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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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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현안 쟁점에 대한 고민과 성과 『인민의 탄생』 송호근, 민음사, 2011

 

 

자본주의 시스템은 ‘현재’에 집중한 삶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고, 그 불안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 지금, 여기를 벗어나 - 생산과 재산 증식에 매달립니다. 자본주의의 미덕은 필요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기 위하여 쉼 없이 일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심각한 집단 불안’ 역시 이러한 메커니즘에서 기인하는데요, 이것이 가진 자, 부르주아지를 넘어서서 모두의 신념체계가 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경제 담론이 - 모든 사회 영역에 침투하여 - 헤게모니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왜소한 ‘개인적’ 존재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지배적인 힘을 갖는 사회 담론은 이를 위반하는 ‘개인적 선택’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물론 객체이면서 주체인 개인의 상대적 자율성을 간과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구조와 단절되어 형성되는 개인의 출현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객관적으로 정량화하여 분석하고,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역사를 전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한 성찰은 근시안적인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예측불허의 삶을 살고 있고, 그것이 또한 살아가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불안한 한국사회를 분석하기 위한 사회학자의 조선 탐구 여행

 

 

평범한 소시민의 고민과 성찰이 이러한데, 사회학자의 고뇌와 소명은 얼마나 깊어야 할까요? 한 사회학자의 회고와 뼈아픈 자기반성으로 출발하는 『인민의 탄생』은 사회구조와 왜소해진 개인에 대한 저의 오랜 화두를 다시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중견 사회학자이자 대표적인 칼럼리스트 송호근 교수가 한국 사회의 현안과 주요 쟁점에 대한 고민과 성과를 엮어 낸 책입니다. 저자는 ‘단절과 비약’으로 분석에서 자주 이탈하는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기꺼이 조선으로 우회하는 긴 여행을 감행합니다. 근대 시민의 탄생 이전으로의 학문적 여정을 위하여 조선이라는 시공간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는 한문을 사용하는 양반 유교 사회의 붕괴가 바로 근대의 시작이고, 인민의 탄생이라고 주장합니다.

 

 

인민 - 민족과 민중을 대신하여

 

 

송호근 교수는 푸코(M. Foucault)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시대 지식의 계보를 탐사하겠다는 야심으로 조선 사대부의 성리학이라는 강력한 지식권력을 분석하였습니다. 조선시대 평민과 천민을 합쳐 일컬은 '인민'은 통치의 객체이자 대상에서, 새로운 인민으로 재탄생합니다. 저자는 민중이라는 호명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가 부재한 한국의 특수성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민족은 국사학계의 목적론적 역사관이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역사학자들이 분절적인 좁은 시야로 역사를 보기 때문에 미시적 접근을 할 뿐, 거시적인 구조를 간과하여 역사를 제대로 조망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근대의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언문, 한글을 읽고 쓰는 인민들의 담론장 형성입니다. 인민은 1860년대 동학농민운동에 이르러서는 공익을 지향하는 시민으로 거듭나지만 일제 강점기는 시민과 공론장의 왜곡을 가져옵니다. 이 왜곡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근대 사회는 부르주아, 교양시민이 부재하게 되었고, 공론장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교양 시민’으로서의 개인주의의 확립과 공공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공론장’의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앞으로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이 연구 주제는 후속으로 인민이 시민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담은 2권 <시민의 탄생>과 20세기 국내 시민 공론장의 결함을 분석한 3권을 통해 한국 시민사회의 기원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진행형의 연구라는 점을 감안하여 저를 불편하게 했던, 수용할 수 없었던 몇 가지를 언급하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자는 미시사를 비판하고 구조와 역사를 활용하면서, 교양시민이 되지 못하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서구 19세기 중산층의 확대는 사회의 기본 가치를 실현하는 교양시민의 확산이었다면, 한국의 근대는 개인주의가 정착하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이념과 권리 투쟁에 몰입한 나머지 독립된 개인, 사회의 핵심 가치를 배양하고 내면화하는 시민이 되지 못했다는 것인데요, 저자가 지나치게 기능론적이고 수구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탄생에서 사회구조가 미치는 영향을 가볍게 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교양 시민’은 인텔리 부르주아와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네그리가 이야기하는 다중과 상당한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공론장을 통한 사회운동으로, 사회 운동 내에서의 다양성과 개인주의의 가치 고양으로, 이러한 토양에서 자유로운 연합을 통한 참여와 반권위적이고 수평주의적인 조직화로 이어지는 다중지성의 개념과 - 송호근 교수의 교양시민 개념을 - 비교하여 논의해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봅니다.

 

 

둘째, 저자는 미국산 사회과학을 맹신했던 한국 한계를 비판하면서 연구의 포문을 열었으나, 결국 푸코와 하버마스의 연구방법과 대안으로 한국사회를 분석합니다. 그는 서양 학문에 중독된 우리 학계에 대한 비판과 그에 따른 자신의 지적 방황의 서사를 펼쳐갑니다. “마르크스주의 발전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서양산 근대화론이 맹위를 떨쳤고, 청년들의 사고를 장악” 했던 1970년대의 학문 풍토을 조선 선비들이 북경의 한서를 보물로 다루던 시대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그러나 결국 푸코의 계보학의 방법을 차용하여 조선의 학문적 계보를 파헤친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하버마스의 면대면의 합리적 의사소통에 기반한 ‘공론장 이론’입니다. 저자가 과거를 회고하며 비판했던 것과 동일한 연구방법과 대안이라서 당혹스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관점은 철저히 사회진화론입니다. '인민은 시민으로, 담론장은 공론장으로' 진화했다는 서구식 모델을 기준으로 중세, 근대 조선의 궤적을 분석합니다. 군주의 적자로서의 ‘인민’은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으로 재탄생하고, 담론장에서 공론장으로, 시민사회로 성숙하는 과정은 유기체의 성장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서구의 근대라는 보편적 기준으로 우리 사회를 분석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인민의 탄생』은 21세기 한국의 토양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사회학자가 19세기말 조선에 입국한 비숍 여사의 관점에서 낯설게 현안 쟁점을 해독한다는 고충이 충분히 헤어려지는 책입니다. 조선 사학자의 기록을 포기하고, (목적이 분명한) 선교사의 여행기에 기대야 하는 연구자의 심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서 요동치는 한국 현실을 분석하고, 지금의 잘못을 지적하여 정도(正道)를 찾게 하려는 학자적 양심과 소명 또한 독자를 숙연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관점 중에서,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여행 중인 이방인의 시선일 수도 있고, 이해관계에 철저히 얽혀있는 이 땅의 사회 구성원일 수도 있습니다. 세계 밖에서 메타적으로 현실을 읽어야 되겠지만, 동시에 세계 안의 역동적인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에서 출발하는 연구들이 쏟아지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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