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평점 :
『눈물 닦고 스피노자』 신승철 지음, 동녘, 2012. 11.
21세기 대한민국의 83만원 세대, 김철수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스피노자, 그가 왔다.
고시원의 공동 화장실의 깨진 거울을 사이에 두고,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서 ‘철학자의 철학자'가 될(된) 스피노자가 백수 청년 철수의 고민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신간 『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그들의 불가능한 만남에서 출발한다. 스피노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 백수, 입시지옥을 통과해야 하는 여고생 주변에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 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 조울증,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을 각각의 챕터로 한 스피노자의 철학 강의는 상담과 치유의 시간으로 전환한다.
스피노자는 철학 상담 처음부터 답을 제시한다. 정신질환은 이성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이 자리한 곳의 배치를 바꾸고, 궤도를 수정할 수 있도록 “관계망에 대한 사유” 능력을 키울 때 우리는 정신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욕망으로 존재와 세계를 재구성할 것을 권유한다. 무의식적 욕망을 기꺼이 수용하고, 욕망의 주인이 될 것을 간절하게 요청한다. “스스로 창발(創發)한 욕망은 삶을 구성하고 세계를 재창조하는 활동력”이 된다. 나의 무의식을 ‘알아차림’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주변과 두려움 없이 접촉하고, 횡단하며, 변용하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구조적 예속에서 벗어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트랜스포머가 될 수 있다.
‘철학공방 별난’에서의 삶
『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생산한 신승철 선생의 철학연구소 이름이 ‘별난’이란다. 욕망(desire)의 어원 “별에서 떨어져 나온 마음”에서 가져온 공방의 이름이 인상적이다. 그 명칭에서 저자의 삶이 이미 스피노자적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6~17세기 가장 코스모폴리탄이었던 경제 중심지 네델란드의 암스텔담에 살았던 스피노자는 부유함을 포기하고 겸손한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 한평생 철학을 했다. 도시는 익명성을, 소박함은 자유와 고독을 선취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별난’의 삶은 스피노자의 철학이 실천되는 공동체다. 별에서 떨어져 나온 마음들의 집합소에 넘쳐나는 관계지향의 삶, 함께 사랑하고 기뻐하며 외부에 대해 열려있는 일상 속에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변용을 경험할 것이다. 고립된 섬처럼 파편화된 사람들은 타인의 신체와 결합하여 무수히 다양한 자아를 생성한다.
http://goham20.com/2021
철학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책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어렵지 않게 우리를 철학으로 유도한다는 점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소피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난해한 개념으로 넘쳐나 미리 질리게 하는 철학책들과 달리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입문서였다. 발신인 없는 의문의 편지는 “너는 누구니?”, “세계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와 같은 한 줄의 물음으로 시작된다. 퍼즐을 맞추듯 자연스럽게 철학적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게 한다. 청소년이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던 『소피의 선택』처럼 『눈물 닦고 스피노자』역시 접근성이 뛰어난 철학서다. 삶이 힘겨운 이 시대 젊은이들이 인문학에서 치유 할 수 있도록 소설의 형식으로 구성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두 사람의 언어의 불일치, 시대의 이해를 어설픈 매듭으로 연결하는 한계가 있지만, 아픔을 치유하는 공감할 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연결된다.『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우리를 에티카의 세계로 초대한다.
세상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마음 바꾸기는 쉽다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마음을 바꾸는 것은 위대한 혁명이다. 삶을 전복하는 일, 욕망의 배치를 바꾸는 것은 개인에게 우주의 빅뱅에 비견할만한 일이다. 욕망을 읽고 배치를 바꾸며 변용하는 것, 그 속에서 우리는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할 수 있다. 우선해야 할 일은 당연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 그 순간 우리는 파편화된 자아에서 벗어난다. 마주침에서 두려움 없이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경계를 허물어 지평을 넓혀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욕망을 함께 나눌 ‘별난 공방’이 도처에 넘쳐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