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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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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정의의 정치 철학자가 펼치는 도덕 논쟁 - 돈과 시장의 역할에 대하여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2012.

 

2005년 센델 교수의 한국 방문 시 특강을 들었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롤즈의 『정의론』을 가지고 스터디를 하던 학구적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하버드 최고의 교수’로 유명한 샌델의 명강의를 듣고 싶었던 열망도 컸다. 그는 롤즈의 『정의론』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했다. 롤즈는 개별적인 원리를 적용하여 보편적인 정의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롤즈의 『정의론』에 대한 센델의 비판은 그가 한동안 롤즈가 강조한 ‘무지의 베일’과 ‘무연고적 자아’라는 게임적 실험에 천착했음을 의미한다. 깊은 생각 끝에서 끊어 나오는 샌델의 강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침착하고 엄중했으며 강렬했다.

 

2010년 한국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정의란 무엇인가』가 저녁 식탁에 오르는 빵처럼 팔려 나갔다. 당시 나는 공동체주의자로 알려졌던 마이클 샌델의 책과 그의 사상이 한국에서 이처럼 주목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했다. 고민의 끝에서 신자유주의 대세에 멀미를 느낀 많은 사람들의 암묵적인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적 가치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물질적인 재화 뿐 아니라, 가족, 대인 관계, 시민사회까지 침투해 있다.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은 서구보다 늦게 시작되었으나, 빠르게 번지며 지배적인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의 결과였다. 지배 담론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공적 토론에 대한 강한 열망이 한국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한때는 그 결과가 진보교육감의 당선에 영향을 미치고,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정치철학자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공통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은 우주를 바꾸는 것만큼 격정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인지, 세상은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변화하고 있다.

 

2012년 4월,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샌델의 특강에는 만사천여명이 몰려와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샌델 교수 역시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얘기했다. 그가 자유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얻게 된 ‘공동체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이처럼 과도한 에너지를 품어내는 한국의 집단 사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우정, 교육, 의료, 사랑, 시민 의식

 

오 헨리의 단편소설 『황금의 신과 사랑의 신』에서, 재벌 아버지는 돈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아들은 사랑은 순수한 것이어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둘은 내기를 하게 되고, 아들은 자신이 사랑을 쟁취했다고 믿는다. 사실 그 사랑의 이면에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 둔 ‘돈’이 있었다. 풍자 가득한 이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주장에 ‘철학’의 외피를 두른 것이 바로『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샌델은 이 책을 통해서 돈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적 틀을 제공한다. 돈으로 거래할 수 없는 영역까지 시장이 침투했을 때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교환할 수 있게 되면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중요해진다. 이는 상대적으로 덜 가진 사람을 소외시킨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만연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삶을 영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또한 ‘돈’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면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시장적 가치가 교육, 의료, 시민의식, 우정과 같은 비시장적인 영역까지 밀고 들어온다. 돈으로 목적을 달성하면, 달성하고자 하는 가치가 훼손되고, 우리가 갖게 된 재화의 본질이 변질된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고유한 가치가 모두 돈으로 수량화하면서 재화의 고유한 가치는 변질된다.

 

뛰어나지 않은 학생이 부모의 능력으로 입학하는 ‘기여입학제’,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주어지는 ‘장학금’, 봉사활동을 점수로 환산하는 ‘학교생활기록부’, 직장인의 연수 실적을 승진의 조건으로 만드는 것, 국가대표 선수의 메달에 상응하는 연금 등은 목적과 수단의 가치전도를 야기한다. 성과금으로 노력의 댓가가 주어지는 순간,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잃게 된다. 한국사회를 비롯한 세계는 ‘지구화’의 미명 아래서 시장사회가 되고 있다. 이는 시장 사회를 넘어선 시장사회이다. 시장경제는 효율적이고, 경제 성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사회는 삶의 모든 영역이 거래된다. 시장 가치인 돈이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지배한다.

 

샌델 교수가 왜 하버드 최고의 교수로 평가 받는지 알게 하는 요소가 이 책 안에 가득하다. 이론 그 자체에 천착하기 보다는 ‘게임 이론’을 적극 활용하여 시장과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 독자를 세우고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이때 독자는 적극적 행위자로 위치한다. 시장과 도덕이 충돌하는 딜레마 상황은 함께 고민하고 보편적 준칙을 세우는 공론장이 된다.

   

샌델은 아산재단과 함께 미국과 한국사회의 사회적 인식 조사를 했다. 미국인 다수가 미국 사회가 정의롭다고 응답한 반면, 한국인은 74%가 한국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답했다. 이것은 시민의 인식에 관한 리서치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인식 조사는 한국이 미국 보다 ‘공정 사회’에 대한 고민이 크다는 것을 함의한다. 또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깊이 있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의는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하다. 공정성에 대해서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취약 계층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를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좋은 사회는 ‘돈’뿐 아니라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공적 토론을 할 수 있는 사회이다. 이때 좋음은 올바름과 거리를 좁혀 나갈 수 있다. 나는 샌델을 “좋음과 옮음의 철학자”라고 평가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가 강조하는 행복은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행복은 “인간의 삶이 가지는 내적인 경지를 무한히 실현하는 것”이다. 정의는 “좋음이 아니라, 옮음”에서 출발한다.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한국사회가 - 옳음과 좋음의 간극을 좁혀서 - 재화의 본래적 가치를 회복하고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공론장의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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