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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은 삶의 방식을 선택한는 우리의 힘!!!

 

『죽음이란 무엇인가』셰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2012. 11.

   

체르노빌 핵발전소(원자력 발전소)과 비교해서 네 배 이상의 피해를 입혔던 후쿠시마 사태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지리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역시 피해 반경을 벗어나 있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대재앙 앞에서 우리는 얼마만큼의 성찰을 구체적으로 삶으로 끌어 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이 일본인의 삶에 미친 피해를 알기 위해서는 사태 이후, 재난 지역의 인공 유산과 심장 발작의 전후 증감률을 살피면 된다. 핵이 인체에 미치는 가장 큰 피해는 암이지만, 십년 이상 진행되어야 나타나는 질병이므로 지금 당장 파악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일본의 보수 정부는 핵폭발의 피해를 정확히 발표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행에서 만난 일본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러한 사태에 대한 일본인의 변화가 의외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내수가 위축되었지만, 가장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린 엄청난 인재 앞에서, 오히려 일본 국내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예기치 않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것으로 그들의 패러다임이 전환한 모양이다. 집단 죽음이라는 대재앙이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삶과 죽음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있지만, 많은 철학은 삶을 철학하는데 죽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예일대학에서 17년째 최고의 명 강의를 하고 있다는 셸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을 미화하지 않고, 이성과 논리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철학으로 끌어 온다. 형이상학과 가치론으로 죽음의 본질을 탐색하여 어떻게 삶을 살아야할지의 성찰을 이끌어낸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기 위한 단 하나의 전제는 우리는 모두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은 나와 내 인격의 끝”

 

형이상학자이든 유물론자든 우리는 누구나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케이건은 종교 영역 밖에서 죽음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삶과 죽음, 영혼·육체와 인격, 죽음의 본질, 죽음과 삶의 가치, 죽음에 대한 태도, 자살 등에 대하여 14 강론으로 구성한다. 먼저 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육체와 영혼이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이원론과 그 둘은 함께 존재한다는 일원론(물리주의)의 두 가지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이원론자들은 육체의 사멸 이후 존재하는 영혼을 믿지만, 물리주의자는 정신과 영혼을 분리한다. 육체의 한 형태로서 정신은 존재하지만,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케이건은 실제로 “삶이 끝난 자리에서 삶은 시작될 수 없다.”(19쪽)고 주장한다. 그는 (죽음 이후 다시 삶이 시작된다는) 그런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죽고 나서 몸이 부활하거나 인격이 이식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죽음은 종말이고, 인격의 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245쪽).

 

죽음의 양가성

 

죽음은 삶의 축복과 선물을 누릴 수 없는 상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가장 나쁘다. 꽃 피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죽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야기한다. 싹 틔우지 못한 죽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슬픔과 상처를 가져 온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 역시 그렇다. 살아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결별해야 하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반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도피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할만한 측면이 있다. 삶 그 자체가 의미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삶은 각기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고, 십 수 년을 병실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대소변도 해결할 수 없는 환자에게 삶 그 자체가 의미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 있게 답할 수가 없다. 티끌만한 희망도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삶은 죽음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남는다.

 

죽음은 몇 가지 전제를 가진다. 우리는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아직까지 영생을 누리고 있는 예외를 누구도 본적이 없다. 모두 죽는다는 전제에서도 죽음이 한없이 무거운 까닭은 얼마나 살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또한 반드시 삶의 끝에 있으면서 짝패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성찰은 삶을 바꾸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다양한 자본과 다양한 층위를 이루고 있는 인간 사회에서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 모두 한번 태어나서 반드시 한번은 죽게 된다는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죽게 된다면 제한 상황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중요한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합리적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찬 일을 선택할 것이다. 적당한 목표를 설정하고 일상에서 얻는 기쁨에 집중할 수도 있고, 실패 가능성은 높지만 높은 성취 목표를 위해서 일상의 사소한 기쁨을 포기할 수도 있다. 앞의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것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일반 명제를 뒤집어 생각하기를 권한다. 가령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명제가 당연하지 않다. 상황이나 심리적인 면에서 무수한 예외들이 존재한다. 예견된 죽음은 임종에 앞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 둘러 싸여 있다. 또는 동반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타인을 위해 대신 죽음을 맞이한다. <파이돈>의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셔야하는 상황을 알고도 제자들과 철학 논쟁을 벌였고, 흄은 죽음 직전까지 병상에서 사람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상황이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누구나 홀로 죽는다는 것은 참 명제가 될 수 없다. 그는 수준 높은 철학 용어에 사로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보았을 법한 죽음의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듯 서술해나간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죽음에 대한 결론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죽음에 접근하기 위한 입문서다. ‘죽음’은 철학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에 대한 장황한 서술이 아니다. 예일대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철학 강좌였음을 기억하고 책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책은 강의를 위한 강의록처럼, 책을 읽다보면 대화를 나누듯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새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목표 설정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자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며 죽음에 대한 일반 명제를 기각해나가는 저자의 분석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넘어 서서 섬세하고 유쾌하기 까지 하다. 단, 죽음에 대하여 확실한 철학적 신념을 원한다면, 미진할 것이다. 이미 죽음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와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더한 이들에게 이 책의 효용성은 매우 떨어진다. 다만 대학생을 대상으로 했고, 강의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좋은 철학의 기준이 참을 수 없는 ‘무거움’ 그 자체에 있지 않다면,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철학서로써 충분한 미덕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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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1-2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시안에서 죽음에 대한 네 가지 시선에 대해 자리가 마련된다고 알고 있어요.
가서 듣고픈데...죽음, 이 책을 통해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에요.
애써 피하지 않아도 되고...애써 도망 갈 필요도 없고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