환·금융위기). T. J. Pempel을 따라, 박정희 모델을 정부-재벌-금융의 삼각 관계에 기초한 노동배제적·금융억압적 발전국가모델로 규정하고, 이승만 정부부터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제도화되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발전국가를 지정학적 컨텍스트에 위치짓고 추적하는 것이었는데,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와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성장의 트라이앵글” (일본의 자본재와 중간재를 들여와서, 국내의 싼 노동력으로 가공하여, 미국 시장에 수출하는 수출지향적 공업화)을 기능케 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는 IMF·미국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1972 8·3 조치를 통해 사채대부업자들에 대한 채무상환을 강제적으로 동결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박정희는 캡빵 멋있다. 쿠데타 후 부정축재환수라는 명목으로 재벌들 잡아가두고, 은행 다 국유화시키고, 나름대로(?) 자주적 외교도 하고, 고리대금업에 쐐기 박고사미르 아민이 대만과 한국을 사실상 사회주의 국가로 간주했는데, 착각할 법도 했다. 물론 반공억압체제, 고문과 살인을 동반한 노동탄압과 민주압살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런데 좌파가 정권 잡는 날이 와도 박정희처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되나? 그래도 그에 준하는 것은 해야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전창환은 또, 박정희 정권 몰락 이후 발전국가의 재편 과정도 1979-80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볼커의 고금리긴축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반혁명 과정 속에서, 외채위기에 시달렸던 라틴 아메리카와는 상이한 동아시아라는 맥락에 자리매김한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는 선진국의 초국적 법인기업들이 고비용-저채산성 조립가공공정을 일부 신흥공업국으로 이전시킨 것의 수혜자였고, 신국제분업의 한 축에 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 87년 체제 탄생의 직접적 배경이자 위기에 처했던 발전국가모델을 회생시켰던 3저 호황을 1985년 플라자 합의의 결과로서 서술한다. 이처럼 일관적으로 남한의 경제위기들과 발전국가의 재편과 해체과정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부분으로서 서술하고 있다.

 

4장에서 김상조는 재벌들이 1990년대 초반부터 유포시켰던 경제위기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까발린다 (폭로한다는 다소 점잖은 말보다 이 말이 더 적확한 듯하다).

 

6장에서 신정완은 소위 87년 노동체제에 대한 게임이론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게임이론적 분석은 필자가 지적하고 있듯, 노동체제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분명 낯선 것이고, 독자인 내게도 그랬다. 단지 낯설 뿐만 아니라, 왠지 거부감도 들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흥미와 참신성으로만 따졌을 때, 이 글은 이 책의 백미이다. 모두 13개의 보수행렬(payoff matrixes)로 구성되는 국가와 민주노조, 자본과 민주노조, 국가-자본 연합 대 민주노조, 국가 대 한국노총, 국가 대 민주노총, 자본 대 민주노총 간의 게임들은 대투쟁으로 시작하여 대투쟁으로 막을 내린 87년 노동체제의 국가, 자본, 노동 간의 갈등양상에 대한 훌륭한 해석틀을 보여주고 있다. 사후적인 해석이긴 하지만, 노동운동의 교섭 및 투쟁 전략수립에 있어서도 이용될 수 있는 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장인 8장에서 김정주는 축적 체제의 전환과 발전국가의 해체 과정을 일종의 국면 분석 (conjunctural analysis)를 통해 추적하고 있다. 앞에 나온 글들과 다소 겹치긴 하지만, 중언부언한다는 느낌보다는 앞의 각론들을 종합한다는 느낌이 든다. 간략히 정리해보자. 1980년대 초 축적체제의 재편과정은 발전국가의 강력한 개입에 의해 추진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투자조정과 산업합리화, 중소기업의 하청계열화가 이루어졌는데, 80년의 경제위기는 전창환의 글에서 지적되듯, 과잉생산 위기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는 기업간 흡수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추구함으로써 대자본의 독점적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316). , 상대적으로 독립적이었던 중소기업들을 재벌의 하청계열화시킴으로써, “독점적 대자본과 중소자본간 계급적 통일성이 확보되고 시장과정을 통해 대자본의 헤게모니가 전일적으로 관철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구성하게 된다 (322). 이러한 과정이 미국의 개방요구와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당시의 세계경제적 상황 속에서 일어나게 됨에 따라 시장영역은 확대되지만, 이에 대한 국가의 통제수단은 상실됨으로써 발전국가로부터 대자본으로 헤게모니 이동의 결과를 갖고 오게 되었다. 1982년 이후 지속적인 대미무역 흑자를 기록하면서, 1985-86년 미국은 시장개방과 함께 환율의 평가절상을 한국 측에 요구하였는데, 당시 한국 정부는 환율을 방어하는 대신 미국 상품에 대한 국내시장의 개방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309). 이 역시 대기업의 경제적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계기로서 작용하게 된다. (또 필자는 지적하고 있지 않지만, 3저호황이 달러 가격은 낮아지고, 엔화는 높아진 플라자 합의의 결정에 힘입은 바 크다면, 이 역시 3저호황의 숨은 계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미국시장에서의 일본상품과의 경쟁에서 한국상품의 가격경쟁력은 월등히 높아졌기 때문에.)

 

훌륭한 책이다. 별 다섯개가 부족하다. 다소 전문적인 분야 따라서 내가 평가할 수 없다 를 다룬 이상철, 조석곤의 글을 제외하곤 모두 다 훌륭하다. 미국 학자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발전국가론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난 이 책에서 발견했다.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하나 궁금한 것은 경제에서의 헤게모니가 발전국가로부터 재벌들에게 넘어갔다면, 그 다음 국가는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97년 경제위기는 역설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강화시키지 않았던가? 깡드쉬가 (권영길 후보 빼고) 세 명의 대선후보들을 만나 당선 이후 IMF의 처방을 이행할 것을 다짐받았을 때, IMF가 보기에도 국가가 재벌들을 통제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는 80년의 경제위기에서 그랬듯, 인수합병을 통해 각 부문 내 특정재벌의 독점적 위치를 보장하여 주었고, 기아나 대우를 제외한 재벌들은 경쟁자의 퇴출로 인해 독점적 위치를 굳힐 수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약한 국가인가? 그 약한 국가에게 재벌 총수들이 꼬투리 잡혀서 몇 천억씩 헌금하고, 감옥 가고 그러나?

 

또 하나 역시 경제위기의 역설적 결과인데,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반격으로 특징지울 수 있는 서구의 경우와 달리,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확립되지 않았던 남한은 경제위기와 더불어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국가의 이니셔티브와 실질적 제도화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단지 기업이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게 하기 위한 쑈라고 치부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면도 있다), 그 전에 남한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논의가 오늘날처럼 풍부했던 적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일각에서 얘기하는 "종속적 신자유주의 국가"란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에는 해당할 지 몰라도, 97년 경제 위기 이후 남한에 적용하기란 다소 무리 아닐까? 발전국가 이후 남한의 국가를 도대체 뭘로 정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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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10-05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학기에 가끔 들었던 얘기들인데... 그랬었다는 기억뿐, 내용은 무척 새롭고 어렵네요. 에로이카님은 아무래도 참 똑똑한 분이신 듯.
발전국가 이후 남한의 국가는... 非국가 아닐까요? 이건 나라도 아니다...--;;;

에로이카 2006-10-05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건 나라도 아니지요... 그렇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생산의 정치 - 비판총서 2,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장체제
마이클 부라보이 지음, 정범진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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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이클 뷰러워이

 

이 책의 지은이 마이클 뷰러워이는 2006년 현재 미국사회학회의 회장이다. 그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요한 주제들이 외면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미국의 제도권 사회학 주류에 대항하여, 그 내부에서 공공적 사회학 (public sociology)을 주창하고 있다. 이것이 학문의 성격에 대한 정치적 입장표명이라면, 방법론적으로는 “리플렉시브 (성찰적?) 에뜨노그래피 (reflexive ethnography)”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연구를, 이론적으로는 “사회학적 맑스주의 (sociological Marxism)”를 추구한다. 1985년에 처음 출판된 이 책은 뷰러워이가 사회학계의 거물이 되리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예고한 책이었고, 이후 그는 방법론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사회학계 내부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표현된 뷰러워이의 주요관심들은 오늘날 그의 작업들 속에서도 일관적으로 관찰되어진다. 30여년을 한우물만 파는 그의 자세에 경외심을 가질 뿐이다.

 

 

중심개념

 

이 책의 중심개념은 아마도 공장체제 (factory regime) 혹은 생산체제(production regime)와 생산의 정치 (politics of production)일 것이다.  지은이는 일 (work) 혹은 노동 (labor)[어려운 말로 “노동과정” (labor process)]이 결코 정치와 이데올로기[어려운 말로 생산관계들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생산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장치”]로부터 무관하게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하고, 이 전제가 반영된 것이 바로 그 중심개념들이다. 이 밖에도 여러 개념들이 추가된다. 그 중 중요한 하나의 개념쌍만 더 살펴보면, 그는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생산내부의 관계 (relations in production)”와 노동과 자본 사이의 “착취관계 (relations of exploitation)”를 구분한다. 여기에서 착취관계는 “생산관계 (relations of production)”의 일부이다. 생산양식은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 생산내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동일한 종류의 생산내부의 관계를 서로 다른 생산양식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화는 바로 해리 브레이버만의 역작인 [노동과 독점자본]을 겨냥해서 고안된 것이다. 뷰러워이에 따르면,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브레이버만이 탐구하고자 했던)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안에 존재하는 노동과정이다 (그리고 뷰러워이가 보기에는 브레이버만이 말했던 자본주의적 노동과정 일반, 혹은 독점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과정 일반이란 것은 허구이다).

 

 

에뜨노그래피를 통한 비교, 다각적 비교를 통한 총체성의 구성

 

에뜨노그래피를 주요 연구방법으로 삼는 그의 경향은 이 책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이 책은 그가 미국 시카고 근처 공장에서, 헝가리의 공장에서, 또 잠비아의 구리 광산에서 실제로 일했던 체험들에 기반하고 있고, 그 체험들이 다른 이들의 참여관찰연구와 어울어져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이념형적 유형화가 먼저 존재하고, 그에 기반한 비교가 수행되는 통상의 연구와 달리, 유형화는 비교를 통해 구성된다 (서론의 표 참조). 샘플에 대한 분석에서 모집단 전체에 대한 추론을 유추하는 기존의 방법과 달리, 그는 미시적 컨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컨텍스트를 규정하는 총체성에 도달한다. 일반성은 개별적인 특수성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특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내부의 노동과정을 다루는 1장에서 그는 먼저 봉건제와 자본주의 하에서 서로 다른 잉여수취 방식을 비교한다. 경제외적 수단에 의존하는 봉건제에서 잉여추출은 가시적인 데에 반하여 (농노가 수확한 부분에서 영주가 가져가는 몫과 농노에게 남는 몫은 영주와 농노 모두에게 명확하다), 노동시장에서의 계약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에서의 잉여 착취는 비가시적이다 (이윤은 노동과정 외부의 시장을 통해 획득되며, 임금은 애초의 계약에 따라 일정 노동기간이 경과하면 지급된다). 이러한 비가시성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면서, 동시에 그 관계의 핵심을 은폐한다.

 

이어서, 그는 자본주의 내부에서의 공장체제의 다양한 유형들을 네 가지 기준에 따라 구별해낸다. 그 기준은 (1) 노동과정, (2) 기업간의 시장경쟁, (3) 노동력의 재생산, (4) 국가의 개입이다. 이를 통해 경쟁 자본주의 하에서는 (1) 시장 전제 (market despotism), (2) 가부장적 전제 (patriarchal despotism), (3) 온정주의적 전제 (paternalistic despotism), (4) 기업 국가 (company state)의 유형들이 준별된다 (2장 1절 끝의 그림 참조). 또 경쟁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함에 따라, (5) 헤게모니적 체제 (hegemonic regimes)가 등장한다. 그러나 선진국 헤게모니적 공장 체제도 신흥공업국들의 등장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자본의 이동성 증가 등으로 인하여 (6) 헤게모니적 전제로 변모하게 된다. 여기에 헝가리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7) 관료적 전제, (8) 관료적 교섭 등이, 또 잠비아 등의 식민지에서 나타나는 (9) 식민적 전제 등이 추가된다. 마지막 장에서 지은이는 이처럼 다각적 비교를 통해 구성된 유형들이 세계적 규모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을 통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시도하고 있다.

 

 

기존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도전과 지양

 

뷰러워이는 훌륭한 리뷰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스카치폴의 역작인 [국가와 사회혁명]을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와 대별시킴으로써 스카치폴에게 가차없는 비판을 가한 바 있다. 뷰러워이의 이 리뷰는 브레너의 월러스틴에 대한 비판 만큼이나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얼마전에는 폴라니와 그람시에 대한 뛰어난 이론적 통찰을 보여준 바도 있다. 이 책에서도 수많은 맑스주의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내가 알고 있는 맑스주의자 중에서 이 책에 이름이 안 나온 맑스주의자는 겨우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뷰러워이는 맑스를 포함하여 그들 모두와 대결한다. 그리고 자기 얘기를 한다. 그리고 나의 맑스주의는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 책은 브레이버만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여 월러스틴에 대한 비판으로 끝을 맺는다. 브레이버만에 대한 비판은 치밀하고 가혹한 데에 비하여, 월러스틴에 대해서는 반쯤 동조하면서도 또 브레너와 스카치폴의 월러스틴의 비판을 수용하는 밋밋한 태도를 보인다. 월러스틴이 얼버무린 부분을 다른 방법으로 얼버무린다는 느낌이다. 좀 더 나갔을 수는 없었을까… 다소 아쉽다.  

 

 

초기 신자유주의에 대한 동시대적 관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감탄했던 점은 이 책이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던 당시에 쓰여진 책이지만, 그 성격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특히 “헤게모니적 전제”의 등장을 서술할 때의 뷰러워이의 목소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97년 경제위기 이후의 노동체제의 변화를 말하는 학자들의 목소리와 별 차이가 없다. 출판된지 20년이 넘어도 시사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 좋은 책

해리 브레이버만, [노동과 독점자본],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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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9-27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일반성은 개별적인 특수성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특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이 딱 눈에 들어오네요.
제겐 좀 어려운 책 같지만 리뷰로 대강의 냄새만 맡고 갑니다.^^




노부후사 2006-09-2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있던 책인데 서평을 읽고나니 더욱 끌리는군요. ㅎㅎ

2006-09-27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6-09-28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추천 감사합니다. ^^ 사실 이 책 좀 어려워요.. 낯선 사실들이 기술된 부분을 읽을 때에는 신경이 완전히 이완되었다가, 그러한 기술들에 기반하여 내가 알고 있는 이론적 전제들에 도전할 때에는 신경이 팽팽해지고, 하여간 읽는 내내 참 피곤했지요...

에피메테우스님, 오랜만이네요. 책이 워낙에 대작이다 보니, 서평에는 그 의의를 제대로 담을 수 없었어요. 언제고 읽으시고, 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리뷰를 써서 보여주세요...

속삭이신 님. 반갑습니다. 제 서평들을 잘 읽고 계시다니,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부분은 그냥 영어 원문 그대로 고쳤어요. 그런데, 아주아주 오래전 똑같은 지적을 수업시간에 받은 적 있었어요. 네가 reflexive를 reflective와 혼동한 거라고... 그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영어 실력은 그대로네요.. ㅎㅎ 지금은 '반성적', '성찰적' 정도로 번역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만... 잘 모르겠네요. 지적해주신 부분은 제가 무슨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영어가 짧아서 그런 거니 이해해주세요. 다음에 또 뵙지요. 저도 님 서재에 가볼께요. ^^

2006-09-28 0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6-09-28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님... 완전히 저를 꿰뚫고 계시네요.. 살짝 소심함은 보통 쪼잔함이라고 말하지요... ^^ 늦은 시간에 감사...
 
高麗大노동문제연구소 한국노동운동사 6
김금수 지음 / 지식마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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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은 고려대 노동문제 연구소에서 2004년에 모두 여섯 권으로 펴낸 [한국노동운동사] 6권으로서 김금수 선생이 집필하였다. 이른바 “87 노동체제 시기인 민주화 이행기(1987-1997) 노동운동을 다루고 있다. 본문만 550페이지 가량 되는데,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만 10 이상의 시기에 걸쳐 (2000 초반의 사건 전개들도 일부 서술되고 있다) 일어난 일들이 빼곡하게 서술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의 주요서술 대상인 노동운동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므로, 건성으로 읽다가도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게 한다.

 

그렇다고 책이 역사적 사실의 기술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니다. 간간이 사안별 쟁점이 세밀하게는 아니지만 명확하게 제시되고, 지은이 김금수 선생이 생각하는 노동운동을 둘러싼 관계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들이 제시된다. 다만 2001년에 쓰여진 원고를 2004년에 책으로 것이기 때문에, 전망들이 이미 역사가 경우가 적지 않다. 지은이는 전체에 걸쳐 자신의 목소리를 가급적 배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데, 이는 책이 역사의 기술이라는 1차적 목적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장점일 수도 있지만, 노동운동의 역사적 사실들과 흐름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선 무언가 논쟁거리가 있거나 하지는 못하다. 이는 아마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의 [한국노동운동사] 조선후기부터 1997년까지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정사의 형태로 출판하려고 기획의 탓이기도 할테고, 지은이의 성향과 연배 (2006 현재 69)이기도 같다. 그래도 아쉽다. (따라서 서평에 말이 별로 없다..)

 

산별노조 건설과 맞물려, 이제 슬슬 (97 노동체제 이후의) 2007 노동체제 건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같다. 물론 며칠전 있었던 노사정 야합 때문에 전망 자체가 상당히 불투명해졌다. 새로운 노동체제 건설은 노동운동 주체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명심해두어야 것은 87 노동체제의 시작과 끝은 노동자의 대투쟁 플러스 알파였다는 사실이다. 87 7, 8, 9 대투쟁이나 96-97 겨울 총파업과 같은 대투쟁 없이는 새로운 노동체제를 거론조차 수도 없다는 말이다. 앞으로의 일이야 없겠지만, 머지 않은 시기에 97 노동체제를 다루는 [한국노동운동사] 7권이 출판되기를 바란다. 김금수 선생의 책에 담겨진 내용이 그렇듯, 미래의 역사책에 채워질 내용 또한 노동자들의 눈물과 헌신적 투쟁, 패배와 승리의 기록이 것이고, 그 미래의 기록은 전적으로 현재의 실천에 달려 있는 것이다.  

 

ps.

부질없는 가정이겠지만, 만약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사정위원장이셨던 지은이 김금수 선생이 지금도 자리에 있었다면, 10 동안이나 유예되어온 복수노조 설립이 3 동안이나 유예되는 일이 생겼을까? 복수노조 유예는 1996 노동법 날치기 통과 파동에 의해 사상 유례 없는 총파업을 불러일으켰던 사안 하나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국노총도 민주노총이 주도하였던 총파업에 동참함으로써, 노총 개혁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현재의 이용득 노총 위원장은 당시 위원장이었던 박인상보다 개혁적이었으며, 이수호 집행부와도 협력적 관계를 맺어왔기에 이번의 9.11 야합은 충격이 매우 크다. 86 당시 위기에 몰린 전두환을 지지하며 호헌지지선언을 했다가, 분노에 노동자들로부터 화염병 공격을 받았던 노총과 별로 다를 없다. 하지만 당시와 현재의 중요한 차이 하나는 화염병을 던졌던 노동자들을 바라봤던 당시의 시각과 현재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보수언론의 시각 간의 차이이다. 이번의 노노 갈등은 민주노총 흠집내려고 낚시대 드리우고 있는 보수언론에게는 제법 살이 오른 준척 감이었다. 민주노총이 낚시질에 걸린 것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정치 마음이 있다면, 그래서는 안됐다. 한국노총이 개혁을 통해 어용성을 버리고, 민주노조 진영을 벤치마킹하려고 했던 것은 민주노조 진영이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직접적으로는 조직대상인 기층 노동자 대중들이 민주노조를 선호하였기 때문이고, 간접적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민주노조 진영이 독차지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노총해체투쟁한다고 민주노총이 궁지에서 벗어날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에게는 노사정 야합에 책임있는 주체들 중에서 한국노총이 그나마 가장 만만한 상대일 것이다. 하지만 싸움을 보면서 한숨돌리고 웃고 있는 놈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 순진해서 노총이 원래 그런 놈이었다는 것을 잊은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민주노총이 노총 보기에도 별로 미덥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지도 모른다. 이번 일로 민주노총은 여러가지로 스타일 구긴 셈이다. 지금 당장이야 노총을 죽여 없애고 싶어도, 그래서는 안된다. 죽일 수도 없고, 죽여서도 안된다. 죽일 놈들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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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9-13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읽고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그러나 이 책의 주요서술 대상인 노동운동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므로, 건성으로 읽다가도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게 한다.' 이런 마음이 참 좋아요.

에로이카 2006-09-13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노동자가 팔뚝에 쓴 유서 이야기가 잠깐 나와요.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는 왜 그렇게 열사들이 많은지... 처음 듣는 이름들도 많았고... 앞으로 노동열사는 더 없었으면 좋겠어요.

waits 2006-09-13 0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열사력'을 가지고 있던 적이 있었어요. 탁상 달력으로 두고 볼 엄두는 안 나서 서랍에 두고 가끔 넘겨보고는 했는데... 힘 없는 사람이 마지막에 내걸 수 있는 게 목숨뿐인 건 여전한데, 누구 하나 죽어도 꿈쩍도 않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착잡한 밤이네요.

에로이카 2006-09-1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택 마을 파괴가 진행 중이네요... 미치겠습니다.

2006-09-13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동의 힘 - 1870년 이후의 노동자운동과 세계화
비버리 실버 지음, 백승욱.안정옥.윤상우 옮김 / 그린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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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바니 아리기는 The Long Twentieth Century 서문에서 "긴 20세기"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그 책 안에서 다루지 못했음을 말한 바 있다. 그 때 지적된 노동운동의 공백을 이 책이 메꾸고 있다고 이해해도 괜찮을 것 같다.  

 

2003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이 책은 1984년에 아리기와의 공저로 출판된 논문(“Labor Movements and Capital Migration: The United States and Western Europe in World-Historical Perspective”)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곧 20년 연구의 결실이다. 존경스러우면서도 부러운 일이다. 그 논문에서 아리기와 이 책의 저자인 비벌리 실버는 1960-70년대 유럽을 휩쓴 일련의 노동소요들 (labor unrests)은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미국의 노동소요들과 닮아 있다는 것 (Déjà Vu)을, 또 이러한 유사성은 미국 자본의 초국적화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아울러, 운동의 강도(strength)나 성공 여부는 운동 세력의 이념적 급진성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 책은 그 논문의 연장이다. 포괄대상 국가가 미국과 유럽 뿐만 아니라, 남미 (아르헨티나,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일본, 중국) 등에까지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섬유, 서비스, 운수 산업별로 노동소요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기술된다. 또 개념적 세련화를 통해 여러가지 유형화(typology)가 시도된다 (공간 / 기술·조직 /  제품 / 금융 재정립 (fix), 연합적 힘 / 구조적 힘 (시장교섭력 / 작업장교섭력), 맑스적 유형의 운동과 폴라니적 유형의 운동, etc.). 이 개념들 중에서 연합적 / 구조적 힘의 구분을 제외하고는, 이 책에서 처음 선보이는 것들이다. 비록 재정립 (fix)의 경우는 데이빗 하비의 개념에 기반해 있고, 맑스적 유형과 폴라니적 유형의 운동 구분은 이념형적 범주이긴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 개념들이 어떻게 노동소요의 역사적 전개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공간재정립을 다루는 2장에서는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노동의 소요에 맞서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새로이 이전된 곳에서도 강력한 노동운동이 발생하게 됨을 보여준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예외로 취급되는데, 그 이유를 일본에서는 노동소요가 자동차산업이 발전하기 직전에 한번 전 사회를 휩쓸었고, 이에 따라 자본 측에서는 기술·조직 재정립의 일환으로 유효한 노동통제 전략 (산업평화와 평생고용 간의 교환, 적기생산방식, 하청 네트워크의 발달 등)을 수립하게 된 데에서 찾는다.

 

제품재정립을 주로 다루는 3장에서는 20세기 동안 전지구적 규모에서 펼쳐진 자동차산업 노동소요의 확산을 그 이전의 섬유산업의 노동소요 확산과 그 이후의 운수, 교육 산업에서 발생한 노동 소요의 전지구적 확산과 비교한다.

 

4장에서는 노동운동의 전지구적 전개가 세계정치의 제 측면(헤게모니와 세계전쟁)과 어떻게 관련되어 이루어졌는지가 살펴지고 있다. 지은이는 여기에서 세계전쟁의 동학은 전투적 노동운동의 세계적 폭발을 전쟁 이후 시기에 집중시키고 있는 데에 반해, 제품주기 동학과 결합된 일련의 공간 재정립은 소요의 진앙을 여러 시기에 걸쳐 전세계적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5장에서는 보호주의와 함께 기술재정립과 제품재정립이 일련의 기술혁신이 집중되어 있는 고소득 국가에 독점이윤을 보장하고, 저소득 국가들을 이로부터 배제함으로써 세계적인 남북분할 (North-South divide)을 재생산하는 데에 반하여, 산업재배치를 통한 공간재정립은 (산업 일반의 주변부화에도 불구하고,) 이 남북분할을 침식시킨다는 일반적인 경향을 앞서의 분석으로부터 도출한다. 그렇다면 금융재정립의 역할은 무엇인가? 저자는 현재의 금융화가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님 (19세기 후-20세기 초)을 상기시키며, 금융재정립이 노동의 상품화와 국가의 탈사회화, 노동친화적 국제체제의 붕괴, 전투적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cf. 레비, 뒤메닐, 자본의 반격]. 하지만 또 이는 맑스적 유형의 운동과 폴라니적 유형의 운동 모두의 출현을 야기하며, 그 규모나 속도에 있어 전례가 없는 산업화를 겪고 있는 중국이나, 전세계적으로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운수, 교육, 서비스 산업 등에서 대규모 노동소요가 터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다소 희망섞인 진단을 내놓고 있다.

 

요약하면, 지은이가 살펴보고 있는 187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본은 언제나 전투적 노동운동에 맞서, 네 가지 재정립 기제를 통해 위기 해소를 도모하여왔으나, 결코 그 역사적 위기들에 대한 궁극적 해결을 하는 데에는 실패해왔고, 문제를 지연시키면서 더 키워 왔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노동운동의 폭발 가능성 역시 더 커져 왔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다. 약간의 문제제기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좋은 분류 (typology)는 그 분류를 통해 포착하고자 하는 대상 전체를 가능한 한 넓게 포괄해야 하며, 또 가능한한 범주간 상호배타성이 관철되어야 한다. 네 가지 재정립들은 이런 측면에서 약간의 곤란함을 유발한다. 곧,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 (위기의 타개를 위한) 자본의 대 노동전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자본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이주노동자들을 어떤 재정립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자본을 수출하는 대신, 노동을 수입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공간 재정립? 아니면 조직재정립? 국가의 보호주의 무역정책은 무슨 재정립인가?

 

또, 모든 공간재정립은 자본의 이동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자본이동이 다 공간재정립은 아닌 것이다. (물론 지은이는 모든 자본이동이 공간재정립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곧 자본이 이동하는 데에는 노동의 저항에서만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얼마전 현대자동차가 미국 앨러배마에 현지 공장을 세운 바 있는데, 이것을 자본의 공간 재정립으로 볼 수는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이는 무역장벽 회피와 (한미 FTA 찬성 논자들이 좋아하는) 미국의 내수 시장선점 때문이었다. 물론 한국 자본의 중국 진출은 공간재정립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의 저항은 그것의 결정에 있어 여러 개 중 하나의 원인일 수는 있어도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또 다른 아쉬움 하나는 설명 변수로서 국가에 대한 경시이다. 물론 한 책이 모든 것을 다룰 수도 없고, 강조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존에 나온 노동운동이나 노동체제 관련 분석에서 국가는 언제나 중심범주에 속하였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기존의 국가중심 분석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다른 점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가지 분석이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국내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노동운동 / 노동체제에 대한 (일국중심적) 연구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일국중심적 연구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보완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그 양자의 결합 방식은 내부와 외부의 병치가 아니라, 전체와 부분의 동시적 조망이어야 한다. 21세기 초반 한국 노동운동이 전세계적 흐름인 신자유주의에 의해 어떻게 규정되는가를 넘어서, 또 다른 나라 노동운동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넘어서, 지금 남한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와 싸우고, 다른 외국의 노동운동과 연대하며, 또 이 투쟁들이 향후 노동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반격에 영향을 끼치는지가 보여져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의 힘은 온전히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데이빗 하비. [신제국주의]

도미니크 레비 / 제라르 뒤메닐. [자본의 반격]

비벌리 실버 / 지오바니 아리기. "남과 북의 노동자".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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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9-0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얼핏 보니 재밌고 어려워요. 일단 추천 먼저^^ 저녁때 집에 가서 찬찬히 읽어봐야지.

에로이카 2006-09-0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제가 다시 읽어봐도 이 리뷰는 참 재미없네요. 산만하고... 불친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해주신 나어릴때님 외 세 분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2006-09-05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05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동의 저항
이종래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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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종래 선생이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여러 곳에 발표했던 논문들을 수정 보완하여 모아 책이다. 원래 발표 시점에서 다소 시간이 흘러서 출판되었고 (2005 11), 출판을 전후하여 노동운동진영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일들(일부 민주노총 간부들의 수뢰 사건, 민주노총 위원장의 사임, 한미 FTA 반대투쟁, 금속연맹의 산별전환 투표 가결 ) 책에 반영될 없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책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이는 무엇보다 97 노동체제라 칭해지는 경제위기 이후의 노동 현실이 이러저러한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임과 동시에, 언론의 일회성 보도를 뛰어넘는 지은이의 학문적 통찰, 그리고 거기에 담겨진 현장의 치열한 문제 의식 때문인 같다.

 

얼마전 “87 체제 “97 체제 비교하는 담론이 유행하였는데, 저자는 2장에서 이러한 식의 용법을 처음 사용했던노동체제논의들을 살펴본다. 여기에서 지은이는 송호근의이념형적 접근 노중기의역사주의적 맥락 추적 동시에 고려한 결과로서 장홍근의 연구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47-50). 장홍근은 1987 노동체제 형성 이전의배제적 국가권위주의 1988-96년을 거치면서배제적 시장권위주의 이행하였으며, 앞으로는 국가의 노동통제전략이 배제전략에서 제한적인 포섭전략으로 바뀔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지은이는 장홍근의 이러한 주장을 임영일의 전망과 대비시키는데, 임영일에 따르면 1987 노동체제가 온존 강화할 가능성이나 의사코포라티즘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사회조합주의로의 전환이나 노조운동의 재급진화 가능성보다 높다고 전망한다. (임영일의 논의가 장홍근의 논의와 전적으로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노동체제의 전환가능성 논의들의 초점은 노동운동이 체제내화 되면서 제도화될 가능성에 맞춰져 있다.    

 

실업 (3), 노동정책 (4), 노사관계(5) 전개와 변화를 살펴보는 2부는 지은이 나름대로 경제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이루어진 노동체제 변화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5장을 통해 지은이 이종래 선생이 펼치는 주장은 무척 인상적이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버는 대기업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한다는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 저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 차이의 원인을 대기업/정규직의 강성노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다. 일단 대기업과 정규직의 노조가 역할을 제대로 하여 임금이 높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먼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는 중소기업이 하청을 통해 대기업에 위계적으로 편입되어 있는 기업 지배 의존 구조로 인하여 야기된 기업지불능력의 차이에서 찾아져야 한다: “경제위기 이후 임노동관계는 기업의 지불능력과 생산연관성에 강한 영향을 받으면서 기업의 수직적 위계구조에 따라 재편되는 양상을 보인다” (134).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 또한 1987 이전의 노동체제의 특징인저임금, 장시간 노동 임금비용의 부담증가를 장시간 노동으로 상쇄하는 자본합리화 방식에 따라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대상을 분리 - (중소기업 / 비정규직의) 저임금 노동과 (대기업 / 정규직의) 장시간 노동으로 분리  시킨 현실에서 찾고 있다 (146). 원청 대기업의 눈치를 봐야하는 중소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을 잔업특근을 통해 만회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대기업 노동자들 만큼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표행태를 다룬 6장과, 2003 1 9 손배 가압류에 저항하며 이른 새벽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가 촉발했던 투쟁에 대한 사례 연구인 7장도 인상적이었다. 분석적 통찰 와중에도 현장의 문제의식이 살아 있는훌륭한 책이다.

 

Ps.

마지막 장을 읽다 보니, 너무나 당연히 얼마전 경찰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하중근 열사와, 부당 노동행위를 일삼다가, 지금쯤은 머리속으로 주판알 굴리면서 손배 가압류를 때려야 , 때리면 얼마나 때려야 할지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을 포스코 사측이 생각났다. 이 일보다 얼마전, 추악한 집안 싸움을 법정까지 끌고가서 죄보다 가벼운 벌을 받은 두산 그룹 오너 일가 박씨 형제들도 생각났다. 경제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 의해 추진된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숱한 의혹과 더불어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 블랙리스트 만들어 가며 노동자들 차등 관리하고, 정리해고와 손배 가압류를 통해 노조 무력화 정책에 나섰던 두산 중공업에서 힘들게 투쟁하던 노동자들은 패배했다. 몇달이 지난 겨울 추운 새벽 배달호 열사는 혼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극한적 행위를 수밖에 없었다. 배달호 열사는 포스코 건설 노동자들 , 명의 미래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투쟁에 나섰다 경찰을 피해 포스코 건물 안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대량 구속되었고, 이에 항의하는 집회에 나갔던 노동자 명이 경찰에게 그대로 맞아죽었다. 이상 이들을 토끼 몰지 말라. 귀막고 눈가리고 있는 청와대와 보수언론은 이들의 정당한, 절박한 요구를 이상 외면하지 말라! 그리고 이상 죽이지 말라!!!!

 

 

 

오자:

55: 가지진다고 -> 가진다고

102: 자져왔다는 -> 가져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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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8-2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리뷰에 댓글 한 줄이라도 달라믄 공부해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마지막에 덧붙인 말들이 너무 감동적인 관계로 뻔뻔히. 투쟁하는 노동자만큼 열사를 가슴에 담은 학자도 아름답네요.

에로이카 2006-08-22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아휴.. 뻔뻔하긴요... 사실 뻔뻔함은, 나어릴때님 페이퍼 보면서, 제가 늘 하는 생각인걸요.. 님 페이퍼 보면서 제가 얼마나 반성 많이 하는데요.. 나도 나어릴때님처럼 열심히 살아야지 ^^, 하고 지금으로서는 기약없는 다짐도 해보고... 여름 막바지, 지치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세요.

님... 아.. 그러시군요... 이 책이 하종강 선생님 책처럼 독자들에게 친절한 책은 아니예요. 마구 재미있지는 않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전 이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하고 글을 쓰려면, 이런 마음 가짐과 진정성을 늘 간직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아.. 그리고.. 무지무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