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
켄 로치 감독, 엘피디아 카릴로 외 출연 / 엔터원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2000) 감독 : 켄 로치, 출연 : 필라 파딜라, 애드리언 브로디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여자들 중에 마야가 있다. 마야는 성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우여곡절을 겪고, LA에 살고 있는 언니 로사를 만난다. 몇 년 만에 만난 로사는 동생 마야을 위해 술집에 일자리를 마련해두었다고 한다. 언니가 마련한 자리를 거부한 마야는 청소용역업체 엔젤의 직원이 된다. 빌딩의 감독관 페레즈는 불법이민자에게 비정규직이라는 약점을 이용해서 첫 월급을 몽땅 바칠 것을 요구한다.

 

‘유니폼은 우리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

 

마야는 빌딩 경비원에게 쫓기는 샘과 인연을 맺게 되고, 샘은 청소부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한다. 노조가입은 임금인상, 의료보험의 보장을 담보하지만, 온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는 청소 노동자에게 해고와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오르는 것은 상상초월의 고통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이다. “어머니와 같았던” 테레사와 감독관의 회유정책에 넘어가지 않는 베르타가 해고되자, 청소노동자들은 점점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연예인 변호사의 사무실 파티에 참석해 청소퍼포먼스를 벌인다.

 

‘생존과 행복 추구’

 

<빵과 장미>는 LA 빌딩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 현실을 직시하고 생존과 권익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한다. 일자리를 찾아 불법체류자가 된 청소노동자들의 삶의 애환과 노동현장에 관한 보고서이다. 그들은 ‘빵’과 함께 ‘장미’를 원한다. 빵이 생존권이라면, 장미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누릴 권리를 의미한다. 인간은 단순한 생존을 위한 빵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존엄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 장미는 특별한 메시지를 함의한다. 노동절의 기원이 된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당시, 노동자들은 사형당한 동지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가슴에 장미꽃을 달았다. 이때부터 장미는 노동자들에게 진보와 변혁의 상징이 되었다. 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이 당의 표상으로 장미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 켄 로치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지금 현재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는다. 그는 역사라는 거대한 담론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조건을 탐색하여 작품으로 만든다. 그는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부당한 현실에 눈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의 생애는 세계시민주의자로서의 양심과 양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복지정책이 자본주의의 유토피아적 환상임을 비판하는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1994), 스폐인 내전의 이면을 다룬 <랜드 앤 프리덤>(1996), 아일랜드가 영국에 대항해 투쟁하는 IRA(아일랜드공화국군, Irish Republican Army)를 다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1936년 출생한 켄 로치는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평생 노동자를 위한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그는 TV방송국에서 드라마 제작으로 잔뼈가 굵었다. 그가 1996 제작한 <캐시 집에 돌아오다>는 현실의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린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주로 비전문 배우가 출연하였기 때문에 즉흥연기에 의존했고, 극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였다. 이 영화에서도 유일하게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면 영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에이드리언 브로디 정도다. 그는 노조의 리더지만, 무겁지 않은 캐릭터로 극의 무게를 덜어내는 역할을 한다.

 

켄 로치의 영화는 많은 탄압에 시달려야 했지만, 오히려 검열과 타협 속에서 싸우는 것이 그의 목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검열에 대한 찬반 논쟁을 사회 쟁점으로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들이고, 실제 현실에 힘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리허설을 최소화하고, 스토리보드를 만들지 않은 채 시퀀스대로 촬영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소 암전으로 화면을 전환하고, 뉴스처럼 거친 화면으로 관객이 영화와 거리를 두도록 만들었다. 소격 효과는 실제 상황의 박진감과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가장 빠른 기간에 만들 수 있는 팜플렛이고, 아주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길이기 때문에 최고를 가치를 지닌다.”

 

켄 로치는 자본주의 방식에서 출발한 예술인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영화는 발언을 위한 수단이고, 현실과 싸우기 위한 무기다. 그의 카메라는 우리 시대의 첨예한 삶의 현장에서 비켜선 적이 없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소외된 사람들의 연대를 옹호하는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가 “블루칼라(노동자)의 시인”, “좌파 로멘티스트”라고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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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성 노동자가 더욱 고단한 이유... 『노동의 배신』
    from 도서출판 부키 2012-06-10 14:49 
    1908년 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노동조합 결성권, 투표권을 요구하며 시위와 파업을 벌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3월 8일은 여성의 날,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날이 되었지요. 그로부터 1백여 년이나 지났건만 대한민국에는 ‘빵과 장미’가 필요한여성들이 많습니다. 2007년 ‘이랜드 사태’는 비단 비정규직 문제만이 아니라 비정규
 
 
맥거핀 2012-05-2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장미가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군요. 장미에 그런 역사적인 기원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