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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모델과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 한국사회 재인식 시리즈 9
유철규 편 / 함께읽는책 / 2004년 12월
평점 :
이 책은 대략 1980년대부터 97년 외환 위기까지 발전국가 모델의 해체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대략이라고 한 이유는 실제로는 발전국가의 성립과정도 간단하나마 살펴보기 때문에 많은 글들이 5-60년대부터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여덟명의 필자가 글을 썼는데, 그 중, 전창환, 김정주의 글이 다소 겹치기는 하지만 가장 알찼고, 유철규, 김상조의 글도 좋았고, 신정완의 글은 무척 재미있었다.
1장에서 박태균은 역사학자답게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의 경제정책주체의 면면을 추적하는데, 사상적 흐름과 일치하는 인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인맥이 갖는 당시의 사회경제적 의미와 논쟁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2장에서 유철규는 두 개의 전환 시점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1980년대 후반 이후 그 이전까지 산업화 체제(1973-80년대 후반)의 발전 논리인 ‘저임금에 기초한 내수억압적 불균형 산업화 전략’이 지속적인 자본축적의 장애 요인으로 급속히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80년대 후반을 (1) 내수시장의 확장과 대량소비의 출현, (2) 양적 산업화의 정점, (3)해외직접투자의 본격화 등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둘째,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지배 구조가 이전의 국가-재벌 체제에서 다국적 금융자본-재벌 결합 체제로 이행해 가는 경향을 집어낸다. 이와 동시에 진행된 구조조정 과정은 임금에 초점을 둔 강압적 비용절감 방식에 의존하는데, 그는 이를 “이미 수명이 다한 구 산업화 방식의 복귀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3장에서 전창환은 금융자유화의 측면에서 발전국가의 해체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그는 한국이 겪었던 세 개의 경제위기의 성격을 구분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1971-72년 금융위기와 국제(무역)수지위기, 1979-80년 과잉생산위기와 외채위기, 1997년 외환·금융위기). T. J. Pempel을 따라, 박정희 모델을 “정부-재벌-금융의 삼각 관계에 기초한 노동배제적·금융억압적 발전국가모델”로 규정하고, 이승만 정부부터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제도화되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발전국가를 지정학적 컨텍스트에 위치짓고 추적하는 것이었는데,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와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성장의 트라이앵글” (일본의 자본재와 중간재를 들여와서, 국내의 싼 노동력으로 가공하여, 미국 시장에 수출하는 수출지향적 공업화)을 기능케 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는 IMF·미국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1972년 8·3 조치를 통해 사채대부업자들에 대한 채무상환을 강제적으로 동결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박정희는 캡빵 멋있다. 쿠데타 후 부정축재환수라는 명목으로 재벌들 잡아가두고, 은행 다 국유화시키고, 나름대로(?) 자주적 외교도 하고, 고리대금업에 쐐기 박고… 사미르 아민이 대만과 한국을 사실상 사회주의 국가로 간주했는데, 착각할 법도 했다. 물론 반공억압체제, 고문과 살인을 동반한 노동탄압과 민주압살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런데 좌파가 정권 잡는 날이 와도 박정희처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되나? 그래도 그에 준하는 것은 해야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전창환은 또, 박정희 정권 몰락 이후 발전국가의 재편 과정도 1979-80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볼커의 고금리긴축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반혁명 과정 속에서, 외채위기에 시달렸던 라틴 아메리카와는 상이한 동아시아라는 맥락에 자리매김한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는 선진국의 초국적 법인기업들이 고비용-저채산성 조립가공공정을 일부 신흥공업국으로 이전시킨 것의 수혜자였고, 신국제분업의 한 축에 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87년 체제 탄생의 직접적 배경이자 위기에 처했던 발전국가모델을 회생시켰던 3저 호황을 1985년 플라자 합의의 결과로서 서술한다. 이처럼 일관적으로 남한의 경제위기들과 발전국가의 재편과 해체과정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부분으로서 서술하고 있다.
4장에서 김상조는 재벌들이 1990년대 초반부터 유포시켰던 경제위기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까발린다 (폭로한다는 다소 점잖은 말보다 이 말이 더 적확한 듯하다).
6장에서 신정완은 소위 87년 노동체제에 대한 게임이론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게임이론적 분석은 필자가 지적하고 있듯, 노동체제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분명 낯선 것이고, 독자인 내게도 그랬다. 단지 낯설 뿐만 아니라, 왠지 거부감도 들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흥미와 참신성으로만 따졌을 때, 이 글은 이 책의 백미이다. 모두 13개의 보수행렬(payoff matrixes)로 구성되는 국가와 민주노조, 자본과 민주노조, 국가-자본 연합 대 민주노조, 국가 대 한국노총, 국가 대 민주노총, 자본 대 민주노총 간의 게임들은 대투쟁으로 시작하여 대투쟁으로 막을 내린 87년 노동체제의 국가, 자본, 노동 간의 갈등양상에 대한 훌륭한 해석틀을 보여주고 있다. 사후적인 해석이긴 하지만, 노동운동의 교섭 및 투쟁 전략수립에 있어서도 이용될 수 있는 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장인 8장에서 김정주는 축적 체제의 전환과 발전국가의 해체 과정을 일종의 국면 분석 (conjunctural analysis)를 통해 추적하고 있다. 앞에 나온 글들과 다소 겹치긴 하지만, 중언부언한다는 느낌보다는 앞의 각론들을 종합한다는 느낌이 든다. 간략히 정리해보자. 1980년대 초 축적체제의 재편과정은 발전국가의 강력한 개입에 의해 추진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투자조정과 산업합리화, 중소기업의 하청계열화가 이루어졌는데, 80년의 경제위기는 전창환의 글에서 지적되듯, 과잉생산 위기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는 기업간 흡수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추구함으로써 대자본의 독점적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316). 또, 상대적으로 독립적이었던 중소기업들을 재벌의 하청계열화시킴으로써, “독점적 대자본과 중소자본간 계급적 통일성이 확보되고 시장과정을 통해 대자본의 헤게모니가 전일적으로 관철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구성”하게 된다 (322). 이러한 과정이 미국의 개방요구와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당시의 세계경제적 상황 속에서 일어나게 됨에 따라 시장영역은 확대되지만, 이에 대한 국가의 통제수단은 상실됨으로써 “발전국가로부터 대자본으로 헤게모니 이동”의 결과를 갖고 오게 되었다. 1982년 이후 지속적인 대미무역 흑자를 기록하면서, 1985-86년 미국은 시장개방과 함께 환율의 평가절상을 한국 측에 요구하였는데, 당시 한국 정부는 “환율을 방어하는 대신 미국 상품에 대한 국내시장의 개방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309). 이 역시 대기업의 경제적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계기로서 작용하게 된다. (또 필자는 지적하고 있지 않지만, 3저호황이 달러 가격은 낮아지고, 엔화는 높아진 플라자 합의의 결정에 힘입은 바 크다면, 이 역시 3저호황의 숨은 계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미국시장에서의 일본상품과의 경쟁에서 한국상품의 가격경쟁력은 월등히 높아졌기 때문에.)
훌륭한 책이다. 별 다섯개가 부족하다. 다소 전문적인 분야 – 따라서 내가 평가할 수 없다 – 를 다룬 이상철, 조석곤의 글을 제외하곤 모두 다 훌륭하다. 미국 학자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발전국가론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난 이 책에서 발견했다.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하나 궁금한 것은 경제에서의 헤게모니가 발전국가로부터 재벌들에게 넘어갔다면, 그 다음 국가는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97년 경제위기는 역설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강화시키지 않았던가? 깡드쉬가 (권영길 후보 빼고) 세 명의 대선후보들을 만나 당선 이후 IMF의 처방을 이행할 것을 다짐받았을 때, IMF가 보기에도 국가가 재벌들을 통제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는 80년의 경제위기에서 그랬듯, 인수합병을 통해 각 부문 내 특정재벌의 독점적 위치를 보장하여 주었고, 기아나 대우를 제외한 재벌들은 경쟁자의 퇴출로 인해 독점적 위치를 굳힐 수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약한 국가인가? 그 약한 국가에게 재벌 총수들이 꼬투리 잡혀서 몇 천억씩 헌금하고, 감옥 가고 그러나?
또 하나 역시 경제위기의 역설적 결과인데,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반격으로 특징지울 수 있는 서구의 경우와 달리,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확립되지 않았던 남한은 경제위기와 더불어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국가의 이니셔티브와 실질적 제도화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단지 기업이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게 하기 위한 쑈라고 치부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면도 있다), 그 전에 남한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논의가 오늘날처럼 풍부했던 적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일각에서 얘기하는 "종속적 신자유주의 국가"란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에는 해당할 지 몰라도, 97년 경제 위기 이후 남한에 적용하기란 다소 무리 아닐까? 발전국가 이후 남한의 국가를 도대체 뭘로 정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