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의 정치 - 비판총서 2,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장체제
마이클 부라보이 지음, 정범진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마이클 뷰러워이

 

이 책의 지은이 마이클 뷰러워이는 2006년 현재 미국사회학회의 회장이다. 그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요한 주제들이 외면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미국의 제도권 사회학 주류에 대항하여, 그 내부에서 공공적 사회학 (public sociology)을 주창하고 있다. 이것이 학문의 성격에 대한 정치적 입장표명이라면, 방법론적으로는 “리플렉시브 (성찰적?) 에뜨노그래피 (reflexive ethnography)”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연구를, 이론적으로는 “사회학적 맑스주의 (sociological Marxism)”를 추구한다. 1985년에 처음 출판된 이 책은 뷰러워이가 사회학계의 거물이 되리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예고한 책이었고, 이후 그는 방법론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사회학계 내부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표현된 뷰러워이의 주요관심들은 오늘날 그의 작업들 속에서도 일관적으로 관찰되어진다. 30여년을 한우물만 파는 그의 자세에 경외심을 가질 뿐이다.

 

 

중심개념

 

이 책의 중심개념은 아마도 공장체제 (factory regime) 혹은 생산체제(production regime)와 생산의 정치 (politics of production)일 것이다.  지은이는 일 (work) 혹은 노동 (labor)[어려운 말로 “노동과정” (labor process)]이 결코 정치와 이데올로기[어려운 말로 생산관계들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생산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장치”]로부터 무관하게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하고, 이 전제가 반영된 것이 바로 그 중심개념들이다. 이 밖에도 여러 개념들이 추가된다. 그 중 중요한 하나의 개념쌍만 더 살펴보면, 그는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생산내부의 관계 (relations in production)”와 노동과 자본 사이의 “착취관계 (relations of exploitation)”를 구분한다. 여기에서 착취관계는 “생산관계 (relations of production)”의 일부이다. 생산양식은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 생산내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동일한 종류의 생산내부의 관계를 서로 다른 생산양식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화는 바로 해리 브레이버만의 역작인 [노동과 독점자본]을 겨냥해서 고안된 것이다. 뷰러워이에 따르면,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브레이버만이 탐구하고자 했던)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안에 존재하는 노동과정이다 (그리고 뷰러워이가 보기에는 브레이버만이 말했던 자본주의적 노동과정 일반, 혹은 독점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과정 일반이란 것은 허구이다).

 

 

에뜨노그래피를 통한 비교, 다각적 비교를 통한 총체성의 구성

 

에뜨노그래피를 주요 연구방법으로 삼는 그의 경향은 이 책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이 책은 그가 미국 시카고 근처 공장에서, 헝가리의 공장에서, 또 잠비아의 구리 광산에서 실제로 일했던 체험들에 기반하고 있고, 그 체험들이 다른 이들의 참여관찰연구와 어울어져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이념형적 유형화가 먼저 존재하고, 그에 기반한 비교가 수행되는 통상의 연구와 달리, 유형화는 비교를 통해 구성된다 (서론의 표 참조). 샘플에 대한 분석에서 모집단 전체에 대한 추론을 유추하는 기존의 방법과 달리, 그는 미시적 컨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컨텍스트를 규정하는 총체성에 도달한다. 일반성은 개별적인 특수성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특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내부의 노동과정을 다루는 1장에서 그는 먼저 봉건제와 자본주의 하에서 서로 다른 잉여수취 방식을 비교한다. 경제외적 수단에 의존하는 봉건제에서 잉여추출은 가시적인 데에 반하여 (농노가 수확한 부분에서 영주가 가져가는 몫과 농노에게 남는 몫은 영주와 농노 모두에게 명확하다), 노동시장에서의 계약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에서의 잉여 착취는 비가시적이다 (이윤은 노동과정 외부의 시장을 통해 획득되며, 임금은 애초의 계약에 따라 일정 노동기간이 경과하면 지급된다). 이러한 비가시성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면서, 동시에 그 관계의 핵심을 은폐한다.

 

이어서, 그는 자본주의 내부에서의 공장체제의 다양한 유형들을 네 가지 기준에 따라 구별해낸다. 그 기준은 (1) 노동과정, (2) 기업간의 시장경쟁, (3) 노동력의 재생산, (4) 국가의 개입이다. 이를 통해 경쟁 자본주의 하에서는 (1) 시장 전제 (market despotism), (2) 가부장적 전제 (patriarchal despotism), (3) 온정주의적 전제 (paternalistic despotism), (4) 기업 국가 (company state)의 유형들이 준별된다 (2장 1절 끝의 그림 참조). 또 경쟁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함에 따라, (5) 헤게모니적 체제 (hegemonic regimes)가 등장한다. 그러나 선진국 헤게모니적 공장 체제도 신흥공업국들의 등장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자본의 이동성 증가 등으로 인하여 (6) 헤게모니적 전제로 변모하게 된다. 여기에 헝가리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7) 관료적 전제, (8) 관료적 교섭 등이, 또 잠비아 등의 식민지에서 나타나는 (9) 식민적 전제 등이 추가된다. 마지막 장에서 지은이는 이처럼 다각적 비교를 통해 구성된 유형들이 세계적 규모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을 통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시도하고 있다.

 

 

기존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도전과 지양

 

뷰러워이는 훌륭한 리뷰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스카치폴의 역작인 [국가와 사회혁명]을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와 대별시킴으로써 스카치폴에게 가차없는 비판을 가한 바 있다. 뷰러워이의 이 리뷰는 브레너의 월러스틴에 대한 비판 만큼이나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얼마전에는 폴라니와 그람시에 대한 뛰어난 이론적 통찰을 보여준 바도 있다. 이 책에서도 수많은 맑스주의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내가 알고 있는 맑스주의자 중에서 이 책에 이름이 안 나온 맑스주의자는 겨우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뷰러워이는 맑스를 포함하여 그들 모두와 대결한다. 그리고 자기 얘기를 한다. 그리고 나의 맑스주의는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 책은 브레이버만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여 월러스틴에 대한 비판으로 끝을 맺는다. 브레이버만에 대한 비판은 치밀하고 가혹한 데에 비하여, 월러스틴에 대해서는 반쯤 동조하면서도 또 브레너와 스카치폴의 월러스틴의 비판을 수용하는 밋밋한 태도를 보인다. 월러스틴이 얼버무린 부분을 다른 방법으로 얼버무린다는 느낌이다. 좀 더 나갔을 수는 없었을까… 다소 아쉽다.  

 

 

초기 신자유주의에 대한 동시대적 관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감탄했던 점은 이 책이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던 당시에 쓰여진 책이지만, 그 성격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특히 “헤게모니적 전제”의 등장을 서술할 때의 뷰러워이의 목소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97년 경제위기 이후의 노동체제의 변화를 말하는 학자들의 목소리와 별 차이가 없다. 출판된지 20년이 넘어도 시사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 좋은 책

해리 브레이버만, [노동과 독점자본],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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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9-27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일반성은 개별적인 특수성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특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이 딱 눈에 들어오네요.
제겐 좀 어려운 책 같지만 리뷰로 대강의 냄새만 맡고 갑니다.^^




노부후사 2006-09-2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있던 책인데 서평을 읽고나니 더욱 끌리는군요. ㅎㅎ

2006-09-27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6-09-28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추천 감사합니다. ^^ 사실 이 책 좀 어려워요.. 낯선 사실들이 기술된 부분을 읽을 때에는 신경이 완전히 이완되었다가, 그러한 기술들에 기반하여 내가 알고 있는 이론적 전제들에 도전할 때에는 신경이 팽팽해지고, 하여간 읽는 내내 참 피곤했지요...

에피메테우스님, 오랜만이네요. 책이 워낙에 대작이다 보니, 서평에는 그 의의를 제대로 담을 수 없었어요. 언제고 읽으시고, 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리뷰를 써서 보여주세요...

속삭이신 님. 반갑습니다. 제 서평들을 잘 읽고 계시다니,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부분은 그냥 영어 원문 그대로 고쳤어요. 그런데, 아주아주 오래전 똑같은 지적을 수업시간에 받은 적 있었어요. 네가 reflexive를 reflective와 혼동한 거라고... 그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영어 실력은 그대로네요.. ㅎㅎ 지금은 '반성적', '성찰적' 정도로 번역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만... 잘 모르겠네요. 지적해주신 부분은 제가 무슨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영어가 짧아서 그런 거니 이해해주세요. 다음에 또 뵙지요. 저도 님 서재에 가볼께요. ^^

2006-09-28 0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6-09-28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님... 완전히 저를 꿰뚫고 계시네요.. 살짝 소심함은 보통 쪼잔함이라고 말하지요... ^^ 늦은 시간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