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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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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신승철 지음, 동녘, 2012. 11.

 

21세기 대한민국의 83만원 세대, 김철수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스피노자, 그가 왔다.

 

고시원의 공동 화장실의 깨진 거울을 사이에 두고,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서 ‘철학자의 철학자'가 될(된) 스피노자가 백수 청년 철수의 고민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신간 『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그들의 불가능한 만남에서 출발한다. 스피노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 백수, 입시지옥을 통과해야 하는 여고생 주변에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 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 조울증,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을 각각의 챕터로 한 스피노자의 철학 강의는 상담과 치유의 시간으로 전환한다.

 

스피노자는 철학 상담 처음부터 답을 제시한다. 정신질환은 이성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이 자리한 곳의 배치를 바꾸고, 궤도를 수정할 수 있도록 “관계망에 대한 사유” 능력을 키울 때 우리는 정신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욕망으로 존재와 세계를 재구성할 것을 권유한다. 무의식적 욕망을 기꺼이 수용하고, 욕망의 주인이 될 것을 간절하게 요청한다. “스스로 창발(創發)한 욕망은 삶을 구성하고 세계를 재창조하는 활동력”이 된다. 나의 무의식을 ‘알아차림’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주변과 두려움 없이 접촉하고, 횡단하며, 변용하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구조적 예속에서 벗어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트랜스포머가 될 수 있다.

 

‘철학공방 별난’에서의 삶

 

『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생산한 신승철 선생의 철학연구소 이름이 ‘별난’이란다. 욕망(desire)의 어원 “별에서 떨어져 나온 마음”에서 가져온 공방의 이름이 인상적이다. 그 명칭에서 저자의 삶이 이미 스피노자적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6~17세기 가장 코스모폴리탄이었던 경제 중심지 네델란드의 암스텔담에 살았던 스피노자는 부유함을 포기하고 겸손한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 한평생 철학을 했다. 도시는 익명성을, 소박함은 자유와 고독을 선취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별난’의 삶은 스피노자의 철학이 실천되는 공동체다. 별에서 떨어져 나온 마음들의 집합소에 넘쳐나는 관계지향의 삶, 함께 사랑하고 기뻐하며 외부에 대해 열려있는 일상 속에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변용을 경험할 것이다. 고립된 섬처럼 파편화된 사람들은 타인의 신체와 결합하여 무수히 다양한 자아를 생성한다.

 

http://goham20.com/2021

 

철학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책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어렵지 않게 우리를 철학으로 유도한다는 점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소피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난해한 개념으로 넘쳐나 미리 질리게 하는 철학책들과 달리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입문서였다. 발신인 없는 의문의 편지는 “너는 누구니?”, “세계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와 같은 한 줄의 물음으로 시작된다. 퍼즐을 맞추듯 자연스럽게 철학적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게 한다. 청소년이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던 『소피의 선택』처럼 『눈물 닦고 스피노자』역시 접근성이 뛰어난 철학서다. 삶이 힘겨운 이 시대 젊은이들이 인문학에서 치유 할 수 있도록 소설의 형식으로 구성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두 사람의 언어의 불일치, 시대의 이해를 어설픈 매듭으로 연결하는 한계가 있지만, 아픔을 치유하는 공감할 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연결된다.『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우리를 에티카의 세계로 초대한다.

 

세상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마음 바꾸기는 쉽다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마음을 바꾸는 것은 위대한 혁명이다. 삶을 전복하는 일, 욕망의 배치를 바꾸는 것은 개인에게 우주의 빅뱅에 비견할만한 일이다. 욕망을 읽고 배치를 바꾸며 변용하는 것, 그 속에서 우리는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할 수 있다. 우선해야 할 일은 당연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 그 순간 우리는 파편화된 자아에서 벗어난다. 마주침에서 두려움 없이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경계를 허물어 지평을 넓혀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욕망을 함께 나눌 ‘별난 공방’이 도처에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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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1-2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접근성이 뛰어난 철학서..맞아요..^^
욕망의 재 발견....저는 이제 욕망하려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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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글쓰기』모리스 블랑쇼 지음, 박준상 옮김, 그린비, 2012. 12.

 

철학적 사유를 이끄는 글쓰기는 논리와 논거가 충실한 명징한 언어가 불가한 경계일 때가 많다. 블랑슈는 그의 내밀한 일상처럼, 여백과 침묵 속에서 사유의 단상을 구성한다. 형식 자체가 낯설어짐으로써, (죽음, 작품, 타자, 저자, 수동성, 밖이라는) 각각의 개념이 하나의 전체 맥락에서 흐트러지지 않는다. 철학과 문학이 확고한 개념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가능성을 의심하는 지점에 서 있는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비(도서출판b), 2012. 12.

 

가라타니 고진은 맑스주의를 재해석하여 새로운 논쟁으로 이끌어간다. 그는 맑스주의 사적 유물론에서 강조하는 ‘생산양식’의 자리에 ‘교환양식’을 대치하여 역사를 새롭게 기술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전망이라고 한다면, 현재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획일화되고 있는 세계정세의 미래를 추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이상 평전』김민수 지음, 그린비, 2012. 12.

 

삶과 작품이 명확한 분석으로 포섭되지 않는 문제적 작가 이상의 평전이 새롭게 나왔다. ‘열린 텍스트’라는 전제에서 때로는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이상의 작품에 대해서 저자 김민수의 『이상 평전』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여성편력, 퇴폐적 낭만주의, 외부자적 시선의 한가로운 산책으로 이해되던 이상의 생애와 작품은 ‘융합예술과 혁명성’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된다. 아마도 최첨단의 예술과 접촉하며 문화 생산자였을 새로운 이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공황 르포르타주』 이황 지음, 북퀘스트, 2012. 12.

 

‘공황 전문 기자’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한참 전에 한국일보 이황 기자는 40년을 공황 취재를 했다. ‘공황’은 바로 한국 현대사와 자연스럽게 연결었고, 그곳은 언제나 특종과 고발의 현장이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후일담까지 가득한 이 책을 통해서 2012년 대통령 선거의 선택과 정보 부재 (또는 편향)와 어떤 연결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휴먼 선집』최민식 지음, 눈빛, 2012. 12.

 

한국에 단 한 사람의 사진작가가 있다면, 나는 바로 ‘최민식’이라는 세 글자를 또박 또박 말할 것이다. 제 1세대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오로지 인간, 그것도 한평생 카메라에 포섭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그의 사진에는 잉여가 없다. 오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의 딸조차 “가난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아서 돈을 번다.”는 뼈아픈 검열을 했다고 하지만, 그의 시선은 모두 애정에 기반한다. 여전히 성실하게 셔터를 누르고 있는 최민식 작가의 글과 사진 속에서 깊은 힐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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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우울증』사이토 다마키 지음, 이서연 옮김, 한문화, 2012, 11

 -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현대인의 마음의 병, 신종 우울증을 해부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울증’이라는 자가 진단을 내린다. 자살을 시도했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끔찍한 범죄와 연루된 사람들 또한 우울증으로 오랜 은둔 생활을 했다고 고백한다. 도처에 널려 있으나, 누군가는 감기처럼 앓기도 하고, 누군가는 극단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십 년 전만 해도 평범하지 않았던 질병이 마치 감기처럼 이야기된다. 사람들은 모두 우울증의 전문가인 듯 이야기한다.

 

한때 우울증은 유럽처럼 선진국 사람들이 실존적인 문제와 삶의 권태로부터 야기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생존 자체가 목적인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우울증’은 왠지 사치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에게 마음을 돌보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쌍용 자동차 희생자가 스물세 명으로 늘어나면서, 더 이상 우울증은 개인의 심인적인 것으로 간과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을 불안으로 잠식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도피하여 운둔하게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병은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치유 할 수 있다. 인지 치료를 통해서 우울증을 없애려는 ‘과학적’ 노력은 계속되면서, 정신 질환 신약 또한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 그 원인이 있다면 우울증은 정신 질환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사라질 질병이 아니다. 정신의학자인 저자 사이토 다마키는 우울증이 개인적인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이 시스템에 의한 병리 현상이라면, 그 치유법 또한 달라질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신근영 지음, 북드라망, 2012. 11.

 

 융, 프로이드, 사바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데인저러스 매소드>는 융이라는 위대한 분석 심리학자를 이해하기 위한 단초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정신분석이 어떤 방식으로 환자에 접근하여 임상 치료를 하는지에 대하여 기초 지식을 갖을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세 명의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무의식이 사로잡히고, 자신의 욕망과 충동에 페르소나가 덧씌우는지, 그 과정에서 세 사람이 각 각 어떤 통찰을 얻게 되는지의 과정에 집중하다 보니, 융의 전체 삶을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 구스타프 융이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 집단 무의식을 발견하는 학문적 여정을 함께하기에는 다소 부족하였다.

 

반면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은 스스로 “걸어다는 정신병원”이었던 융의 삶 전체를 종횡무진 가로 지르며, 우리 모두 자기 삶의 치유자가 되어야 하고,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내 마음의 별자리인 ‘콤플렉스’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질을 알게 되고, 우리는 통합된 자기를 완성할 수 있다. 나를 알고,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면 드러난 의식만으로는 자기를 알 수 없다. 답은 우리 안의 무의식속에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분석 심리학은 힘을 갖는다.

 

『대동서,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김태진 지음, 북드라망, 2012. 11.

 

‘대동 세상’을 꿈꾸었던 중국의 정치사상가 강유위(캉유웨이)가 백여년 전에 썼던 책, 『대동서』와 그의 삶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모두가 하나 되는 ‘대동 세상’을 꿈꾸었던 강유위의 생애, 사상, 당시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적 실상을 바탕으로 그가 주장했던 유토피아의 실체를 탐색하는 과정이 한편의 여행 안내서로 구성되어 있다.

 

신진 정치학자 김태진은 이상사회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담고 있는 『대동서』를 현

재의 시점에서 새롭게 읽는다. 계약결혼, 보편 세계, 경쟁 거부, 100년 전 주장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점이 놀랍다. 밥벌이에 지쳐 삶을 산다는 것이 괴로운 - 불안하고 불온한 현대를 살아가는 - 사람들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앞의 북드라망에서 만든 ‘마이클’ 시리즈(나의 클래식 시리즈) 두 권의 책에 덧붙여 :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 라는 출판사의 기획처럼, 융 입문서로 훌륭한 책이다. 몇 년 전 수유 연구실에서의 짧은 경험 탓에 그들의 학문적 지향점을 힘차게 지지해주고 싶다. 공부는 친구와 함께, “대가 옆에서 대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지식 공동체로 코뮨을 이룬 수유너머의 도반이 쓴 책이라는 점, 이 책들에 대한 믿음은 거기에서 나온다.

 

『상처 주는 학교- 우리 교육의 희망과 대안을 찾아』, 커스틴 올슨 지음, 노승영 옮김, 한울림스페셜, 2012. 11.

 

『미국의 공교육 개혁 - 빛과 그림자』를 보면, 우리의 상황과 미국의 실태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 공교육을 개혁하기 위하여 미국에서 시행된 정책들이 어떻게 공교육의 그림자로 환원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 책의 연장선에서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상처 주는 학교- 우리 교육의 희망과 대안을 찾아』다. 공교육에서 희망과 대안을 찾으려는 교육 전문가 커스틴 올슨 (Kirsten Olson)은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정책이 어떻게 학교를 상처로 물들이는지를 알아차리고 치유할 것인지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간다.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이 도입되면서, 교육은 노골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흡수되었다. 참된 배움과 인성을 기르기 위한 전인 교육은 사라지고, 정부는 평가 국가로서 자리매김했다. 학업성취도, 학교 평가, 책무성, 교원 평가 등이 등장하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기쁨이 사라져가고 있다. 교실은 학습된 무기력으로 학습 동기를 잃어버린 학생과 존경이라는 상징 자본 없이 입시를 준비하게 하는 교사의 만남의 장이 되어 가고 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은 사라지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비틀린 관계가 학교를 지배하고 있다.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책이다.

 

 

『뇌과학, 경계를 넘다- 신경윤리와 신경인문학의 새 지평』, 신경인문학 연구회 지음, 홍성욱, 장대익 엮음, 바다출판사, 2012. 11.

 

『뇌 과학, 경계를 넘다』는 뇌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이 함께 바라본 미래학에 관한 연구서다.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비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윤리적, 법률적,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뇌 과학은 뇌를 사회적 관계나 제도에서 분리하여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뇌 과학자 뿐 아니라, 의학, 법학, 철학, 인지과학, 과학기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분야다. 뇌 과학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의 생각과 통섭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는 학문 영역이다.

 

‘뇌에 문제가 있는 범죄자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식물인간에게 인격이 있는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약을 먹으면 안 되는가?’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등의 물음은 뇌 과학적 지식만으로 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뇌 과학, 경계를 넘다』는 다양한 정책과 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뇌 과학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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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1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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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언 리더 지음, 배성민 옮김 / 까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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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보다 자유롭지 못한 정신병원을 다룬 영화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1975)는 정신병자로 호명되는 순간, 주체적 결단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권위 있는 의사는 정상과 비정상의 판별 기준을 제공하고, 그들을 일상생활에서 격리하고, 치료라는 미명하에 죽은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존재를 만들어간다. ‘정상인’으로 만들겠다고 끊임없이 주입되는 주사와 알약, 뇌수술은 그들이 정신병자임을 각인하는 도구가 되고,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공포가 되는 상황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 주인공 맥머피(잭 니콜슨)가 요구하듯 - 정신병원을 탈출하기 위한 “산처럼 큰 자신감”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낚시 여행이다.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는 정신병자에게 가장 해악한 곳이 어쩌면 정신병원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미셸 푸코(M. Foucault)는 그의 책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에서 근대 권력이 어떻게 사회를 통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분법의 가치 기준은 ‘이성’이라는 기준에 대립 항으로 ‘비이성’을 세우고 이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가치를 배제하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가치 기준을 적용한다. 정신병원은 감옥과 마찬가지로 보다 효율적으로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유용한 공간이다. 광인을 추방하고 감금해온 장소인 병원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억압적 수단의 필연적 산물이다. 정신병원은 감옥과 별로 다르지 않은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수형자(정신병자)의 신체는 처벌을 통해서 유순하고 순종하는 신체가 된다. 끊임없는 감시와 규범화 된 제재를 요구하는 훈육 방법이 동원되고, 얼마나 정상(!!)적인 생각으로 변화하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인터뷰와 시험이 계속된다.

 

 

 

 

 

꽃니, 박사, 그리고 박대령 아저씨.

 

개그콘서트 한 꼭지인 허경환의 <거지의 품격>을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든다. 우선 개그우먼 김지민이 정상인이 거지들을 대하는 태도다. 예의와 염치를 모르는 거지들을 향해서 “거지 주제에...”라는 말을 던지며 화를 내지만, 그들을 배제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고 거지들을 대하며, 궁금함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대가로 “500원”을 내준다. 참 낯선 풍경이지만, 이십여 전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덤볐던 작품 제목이 <꽃니와 박사>였다.

우리 마을에 5일 장이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꽃니’라는 실성한 여자가 구걸을 하기 위해서 장에 나왔다. 십 원짜리 동전 하나에 순하게 웃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친구들과 함께 “화천리 꽃니”라고 외치며 뒤쫓아 다녔고, 다리를 절던 그녀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거기에 도덕이라는 판단 기준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어쩌다 꽃니가 5일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그녀가 궁금하고 걱정되었다. 그녀의 이름이 왜 꽃니인지 훗날에야 알았다. 꽃니가 살던 동네가 화천리, 우리말로 꽃 내, 꽃처럼 아름다운 시냇물이 흐르는 마을이다. “꽃 내에 사는 여자” 는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꽃니가 되었다. 내 나이 스물이 넘어서 글 밥을 벌어야겠다고 작정했을 때도, 어릴 때 친구처럼 놀았던 꽃니에 대한 기억이 떠나지 않았다. 친구들이 예쁜 옷을 사 입고 오면, 나는 “꽃니 같다.”고 말해준다. 친구들은 꽃니가 누구냐고 묻고, 나는 우리 동네에 살았던 사람만 아는 여자라고 답한다. 유년의 기억에서 절대 기울 수 없는 그녀가 자주 그립다.

 

겨울 장은 짧은 해 때문에 일찍 파했다. 장꾼들이 다음 장으로 떠나면서 5일 후에 필요한 물건들을 비밀 포대와 천막으로 묶어 놓은 짐들이 장에 놓여 있다. 그 사이에 구덩이를 파고 동사(凍死)를 면하려는 거지들이 모여 들었다. 겨우 내 한 곳으로 찾아드는 거지들 중에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박사’라는 호칭으로 불린 남자가 있다. 냄새나고 더럽고 무섭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번 겨울에 얼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밥을 챙겨주었다. 저렇게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왜 미쳤을까, 분명 애잔한 사연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 비슷한 마음으로 경외감까지 생겼다. 정말 공부를 많이 했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 영화 의 수학자 내쉬처럼, 박사에게도 그런 천재성이 깃들여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와 다른 그의 정신세계는 신비화되면서 아름답거나 혹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만들어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정신병자 중에는 박대령 아저씨가 있다. 종대 아저씨라고 불리기보다는 ‘박대령’으로 불렸다. 군대 가기 전까지 홀어머니와 둘이 사는 효자 아들이었는데, 60년대 말에 군대에 가서 매를 맞고 미쳤다고 한다. 화장실 밖에 모자를 벗어 두고 볼일을 보고 있던 종대 아저씨는 비상 점호 사이렌이 울리자 급하게 나왔고, 자신의 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아무 모자나 쓰고 점호에 섰는데, 하필 대령 모자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선임들에게 많이 맞았고, 결국은 조기 제대를 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박종대라는 이름 대신 그를 박대령이라고 불렀다. 한동네에서 나고 자랐던 마을 사람들은 꽃니, 박사와 종대아저씨를 다르게 느끼게 했다. 아저씨는 친인척처럼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밥을 먹었고, 돌아가실 때까지 기세등등했다.

 

생산적이지 않은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이제 노골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살았던 정신병자들은 이제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모든 정신병이 배제되고 분리될 만큼 정신병은 끔찍한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오랜 세월 동안 ‘조용한 광기’는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했다. 이처럼 은근한 형태로 우리 주변에 내재해 있는 대부분의 정신병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책이 바로 대리언 리더(Darian Leader)가 쓴 『광기』다. 정신분석가인 대리언 리더는 프로이트 분석연구 센터의 일원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기대어 정신병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그는 에메, 늑대인간, 해럴드 시프먼의 사례를 통해서 정신병을 어떻게 진단하고, 작업하는지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대리언 리더는 정신병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식이라고 본다. 정신병이 발병 원인은 문화적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진다. 따라서 생물학적인 기질만을 정신병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일례로 우리는 부모에게 유전되는 생물학적 기질만을 물려 받지 않는다. 부모의 양육 방식이 정신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변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요인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것이다. 부모의 양육 방식을 결정하는 요인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결함’일 수 있다. 또한 히스테리, 강박과 같은 억압의 기제는 방어의 형태이다. 기억상실과 대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제다. 편집증과 정신분열 역시 생존을 위한 무의식적 선택이다. “편집증자는 타자를 온전하게 만들려는 열망을 품고, 정신분열증자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125쪽). 정신병자에게 타자는 너무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위협적인 외부이다.

 

치료자는 “소외된 주체의 비서”

 

“정신병을 대하는 태도가 정신병을 다루는 방식을 형성했다.”는 대리언의 말처럼, ‘최신’이라고 믿는 정신병 치료법은 우리가 정신병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다름을 용인하지 않는 방식은 정신병자를 우리와 다른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치료해야 할 질환을 가진 비정상인으로 규정한다. 정신병을 치료하는데 사용할만한 간단한 기법이나 공식이 없고 case by case로 접근해야함에도 정신병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럼에도 성공적인 치료의 기저에는 환자와 같은 수준에 서려는 치료자의 노력의 있다. 환자와 함께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치료자는 권위를 부리지 않고, 환자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주체와 객체의 이분화된 위치를 거부하고, 정상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환자의 상태를 개선한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치료자에게 요구되는 태도의 숨은 의도를 지적한 것도 매우 유의미하다. 치료자는 남을 돕고 치유한다는 자기 환상을 점검해야 한다. “인간을 돕는다.”는 말은 세 개의 동기를 숨기면서도 지시할 수 있다. 첫째, 환자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려는 동기를 숨기면서도 지시할 수 있다. 둘째, 환자를 지배하고 조종하여 미리 규정된 행동방식에 따르게 하려는 동기를 숨기면서도 지시할 수 있다. 셋째,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를 벌함으로써 자신은 환자와 다르다고 생각하려는 동기를 숨기면서도 지시할 수 있다.”(393쪽) 문제는 이러한 치료자 자신도 이성적으로 잘 모르는 이러한 의도를 정신병자는 너무나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치료자는 “소외된 주체의 비서”라는 라캉의 표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 책은 ‘광기’ 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성찰하게 한다. “미친 것과 미치는 것이 다르다면, 우리는 광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선에서 미치는 과정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사람이 정신병적 구조를 가지지만, 정신병이 생기지 않은 채 살아간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219쪽) “구멍이 열린다.”는 지점까지 가지 않을 때, 우리는 미치기 전의 잠재 상태를 유지한다. 『광기』는 - 마치 다른 세계의 언어처럼 - 이해의 지점에 닿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수십 걸음 앞으로 달아나 있는 라캉을 이해하기 곤혹스런 독자들에게 제법 유용하다. 라캉의 정신분석으로 가기 위해서, 또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데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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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배제와 과잉, 그 역설의 세계에 관한 사회학 보고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동녘, 2012. 8.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사이에 두고 두 남녀가 앉아서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한 사람이 커피를 가지러 간 사이에도 남은 한 사람은 기척이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식당에 어린 아이 세 명이 앉아 있다 부모님이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에도 세 아이는 색색의 닌텐도 기기를 들고 게임에 집중해 있다. 부모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아이들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으리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지난 주 금요일 출장을 갔다가 세미나실 서랍에 핸드폰을 두고 왔다. 주말과 주일의 스케줄은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나기로 한 약속이 취소되었다는 문자를 받지 못해서 두 시간을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고, 누구도 만나지 못한 채 급한 연락이 올까 염려스러워서 조바심으로 이틀을 보냈다. 앞서 이야기한 이 모든 사례가 모두에게 낯설지 않으리라. 우리를 연결하는 접점이 사람과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사람과 기기를 사이에 무수한 (익명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반유대 캠페인의 여파로 국적을 박탈당한 채, 영국에 정착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Zygmunt Bauman)은 “무료함 속에서 결실을 일구는 법”을 잃어버리고, 지루함과 지속적인 것을 참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마흔 네 통의 편지를 보낸다. 몇 년 후면 구순이 되는 노학자는 여전히 촌철살인의 언어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순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저마다 개성 있는 삶을 살고 꿈꾸지만, 경쟁은 평준화를 조장한다. 전 지구적인 자본의 낚시질에서 자기 세계를 주장하며 주체로 살아남기에 개인은 너무도 무력하다. 현대인은 가볍게 공간을 넘나들며 유목하며 살아가는 듯하지만, 그것은 자본이 기획하는 마케팅에서 한 발작도 나아가지 못한 선택일 때가 대부분이다. 홈 패인 공간을 벗어난다는 것은 비행기에 탐승해서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 곳곳에 발자국을 찍는 일이 아니다. 시대를 지배하는 에피스테메(epistēmē),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담론을 위반하며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감정 소모 없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필살기 - <인 디 에어>(Up In The Air, 2009)

 

제이슨 라이트먼트가 연출한 영화 <인 디 에어>(Up In The Air, 2009)에서 주인공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1년 365일 중에서 43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공항에서 보낸다.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미국 최고의 베테랑 해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기 위해서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은 그의 인생 설계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지상에 천척하지 않은 채 그가 가진 유일한 목표는 항공사에서 발급하는 탑승 시간 마일리지 카드의 천만을 채우고, 세계에서 일곱 번째 - 금으로 만든 - 플래티넘 카드를 받는 것이다. 허공을 딛고 사는 듯한 이 황당한 삶의 목표를 가진 라이언의 모습은 유동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메타포다. 뜨겁게 부딪히는 핫(hot)한 구체적인 삶을 거부하고, 감정 소비를 비난하는 태도를 비난하는 쿨(cool)한 삶을 추구한다. 철저하게 보여줄 것과 감출 것을 구별하고, 감정 소비 없이 인스턴트 관계와 방법으로 외로움과 고독을 잊고자 하는 유동하는 사회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정치가 점유했던 권력이 자본으로 이동하면서, 국가는 감시와 처벌 평가 기구로 전락했다. 1997년 IMF와 이후 ‘88만원 세대’의 성장을 우리 사회가 경험했듯이 국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었고, 모든 실패의 책임이 개인의 어깨에 떨어지고 있다. 바우만은 액체 근대는 삶의 실제에서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다고 본다. ‘가속’의 개념으로 공간과 공간 사이를 가로 지르며 둘 사이의 거리감이 사라진다. 시간이 공간 보다 우위를 점하면서, 공간에 따라서 경계를 이루었던 견고한 삶은 무너지고, 이동의 속도와 이동의 수단은 권력과 지배의 가장 주요한 도구로 격상되었다. 더 값싼 노동력을 있는 - 권리 주장을 덜 하는 -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다국적 기업과 자본은 국경의 경계를 넘어 가볍게 돌아다니는 것이 힘의 자산이 되었다. 이윤 창출은 견고한 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유지했던 신뢰가 아니라, ‘생산품의 순환과 재활용, 노화와 폐기와 대체 과정에서의 경탄할 만한 속도“에 있다. 오래된 것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신상(품) 소비는 능력을 입증하는 중요한 의례가 되었다.

 

불확실성으로 유동하는 사회

 

사랑이 넘실거리던 자리에는 욕망이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이 매개가 되면서 욕망을 해소하는 일회성 만남이 잦아진다. 신용카드는 소비의 자유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여성의 몸은 성형외과 의사의 경작지가 되었으며, 의사들은 질병의 치료자가 아니라 - 약을 필요로 하도록 잠정적 환자를 만드는 - 질병 홍보 역할을 맡게 되었다. 건강은 복지 정책이 아니라, 부의 소유 여부와 비례 관계를 형성했으며, 문화는 백화점의 상품처럼 소비재로 취급되었다. 배우는 일은 즐거움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의 생존방식이 되었다. 교육은 급속한 변화에 뒤처지면 안 될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사무직원이 화장실을 청소하는 미화원 보다 거의 열배 가까운 임금을 받고, 키보드를 만드는 제3세계 노동자보다 “백배나 많은 임금”(194쪽)을 받고 있다. 공동체의 버팀목이었던 탄탄한 유대는 전지구적인 자본의 힘으로 해체되고 있다. 유동의 시대는 과잉이기도 하지만, 배제이기도 하다.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가 창출 되고 있으나 실업이 급증하고, 영세 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SNS는 국경을 해체하고 세계를 단일 공간의 무정부주의로 만들었으나,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프리랜서 고소득자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반면,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다.

 

여전히 미완인 근대의 기획

 

근대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발전을 통해서 개인을 평등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근대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바우만은 그러한 근대를 지연하고 있는 것이 ‘유동하는 사회’라고 얘기하고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유동하는 액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낯설게 보는 것이고,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아와 독백 형식의 대화를 나누는 일상의 회복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외투를 벗고, 견고한 강철 전투복이 필요한 시간이다.

 

고독을 회복해야 할 시간

 

바우만의 편지는 테이블과 찻잔을 앞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서, 삶의 끝자락에 더 가까이 가 있는 노(老)학자의 말씀을 듣고 있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가까운 지인을 앞에 두고 얘기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사적 삶과 취향쯤으로 가볍게 지나쳐도 괜찮을 것 같은 생활 세계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은 우리가 일상을 얼마나 섬세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사회학적 토대에서 만들어내는 적절한 은유가 빛이 나는 책이다. 우리와 다른 공간에서 쓰인 책이라고 볼 수 없는 깨알 같은 즐거움도 있다. 헐리웃 대중영화처럼 치부할 <블레어 워치>와 <로니의 침묵>을 유동사회의 텍스트로 가져온 점은 거장과 함께 동시대에 같은 것을 경험하는 유쾌함을 선물한다.

 

아쉬움은 편지 형식에서 필연적으로 수반할 밖에 없는 문제점이다. 2년 동안 2주마다 썼던 편지 모음이다 보니 주제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쟁점이라는 측면에서 거대 담론이 바우만 개인의 생활 세계와 중첩하면서 간결한 글쓰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으리라 짐작한다. 44통의 편지는 방대한 주제에 걸쳐 있기 때문에 장과 장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서 구조화가 되어 있지 않다. 파편화된 글들은 ‘고독’이 필요하다는 하나의 주제로 묶이기에는 다소 산만하다. 책 제목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까닭에 결실을 생산할 수 없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핵심 메타포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겠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액체 근대』(강, 2009)를 읽었던 독자라면,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바우만과 담소하며 사색의 길을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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