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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리좀적 주체, 부정과 긍정의 詩人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강신주 지음, 천년의상상, 2012.

 

6월은 뜨거운 태양을 위무하는 바람이 있다. 혁명의 기운을 품었던 한국 근현대의 5월과 6월은 그 뜨거움으로 어지럽게 들뜬다. 그 역사의 한 지점에 태양 아래 고결한 한 줄기 선명한 바람결 같은 시인, 김수영이 있다. 삶에 직면하여 자기 길을 개척한 시인은 자기 초월을 통해서 영원회귀의 길로 나아갔다. 그는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이 아니라, 불모지를 개척하여 자신만의 길을 내어 당당하게 걸어갔다.

 

1921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68년 세상을 등질 때까지 그의 삶은 격정으로 가득했다. 초기 김수영은 현대문명과 도시 생활을 비판하는 모더니스트로 주목을 끌었다. 교편, 잡지사, 신문사를 오가며 시작(詩作)과 번역에 전념하던 그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반공포로의 한계 상황에서 사랑을 잃었고, 4·19혁명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 시인이 되었다. 그가 경험한 포로수용소라는 극단적 공간은 실존적 고민과 맞닿아 있다. 바닥을 내려가 본 사람은 관념으로 시를 쓸 수 없다. ‘반공 포로’가 가지는 정신적 혼란과 고뇌가 그의 시를 다른 시인의 것과 차별화한다. 그의 삶은 더 이상 연애시를, 서정시를 쓸 수 없는 의식과 체험으로 가득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1930년대 이후 서정주·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했다.

 

몇 편의 시로 ‘김수영’을 알고 있다고 자만하던 나를 반성하게 한 책이 바로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이다. 김수영을 통해 한 뼘은 성장했다는 강신주는 자신의 마음 키를 높여준 “김수영을 위하여” 고단했을 10주의 강의를 녹취하고, 정성들여 편집하여 한권의 책으로 박제했다. 아마도 기념비를 세우는 심정이었으리라. 김수영과 함께 기억해야 할 연도, 김수영의 나이를 자신의 것과 비교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전제한다. 그것은 외부적 압력에 주눅 들어 위축된 삶을 사는 ‘독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선물이기도 하다. 삶, 사랑, 시 쓰기의 매뉴얼을 필요로 하는 우리에게 - 참조할만한 매뉴얼은 없으나 - 당당하게 자기의 길을 참아서 유목할 용기를 주기 위해서 어깨를 토닥여준다.

 

“방법을 아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의 삶을 기획하고 안전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자신이 경험했던 청춘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여 효율적으로 살아가도록 모든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설계사와 투자자 역할을 자청한다.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성공적인 삶은 과시하고 싶은 욕망과 자신의 노후의 안정된 삶을 지키려는 무의식이 일정정도 작정한 것이겠으나, 그 표면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 인생은 - 불행인지, 다행인지 - 단 한번으로 완성된다. 동일한 전제를 이유로 - 모험하지 않는 - 안정적인 매끈한 길을 갈수도 있고, 예측할 수 없는 길에서 타자와 부딪히고 어긋나면서 고단한 창조의 삶을 살 수도 있다. 리스크를 최소화한 삶, 정해진 길을 가는 삶은 타자와의 충돌로 미끄러져 가는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없다.

 

시대를 앞서 온 시인은 詩를 통해서 새로운 물결을 만든다. 시대의 요구에 반하는 시인은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체제에 맞춰 순응하며 살아갈 수 없는 세포로 구성된 이질적 생물체가 된다. 체제의 억압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려는 주체만이 자각할 수 있다.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자각하는 사람만이 창조하는 삶을 산다. 그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상처 가득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확보한 사랑을 한다. 너와 내가 분리되지 않는 서로 안에 갇힌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참조한 자기 세계를 깨트리는 사랑을 한다.

 

진정한 자유인은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면 나를 만나리라” “시나 사랑이 가능하려면 타자나 자신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격렬한 사랑의 끝에서, 한 세계를 무너뜨린 시인은 사랑을 잃고 시를 쓴다. 더 이상 서정의 시대는 없다. 우주를 뒤흔들었던 창조의 여진은 시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

 

블루에서 레드로

 

김수영은 나에게 ‘블루’였는데, 저자 강신주와 편집자 김서연에서는 ‘레드’였나 보다. 표지와 간지를 채운 빨간색을 보며, 열정에 비례하여 고단한 삶을 살았을 김수영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퀭한 눈빛의 김수영은 이른 새벽의 창백한 블루다. 그의 눈을 스치면 사물은 다른 존재가 된다. 비, 거미, 팽이가 시인 김수영의 처지를 함의하고 있었듯이 사물은 시인 그 자신이 된다.

 

시인 김수영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자기만의 삶을 단독적으로 살다 갔다. 중심을 해체한 리좀적 주체로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창조했다. 한번으로 해독되지 않는 글, 얇은 반투명 껍질 속에 내밀한 고통이 알알이 박혀 있는 시 세계를 창조했다. 답을 주지 않지만, 길을 보여주는 그는 현란한 언어로 모자이크하지 않았으나 충분히 매혹적이다. 김수영은 각자의 삶을 꿈꾸게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불멸의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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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2-06-18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앙으앙 어떻게 이렇게 리뷰를 맛깔나에 쓰셨는지요?....
숲님을 위하여~~ 추천을 열 번이라도 누르고 싶어요.
리뷰를 어느 관점에서 쓰는가에 따라 책의 내용이 풍성해 지는가 하면 또 쫀쫀해진단 말입니다
블루에서 레드로 는 압권입니다. 공감합니다...^^

더불어숲 2012-06-1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수가 하수에게 분발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시는데요..ㅎ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꽃도둑 2012-06-26 23:37   좋아요 0 | URL
이 무슨 해괴한...^^
같은 하수끼리 왜 이러십니까?,,,,ㅋㅋㅋ
제가 오프라인 모임 중 하나가 '주류와 떨거지 사이에서'인데요...어떤가요?
이제 고수라는 말 못하겠죠?,,,ㅋㅋ
아, 오늘 김수영을 위하여 드뎌~ 올렸어요,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라요..
좋은 밤, 웃긴 꿈 꾸세요..(저는 잘 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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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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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정의의 정치 철학자가 펼치는 도덕 논쟁 - 돈과 시장의 역할에 대하여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2012.

 

2005년 센델 교수의 한국 방문 시 특강을 들었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롤즈의 『정의론』을 가지고 스터디를 하던 학구적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하버드 최고의 교수’로 유명한 샌델의 명강의를 듣고 싶었던 열망도 컸다. 그는 롤즈의 『정의론』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했다. 롤즈는 개별적인 원리를 적용하여 보편적인 정의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롤즈의 『정의론』에 대한 센델의 비판은 그가 한동안 롤즈가 강조한 ‘무지의 베일’과 ‘무연고적 자아’라는 게임적 실험에 천착했음을 의미한다. 깊은 생각 끝에서 끊어 나오는 샌델의 강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침착하고 엄중했으며 강렬했다.

 

2010년 한국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정의란 무엇인가』가 저녁 식탁에 오르는 빵처럼 팔려 나갔다. 당시 나는 공동체주의자로 알려졌던 마이클 샌델의 책과 그의 사상이 한국에서 이처럼 주목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했다. 고민의 끝에서 신자유주의 대세에 멀미를 느낀 많은 사람들의 암묵적인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적 가치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물질적인 재화 뿐 아니라, 가족, 대인 관계, 시민사회까지 침투해 있다.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은 서구보다 늦게 시작되었으나, 빠르게 번지며 지배적인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의 결과였다. 지배 담론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공적 토론에 대한 강한 열망이 한국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한때는 그 결과가 진보교육감의 당선에 영향을 미치고,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정치철학자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공통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은 우주를 바꾸는 것만큼 격정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인지, 세상은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변화하고 있다.

 

2012년 4월,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샌델의 특강에는 만사천여명이 몰려와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샌델 교수 역시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얘기했다. 그가 자유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얻게 된 ‘공동체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이처럼 과도한 에너지를 품어내는 한국의 집단 사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우정, 교육, 의료, 사랑, 시민 의식

 

오 헨리의 단편소설 『황금의 신과 사랑의 신』에서, 재벌 아버지는 돈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아들은 사랑은 순수한 것이어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둘은 내기를 하게 되고, 아들은 자신이 사랑을 쟁취했다고 믿는다. 사실 그 사랑의 이면에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 둔 ‘돈’이 있었다. 풍자 가득한 이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주장에 ‘철학’의 외피를 두른 것이 바로『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샌델은 이 책을 통해서 돈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적 틀을 제공한다. 돈으로 거래할 수 없는 영역까지 시장이 침투했을 때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교환할 수 있게 되면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중요해진다. 이는 상대적으로 덜 가진 사람을 소외시킨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만연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삶을 영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또한 ‘돈’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면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시장적 가치가 교육, 의료, 시민의식, 우정과 같은 비시장적인 영역까지 밀고 들어온다. 돈으로 목적을 달성하면, 달성하고자 하는 가치가 훼손되고, 우리가 갖게 된 재화의 본질이 변질된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고유한 가치가 모두 돈으로 수량화하면서 재화의 고유한 가치는 변질된다.

 

뛰어나지 않은 학생이 부모의 능력으로 입학하는 ‘기여입학제’,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주어지는 ‘장학금’, 봉사활동을 점수로 환산하는 ‘학교생활기록부’, 직장인의 연수 실적을 승진의 조건으로 만드는 것, 국가대표 선수의 메달에 상응하는 연금 등은 목적과 수단의 가치전도를 야기한다. 성과금으로 노력의 댓가가 주어지는 순간,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잃게 된다. 한국사회를 비롯한 세계는 ‘지구화’의 미명 아래서 시장사회가 되고 있다. 이는 시장 사회를 넘어선 시장사회이다. 시장경제는 효율적이고, 경제 성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사회는 삶의 모든 영역이 거래된다. 시장 가치인 돈이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지배한다.

 

샌델 교수가 왜 하버드 최고의 교수로 평가 받는지 알게 하는 요소가 이 책 안에 가득하다. 이론 그 자체에 천착하기 보다는 ‘게임 이론’을 적극 활용하여 시장과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 독자를 세우고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이때 독자는 적극적 행위자로 위치한다. 시장과 도덕이 충돌하는 딜레마 상황은 함께 고민하고 보편적 준칙을 세우는 공론장이 된다.

   

샌델은 아산재단과 함께 미국과 한국사회의 사회적 인식 조사를 했다. 미국인 다수가 미국 사회가 정의롭다고 응답한 반면, 한국인은 74%가 한국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답했다. 이것은 시민의 인식에 관한 리서치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인식 조사는 한국이 미국 보다 ‘공정 사회’에 대한 고민이 크다는 것을 함의한다. 또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깊이 있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의는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하다. 공정성에 대해서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취약 계층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를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좋은 사회는 ‘돈’뿐 아니라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공적 토론을 할 수 있는 사회이다. 이때 좋음은 올바름과 거리를 좁혀 나갈 수 있다. 나는 샌델을 “좋음과 옮음의 철학자”라고 평가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가 강조하는 행복은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행복은 “인간의 삶이 가지는 내적인 경지를 무한히 실현하는 것”이다. 정의는 “좋음이 아니라, 옮음”에서 출발한다.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한국사회가 - 옳음과 좋음의 간극을 좁혀서 - 재화의 본래적 가치를 회복하고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공론장의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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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향의 정치학-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와 쓰기l』

   홍성민 지음, 현암사, 2012

 

  현암사에서 출간한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총서’ 세 번째 책이 『취향의 정치학』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1979년에 쓴 『구별짓기』를 한국현실을 토대로 재해석했다. 부르디외는 마르크스(K. Marx)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를 가지고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으로 나눈 것을 토대로, 사회문화를 미시적·거시적으로 교차 분석하여 다층적이고 다양한 위계와 자본으로 분류하였다. 자본은 경제자본, 문화자본, 학력자본, 사회자본 등 다양한 자본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통해서 상이한 자본을 전환한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단지 경제 자본뿐 아니라, 상징자본이 우리 삶의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촘촘히 읽다보면 한국과 프랑스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시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공통된 특성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 홍성민은 부르디외의 문제의식을 한국의 질문으로 치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다음, 부르디외가 섬세하게 사용하는 주요 용어를 해설하여준다. 저자는 국내의 2차 문헌들을 소개함으로써 부르디외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헤매게 될 미로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준다. 사회학의 거장 부르디외의 해제를 읽는 기쁨이 큰 책이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피터 L.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책세상, 2012.

 

  현존하는 사회학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로 꼽히는 피터 버거의 유쾌한 농담을 들을 수 있는 책이 바로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이다. 거의 한 세기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로 보낸 팔순 노학자가 삶의 뒤안길에서 쏟아내는 이야기는 탐험가의 기록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간은 누구도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객관성을 담보하는 일은 자신의 삶의 과정을 지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피터 버거는 당파성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펼쳐간다. 그가 사회학가 되는 ‘우연의 과정’에서부터, 세상을 사회학적으로 바라보는 일에서 느꼈던 흥분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가 매력적인 이유는 강단 사회학자로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트레킹 사회학자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는 자신의 사회학적 방법론인 ‘사회학적 관광’으로 온 세계를 탐험했다. 또한 커피를 앞에 두고 대화하고, 모임을 만들고, 연구를 하고, 프로젝트를 사용하여 ‘커피 하우스’라는 방법론을 선택하였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 그가 내린 결론 언저리에서 얻은 답은 “이 사회는 인간이 만든 세계이므로 우연적이며 유동적이다.”는 것이다.

 

  가끔 끔찍한 범죄를 기사로 접할 때마다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어쩌면 답은 ‘인간이기 때문에 잔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이 가진 집단일수록 더 대담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우리는 직, 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옳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성찰하며 근본주의와 상대주의 사이에서 길을 찾는 일이 될 것이다.

 

 

『정의로운 교육이란 무엇인가- 평범한 교실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현장 교사들 이야기 』

   코니 노스 지음, 박여진 옮김, 이매진, 2012.

 

  ‘불편한 진실’은 교육현장에 만연해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학교를 떠나지 않았더라도 떠나고 싶어서 중퇴를 고려하는 학생들 또한 열에 셋이나 된다고 한다. 학생의 위기는 바로 교사, 공교육의 위기이고, 이 사회의 위기가 된다. 공교육 붕괴 담론은 단순히 한국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희망이 절망이 된 교육현장에서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바로 저자 코니 노스 교수다. 그는 정의로운 교육을 실천하는 네 명의 교사와 함께 1년간의 질적 연구 과정을 책으로 엮었다.

 

  교육의 목표는 개인의 성공이나 사회의 효율성 증대에 있지 않다.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창의적, 비판적인 민주시민의 양성에 있다. 교과의 경계 없이 모든 배움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훈련 과정이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교감과 연대를 통해서 시민으로 길러지는 과정이 목도할 수 있다. 또한 학교는 배움뿐 아니라, 소외된 아이들의 ‘돌봄’의 공간이라는 것, 평생학습이 이루어져야 하는 미래사회의 베이스캠프로서 ‘소통’의 장이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멘토의 시대- 강준만이 전하는 대한민국 멘토들의 이야기』

   강준만 지음, 인문과사상사, 2012.

 

  매달 신간을 내고 있는 학자중의 학자 강준만 교수님. 이번 달에는 우리사회의 멘토들에 대한 명쾌한 분석서를 출간했다. 이시대의 멘토로 불리고 있는 열두명의 매력을 분석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그들이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촘촘히 해부한다. 단지 인물을 분석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면 덜 매력적이었을텐데, 인물분석은 수단일 뿐이다. 인물 분석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에 예리한 메스를 가한다.

 

  그의 메스가 해부한 열두명의 국가대표 멘토는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김어준, 문성근, 박경철, 김제동, 한비야, 김난도, 공지영, 이외수, 김영희다. 멘토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과 철학을 집중 분석하면서 그들이 왜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지를 논한다. 대통령 안철수론, 김어준과 <나는 꼼수다> 열풍, 공지영과 이외수를 둘러싼 트위터 논란, 이익공유제와 관련된 이건희와 박경철의 입장 차이, 문성근의 100만 민란 주장과 미국의 무브온 모델 분석, 김제동의 웃음과 상처의 의미, 김영희 PD와 <나는 가수다>의 대중문화 현상 등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서가 될 것이다.

 

 

 

 『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30개의 키워드로 현대 철학의 핵심을 읽는다』

   남경태 지음, 휴머니스트, 2012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저자에 대한 신뢰다. 그의 『종횡무진 한국사』, 『종횡무진 서양사』를 통해서 즐겁게 역사를 읽었던 기억과 그가 방송하는 ‘타박타박 세계사’ 의 애청자인 때문이다. 역사학만을 공부하지 않고, 사회학적 토양에서 다시 쓰인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박학함 덕분에 전 방위적 글쓰기가 가능하다.

 

  서른 한명의 사상가를 한권의 책에 담는다는 것이 오만하고 무모한 일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철학의 지리학(지형학)을 파악하기 위한 출발선에서 매우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산이든 오르기로 작정했다면, 나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석학의 산을 골라야하지 않겠는가? 한반도의 각각의 산이 가진 풍광이 모두 다르듯, 철학자는 동시대의 비동시성을 한 몸에 담고 있다. 니체가 시대보다 먼저 온 사람이듯, 철학자는 시공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이다. 우리가 올라야 할 산은 저마다의 취향과 실력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우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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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2-06-0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반가운 분의 이름이 있군요 동아대 정외과 홍성민 교수님...^^
권력! 권력! 권력에 천착해서 마르크스로 시작해 부르디외까지 가신 분..
강의 할 때 보면 포스 죽이지요~~ㅎㅎ

피터 엘 버거 그분 말예요...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었는지는 정말 궁금해요,,,어쩌다가? 도대체 어쩌다가 그리 되었을까요?...

더불어숲 2012-06-0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권력, 권력, 권력을 좇아서...맑스의 생산수단의 소유여부에서 부르디외의 자본으로.. 그리고 푸코의 미시권력에서 거슬러 올라가 니체의 위버멘쉬로.. 헤매다녔습니다.
계속해서..헤매 다니겠지요?ㅎ

가연 2012-06-06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어쩌다 파트장이 되어... 푸하하,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네요.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가 흥미롭네요.
 
빵과 장미
켄 로치 감독, 엘피디아 카릴로 외 출연 / 엔터원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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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2000) 감독 : 켄 로치, 출연 : 필라 파딜라, 애드리언 브로디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여자들 중에 마야가 있다. 마야는 성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우여곡절을 겪고, LA에 살고 있는 언니 로사를 만난다. 몇 년 만에 만난 로사는 동생 마야을 위해 술집에 일자리를 마련해두었다고 한다. 언니가 마련한 자리를 거부한 마야는 청소용역업체 엔젤의 직원이 된다. 빌딩의 감독관 페레즈는 불법이민자에게 비정규직이라는 약점을 이용해서 첫 월급을 몽땅 바칠 것을 요구한다.

 

‘유니폼은 우리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

 

마야는 빌딩 경비원에게 쫓기는 샘과 인연을 맺게 되고, 샘은 청소부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한다. 노조가입은 임금인상, 의료보험의 보장을 담보하지만, 온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는 청소 노동자에게 해고와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오르는 것은 상상초월의 고통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이다. “어머니와 같았던” 테레사와 감독관의 회유정책에 넘어가지 않는 베르타가 해고되자, 청소노동자들은 점점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연예인 변호사의 사무실 파티에 참석해 청소퍼포먼스를 벌인다.

 

‘생존과 행복 추구’

 

<빵과 장미>는 LA 빌딩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 현실을 직시하고 생존과 권익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한다. 일자리를 찾아 불법체류자가 된 청소노동자들의 삶의 애환과 노동현장에 관한 보고서이다. 그들은 ‘빵’과 함께 ‘장미’를 원한다. 빵이 생존권이라면, 장미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누릴 권리를 의미한다. 인간은 단순한 생존을 위한 빵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존엄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 장미는 특별한 메시지를 함의한다. 노동절의 기원이 된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당시, 노동자들은 사형당한 동지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가슴에 장미꽃을 달았다. 이때부터 장미는 노동자들에게 진보와 변혁의 상징이 되었다. 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이 당의 표상으로 장미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 켄 로치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지금 현재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는다. 그는 역사라는 거대한 담론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조건을 탐색하여 작품으로 만든다. 그는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부당한 현실에 눈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의 생애는 세계시민주의자로서의 양심과 양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복지정책이 자본주의의 유토피아적 환상임을 비판하는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1994), 스폐인 내전의 이면을 다룬 <랜드 앤 프리덤>(1996), 아일랜드가 영국에 대항해 투쟁하는 IRA(아일랜드공화국군, Irish Republican Army)를 다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1936년 출생한 켄 로치는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평생 노동자를 위한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그는 TV방송국에서 드라마 제작으로 잔뼈가 굵었다. 그가 1996 제작한 <캐시 집에 돌아오다>는 현실의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린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주로 비전문 배우가 출연하였기 때문에 즉흥연기에 의존했고, 극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였다. 이 영화에서도 유일하게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면 영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에이드리언 브로디 정도다. 그는 노조의 리더지만, 무겁지 않은 캐릭터로 극의 무게를 덜어내는 역할을 한다.

 

켄 로치의 영화는 많은 탄압에 시달려야 했지만, 오히려 검열과 타협 속에서 싸우는 것이 그의 목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검열에 대한 찬반 논쟁을 사회 쟁점으로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들이고, 실제 현실에 힘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리허설을 최소화하고, 스토리보드를 만들지 않은 채 시퀀스대로 촬영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소 암전으로 화면을 전환하고, 뉴스처럼 거친 화면으로 관객이 영화와 거리를 두도록 만들었다. 소격 효과는 실제 상황의 박진감과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가장 빠른 기간에 만들 수 있는 팜플렛이고, 아주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길이기 때문에 최고를 가치를 지닌다.”

 

켄 로치는 자본주의 방식에서 출발한 예술인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영화는 발언을 위한 수단이고, 현실과 싸우기 위한 무기다. 그의 카메라는 우리 시대의 첨예한 삶의 현장에서 비켜선 적이 없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소외된 사람들의 연대를 옹호하는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가 “블루칼라(노동자)의 시인”, “좌파 로멘티스트”라고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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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성 노동자가 더욱 고단한 이유... 『노동의 배신』
    from 도서출판 부키 2012-06-10 14:49 
    1908년 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노동조합 결성권, 투표권을 요구하며 시위와 파업을 벌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3월 8일은 여성의 날,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날이 되었지요. 그로부터 1백여 년이나 지났건만 대한민국에는 ‘빵과 장미’가 필요한여성들이 많습니다. 2007년 ‘이랜드 사태’는 비단 비정규직 문제만이 아니라 비정규
 
 
맥거핀 2012-05-2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장미가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군요. 장미에 그런 역사적인 기원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시간의 춤
송일곤 감독, 디모테오 김 로드리게즈 외 출연 / 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인생은 노래처럼, 혁명은 춤처럼

<시간의 춤>(2009) 감독 : 송일곤 내레이터 : 이하나, 장현성

 

지구 반대편 체계바라와 혁명의 나라, 쿠바에 뿌리를 묻고 살아가는 조선인의 후예들이 있다.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조선을 떠났던 그들의 후예들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일제 강점기 천 여 명의 한인은 “4년 동안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멕시코 행 일포드 호에 올랐다. 이들 중 삼백 여 명이 노예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쿠바로 가서 에네켄 농장의 일군이 되었고, 몇 년 동안 억세게 일해서 고국 땅을 밟을 것을 기약했던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꼬레아노(한인)들은 여전히 대를 이어가며 쿠바에 살고 있지만, 험난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조국을 잊지 않았다. 학교를 세워서 한글을 가르쳤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비밀 자금을 보냈다. 쿠바 혁명기에는 체계바라의 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다.

 

<시간의 춤>은 송일곤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이자 첫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하나의 내레이션으로 이어지는 1부와, 영화배우 내레이션으로 이어지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가 춤과 음악으로 이어지는 달콤한 낭만이라면, 2부는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지독한 사랑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 쿠바에 살고 있는 꼬레아노의 현재가 송일곤 감독의 렌즈를 통해서 노래와 춤으로 살아났다. 이 영화는 단지 고통으로 얼룩진 이민의 역사만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한계 상황 속에서도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춤과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현재는 과거를 투영하며 빛을 발한다. 뜨거운 쿠바의 태양처럼 정열 가득한 라틴 음악에 맞춰 춤추는 그들의 검은 눈동자는 4대에 걸친 기나긴 세월을 담고 있다. 사연 많은 삶의 자취가 검푸른 파도 속에서 반짝거린다. 에네켄 농장에서 기타를 치는 일흔 넘은 세실리오, 평생 그림의 주제를 어머니에게 찾았다는 페미니스트 화가 알리시아, 작은 키 때문에 국립발레단의 정식 단원이 되지 못했지만 춤을 너무 사랑하는 디아날리스, 토속 종교의 사제가 된 디모테오 등 꼬레아노의 삶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생을 통한 기나긴 여정이다. 1세대, 2세대가 사라진 자리에서 그들은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천명의 사람들, 천개의 사랑, 천개의 불안, 단 하나의 희망’

 

 

폴란드에서 영화를 전공한 송일곤 감독은 <시간의 춤>에 이어 <시간의 숲>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는 <꽃섬> <마법사들> <오직 그대만>과 같은 극영화로 알려졌으나,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가 줄 수 없는 커다란 ‘울림’을 준다. “실제 하는 대상, 인물, 상황을 가지고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자연스럽다.”는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큐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촬영보다도 편집에서 오랜 작업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다큐멘터리에서도 송일곤 감독의 감성적인 연출은 여전하다. 그는 충분히 의미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간의 춤> DVD를 가방에 싸가지고 다니면서라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송일곤 감독의 두 번째 다큐 <시간의 숲>은 <시간의 춤>과 연장선상에 있다. 두 편 모두 여행을 통해서 시간과 기억을 되살린다.

 

검은 눈빛 외에는 한민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이국적인 모습,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말, 한국과 쿠바가 경기를 한다면 쿠바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는 꼬레아노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빛바랜 사진과 낡은 한복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독특한 검은 피부를 한 꼬레아노들이 한복을 입고 ‘꼬부랑 할머니’, ‘나비야’를 부른다. 기억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사랑한 사람들이 남기고 간 “죽지 않은 시간”의 흔적을 지켜간다. ‘상자 안의 여자’는 백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카리브 해에서 열정의 춤을 춘다. 그것은 기억으로 현존하는 뿌리에서 비롯된다. 과거는 ‘죽지 않은 시간’으로 ‘현재’가 되었다.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의 시간은 죽지 않고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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