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 홀 - Rabbit Hole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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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반드시 봄을 맞이한다. 맞이할 것이다. 맞이해야만 한다.

 

<래빗 홀>(Rabbit Hole, 2010) 감독 존 카메론 미첼/출연 니콜 키드먼, 아론 애크하트

 

<래빗 홀>은 <헤드윅>, <숏버스>의 감독 존 카메론 미첼과 배우 니콜 키드먼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다. 영화의 원작은 데이비드 린제이가 제작한 연극에 바탕을 두고 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강렬한 인상을 심었던 연극 <레빗홀>은 퓰리쳐 상 수상, 토니 어워즈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을 경험한 부부 이야기에 공감하여 제작에도 직접 참여한 니콜 키드먼은 여전히 아름답고, 민감하며,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어린 아들의 죽음 이후, 부부가 겪어 나가는 일상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누구나 직면하게 될 수 있는 상실과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지만, 상투적이거나 관습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관객은 고통에 직면하고 극복해 가는 여정의 주체로 위치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감당키 어려운 슬픔

 

교통사고로 갑자기 아들을 잃고 일상을 유지하기도 힘든 코벳 부부, 행복이 컸던 만큼 아들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아내는 역설적으로 아들의 물건을 정리해서 치워버리거나, 아들을 차로 친 가해 소년을 찾아가서 위안을 얻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진다. 아내를 위로하고 소통하려는 남편의 시도는 매번 거절당한다. 남편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겪고 있는 다른 여자와 마리화나를 피우며 슬픔을 잊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부부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 간다.

 

회복 불능의 상처를 안고 가는 사람은 타인의 행복을 바로 보지 못한다.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슬픔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위로를 할 수 없다. 마당에 심고 있던 화초를 실수로 밟은 이웃 여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마트에서 아이와 함께 물건을 사고 있는 모르는 여자의 뺨을 때리는 황당한 장면은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여실히 드러낸다. 베카는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가 보지만, 언제나 사람과 상황에 부딪혀서 허둥대고 겁을 먹는다. 마약으로 아들을 잃은 자신의 엄마에게 폭언을 퍼 붓고, 뱃속에 아이를 품은 행복한 여동생을 매번 불안하게 만든다. 주변 사람 하나둘 뒷걸음질 치게 하는 베카는 상실의 동반자인 남편까지 슬픔에서 배제시키며 자신의 밀실로 잠행한다.

 

카메라는 아들을 잃은 코벳 부부, 특히 아내 베카에게 응시하고 있지만, 사실 주변인들 역시 감당키 어려웠던 상실을 끌어안고 숨죽인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상실의 슬픔은 도처에 퍼져 있다. 자녀를 잃고 집단 심리 치료를 십수년 째 받는 사람들, 마약으로 돌연사한 아들과 11년째 이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베카의 엄마,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레빗홀’이라는 상상의 공간에서 만나고 있는 십대 소년은 베카의 슬픔 역시 그 많은 상실 중 하나임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레빗홀>은 코벳 부부의 아들을 차로 친 십대소년이 베카에게 선물한 만화의 제목이다. 현실과 다른 세계로 간다는 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단지 슬픔의 차원일 뿐이고, 다른 세계에서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잠시지만, 현재의 슬픔을 잊게 한다. 그렇게 수많은 차원의 세계를 연결하는 ‘레빗 홀’이 있고, 각각의 차원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면, 조금은 낙관과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가 전부는 아니므로, 슬픔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평정심으로 회복하기를 바라는 베카에 대한 소년의 절실한 소망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깊은 슬픔에 빠진 부부에게 계몽적인 미션을 제시하지 않는다. 슬픔은 온전히 감당해야 할 그 개인의 몫으로, 설사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온전한 위로가 어렵다. <레빗홀>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켜나 철저히 개인의 고통에만 집중한다. 개개인의 시계는 - 거대담론의 그늘에 가려져 - 미시사의 소우주를 형성하며, 초침과 분침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슬픔으로 자신을 파괴하고 서로에게 견디기 힘든 상처를 내는 것에도 끝은 있게 마련이고, 생명을 키워낼 새봄의 토양이 준비되어 있다. 깊었던 사랑은 온몸에 상흔을 남기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직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온몸에 새겨져서 일생을 함께 간다. 즉 슬픔의 무게가 변하여 견딜만한 것이 된다 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주머니 속에 넣어가지고 다닐 만한 벽돌”이 되어서 언제든지 꺼내볼 곳에 자리를 잡는다. 남은 세월 그 슬픔을 인정하고,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야 하다는 것을 조용히 말해주는 영화 <레빗홀>은 회복 불능의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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