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역시 사랑할, 어딘가의 당신에게"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가 있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내가 처음 미술책을 읽게 된 것은 그림에 대해 알고자 함이었으나, 이제 나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매개체로 그림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들어차 있는 책이다. 게다가 그 이야기들이 찰나의 재미가 아니라 깊게 정돈되어 있는 것이어서 더욱 즐겁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않은 나는 정말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3년 간의 경험으로 특히 아픈 책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해 줄 것 같지는 않지만, 당신은 분명히 열광하게 될 책. 이제 나는 당신에게 메세지를 날린다. 당신이라면 이 구석진 자리를 빌려 타전하는 나의 마음까지도 이미 헤아렸을 것이다.
인문.예술담당 이예린(yerin@aladin.co.kr)
"나의 CDCase를 훔쳐보아요~"
뭐 할까 고민했다. 고민하다가, 그냥 내 휴대용 CD Case에 들어있는 열 장의 CD를 나열해 보기로 한다. 그게, 바로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반이니까. 허나, 제목만 써 내면 왠지 불친절해 보여... 한 줄씩 짤막한 코멘트를 달아본다.
음반.DVD담당 서현(mirinae@aladin.co.kr)
"정말이지 닮고 싶다"
'최흥효는 온 나라에 알려진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다. 일찍이 과거를 보러 가서 답안지를 쓰는데, 한 글자가 왕희지가 비슷하게 되었다. 앉아서 하루 종일 뜷어지게 바라보다가 차마 능히 버리지 못하고 품에 안고 돌아왔다.' (본문 29쪽에서)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不狂不及! 우연히 왕희지와 같게 써진 글씨에 제 스스로 취해서 과거 답안지를 차마 제출할 수 없었던 최흥효. 정말이지 그 단순한 열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칼날같은 긴장이 흐르는 과거 시험장, 그 틈에서 제가 쓴 글씨에 취해 묘한 웃음을 짓고 있을 한 사람. 조금 뒤면 조용히 일어서 제 글씨를 가슴에 품고 시험장을 나서고, 집으로 가는 길 중간중간 멈춰서 글씨를 보고 또 보았을테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웃음을 얼굴 가득 품은 모습이 선하다. 시험장의 엄중한 분위기를 한방에 다 날려버릴 만한 호탕한 웃음. 무수한 말들을 잠재우는 단순한 열정.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것. 그 자체로 전부인 것. 그것 외에 다른 얻고 잃음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 매 순간 제 가슴 속의 뜨거운 것을 따르는 일을 소홀히 않은 이 책 속 사람들의 삶, 읽을수록 닮고 싶어진다. <백이전>을 1억 1만 3천번 읽었다는 김득신 만큼의 우직함(?)은 아니더라도, 묵묵히 제 길 갈 수 있을 만큼의 은은한 열정은 정말이지 닮고 싶다.
사회.역사담당 김현주(realsea@aladin.co.kr)
"나처럼 해봐요, 요렇게~"
신기한 시간표오카다 준 지음, 윤정주 그림, 박종진 옮김 / 보림 펴냄
이번 달에 내가 제일 즐겁게 읽었고 제일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던 책은 오카다 준의 <신기한 시간표>의 '지우개 도마뱀'에 수록된 아래의 그림이다.(^^;;;) 얼마나 깜찍한가. 한동안 나는 주변 사람에게 시도때도 없이 이 도마뱀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해 원성을 사곤 했다. 포인트는 시선 처리에 있다. 그런데 한 번 해 보면 만화 <파타리로>의 '쿡 로빈'의 춤처럼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파타리로>와 비슷한 류의 책이라고 오해하지 마시라! 아아주 사랑스러운 학교 이야기다.
사실, 내가 이번 달에 올리려고 했던 책은
<채링크로스 84번지>였다. 이 책은 독자와 책을 매개로 만나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처음으로 고객 메일을 받은 날, 얼마나 고민하면서 답신을 했던가, 내가 좋다고 추천한 책을 읽고 정말 좋았다는 마이리뷰를 보고 얼마나 기뻤던가. 3년차가 겪는 권태와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 읽은 이 책은 내게 바로 그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원고마감을 독촉받는 순간 책을 잃어 버려서 ㅠㅠ(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오늘 이 책 찾느라 지각할 뻔 했다) 한달내내 침대맡에 두고 20번 정도는 읽었던 <신기한 시간표>로 낙점해 버린 것이다.
한달 내내 내 CDP에서 과다한 노역에 시달린 B'z의 [LOOSE]에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8번 트랙 'LOVE PHANTOM'은 들을 때마다 운동회날 아침처럼 신이 났다. 음반몰 담당자님! 약속 지켰습니다.
어린이담당 류화선(yukineco@aladin.co.kr)
"어느날. 문득. 멀리서."
먼 북소리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펴냄
오고 가는 지하철에서 끝나는 게 아쉬워 매일 매일 조금씩 아껴서 읽었다. 오늘 다 읽어버리면 이 재밌는 걸 내일은 못 읽을 것 같아서.
어느날 문득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서 여행을 떠났다는 더할 나위없이 낭만적인 이유. 다음에라도 문득 일어나 여행가방을 싸고 있을 때 자고 있던 친구가 눈을 비비며 어디가냐고 물어보면 이 말을 써먹어야겠다. "그저, 멀리서 들렸어. 먼 북소리가 말이야..."
어리숙한 이웃집 형 같은 하루키와의 여행 속,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두 가지는 확실히 기억에 남는다. 세상에서 가장 여행을 많이 하는 민족은 독일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이랑 같이 사는것은 조금... 음... 힘들겠다는 것.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rain@aladin.co.kr)
"과학 분야의 <먼 나라 이웃 나라>"
지난 해부터 은근히 과학교양서 출간이 붐이다. 과학책 애호가(^^;;)로서야 반가운 일. 또 최근 출간되는 과학책들은 질이 좋고 고르다.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분야의 개척자로 발탁되는 책들은 외국에서 이미 호평을 받은 검증된 책이거나, 이름만 들어도 믿을 수 있는 분의 책이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중에서도 이 <만화 21세기 키워드 2>(1은 오래 전에 나왔다)가 너무너무 좋다. 정말이지 과학책 분야의 <먼 나라 이웃 나라>다. 짧고 쉬워서 얕지만, 폭넓고 균형잡혀 있다. 한 주제를 깊게 다루는 책도 좋지만, 이처럼 전 주제의 프론티어를 깔끔하게 머릿 속에 지도로 넣어주는 책도 꼭 필요하다.
나름대로;; 과학을 전공한 나조차 이 책 속의 모든 것이 경이로운데, 다들 그렇지 않겠는가? 과학의 대중화는 시민의 정치참여 만큼이나 중요한 미래사회의 핵심 역량이라는 면에서 이 책이 <먼 나라 이웃 나라> 만큼 아이와 어른에게 널리 읽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슬프다. 과학저술 분야에서 용맹분투하고 계신 원작자와 나름의 경지에 오른 만화를 그린이에게 혼자 박수를 보내었다.
편집장 김명남(starla@aladin.co.kr)
"단편소설의 모범"
드라마로 치면 '한뼘 드라마'랄까.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짧다. 그야말로 손바닥만한 이야기. 미국 중하층 계급 - 그중에서도 부부 - 을 주 소재로 삼는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진짜로 작고 작다.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이 빚어내는 평범한 이야기. 사실 별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묘하게 섬뜩해진다. 누군가 나의 등짝을 발로 차고 도망간 기분. 니 앞을 똑바로 보란 말야! 작은 자극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면, 같은 침대에 누워 있어도 엇갈릴 수 밖에 없는 그와 나 사이, 지지부진하고 무료한 생활. 카버는 결코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 말해주지도 않고, 차가운 바람 가운데 우리를 세워놓는다. 그렇게 삶의 단면을 쪼개고 쪼개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그는 진짜 대가다.
문학담당 박하영(zooey@aladin.co.kr)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 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죽고 죽어" 무엇이 될꼬하니, 시체밖에 더 되겠는가. 예전에 심심치 않게 '어떤 방법으로 장례를 할까'라는 주제로 수다 한 판을 벌인 적이 있다. 압도적인 지지로 '화장'이 선택되었다. 말로는 국토가 좁아서라고 해도, 실은 느리게 땅 속에서 썩어갈 몸을 생각하는 것이 끔찍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신이 아니니 부활은 못 하겠다만, 이 책을 보니 시체로 한번쯤 '다시 태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에어백 테스트 모델, 살인사건 시체감식용 부패기간 테스트 모델, 물론 주위 사람들은 극구만류하겠지만 말이다. 시체에 대해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기만 했다면, 분명 나도 거부감을 가졌을 것이다. 정중하고도 친근한 저자의 시체 '친구'들을 만나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궁금하지 않은가?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sarah2002@ala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