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월 출간 도서는 정말 탁월한 책들이 많았습니다.

추천하는 모든 도서에 각별한 애정을 느낍니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멋진 책들과 연애하시기를 바라며, 추천합니다.^^*

 

 

 

『웃음의 심리학』마리안 라프랑스, 윤영삼 옮김, 중앙books(중앙북스)

 

 

‘웃음’ 만큼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는 표정도 없을 것이다. 관계성을 담고 있는 웃음을 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라면, 한번쯤 읽고 싶지 않은가? 『웃음의 심리학』은 심리학의 대가인 예일대학 마리안 라프랑스의 저서다. 실험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자세, 목소리 톤 등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여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를 분석한다. 웃음은 사회적 결과를 기대하는 행동이라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증명한다. 전략적인 웃음, 조작된 웃음의 정치학을 읽어내는 비법(?)까지 전수받을 수 있는 책이다.

 

 

 

 

『집단 기억의 파괴』로버트 베번, 나현영 옮김, 알마

 

건축물은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 그 공간에 터전을 일구었던 사람들의 철학과 가치가 스며들어 있다. 전쟁으로 파괴 되거나, 정치 세력이 바뀌면서 용도가 달라져 훼손된 건축물을 여행 중에 만나면 우리는 오래 오래 심장이 에인다. 단지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안에 무의식의 토양이 된 인류 유산의 상실이다. 건축물은 물적인 가치로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의 자산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집단 기억의 파괴』는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파괴의 실상을 고발하다 나치가 파괴한 이슬람의 건축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의 건물을 불도저로 밀어버린 일, 일본의 한국문화 말살 등은 정복당한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과거의 말살이고, 이는 그들의 미래를 통제하는 방식으로서 집단 기억의 파괴를 의미한다. 건축 저널리스트 로버트 베번은 전 세계 저널리스트들의 기사와 전공 분야의 학자, 역사가, 운동 단체, 인권 단체의 저작을 참고하여 집단 기억의 파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융합학문, 어디로 가고 있나?』김광웅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general한 specialist를 요구하는 21세기 키워드는 통섭, 융합이다. 『융합학문, 어디로 가고 있나?』는 서울대학교에서 주관한 ‘미래 대학 콜로키엄’의 두 번째 이야기를 엮은 책으로,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인 10명의 석학이 4년 간 발표했던 내용을 정리하였다. 융합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의 통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고 생산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해야 하는 개개인의 삶을 전망하는 미래학으로도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이와사부로 코소, 서울리다리티 옮김, 갈무리

 

책도 흥미진진하지만, 역자가 예사롭지 않다. 아니 역자들이다. 진보적 번역모임 <서울리다리티>에서 집단 번역한 책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의 역자인 소량, 디디, 하지메는 전업역자가 아니다. 직업이 다양하다. 비정규 가사 노동자 겸 인류학자인 하지메, 중학교 국어교사인 디디, 소량은 공상적 국제가내수공업 연대 조직에서 빵을 굽는다고 한다. 이 책에서 인류의 90%가 거주하는 다중적인 공간 ‘도시’는 ‘유토피아’와 ‘움직이는 신체’라는 두 개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인류의 꿈과 욕망이 도시라는 공간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각 장 마다 뉴욕 민중의 생명력과 활기가 하나의 신체처럼 그려지며 생생한 현장을 느끼게 한다.

 

 

 

 

 

『따뜻한 경쟁』맹찬형, 서해문집

 

무한 경쟁, 승자독식의 신화가 한국의 지배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정당화할 수 없는 차가운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의 사다리에는 위계에 있으나, 아무리 올라가도 끝은 없다. 경쟁은 또 다른 경쟁으로 이어지며, 우리의 삶을 피폐화한다.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개인이 사다리를 걷어찰 용기를 실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더욱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책이 있다. 바로 유럽본부 주재 특파원으로 있는 맹찬형의 『따뜻한 경쟁』이다. 그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경쟁사회 한국을 분석한다. 현실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의 결과물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누구도 패자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일독을 권한다.

 

 

 

 

『소셜테이너』장윤선, 오마이북

 

김제동, 김미화, 김여진, 이 세사람의 이름을 엮어 주는 공통 분모, 바로 ‘소셜테이너’다. 소셜테이너(Socialtainer)는 ‘소셜(Social)’과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로 사회적 발언이나 활동을 하는 대중문화예술인을 의미한다. 특정 직업인으로 분류되기에 앞서, 이들은 언론·집회·출판·결사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기도 하다. 저자는 문화예술인으로서 사회적 실천과 발언을 하는 소셜테이너를 2010년부터 1년여 동안 인터뷰하여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기사를 추려 책으로 엮었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소셜테이너 19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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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2-02-1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앙 난 왜 이 책들을 처음 보는 거죠?
신간 검색을 제대로 안했나봐요...ㅡ.ㅡ
저는 그냥 책만 올리고 사라졌는데 정성스레 페이퍼 작성하셨네요,,^^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마지막 인사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진검 승부,

 

<부러진 화살>(2011), 감독 : 정지영, 출연 : 안성기 박원상

 

 

<부러진 화살>은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는 억울하게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자, 1년 6개월에 걸쳐 여러 정부 부처에 수많은 진정서를 내고, 1인 시위를 했다.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그가 마지막으로 기댔던 곳이 사법부였으나, 교수 지위 확인 재판에서 상식 밖의 재판으로 패소하였다. 제도권을 불신하고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담당판사였던 박홍우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하면서 김명호 교수는 ‘석궁 교수’라고 불명예를 짊어졌다. 그는 현재 4년 형기를 마치고 지난 1월 출소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극화했고, 사법부의 재판 결과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뜨거운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있다.

 

 

영화는 노동 전문 변호사인 박준이 김경호 교수의 항소심을 변호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캐릭터의 이름과 성격이 살짝 바뀌고, 영화적 구성을 위해서 몇몇 가상 인물이 삽입되었지만, 재판 속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기소 과정, 재판 내용은 당시의 사실 보도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사건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공방을 다루고 있으므로, <의뢰인>과 같은 법정 장르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법정의 규칙과 논리보다는 실제 일어난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러진 화살>은 5억이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2012년 흥행가도의 첫 주자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남부군>, <하얀 전쟁>의 정지영 감독이 1998년 <까>라는 영화 이후, 13년만에 연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현재 개봉 당시 보다 두 배 이상의 상영관으로 확대되면서 헐리웃 영화들에 대적하고 있다. 이는 오로지 관객의 입소문과 영화 자체의 힘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묘사하는데 코미디만한 것이 없다. <부러진 화살>의 강점은 사건 자체의 무거움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사자인 김경호 교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주어진 장애들을 하나하나 뛰어넘거나 한계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법정에서 현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상식 밖의 사건 앞에서 마땅히 느껴야 할 분노는 유머가 대신한다. “유머는 가장 큰 슬픔에서 나온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연, 조연 모두 코미디 캐릭터를 변주해서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비장함이 상쇄되고, 그것이 이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하다.

 

코미디 설정으로 새롭게 구성된 캐릭터들은 김경호 교수가 피고이고 피해자일 뿐, 범죄자이거나 가해자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억울한 피고인 김경호 교수는 변호사를 선임하고서도, 스스로 재판을 준비하는 데, 그 과정이 관객을 숙연하게 만든다. 이는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도전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보수 꼴통’이라고 자처하는 김경호 교수를 통해서 진정한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원칙을 가지고 신념을 실천한다면, 한국의 보수를 꼴통이라고 하는 이유는 원칙도, 철학도 모두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나 고발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적’ 아쉬움이 남는다. <부러진 화살>은 팔구십년대 영화의 클래식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임권택 감독의 백한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를 보면서, 감독의 전작들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불편한 느낌을 발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부러진 화살>의 클래식한 우직한 느낌은 촌스러운 영화 용법으로, 영화의 젊은 감각과 방식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도식적인 관계 구성은 과거 영화로 회귀한 듯 답답한 느낌을 준다. 노장의 손길과 뚝심이 느껴지지만, 그 클래식함은 21세기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는 못했다.

 

 

다만 관객들이 이 형식적 취약성을 보지 않거나, 볼 수 없는 것은 영화의 진정성이 압도하기 때문이다. 저예산으로 홍보도 약했고, 상영관 수도 적었으나, 이것이 이렇게 개봉관을 늘려가면서 흥행에 성공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시대를 비판하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시민들의 바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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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 홀 - Rabbit Hole
영화
평점 :
현재상영


겨울은 반드시 봄을 맞이한다. 맞이할 것이다. 맞이해야만 한다.

 

<래빗 홀>(Rabbit Hole, 2010) 감독 존 카메론 미첼/출연 니콜 키드먼, 아론 애크하트

 

<래빗 홀>은 <헤드윅>, <숏버스>의 감독 존 카메론 미첼과 배우 니콜 키드먼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다. 영화의 원작은 데이비드 린제이가 제작한 연극에 바탕을 두고 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강렬한 인상을 심었던 연극 <레빗홀>은 퓰리쳐 상 수상, 토니 어워즈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을 경험한 부부 이야기에 공감하여 제작에도 직접 참여한 니콜 키드먼은 여전히 아름답고, 민감하며,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어린 아들의 죽음 이후, 부부가 겪어 나가는 일상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누구나 직면하게 될 수 있는 상실과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지만, 상투적이거나 관습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관객은 고통에 직면하고 극복해 가는 여정의 주체로 위치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감당키 어려운 슬픔

 

교통사고로 갑자기 아들을 잃고 일상을 유지하기도 힘든 코벳 부부, 행복이 컸던 만큼 아들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아내는 역설적으로 아들의 물건을 정리해서 치워버리거나, 아들을 차로 친 가해 소년을 찾아가서 위안을 얻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진다. 아내를 위로하고 소통하려는 남편의 시도는 매번 거절당한다. 남편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겪고 있는 다른 여자와 마리화나를 피우며 슬픔을 잊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부부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 간다.

 

회복 불능의 상처를 안고 가는 사람은 타인의 행복을 바로 보지 못한다.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슬픔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위로를 할 수 없다. 마당에 심고 있던 화초를 실수로 밟은 이웃 여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마트에서 아이와 함께 물건을 사고 있는 모르는 여자의 뺨을 때리는 황당한 장면은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여실히 드러낸다. 베카는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가 보지만, 언제나 사람과 상황에 부딪혀서 허둥대고 겁을 먹는다. 마약으로 아들을 잃은 자신의 엄마에게 폭언을 퍼 붓고, 뱃속에 아이를 품은 행복한 여동생을 매번 불안하게 만든다. 주변 사람 하나둘 뒷걸음질 치게 하는 베카는 상실의 동반자인 남편까지 슬픔에서 배제시키며 자신의 밀실로 잠행한다.

 

카메라는 아들을 잃은 코벳 부부, 특히 아내 베카에게 응시하고 있지만, 사실 주변인들 역시 감당키 어려웠던 상실을 끌어안고 숨죽인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상실의 슬픔은 도처에 퍼져 있다. 자녀를 잃고 집단 심리 치료를 십수년 째 받는 사람들, 마약으로 돌연사한 아들과 11년째 이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베카의 엄마,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레빗홀’이라는 상상의 공간에서 만나고 있는 십대 소년은 베카의 슬픔 역시 그 많은 상실 중 하나임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레빗홀>은 코벳 부부의 아들을 차로 친 십대소년이 베카에게 선물한 만화의 제목이다. 현실과 다른 세계로 간다는 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단지 슬픔의 차원일 뿐이고, 다른 세계에서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잠시지만, 현재의 슬픔을 잊게 한다. 그렇게 수많은 차원의 세계를 연결하는 ‘레빗 홀’이 있고, 각각의 차원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면, 조금은 낙관과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가 전부는 아니므로, 슬픔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평정심으로 회복하기를 바라는 베카에 대한 소년의 절실한 소망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깊은 슬픔에 빠진 부부에게 계몽적인 미션을 제시하지 않는다. 슬픔은 온전히 감당해야 할 그 개인의 몫으로, 설사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온전한 위로가 어렵다. <레빗홀>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켜나 철저히 개인의 고통에만 집중한다. 개개인의 시계는 - 거대담론의 그늘에 가려져 - 미시사의 소우주를 형성하며, 초침과 분침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슬픔으로 자신을 파괴하고 서로에게 견디기 힘든 상처를 내는 것에도 끝은 있게 마련이고, 생명을 키워낼 새봄의 토양이 준비되어 있다. 깊었던 사랑은 온몸에 상흔을 남기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직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온몸에 새겨져서 일생을 함께 간다. 즉 슬픔의 무게가 변하여 견딜만한 것이 된다 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주머니 속에 넣어가지고 다닐 만한 벽돌”이 되어서 언제든지 꺼내볼 곳에 자리를 잡는다. 남은 세월 그 슬픔을 인정하고,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야 하다는 것을 조용히 말해주는 영화 <레빗홀>은 회복 불능의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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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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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현안 쟁점에 대한 고민과 성과 『인민의 탄생』 송호근, 민음사, 2011

 

 

자본주의 시스템은 ‘현재’에 집중한 삶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고, 그 불안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 지금, 여기를 벗어나 - 생산과 재산 증식에 매달립니다. 자본주의의 미덕은 필요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기 위하여 쉼 없이 일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심각한 집단 불안’ 역시 이러한 메커니즘에서 기인하는데요, 이것이 가진 자, 부르주아지를 넘어서서 모두의 신념체계가 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경제 담론이 - 모든 사회 영역에 침투하여 - 헤게모니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왜소한 ‘개인적’ 존재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지배적인 힘을 갖는 사회 담론은 이를 위반하는 ‘개인적 선택’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물론 객체이면서 주체인 개인의 상대적 자율성을 간과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구조와 단절되어 형성되는 개인의 출현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객관적으로 정량화하여 분석하고,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역사를 전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한 성찰은 근시안적인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예측불허의 삶을 살고 있고, 그것이 또한 살아가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불안한 한국사회를 분석하기 위한 사회학자의 조선 탐구 여행

 

 

평범한 소시민의 고민과 성찰이 이러한데, 사회학자의 고뇌와 소명은 얼마나 깊어야 할까요? 한 사회학자의 회고와 뼈아픈 자기반성으로 출발하는 『인민의 탄생』은 사회구조와 왜소해진 개인에 대한 저의 오랜 화두를 다시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중견 사회학자이자 대표적인 칼럼리스트 송호근 교수가 한국 사회의 현안과 주요 쟁점에 대한 고민과 성과를 엮어 낸 책입니다. 저자는 ‘단절과 비약’으로 분석에서 자주 이탈하는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기꺼이 조선으로 우회하는 긴 여행을 감행합니다. 근대 시민의 탄생 이전으로의 학문적 여정을 위하여 조선이라는 시공간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는 한문을 사용하는 양반 유교 사회의 붕괴가 바로 근대의 시작이고, 인민의 탄생이라고 주장합니다.

 

 

인민 - 민족과 민중을 대신하여

 

 

송호근 교수는 푸코(M. Foucault)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시대 지식의 계보를 탐사하겠다는 야심으로 조선 사대부의 성리학이라는 강력한 지식권력을 분석하였습니다. 조선시대 평민과 천민을 합쳐 일컬은 '인민'은 통치의 객체이자 대상에서, 새로운 인민으로 재탄생합니다. 저자는 민중이라는 호명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가 부재한 한국의 특수성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민족은 국사학계의 목적론적 역사관이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역사학자들이 분절적인 좁은 시야로 역사를 보기 때문에 미시적 접근을 할 뿐, 거시적인 구조를 간과하여 역사를 제대로 조망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근대의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언문, 한글을 읽고 쓰는 인민들의 담론장 형성입니다. 인민은 1860년대 동학농민운동에 이르러서는 공익을 지향하는 시민으로 거듭나지만 일제 강점기는 시민과 공론장의 왜곡을 가져옵니다. 이 왜곡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근대 사회는 부르주아, 교양시민이 부재하게 되었고, 공론장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교양 시민’으로서의 개인주의의 확립과 공공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공론장’의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앞으로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이 연구 주제는 후속으로 인민이 시민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담은 2권 <시민의 탄생>과 20세기 국내 시민 공론장의 결함을 분석한 3권을 통해 한국 시민사회의 기원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진행형의 연구라는 점을 감안하여 저를 불편하게 했던, 수용할 수 없었던 몇 가지를 언급하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자는 미시사를 비판하고 구조와 역사를 활용하면서, 교양시민이 되지 못하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서구 19세기 중산층의 확대는 사회의 기본 가치를 실현하는 교양시민의 확산이었다면, 한국의 근대는 개인주의가 정착하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이념과 권리 투쟁에 몰입한 나머지 독립된 개인, 사회의 핵심 가치를 배양하고 내면화하는 시민이 되지 못했다는 것인데요, 저자가 지나치게 기능론적이고 수구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탄생에서 사회구조가 미치는 영향을 가볍게 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교양 시민’은 인텔리 부르주아와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네그리가 이야기하는 다중과 상당한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공론장을 통한 사회운동으로, 사회 운동 내에서의 다양성과 개인주의의 가치 고양으로, 이러한 토양에서 자유로운 연합을 통한 참여와 반권위적이고 수평주의적인 조직화로 이어지는 다중지성의 개념과 - 송호근 교수의 교양시민 개념을 - 비교하여 논의해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봅니다.

 

 

둘째, 저자는 미국산 사회과학을 맹신했던 한국 한계를 비판하면서 연구의 포문을 열었으나, 결국 푸코와 하버마스의 연구방법과 대안으로 한국사회를 분석합니다. 그는 서양 학문에 중독된 우리 학계에 대한 비판과 그에 따른 자신의 지적 방황의 서사를 펼쳐갑니다. “마르크스주의 발전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서양산 근대화론이 맹위를 떨쳤고, 청년들의 사고를 장악” 했던 1970년대의 학문 풍토을 조선 선비들이 북경의 한서를 보물로 다루던 시대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그러나 결국 푸코의 계보학의 방법을 차용하여 조선의 학문적 계보를 파헤친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하버마스의 면대면의 합리적 의사소통에 기반한 ‘공론장 이론’입니다. 저자가 과거를 회고하며 비판했던 것과 동일한 연구방법과 대안이라서 당혹스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관점은 철저히 사회진화론입니다. '인민은 시민으로, 담론장은 공론장으로' 진화했다는 서구식 모델을 기준으로 중세, 근대 조선의 궤적을 분석합니다. 군주의 적자로서의 ‘인민’은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으로 재탄생하고, 담론장에서 공론장으로, 시민사회로 성숙하는 과정은 유기체의 성장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서구의 근대라는 보편적 기준으로 우리 사회를 분석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인민의 탄생』은 21세기 한국의 토양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사회학자가 19세기말 조선에 입국한 비숍 여사의 관점에서 낯설게 현안 쟁점을 해독한다는 고충이 충분히 헤어려지는 책입니다. 조선 사학자의 기록을 포기하고, (목적이 분명한) 선교사의 여행기에 기대야 하는 연구자의 심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서 요동치는 한국 현실을 분석하고, 지금의 잘못을 지적하여 정도(正道)를 찾게 하려는 학자적 양심과 소명 또한 독자를 숙연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관점 중에서,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여행 중인 이방인의 시선일 수도 있고, 이해관계에 철저히 얽혀있는 이 땅의 사회 구성원일 수도 있습니다. 세계 밖에서 메타적으로 현실을 읽어야 되겠지만, 동시에 세계 안의 역동적인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에서 출발하는 연구들이 쏟아지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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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그 첫 5,000년 - 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부채 그 첫 5,000년-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2011, 부글북스

 

 

부채는 “약속의 타락”이다. 세상에 돈이 있기 전에 거기에 부채가 있었다.

 

 

오랫동안 경제학에서 부(副)를 설명하는 방식이자, 상식으로 통용되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물건과 물건의 거래가 상품을 통한 교환으로, 다시 편리한 화폐 거래로, 이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신용이 중요한 교환의 방식이 되었다. 화폐 이전에는 곡물, 양, 생선뼈, 조개껍데기, 향신료를 이용하여 거래의 편리함을 도모했으나, 보관의 어려움과 양(quantity)을 일치하는데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때문에 일반적 등가물로 적합한 금/은을 활용하였다. 동양에서는 만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늦어도 4~5천 년 전에 이미 금/은을 통한 거래가 일반화되었다. 금/은 주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뉴욕 주립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였고, 2007년까지 예일대 교수였으며, 현재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에 재직하고 있는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신간 『부채 그 첫 5,000년-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는 위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경제 상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회과학의 임무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볼 때, 무척이나 창의적이고 급진적인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다. 우석훈 교수가 『나와 너의 사회과학』(2011, 김영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경제학자가 가장 보수적인 사회학자보다 덜 진보적인다.”고 언급한 것에 동의한다면, (경제학자가 아닌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주장은 자본주의 토대를 흔든다는 측면에서 거의 혁명에 가깝다. 인류 5,000년 역사를 지구 전 방위로 확대한 - 시공간을 넘나드는 - 방대한 연구를 가능하게 한 것은 앎과 삶을 일치하여 살고 있는 연구자의 신념에 기인한다. 그는 인류학자이면서 동시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 정의 실천 운동가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빚은 변제되어야 마땅하다.”는 상식에서 “빚은 꼭 갚아야 하는가?”라는 통념상 ‘비도덕적’일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모든 빚을 다 갚을 필요는 없다.”는 논거를 5천년 인류 역사에서 찾아낸다. 그는 먼저 경제 행위는 신용사회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신용을 중시했고, 이후 화폐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신용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화폐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다른 물건으로 보상하기 위해서 물물교환이 등장했다. 그의 반론은 현대 경제학의 기초인 애덤 스미스의 이론 비판에서 시작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술집이나 시장에서 주화를 사용하지 않고, 외상장부를 이용했다. 주화는 왕이 자신의 군대에 급료를 지불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즉 경제의 핵심은 (차용증서이기도 한) 화폐가 아니라, 부채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부채의 계보를 파헤칠 때만이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현대 경제학에서 부채의 채권·채무 관계는 시장이라는 ‘중립적인’ 공간에서 돈을 가진 이에게 돈을 빌리면 비로소 성립한다고 하지만, 실제 시장은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 힘의 역학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경제학에서 역사학과 인류학으로 옮겨진 ‘부채’는 ‘시장’이라는 중립적인 가상공간을 벗어나서 경쟁과 전쟁이 난무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재해석된다. 부채에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면, 모든 빚을 돌려줘야 하는 건 아니고, 빌려준 만큼 돌려받는 것이 무조건 정의로운 것도 아닐 수 있다. 이때 부채는 경제적 거래 현상이지만, 실제는 정치적 경쟁이자 지배와 약탈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관점의 전환은 -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가 경제적 상식과 신념으로 굳어있는 현실에 대립 항을 만들고 - 현재의 세계 질서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읽게 한다. 현재 우리의 노모스는 모든 관계를 시장적 관계로 환원한다. 그러나 부채가 반드시 갚아야 할 공정한 채권/채무가 아닌 당위라고 한다면, 그러한 도덕적 책무가 누구를 위해서 형성되고, 정당화되었는지를 인지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핵심 키(key)가 된다. 즉 국가와 시장의 관계라든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세계화를 재해석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정반대의 원칙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국가와 시장은 탄생부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국가의 유지를 위해서 시장이라는 가상공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또한 채무불이행을 혹독하게 다루는 IMF(국제통화기금)와 미국의 혹독한 화페 정책은 도덕적 양심의 준수를 엄격하게 요구한다. 그에 반기를 드는 나라는 군사적, 정치적 보복 조치를 받아야 했던 선례들이 있다. 그동안의 인류 역사는 어떠한 사회 시스템도 영원할 수 없음을 적실하게 보여준다. 저자의 주장이 하나의 힘 있는 경제 담론을 형성한다면, 월가 점령이라는 전지구적 실천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의 존립이 ‘나’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꾼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번 숙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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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2-01-2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폐라는 것이 만약 없다면 반드시 빚을 갚아야만 하는 건 어쩌면 도덕적 진술이 되지 않을까요?
시장경제의 핵심은 돈이죠 돈! 돈을 없애 버려야 해요...ㅎㅎ
시장경제 이후 만약 돈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는 원시경제로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다른 모습의
경제활동을 통해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중요한 건 삶의 방식의 틀을 새로 짜야 하는건데
숲 님은 동참할 생각이 있으세요?..ㅎㅎ전 잃을 게 없어서 가벼웁게~ 동참할 생각입니다..^^

더불어숲 2012-01-29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도둑님! 저 또한 잃을게 없어서.. 잃을게 있더라도 기꺼이 동참하겠습니다.ㅎㅎ

'돈'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박사논문까지 쓴 고병권 선생님 생각이 나네요.
<화폐 마법의 사중주>... 욕망없이 존재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가장 엽기적인 기제가 화폐 아닐까요?ㅎ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들을 자꾸 의심하면서..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이 되어가는 요즘입니다. ㅋ
꽃도둑님은 어떠세요? 든든한 소통 창구, 공동체를 가지고 계신가요?
아니면 이덕무처럼 책에서 위로 받고 계신가요? (궁금하네요....)

꽃도둑 2012-01-31 13:08   좋아요 0 | URL
든든한 소통창구까지는 아니어도 숨쉴 구멍 하나는 가지고 있지요.,,ㅎㅎ
또한 이덕무처럼 책에서 위로받는 부분도 상당히 크구요,
책이 나를 만드는 데 8할을 기여한 셈이죠...ㅋㅋ 그렇다고 책만 읽는 바보는 아닙니다..
자 그럼, 숲님은 든든한 소통창구를 가지고 있나요? 더불어숲인걸로 봐서는....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에여~어서 밝히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