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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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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민, 대중 민주주의에서 개인 민주주의로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메튜 A. 크레슨,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후마니타스, 2013. 1.

 

인터넷 방송의 시민기자로 시위 현장을 생방송했던 진중권은 자신을 네티즌의 ‘아바타’라고 표현했다. 네티즌을 대신한 누군가가 위험천만한 시위 현장을 누빈다. 그러다가 경찰의 진압에 다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그를 위한 모금 운동이 이루어진다. 마치 게임을 하다가 자신의 아바타가 쓰러지면, 캐쉬를 지급하는 것과 흡사한 방식이다. 민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시위는 ‘민주주의’라는 득템을 위한 게임처럼 실시간 이루어진다.

 

이러한 정보 사회의 문화적 현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분명히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강풀 원작 <26년>은 시민이 참여한 모금 운동이 없었다면 영화로 제작될 수 없었고, 선댄스 대상을 수상한 오멸 감독의 <지슬> 또한 의식있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선 결과를 떠나서) 김어준, 주진우, 김용만, 정봉주의 ‘나는 꼼수다’는 전 세계 팟 캐스트 다운 순위 1위를 할 만큼 진보의 지지를 받았다. 이렇게 시민의 참여가 꾸준히,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라고 말할 수 있는가?

 

■ 시민에서 소비자로, 대중 민주주의에서 개인 민주주의로, 실질적 법치주의에서 형식적 법치주의로 다운사이징한 민주주의

 

저자 매튜 A. 크레슨과 벤저민 긴스버그는 개인 민주주의, 형식적 민주주의, 소비자, 고객으로서 시민의 권리는 지켜지고 있다는 대다수의 생각에 동의한다. 다만 저자들은 참여가 가능하고, 참여할 줄 아는 ‘대중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공적 존재로서 시민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치밀한 분석한다. 저자들은 독립혁명 이후 미국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민주주의가 왜 다운사이징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이번 대선을 비롯한 한국의 정치 행태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19세기 국가와 정부는 시민들의 지지와 참여에 의존하며 대중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나갔다. 엘리트는 비엘리트를 통해서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정부의 운명은 시민이 제공하는 세금 위에서, 시민의 지지에 달려 있었다. 정당은 선거 동원으로 정당성을 부여 받았다. 차티스트 운동으로 얻은 ‘보통 선거’의 역사가 아직 백년이 체 되지 않은 21기, 선거권의 피가 아직 채 마르기도 전에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선거 참여를 ‘의무’로 하자는 주장까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저자들은 정부와 정치 엘리트들이 더 이상 시민의 참여를 바라지 않고 있는데,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능동적이 참여 없이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지식과 정보를 소유한 시민 또한 정치 엘리트를 통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냈다. 문화자본과 사회관계 자본을 소유한 시민들은 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냈다. 돈만 있다면 소송을 통해서 능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들에게 정치적 연합은 시간과 비용 낭비일 뿐이다. 합리적 선택 이론이 지지를 받으면서, 시민은 이제 사익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되었다.

 

문제는 “정치인의 수사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시민”이다. 정치 엘리트도 아니고, 권력을 소유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시민들은 점점 수동적이 되어 참여의 공간을 잃게 되었다. 중하층 시민들의 참여와 동원이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작동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동원되지 않으면 참여조차 불가능한” 이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변호사와 로비스트가 우수 고객의 권리를 챙겨주지만, 가난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해주던 사회적 장치는 사라지고 있다.

 

대중민주주의와 정치적 동원은 수동적인 방식의 참여로 이해된다. 저자들은 강제적인 힘이 참여할 수 없는 가난한 시민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치열한 논쟁이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스스로 자각하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결합하면서도 자신의 개인적 가치를 구현하는 ‘다중’과 비교하면 ‘대중’은 참여 보다는 동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정치 엘리트 없이 자발적인 참여가 불가능하다. 왜곡된 정보의 편향성, 또는 생계유지의 어려움으로 정치 참여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과 자발적인 정치 참여를 동등하게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엘리트주의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듯하다.

 

연애계의 가십을 이야기하듯 정치적 사건을 파편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 사건이 과거와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 지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정치는 우리의 삶과 분리된 하나의 사건처럼 도처에서 이야기될 뿐이다. 그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 정치 엘리트와 정당 정치인의 필요에 의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 편향되지 않은 정보를 제공 받고, 공동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동체에 참여하여 자신의 권리 뿐 아니라, 타자의 권리를 위해 ‘참여’할 수 있는 감수성을 계발해야 한다. 물론 쉽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시간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것만이 우리가 가야할 길임을 역사에 오롯이 새겨두었다. 시민, 민중, 대중, 다중이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호명될 때, 그들의 미래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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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순간 속 영원』 정진배 지음, 문학동네, 2013. 02.

 

 

 

 

 

 

 

 

 

 

 

 

 

장자를 읽는 순간 현실과 밀착되어 느끼는 삶의 무게는 갑자기 반으로 줄어든다. 백년을 채 살지 못하는 우리의 협소한 관점과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이다. 일상과 거리를 두고 메타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 거기에서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된다. 나와 세계를 ‘응시’함으로써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생각을 바꾸는 것은 우주를 것에 비견할 만하다. 지금 우리에게 장자 철학이 필요한 까닭은 우리에게 구별 짓기를 멈추고 경계를 넘었을 때 만날 수 있는 자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메추라기는 붕새의 경지를 엿보지 못하나, 붕새 또한 메추라기의 경지를 알지 못한다.” 문학동네의 '위대한 순간' 시리즈는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이 함께 펴낸 인문교양 총서로 기획되었다.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기묘한 미술로 삐딱한 철학 하기』 조광제, 전호근 지음, 알렙, 2013. 03.

 

 

 

 

 

 

 

 

 

 

 

 

 

 

미술 전시회에서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여전히 “잘 그렸다.” “색감이 좋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을 보면, 현대 미술의 철학적 난해함을 이해하고 그림과 마주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시대를 전복시키는 미학적 사유로 작품을 생산한 예술가, 그들의 작품 속에서 전위로써의 새로운 사유 방식을 구축한 철학자들. 그들은 한 쌍의 짝패를 이루고 작품 해석을 창조한다. 아트&스터디에서 지속적으로 철학 강의를 하시는 훗설의 대가 조광제 선생님의 새 책이라서 반갑기만 하다. 고흐의 ‘구두 한 켤레’와 하이데거,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푸코, 베이컨의 ‘자화상’과 들뢰즈, 아방가르드와 발터 벤야민 & 메를로퐁티의 만남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현대 미술은 재현(representation)을 버리고 자기 지시성을 선택했다. 예술 작품을 언어화하는 철학자가 없다면 예술은 존재 가치를 잃게 된다. 현대 미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진짜 눈’을 가진 철학자들의 분석을 읽는다는 점에서 필독서가 될 책이다.

 

『정치가 떠난 자리』김만권 지음, 그린비, 2013. 02.

 

 

 

 

 

 

 

 

 

 

 

 

 

 

대선 이후, 더 이상 공중파 뉴스를 볼 수 없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결과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원인을 분석한 내용은 많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진보 정당을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을 바라보면서, 혹시 그들의 모습이 미래의 우리가 되지는 않을지 불안한 마음 또한 새록새록 자라난다. 그럼에도 이념이 대립된 채 오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국가의 진보가 여전히 50%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우리가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단서다. 정치 세태에 비관적으로 돌아선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함께 다음을 준비하는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보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진보 내부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한 내부자적 시선의 고민과 성찰을 담고 있다. 새로운 단초를 마련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단단한 책이다.

   

『인간과 초인』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이후지 옮김, 열린책들, 2013. 02.

   

 

 

 

 

 

 

 

 

 

 

 

 

 

 

‘바라봄’이 좋은 봄(spring)은 서정이 필요한 계절이다. 니체를 흡수한 버나드 쇼의 걸작과 함께 한다면 격조 있는 일상과 만나게 될 것이다. 니체의 초인은 ‘생명의 힘’으로 쇼의 희곡에서 살아난다. 「인간과 초인」은 멜로드라마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니체의 철학을 담고 있다. 만일 니체의 위버멘쉬(초인)이 성(性)과 결혼, 정치, 자본주의, 여러 유형의 인간과 여성을 만났을 때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할 것인지를 상황극 속에 담고 있기 때문에 니체 철학에 매료되었던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건축을 위한 철학- 세상에 단 하나뿐인』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컬처그라퍼, 2013. 02.

 

 

 

 

 

 

 

 

 

 

 

 

 

 

철학이 건축과 만났다. 이 책은 사적 공간으로써 거주 수단을 넘어 서서 공공재로 일상을 담아내는 사회적 공간이 되고 있는 건축을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건축은 인문학의 기초 위해 세워져서 문화적, 역사적, 환경적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공공 건축에 한 평생을 바친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의 마지막 전시회와 다큐를 보고 난 이후, 건축에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가는 ‘자기 언어를 지닌’ 철학자여야 한다. 철학이 언어로 집을 짓는다면, 건축은 벽돌로 철학을 쌓는다. 『건축을 위한 철학- 세상에 단 하나뿐인』은 건축물이 제작된 사회적 맥락을 철학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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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知의 향연』노엄 촘스키 지음, 앤서니 아노브 엮음, 이종인 옮김, 시대의창, 2013. 1.

 

세계화를 주도하는 팍스아메리카의 심장에서,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는 정의롭지 못한 권력과 자본에 날카로운 메스를 가한다. 전 세계가 미국화한 자본주의에서 미국은 버트런트 러셀, 노엄 촘스키, 에드워드 사드, 마이클 영과 같은 실천하는 지성이 있기 때문에 보수화로 선회하지 않고, 나선형으로 우회할 수 있는 진보의 힘이 공존한다.

그동안 접해왔던 촘스키 책의 대부분은 사회 비판과 관련한 책이었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 하는가』, 『촘스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과 기존의 책들은 사회개혁에 관련한 책이었다면, 이번에 출판된 『촘스키, 知의 향연』은 언어학자로서 촘스키의 업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상식적 수준으로 ‘변형생성문법’을 이해하고 있는 나에게 『촘스키, 知의 향연』은 그의 사상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오십 여 년에 걸친 촘스키의 글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글을 선별하였다고 하니, 언어학자와 정치평론가로서의 서로 다른 영역의 촘스키를 함께 만나볼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칼 구스타프 융 지음, 김세영 옮김, 부글북스, 2013. 1.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데인저러드 메소드>는 칼 구스타프 융과 그의 내담자였던 사바나 슈필라인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우리 안의 선, 악, 그림자를 드러낸다. 정신병의 근원에 성(性)이 있다고 생각했던 프로이드와 달리 융은 무의식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무의식의 그림자를 살펴보는 것, 그것이 자기를 이해하는 출발이며 종결점이다. 융의 분석 심리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는 제2차 세계대전은 인간이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나타난 대표적인 사건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스스로 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연장선에서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를 읽는다면 좋겠다.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성장은 상보적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개인의 도덕성은 사회의 도덕성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경제적 측면의 성공이 인간의 성찰과 자기 이해를 가져오지 못한 현대인에게 성찰의 기회를 가져올 책이다.

 

 

 

 

 

 

 

 

 

 

 

 

 

 

 

『정치심리학 - 사례로 알아보는 정치심리학 입문서』데이비드 패트릭 호튼 지음, 김경미 옮김, 사람의무늬, 2013. 1.

 

이번 대통령 선거만큼 대중 심리가 궁금했던 적은 없었다. 역사적 사실과 각각의 후보가 내놓은 정책이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론이 아닌 질의 응답만이 세 번 이루어졌다. 후보에 대한 검증은 거의 불가능했다. 정권에 대한 심판이고, 책임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선거도 아니었다. 하우스 푸어의 급격한 증가가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했다고 한다면, 여당 후보는 그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멘붕은 이제 그만, 철저한 분석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 지금은 민주주의를 공부해야 할 시간』 김비환 지음, 개마고원, 2013. 1.

 

요즘은 ‘정보 편향’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공중파(특히 MBC)와 종편의 정치 시사 뉴스를 5분 이상 들을 수 없다면, 나의 정체성은 진보인가? 만일 이 사회가 건강한 사회였다면, 나는 자칭 ‘보수’였을 것이다. 미국과 같은 사회의 보수는 철저한 자기 도덕을 갖고 오블리스 노블리주를 실천한다. 우리 사회는 기존의 세상을 바꾸겠다는 진보에게 더 철저한 도덕을 요구한다. “어떻게 진보가 그렇게 비도덕적이야?”라고 생각한다면, 묻고 싶다. 기존의 도덕률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희망 없음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려니, 알게 모르게 만성 스트레스도 있고, 세상에 대한 원망도 쌓인다.

지난 주 MBC 전 PD수첩의 최승호 PD의 『응답하라, PD 수첩』특강을 들었다. 87년 6월 항쟁의 기운으로 국민 주주 신문사가 만들어졌던 것처럼, 이번에는 국민이 주주가 되는 방송국을 만드는 것은 어떻겠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정보편향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진보는 진보 매체만, 보수는 보수 매체만 보게 된다면, 자가 발전만을 계속하게 되고 바르게 세계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중파를 정상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여전히 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그의 신념에서 위안을 받았다.

이제 나의 일상과 무관할 수 없는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다시 희망을 가지고 인간과 삶의 정치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고정된 채널에서 벗어나서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정치학자의 글을 통해서 내 생각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정치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사람의 자세로 민주주의를 공부해볼 생각이다.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이상현 지음, 효형출판, 2013. 1.

 

마지막으로 일상에 여유와 실용을 가져 올 건축 책을 추천한다. 스스로 집을 짓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지은 사람의 의도와 용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 ‘건축물에 대한 올바른 사용법을 알아야 한다.“는 말에 책을 찬찬히 넘기다 보면, 건축과 인간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 왔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오래 오래 생각하게 된다. 건축물과 의약품의 비교도 재미있다. “약은 질병의 증상을 호전시키는 작용을 하지만 때때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복용법과 장기 복용 시 유의사항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 집을 지어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말이다. 집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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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2013-02-0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에서 안타깝게 탈락했으나, 필독해야 할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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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2013. 1.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벤저민 긴스버그, 매튜 A. 크렌슨 지음, 서복경 옮김, 후마니타스, 2013. 1.

『증오 상업주의 - 정치적 소통의 문화정치학』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3. 1.

『철학의 세 가지 질문 - 살아가면서 끝없이 하게 되는 고민에 대한 해답 찾기』마이클 켈로그 지음, 이진경 옮김, 지식의숲(넥서스), 20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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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은 삶의 방식을 선택한는 우리의 힘!!!

 

『죽음이란 무엇인가』셰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2012. 11.

   

체르노빌 핵발전소(원자력 발전소)과 비교해서 네 배 이상의 피해를 입혔던 후쿠시마 사태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지리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역시 피해 반경을 벗어나 있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대재앙 앞에서 우리는 얼마만큼의 성찰을 구체적으로 삶으로 끌어 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이 일본인의 삶에 미친 피해를 알기 위해서는 사태 이후, 재난 지역의 인공 유산과 심장 발작의 전후 증감률을 살피면 된다. 핵이 인체에 미치는 가장 큰 피해는 암이지만, 십년 이상 진행되어야 나타나는 질병이므로 지금 당장 파악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일본의 보수 정부는 핵폭발의 피해를 정확히 발표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행에서 만난 일본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러한 사태에 대한 일본인의 변화가 의외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내수가 위축되었지만, 가장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린 엄청난 인재 앞에서, 오히려 일본 국내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예기치 않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것으로 그들의 패러다임이 전환한 모양이다. 집단 죽음이라는 대재앙이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삶과 죽음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있지만, 많은 철학은 삶을 철학하는데 죽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예일대학에서 17년째 최고의 명 강의를 하고 있다는 셸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을 미화하지 않고, 이성과 논리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철학으로 끌어 온다. 형이상학과 가치론으로 죽음의 본질을 탐색하여 어떻게 삶을 살아야할지의 성찰을 이끌어낸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기 위한 단 하나의 전제는 우리는 모두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은 나와 내 인격의 끝”

 

형이상학자이든 유물론자든 우리는 누구나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케이건은 종교 영역 밖에서 죽음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삶과 죽음, 영혼·육체와 인격, 죽음의 본질, 죽음과 삶의 가치, 죽음에 대한 태도, 자살 등에 대하여 14 강론으로 구성한다. 먼저 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육체와 영혼이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이원론과 그 둘은 함께 존재한다는 일원론(물리주의)의 두 가지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이원론자들은 육체의 사멸 이후 존재하는 영혼을 믿지만, 물리주의자는 정신과 영혼을 분리한다. 육체의 한 형태로서 정신은 존재하지만,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케이건은 실제로 “삶이 끝난 자리에서 삶은 시작될 수 없다.”(19쪽)고 주장한다. 그는 (죽음 이후 다시 삶이 시작된다는) 그런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죽고 나서 몸이 부활하거나 인격이 이식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죽음은 종말이고, 인격의 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245쪽).

 

죽음의 양가성

 

죽음은 삶의 축복과 선물을 누릴 수 없는 상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가장 나쁘다. 꽃 피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죽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야기한다. 싹 틔우지 못한 죽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슬픔과 상처를 가져 온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 역시 그렇다. 살아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결별해야 하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반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도피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할만한 측면이 있다. 삶 그 자체가 의미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삶은 각기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고, 십 수 년을 병실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대소변도 해결할 수 없는 환자에게 삶 그 자체가 의미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 있게 답할 수가 없다. 티끌만한 희망도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삶은 죽음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남는다.

 

죽음은 몇 가지 전제를 가진다. 우리는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아직까지 영생을 누리고 있는 예외를 누구도 본적이 없다. 모두 죽는다는 전제에서도 죽음이 한없이 무거운 까닭은 얼마나 살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또한 반드시 삶의 끝에 있으면서 짝패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성찰은 삶을 바꾸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다양한 자본과 다양한 층위를 이루고 있는 인간 사회에서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 모두 한번 태어나서 반드시 한번은 죽게 된다는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죽게 된다면 제한 상황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중요한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합리적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찬 일을 선택할 것이다. 적당한 목표를 설정하고 일상에서 얻는 기쁨에 집중할 수도 있고, 실패 가능성은 높지만 높은 성취 목표를 위해서 일상의 사소한 기쁨을 포기할 수도 있다. 앞의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것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일반 명제를 뒤집어 생각하기를 권한다. 가령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명제가 당연하지 않다. 상황이나 심리적인 면에서 무수한 예외들이 존재한다. 예견된 죽음은 임종에 앞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 둘러 싸여 있다. 또는 동반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타인을 위해 대신 죽음을 맞이한다. <파이돈>의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셔야하는 상황을 알고도 제자들과 철학 논쟁을 벌였고, 흄은 죽음 직전까지 병상에서 사람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상황이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누구나 홀로 죽는다는 것은 참 명제가 될 수 없다. 그는 수준 높은 철학 용어에 사로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보았을 법한 죽음의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듯 서술해나간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죽음에 대한 결론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죽음에 접근하기 위한 입문서다. ‘죽음’은 철학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에 대한 장황한 서술이 아니다. 예일대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철학 강좌였음을 기억하고 책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책은 강의를 위한 강의록처럼, 책을 읽다보면 대화를 나누듯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새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목표 설정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자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며 죽음에 대한 일반 명제를 기각해나가는 저자의 분석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넘어 서서 섬세하고 유쾌하기 까지 하다. 단, 죽음에 대하여 확실한 철학적 신념을 원한다면, 미진할 것이다. 이미 죽음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와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더한 이들에게 이 책의 효용성은 매우 떨어진다. 다만 대학생을 대상으로 했고, 강의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좋은 철학의 기준이 참을 수 없는 ‘무거움’ 그 자체에 있지 않다면,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철학서로써 충분한 미덕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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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1-2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시안에서 죽음에 대한 네 가지 시선에 대해 자리가 마련된다고 알고 있어요.
가서 듣고픈데...죽음, 이 책을 통해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에요.
애써 피하지 않아도 되고...애써 도망 갈 필요도 없고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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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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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신승철 지음, 동녘, 2012. 11.

 

21세기 대한민국의 83만원 세대, 김철수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스피노자, 그가 왔다.

 

고시원의 공동 화장실의 깨진 거울을 사이에 두고,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서 ‘철학자의 철학자'가 될(된) 스피노자가 백수 청년 철수의 고민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신간 『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그들의 불가능한 만남에서 출발한다. 스피노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 백수, 입시지옥을 통과해야 하는 여고생 주변에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 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 조울증,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을 각각의 챕터로 한 스피노자의 철학 강의는 상담과 치유의 시간으로 전환한다.

 

스피노자는 철학 상담 처음부터 답을 제시한다. 정신질환은 이성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이 자리한 곳의 배치를 바꾸고, 궤도를 수정할 수 있도록 “관계망에 대한 사유” 능력을 키울 때 우리는 정신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욕망으로 존재와 세계를 재구성할 것을 권유한다. 무의식적 욕망을 기꺼이 수용하고, 욕망의 주인이 될 것을 간절하게 요청한다. “스스로 창발(創發)한 욕망은 삶을 구성하고 세계를 재창조하는 활동력”이 된다. 나의 무의식을 ‘알아차림’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주변과 두려움 없이 접촉하고, 횡단하며, 변용하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구조적 예속에서 벗어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트랜스포머가 될 수 있다.

 

‘철학공방 별난’에서의 삶

 

『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생산한 신승철 선생의 철학연구소 이름이 ‘별난’이란다. 욕망(desire)의 어원 “별에서 떨어져 나온 마음”에서 가져온 공방의 이름이 인상적이다. 그 명칭에서 저자의 삶이 이미 스피노자적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6~17세기 가장 코스모폴리탄이었던 경제 중심지 네델란드의 암스텔담에 살았던 스피노자는 부유함을 포기하고 겸손한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 한평생 철학을 했다. 도시는 익명성을, 소박함은 자유와 고독을 선취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별난’의 삶은 스피노자의 철학이 실천되는 공동체다. 별에서 떨어져 나온 마음들의 집합소에 넘쳐나는 관계지향의 삶, 함께 사랑하고 기뻐하며 외부에 대해 열려있는 일상 속에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변용을 경험할 것이다. 고립된 섬처럼 파편화된 사람들은 타인의 신체와 결합하여 무수히 다양한 자아를 생성한다.

 

http://goham20.com/2021

 

철학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책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어렵지 않게 우리를 철학으로 유도한다는 점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소피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난해한 개념으로 넘쳐나 미리 질리게 하는 철학책들과 달리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입문서였다. 발신인 없는 의문의 편지는 “너는 누구니?”, “세계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와 같은 한 줄의 물음으로 시작된다. 퍼즐을 맞추듯 자연스럽게 철학적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게 한다. 청소년이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던 『소피의 선택』처럼 『눈물 닦고 스피노자』역시 접근성이 뛰어난 철학서다. 삶이 힘겨운 이 시대 젊은이들이 인문학에서 치유 할 수 있도록 소설의 형식으로 구성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두 사람의 언어의 불일치, 시대의 이해를 어설픈 매듭으로 연결하는 한계가 있지만, 아픔을 치유하는 공감할 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연결된다.『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우리를 에티카의 세계로 초대한다.

 

세상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마음 바꾸기는 쉽다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마음을 바꾸는 것은 위대한 혁명이다. 삶을 전복하는 일, 욕망의 배치를 바꾸는 것은 개인에게 우주의 빅뱅에 비견할만한 일이다. 욕망을 읽고 배치를 바꾸며 변용하는 것, 그 속에서 우리는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할 수 있다. 우선해야 할 일은 당연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 그 순간 우리는 파편화된 자아에서 벗어난다. 마주침에서 두려움 없이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경계를 허물어 지평을 넓혀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욕망을 함께 나눌 ‘별난 공방’이 도처에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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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1-2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접근성이 뛰어난 철학서..맞아요..^^
욕망의 재 발견....저는 이제 욕망하려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