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브루 에티오피아 시다모 디카페인 (원액) - 500ml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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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구매인데 우유랑 섞어 먹을 때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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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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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요시모토 바나나를 처음 만나게 됐는데, 이 작가를 왜 좋아하는지 왜 비판하는지 알겠다. 비판에 대해서는 하루키에게 그러하듯 비슷한 지점이 있다. 짧고 가볍게 밀고 나가는 필치. 그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 어투와 결합된 일본 문화 특유의 휘발적인 단상조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자주 담는 기담과 공포까지 포함해서.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이 소설에 대해 자세히 말하진 않겠다. 이 소설이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작가의 말]이 다 전하고 있다. 재능이나 결손에 얽매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한 것과 작가가 선호하는 테마들을 최대한 실험해보고 싶었다는 것.

 

시원치 않은 작가 생활과 삶을 산 다카세 사라오라는 작가가 마흔여덟 살에 자살하고 그가 미국에서 낸 단 한 권의 단편집을 둘러싸고 이 소설의 인물들이 엮인다. 작가의 자녀들인 쌍둥이 남매 사키와 오토히코, 스이, 다카세 사라오의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다가 자살한 쇼지, 쇼지의 어린 연인이었던 가노. 이들의 삶도 비슷비슷하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겪었고 여전히 그 영향 속에서 살고 있는 사키, 오토히코, 스이, 가노. 재능은 있었지만 삶 속에서 무너진 다카세와 쇼지. 이들은 "미행당하고 있다는 망상에 젖어 있는 분열증 환자처럼은 아니라 해도 무언가에 홀려 있지 않은 때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시간의 무게는 나눌 수 없는" 사람 삶이 대체로 그렇지 않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은 흘러가지만 그 자체로도 사실 버겁다. 작가였던 다카세, 번역가였던 쇼지의 처지와 심정도 비슷했던 것 같다.

 

*

「엄마가 웃었다.

"쇼지 씨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하겠어. 수십 년을 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는걸. 번역이란 거, 지치는 양상도 좀 독특하거든."

디저트와 에스프레소가 나와 얘기가 중단되었다. 엄마의 생각을 요즘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 신기했다. 엄마가 하는 일도.

"다른 사람의 문장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더듬어 가야 하잖아. 하루에 몇 시간이나, 마치 자신의 글을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사고회로에 동조한다는 거, 그거 참 묘한 일이야. 거부감이 없는 선까지 들어갈 때도 있잖아. 그러면 어디까지가 자신의 생각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타인의 사고가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들기도 하고. 영향력이 강한 사람의 글을 번역하다 보면, 그냥 읽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끌려 들어가게 돼."

"……엄마 정도의 베테랑도?"

"최근에는 엄마도 터득하게 되었지만, 번역 일을 시작했을 처음에는, 그게 아마 이혼한 그쯤일 거야. 잘 안됐어. 일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할까.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 헤쳐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그런데 종일 타인의 문장과 씨름을 하고 있으니…… 아, 그래, 고독이라고 해야 하나? 고독에 거의 짓뭉개질 것 같았어. 그리고 기분 전환 거리는 뭐든 상관없었어. 사고를 완전히 중단할 수만 있으면."

"자식을 키우는, 그런 거?"

"자식을 키우는 건 시행착오의 연속이야."

엄마가 웃었다.

"엄마는 겐타마였어."

"응?"

나는 되물었다.

"겐타마(십자 모양의 손잡이에 끈으로 매달린 나무 공을 탁탁 치며 노는 놀이 기구). 아하하,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에는 심각했어. 엄마가 자주 했잖아, 왜."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엄마의 방 닫힌 문 너머에서 '탁, 탁'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곤 했다.」

 

**

「하지만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인생의 많은 것들이 얽히고설켜 그의 내면에 지속적으로 쌓여 간 피로감을 덜어주는 역할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그 사람 인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것, 내게는 매력으로 비쳤던 어두운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나는, 만났을 때 이미 전구가 거의 꺼져 가던 그의 마음속 방에 날아든 나비였다. 위로는 되겠지만, 어둠 속에 낮의 반짝거리는 잔상을 끌어들여 그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을 뿐이다.

그래서 꿈에 그가 등장할 때면 언제나, 지금의 내가 옛날의 그를 만나는 설정인 것이리라. 지금의 나라면 조금은 반짝임 이외의 것을 줄 수도, 즐겁고 고요한 시간을 함께 보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그것도 힘든 일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회하고 있다. 지금의 나로 만나고 싶었다.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런 생각이 남아 있다. 자신에게 과도한 가치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가노의 어머니가 탈출구를 원했듯이 쇼지에게 여고생 가노, 다카세에게 스이가 그런 역할이었겠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삶의 무게만으로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다음 세대의 극복에 집중한다. "무언가를 은닉한 사람만의 강함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는 듯 보이는" 사키는 심리학을 공부하며 자살 같은 저주에 빠지지 않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뭇사람들과는 어긋나는, 자립해 있는 재능의 자기 충족적인 무언가. 다른 사람과는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그녀 자신만의 내면의 고뇌 같은 것. 몇몇 사람에게만 통하는 강력한 신호"를 가지고 있는 스이는 관계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아버지처럼 창작 재능이 있는 오토히코는 스이와의 관계가 끝나며 아버지의 그림자와 광기 어린 삶에서 빠져나와 독립적인 작가로 전환할 시기를 맞이한다. 가노는 이들을 통해 쇼지와의 아픈 기억을 극복한다.

***

「"요즘 사람과 얘기를 안 한 탓도 있으려나."

"불 때문일까."

"이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지."

"바다 앞에 서면 사람은 마음을 연다고 하잖아."

"아무리 하찮은 일도 좋은 일인 것 같고 말이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파도에 실려서 멀리 떠밀려 가고."

"이게 해방감이란 거야."

.

.

.

밤이 깊어 가면서 침묵을 에워싼 파도 소리가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풍경이 마음속에 쌓인 울적한 것들을 말끔하게 쓸어가고 그 자리에 맑은 대기가 차올랐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는, 빛나는 것은 남아 있었다. 고요했다. 영원히, 이제 세계가 끝나는 듯한, 순결한 밤이었다.

.

.

.

오토히코를 보았다. 눈물에 번진 하늘과 바다와 모래와 흔들리는 불길을 보았다. 아찔한 속도로 한꺼번에 머리에 들어와, 눈앞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아름답다, 모든 것이. 이 여름에 일어난 모든 일이, 미치도록 격렬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매년 여름을 겪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인생의 순간들도 맞는다. 욕망과 꿈 실현 때문에 서로 갈등하고 상처도 주지만 우리는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두 마음속에 여름 같은 열정과 바다 같은 품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작가와 함께 나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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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book 포함 4월에도 책을 여럿 들였다. 이 중에서 종이책 완독은 『2020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뿐이라 부끄럽다😔😔😔 언젠가 다 읽겠죠. 와하하하)))

 

 

 

📘 자크 랑시에르 『자크 랑시에르와의 대화 - 피곤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인간사랑, 2020)

- 인간사랑 출판사로 지젝을 만났던 감사 답례로 랑시에르 벽돌책 영입. 나는 은혜 갚는 책쟁이😉

📘 조지프 J. 탄케 『푸코의 예술 철학 - 모더니티의 계보학』(그린비, 2020)

- 모으자고 들면 끝이 보이지 않는 푸코 관련 책^^;

 

📘함석헌 『바가바드 기타』(한길사, 2003)

- 채사장의 설명은 그야말로 지대넓얕이라 더 깊게 보려고.

 

📘그레이엄 하먼 『비유물론』(갈무리, 2020)

- 테리 이글턴 『유물론』과 비교해보려고 구매.

 

📘 알랭 바디우 『검은 색』(민음사, 2020)

 

 

 

 

 

 

 

 

 

 

 

📕 루이스 캐럴 (지은이), 존 테니얼 (그림) 『가장 완전하게 다시 만든 앨리스』(사파리, 2015)

- 흑백 인쇄였던 구판 팔고 올 컬러 삽화😻인 이 책으로 재구입. 고가라 상태 좋은 중고 계속 기다렸는데 괜찮은 걸로 받아서 흡족. 책장의 붉은색 무척 고급스러워 좋고, 앨리스 그림은 존 테니얼이 제일인 듯.

 

📘 강유원 『책 읽기의 끝과 시작』(라티오, 2020)

- 호평받는 저자인데 나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됐다. 저자만의 읽기와 쓰기 내공을 배울 수 있길.

 

기형도 마니아로서 기형도 배지가 너무너무 갖고 싶어서 문학과 지성사 책 구매

📘 조용미 『당신의 아름다움』

- 매달 무슨 영양제처럼 사고 있는 시집😅 신영복 선생님도 시 많이 읽으라셨잖아요ㅎㅎ

📘 오정희 『저녁의 게임』

- 오정희 선생님 소설은 도서관에서 거의 읽어서 이번 기회에 책으로 구비. 잔잔하면서도 굵직한 울림을 전해주는 작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할 한국의 여성 작가!

📘 사샤 스타니시치 『출신』(은행나무, 2020)

- 나올 때부터 궁금했는데 이제야 샀다.

📘 W G. 제발트 『자연을 따라 기초시』(문학동네, 2017)

- 이것으로 제발트 선집 모두 구매했다😭

 

 

 

 

 

 

 

 

 

 

 

 

 

 

 

 

 

 

 

 

날이 더워지자 마스크 쓰고 돌아다니니 곧 땀이 차 난감하다💦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지....

작년 3월 알라딘 굿즈였던 책모양 에코백 첫 개시했다. 디자인은 딱 내 취향이 아니지만 짐이 많이 들어가 무척 좋다. 알라딘 에코백 중 가장 크다. 알라딘 텀블러 챙겨 나왔는데 용량이 작아서 소용이 없었다. 요즘 커피를 왜이리 많이 주는 거😂💦

 

 

 

 📘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망자들』(을유문화사, 2020)

- 2017년 맨부커상을 받았던 조지 손더스 『바르도의 링컨』(2018, 문학동네),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2019, 문학동네)이 망자들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다뤘던 것과 비교해보고 싶어서 구매했다.  예상대로 좋다.

 

 

 

 

 

 

 

 

 

 

🎁 4월 알라딘 굿즈 파티

없는 크기의 북커버 고르느라 고심했고 본투리드 북커버 데미안(46판, 140x200x35mm, 3,000원)을 먼저 샀다. 북커버는 반양장 작은 책용이다. 메이저 출판사 문고형 시리즈, 양장본은 대부분 안 맞다. 예쁘다고 막 사면 맞는 책이 없어 그림의 떡이 될 수...×ㅋ×)

책이 많다면 맞는 책이 있겠지만😂

※ 아쉬움 : 저번부터 가름끈이 계속 이건데 좀 촌스러워서 바꿔줬으면 싶다. 이 북커버엔 붉은 민무늬인 게 더 나았을 거 같은데 내 취향 문제^^;? 밴드가 몸체 분리형이라 분실 걱정도 되는데 언제나 그렇듯 100% 만족스러운 경우는 없으니.


 본투리드 북커버 데미안에 맞는 책

 

 

 

 

 

 

데미안 1차로 사고 두번 째로 산 본투리드 픽스 북커버 삐삐 롱스타킹 (신국판500, 170x240x37mm, 3,000원)이 클까 봐 염려했는데 생각보다 안 크다. 문학 살 때 주는 밤과 꿈의 뉘앙스 패브릭 북커버(3,000원)는 시집 전용이다! 문지, 문동, 민음사 시집 모두 커버할 수 있는 북커버라 매우 흡족하다.

 

 

 

 

4월에는 알라딘굿즈로 받은 북 커버, 배지로 집이 터질 지경이지만 다 맘에 든다. 으흑.

본투리드 배지_BOOKS ARE MAGIC(2,800원)

문학과지성 시인선 배지 - 입 속의 검은 잎(1,500원)

본투리드 배지+와펜 세트 - 셜록 221B(2,000원)

<책에 바침> 컵 받침(400원)은 가벼워서 휴대용으로도 괜찮고, 금속 참 북마크(데미안, 3,000원)는 고급스러워서 선물용으로 빼놔야겠다.

 

 

 

말괄량이 삐삐 굿즈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삐삐 머그가 하나도 없는 건 좀🤔

본투리드 긴목 양말 Vol.2_삐삐 롱스타킹(1,000원), 본투리드 발목 양말 Vol.2_푸른꽃(1,000원) 등 맘에 드는 양말을 다 샀다ㅋ

4월 마지막 날에도 샀는데 다음 주 도착할 예정이라 5월 알라딘굿즈 풍년도 이미 예정^ㅇ^;

 

 

 

 

책만 사냐고요. 아니요, 무엇보다 읽는 게 우선이죠.

 

 

 

 

 

2020년 봄은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을 읽어야 할 거 같은 분위기. 책 자체도 4월에 더 의미가 있다. 카슨은 환경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일으켰고 시민 운동까지 촉발시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은 환경문제를 다룰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의회에서는 1969년 국가환경정책법안까지 통과되었으며, 미국에서 암 유발물질인 DDT가 사용금지 되었다. 1969년 캘리포니아 기름유출 사고도 있었으니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컸다.침묵의 봄』을 읽은 한 상원의원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자연보호 전국 순례를 건의했고, 이런 분위기로 1970년 4월 22일 '지구의 날'이 제정되었다.

 

📘 김병민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동아시아, 2020)

-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책 이곳저곳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책 커버까지 안팎으로 빈틈이 없어ㅎ0ㅎ)! 이번에 주기율표 완전정복 하겠다능!(의지 불끈) 동아시아 출판사 책은 확실히 공부 시켜준다ㅎㅎ

 

📘 사이먼 윈체스터 『교수와 광인』 읽고 싶던 책이었는데 마침 그의 신간 『완벽주의자들-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북라이프, 2020)이 나와서 나도 도전~~~ 이 저자 책 제목 짓는 감각이 좋다. 정확성이란 무엇인가. 그 추구가 현재의 문명을 이끌어낸 여정을 좇는다. 이런 주제로 파고드는 책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안 볼 수 없다.

 

도심 거리에서 까치가 참새 파먹는... 영상을 보고 충격 먹고(길고양이가 죽은 길고양이 먹는 걸 본 트라우마도 있다😔) 귀여운 새 그림으로 마음의 정화.... 너도 인간처럼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닐 거잖아.

📘 (글)이우신/ 구태회 / 박진영 / (그림) 타니구찌 다카시 『한국의 새』(LG상록재단, 2014 개정증보판)

- 야외에 들고 다니기 쉽게 포켓북 스타일. 여름깃, 겨울깃으로 새도 철마다 옷을 바꿔 입는다.

그림 그릴 때 참고 자료로 쓰려고 산 거. 캐릭터 책보다 이런 사실적인 일러스트가 난 더 좋다. 응용할 게 많으니까. 새 그림이 페이지마다 10~20마리가량 되는데 일러스트 작가는 이 책으로 새를 천 마리 넘게 그린 듯. 대단🦜 이 경지까지 오면 지나가는 새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가 중요하다.

 

 

 

 

 

 

 

 

 

 

📘 필립 k.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꿈꾸는가』(폴라북스, 2013)

- 황금가지 출판사 버전, 알라딘 리커버 버전도 샀는데 종이책이 눈에 잘 안 들어와 e book으로 드디어 완독했다. 《블레이드 러너》 영화랑 상당히 다른 내용이었다. 캐릭터 몇몇만 가져오고 스토리 전개와 맥락은 판이하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동명 소설 『솔라리스』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공동 각본까지 하며 만든 《솔라리스》 영화와 비슷한 상황?

 

 

 

 

 

 

 

 

 

 

이 일화는 여기저기서 참 많이 들었지만 엘든 테일러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알에치코리아, 2012,  절판)를 읽으며 좀 더 곰곰이 생각했다.

1985년 주다스 프리스트의 앨범 <얼룩진 수업 Stained Class>을 듣고 자살한 십 대 청소년이 있었다. 보통의 의식 상태에서는 듣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말들이 깔려 있는 음악이었다. 그 가사들은 '잠재 지각'을 건드렸고 그들은 자살을 결심했다. 운동장으로 가 각자 총을 쏘기로 했고, 레이가 먼저 자살한 뒤 그걸 본 제임스는 충격이 컸던 거 같다. 덜덜 떨다 총을 제대로 쏘지 못해 얼굴에 치명상을 입고 살아남았다. 그런 상처와 기억으로 계속 살기는 힘들었던지 약물 중독으로 3년 후 사망했다.

서태지 가사를 거꾸로 들으면 어쩌고 하던 일도 떠올랐다. 세기말의 정서, 질풍노도 시기, 인간관계, 사회적 압박. 우리는 무엇으로든 흔들린다.

얼마 전 무면허 운전으로 한 청년을 숨지게 만든 십 대 청소년들은 자신에게 어떤 잘못과 문제가 있었는지 알까. 앞으로는 알게 될까.

이 책은 말한다. 욕구 충족이나 믿음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가장 큰 역할은 억제다!"

흔들리는 사람들, 흔들리는 나

현실에서든 책에서든 사실 온통 그 얘기다.

 

 

*

우리가 상실한 이유는 스스로 상실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 레프 니콜라예베치 톨스토이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다 읽고 작년만 못하다 싶었다. 가부장제 문제(강화길 「음복)」, 용산 참사와 여성의 사회 위치 문제(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 동성애의 현실 생활 문제(김봉곤 「그런 생활」), 낙태에 대한 여러 관점과 레즈비언 정체성 고민(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사고틀이 현실을 제한하는 딜레마(김초엽 「인지 공간)」, 도로 위 남성성 세계에서 두 여인의 짧은 연대(장류진 「연수」), 세대 갈등(장희원 「우리의 환대」) 등 소재는 다양할지 모르나 스케일이 작고 대부분 풀어가는 방식이 아쉽고 답답했다. 작법에서 강화길 작가가 가장 개성적이라 대상 수상이 수긍 갔다. 내게 가장 눈에 띈 건 이현석 작가였다. 가장 첨예하게 문제를 파고 들어서 앞으로 쓸 소설이 기대된다.

 

 

코로나19로 집콕 생활의 장기화, 도서관 폐쇄 등의 이유 때문인지 중고도서 주문이 하루에 3~4건이 될 정도라 나도 꽤 피곤하다. 올해 들어 벌써 60권의 책을 떠나보냈다. 책장의 빈 공간을 볼 때마다 시원섭섭하다.

조정권 『얼음들의 거주지』(미래사, 1991 초판)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이 시집은 이전 시집들의 대표 시들을 엮은 편집 시집이다. 30년이 된 시집이라 요즘 시의 감성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었다.

 

 

 

 

 

 

 

 

불면이 여전해 잠이 오면 탐욕스럽게 자는 터라 '시간이란 오래오래 녹여 먹어야 하는 잠 오는 눈깔사탕'이라는 표현이 퍽 공감됐다. 전엔 눈여겨보지 않은 시였는데.

시가 예전 같지 않을 때 슬프다. 시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동네 도서관이 내부 수리 중이라 안 그래도 대출하기 불편했는데 코로나19로 상황이 더 나빠져 집에 있는 책 위주로 읽고 있었다. 현재 우리 동네 도서관은 예약 도서와 희망도서만 대출해 주고 있다. 그나마도 내가 신청한 희망도서 대부분 거절당해 울적했다. 겨우 1권만 받아왔다.

 

다미 샤르프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동양북스, 2020)

빌헬름 라이히 계보의 심리치료사이자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의 책이다. 저자는 '인식' 위주보다 '몸'과 '관계' 위주의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 보고 '신체 감정 통합 치료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 나는 이론보다는 현장 치료가 더 관심이 가 이 책을 신청한 거였는데 어떻게 풀어나갈지 나도 읽어봐야 알 거 같다.

 

 

 

 

 

📘 정민영 『미술책을 읽다』(아트북스, 2018)를 읽으며 고흐에 대한 정보를 또 몇 가지 얻었다. 책벌레였던 그의 책 목록을ㅎㅎ

 

 

 

 

 

📘 권박 『이해할 차례이다』(민음사, 2019)를 묵혀두다 이제야 읽었는데, 최근 접한 여성 시인 중 단연 돋보인다. 흡사 황병승, 김경주 시인의 출현 때처럼 설레게 한다. 긴 주석 달린 시 쓰기는 김경주 시인이 한때 잘 쓰던 기법이었는데 권박 시인은 또 새롭다. 페미니즘 성격이 강하지만 그것에 갇혀 있지 않다. 이 시집은 꼭 소장해 두 번, 세 번 읽어도 좋을 것이다. 취향 차이는 더러 있겠지만 특히 여성이라면 행간마다 공감할 글의 파워!

 

 

 

 

 

 

주말엔 사람 많을까 봐 공원에 잘 안 가서 몰랐는데 사람이 많았다. 원래 이런 건지 코로나 19로 집안에서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이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난 후자에 속하는 사람. 독서 취미로 혼자 있는 걸 선호해 더 외톨이가 돼가는 거 같다. 각자 책과 돗자리를 가져와 빙 둘러앉아 책 읽는 모임 있어도 재밌겠다. 해지기 전 독서 감상 한 마디씩 하고 bye bye~ㅎㅎ

어쨌거나 책쟁이이자 굿즈쟁이는 책과 굿즈를 벗 삼아 혼자서도 잘 놀아요 시전.

숲속 도서관 근처에서 읽으려고 했는데 주변 조경이 좋은 걸 캐치한 어르신들의 술판이 벌어져 있길래 도망;;; 공원에서 술 냄새, 특히 막걸리 냄새 피우지 마시라고요🤢

내키지 않으면 뭉그적거리는 성격 탓에 읽기로 예정한 독서 계획이 틀어져 스트레스다. 사실 늘 이렇지만. 이 좋은 정취에 여유 있게 시집 같은 걸 못 읽고 딱딱한 책만 읽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 꼭 필요한 지식을 담은 책을 읽는 건 필수.

이 책들은 최근에 본 BBC 근미래 SF 드라마 《years & years》(2019)와 연결되는 게 많다. 이 드라마의 큰 줄기인 가족애, 인류애가 더 붕괴되면 문제가 더 심각할 테지만. 이 시점에서 코로나19는 정말 큰 분수령.

 

 

 

https://youtu.be/9jLbW0CIt88

                            

 

천장이 높은 곳에서 학습 효과가 높다고 한다. 머리 위가 뻥 뚫린 하늘 아래서 책을 보면 마음도 신난다.

오늘은 새소리 들으며 책 좀 읽어 보실까. 새소리는 잠깐이고 심심한 벌🐝이 계속 추근대서 책을 휘두르며💦

이렇게 앉아 책을 읽으면 넓은 길 놔두고 내 근처까지 와서 지나가는 사람이 꼭 있다. 책 제목이라도 궁금한 건지. 이럴 때를 대비해 책 제목이 아주 잘 보이게 북 커버도 하지 않고 다 꺼내 놓고 본다. 혹 궁금하면 사서 보라고ㅋ 나는야 야외책전파단ㅋㅋ 좀 추웠다. 담엔 무릎담요도 챙겨야겠다. 캠핑의자도🤔💡

연못의 자라 가족도 해바라기 중. 너희들도 봄 좋지.

 

 

 

 집에서 선글라스 쓰고 소풍처럼 책 읽기. 이 땐 태양의 협조가 필요하다. 늘 도움이 필요한 존재,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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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20-05-11 21:06   좋아요 0 | URL
사진에서 제대로 반영이 안 된 거 같은데^^; 검은 색이 아니라 청록색이에요ㅎ;; 아니, 이 굿즈를 모르시다니 보슬비님 너무 건전하게 사시는 거 아닙니까...하려다 책 팔아 술 산다는 말씀이 이어져 푸풉....))))
굿즈 정보 나누면 좋지 않겠나 싶어서 페이퍼 정리하는 것도 일이네요ㅜㅜ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 - 질문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폴 김 외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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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 일상을 살아가지만 전환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것도 체감한다. 인류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도 전후가 다를 큰 사건이다. 실시간으로 각국 정부의 대처와 사람들 행동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여러 가치 판단과 개념의 허상도 깨닫고 있다. 20세기 초에 사라진 줄 알았던 파시즘적 성격의 정부가 속속 재등장하고 인종차별, 민족주의, 젠더 문제가 들끓는 현재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까.

 

인류사의 도약은 빅 퀘스천(big question)의 등장으로 가능했다. 신화적 세계관을 자연과학적 세계관으로 전환했던 탈레스, 중세 신학적 사회를 인간 중심적 근대 사회로 전환하는데 기여한 데카르트나 다윈, 인간 노동의 창조성과 고유성을 발견한 마르크스 등 많은 역사적 위인들은 전환적 질문과 비판적 사고를 제시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관점 전환적 질문이 중요한데 질문하는 능력은 ‘교육’의 역할이 가장 크다.

 

한국 사회가 질문 없는 교육과 사회였다는 게 크게 드러난 일화가 있었다.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내한했을 때 초대에 감사하며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아 중국 기자가 아시아 대표로 자신이 질문을 하겠다고 나서 오바마가 제지하고 한국 기자에게 재차 질문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우리에게 기레기 소리 듣는 것과 차원이 다를 한국 기자들의 세계적 굴욕이었다. 박근혜와 오바마의 한미 공동 기자회견에서 박근혜가 취재진의 질문을 잊고 엉뚱한 답변을 한 망신까지 덧붙여 한국인 모두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일체의 질문을 차단하고 수첩만 보고 측근만을 포용했던 박근혜 정권은 국정 농단의 파국까지 내보여 우리 사회를 아프게 돌아보게 한 거울이었다.

 

정치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인간들이 도덕적이라도 그들이 구성하는 사회는 다른 집단적 정체성을 이룬다고 말했다. 집단이 추구하는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의 역학이 비합리적이며 정의롭지도 않은 정치적 파워 게임을 만들어내고, 도덕적 개인들마저 그 정치적 특수성에 가둔다. 그렇기에 사회 진화를 위해서는 개인의 선의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현실적 메커니즘을 개선하는 실천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현시대에는 혁명과 같은 분노를 통한 사회체제의 감정적 전환은 불가능하며, 합리적 장치들을 디자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제목이자 전달하려는 주제인 ‘컬처 엔지니어링’이 그 과정이다. 기술혁명과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사회문제 속에서, 상황에 대처하는 사회 구성원 전반의 사고방식, 대응 방식, 의식의 고착화 현상은 정부가 교체되어도 잘 바뀌지 않는다. 네 명의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컬처(‘개인과 조직의 사고·대화·행위 양식을 강제하는 의식적·무의식적 토대·구조·맥락’) 변화를 촉구한다. 인문학자 함돈균, 교육공학자이자 교육행정가 폴 김, 국제개발협력가 김길홍, 국제경제기구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 교육 분야 대표이자 남아시아 인간 사회개발 디렉터 나성섭은 사회 인프라를 설치해도 이 하드웨어를 제대로 사용하고 유지·관리하는 것, 거기에 따르는 관습·제도·정책·규정·법을 바꾸는 것이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그 사회의 컬처, 사람들의 문화·인식·태도 같은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변했다. “‘사회적 합의를 할 수 있는가’, ‘어떻게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합의 능력에 따라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회를 잡는가, 못 잡는가가 나눠질 것‘(김길홍)이다.

 

한국에서 광우병, 4대강 사건이 불신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던 것처럼 네팔의 멜람치 물 공급 사업은 정부군과 마오이스트 무장 반군 세력이 내전 중인 상황, 많은 NGO(민간단체가 중심인 비정부(非政府) 국제 조직)까지 고려해야 해서 사업 추진 20년이 걸릴 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이렇게 되면 가장 고통받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생활하기 위해 물이 필수 불가결한데, 가난한 사람들은 물 저장 시설이 없어서 더 크게 영향을 받아요. 물탱크로 가져와야 되니까 물값이 더 비싸져서 힘들어지고요. 물은 생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사회가 겪는 고통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렇게 프로젝트가 사실상 ‘실패’하게 되면 두 번째 고통이 발생하는데, 정부 입장에서는 프로젝트 비용이 굉장히 올라간다는 거죠. 시간과 인력과 자원이 더 들어가게 되니 비용이 몇 배로 뜁니다. 또한 더 나쁜 점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믿을 게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사회적 불신이 더 커지는 거죠.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과정에서 사회 지도층이나 와페드 등 누구도 사업 지연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사업 지연의 고통은 온전히 시민의 몫으로 남았다는 것이죠. 한 번 크게 추락한 사회적 신뢰는 복구가 굉장히 어렵고, 계속해서 불신을 증폭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심화하게 됩니다.」(나성섭)

 

「갈등의 해소라는 게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거나 합의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사회의 수준을 어떻게 해서든지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건 사회적 담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극단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얘기와는 반대로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이 낮을 때에 사회적 무갈등의 상태에서 기술적 개발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환경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적당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경기장 시설인 동대문운동장이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지고 거기에 다른 구조물이 들어설 때 한국의 일반 시민들은 이 사안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그 자리에 지어진 건물이 설령 멋있다고 하더라도, 그와는 별개로 이렇게 큰일들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별 거슬림 없이 수용된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어쨌거나 폴 김 선생님 말씀은 사회개발 프로젝트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교육적 프로세스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고, 사회의 질을 생태계 수준에서 총체적으로 진화시킨다는 관점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죠.」(함돈균) 

 

 

4대강 사업이나 용산 참사 등 한국 정부는 강제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후진적 사회의 모습을 자주 보여 왔다. 사회적 갈등이 만연하면 실행 기능이 떨어진다. 앞에서는 혁신을 말하면서도 노소, 계층, 개인·기업·공기관 할 것 없이 한국은 리스크 회피 사회다. 정부 보호 아래 기업은 단기 지대 추구를 최대화하려는 기회를 벌고자 해 스마트폰과 자동차 산업에서 새로운 기술 도입이 늦어진 게 대표적이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공무원 직업도 리스크 회피 컬처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건 실패를 감싸 안는 사회시스템이 안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 실리콘밸리는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스탠퍼드대학교가 있고 그런 적극적 환경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한국의 새로운 산업은 획기적인 산업 재편성이 이루어진 미국이나 중국과 큰 차이가 있다. 게임 산업(넥슨, 넷마블 등), 인터넷 비즈니스 산업(카카오, 네이버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BTS 등)으로 부상한 시장은 재벌 기업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진출하지 않은 분야였다. 새로운 산업으로 빠르게 움직이려면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필요한데, 고용 안정이나 보수-진영의 이념 문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생산적 전환이 가능한 재교육 시스템 디자인을 구축해야 한다.

 

‘글로벌global’이라는 단어는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의 희망을 반영하는 시대적 키워드였고 경제 중심주의적 시각이 깔려 있다. 두 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시장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강화하는 불신의 키워드가 되었다. 앞으로의 키워드는 도시city다. 도시는 이제 하드웨어 인프라의 집적이 아니라 인재 가 집적하고 사회혁신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플랫폼이다. 뉴욕, 워싱턴 시애틀(아마존), 캘리포니아 마운틴뷰(구글), 중국의 선전深?,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지역 사회 육성 사업은 보여주기식 행정이나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단순한 이벤트가 많은데 이런 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될 수 없다. 기업과 공장을 도시에 유치함으로써 인재가 모이는 게 아니라, 인재를 도시에 모이게 함으로써 기업과 공장과 문화가 만들어진다. 미래의 도시 전략은 인재들이 모이는 복합적 도시 생태계를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도시 개발을 한다고 할 때는 ‘도시 진화의 초점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하는 핵심 진화에 대한 생각을 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도시들은 첨단 기술 직종들을 유치해 투자를 유도하는 문제에만 관심이 많은데, 젠트리피케이션이라든지 중간 직종의 몰락이라든지 젠더 이슈라든지 이 상황이 파생할 수 있는 문제적 이슈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어떻게 함께 진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도시화정책에서는 가치 지향이나 행정제도 실행 권한을 지닌 단체장 또는 정단이 누가, 어디가 되는가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아요. 경제적 이익만 바라볼 게 아니라 이처럼 핵심 진화를 생각할 수 있는 도시계획 모델이어야 한다는 거죠」(폴 김)

 

인간은 생산 도구인 ‘노동자’가 아니라 인적자본(노동자 개인이 보유한 능력, 숙련도, 지식을 아우르는 개념이자 기술 혁신을 위한 질적 노동)의 존재다. 경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고 축적하는 것과 기술 진보가 필요한데 이 두 개를 모두 이끄는 힘은 인적자본에서 나온다.

 

「저는 싱가포르도 인재 전쟁에 대해 수준 높은 문제의식을 지닌 나라라고 생각해요. 싱가포르는 2014년 국가 어젠다로 스킬스 퓨처Skill’s Future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한국말로 하면 미래 인재 로드맵이에요. 스킬스 퓨처의 목적은 모든 국민을 어느 시기 어느 곳에 있든 간에 평생 교육의 주체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25세 이상의 모든 싱가포르 국민에게 500싱가포르달러에 해당되는 ‘스킬스 퓨처 크레디트’를 지원하여 정부가 승인한 직업훈련 기관에서 온·오프라인 훈련을 받는 데 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바우처 제도입니다. 모든 국민이 자기 주도로 학습을 하여 자기의 역량을 최대로 고양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거예요.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직능을 배우고, 직업 전환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내가 엔지니어였는데 스킬스 퓨처를 통해서 건축가가 될 수 있어요. 그것을 정부가 도와줘요. 게다가 어떤 시기에든 할 수 있다는 거죠.

주목할 점은 이 스킬스 퓨처는 국가 최상위 정책이라는 말이죠. 보통 인력개발 정책이나 교육 정책은 국가 산업개발 정책을 지원하는 지원 정책입니다.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인재를 키운다는 발상에서죠. 그런데 싱가포르는 그게 아니에요. 앞서 제가 모토로라 사례와 싱가포르의 MRO 사례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재 주도형 산업개발 정책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인재 우선, 즉 인재가 있으면 그다음은 뭐든지 가능하다는 거죠. 다시 말해 인재를 키우면 그 인재가 새로운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개척합니다.」(나성섭)

 

 

새로운 기술혁명 사회로 진입하며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일자리 창출이 능사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한국에 시급하다. 일사불란함과 효율성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하던 시절은 분명 지났다. 함돈균은 ‘계층, 지역, 세대 등 사회 갈등이 극심한 한국에서 사회적 다양성을 보장하면서도 사회 통합을 추구할 수 있는 문화 형성’을 위해 시민성(시티즌십)의 교육과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에 방글라데시인이 총장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고 고위층 인사나 대기업 임원진 대부분이 남성인 한국 사회가 다양성과 수평적 관계, 위계와 나이와 서열이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로 변화할 의지가 엿보이는가.

 

민주주의가 경제 번영을 보장하지 않는다. 필리핀, 방글라데시, 네팔은 민주주의여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스탠퍼드대학교 프랜시스 후쿠시마 교수는 사회적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신뢰 사회는 구성원들 간의 가치와 원칙의 공유가 작동하고, 저신뢰 사회는 개인적 연고, 혈연적 연고에 의한 사적 신뢰에 기반한다. 한국은 OECD 기준으로 신뢰 정도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사건, 삼성 백혈병 문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감옥까지 간 전직 대통령들 등 일련의 사건과 그 처리를 보며 국민들은 행정부, 사법부, 모든 공권력, 국가 운영시스템에 사회적 신뢰가 많이 깨졌다. 방송과 언론까지 망가져 개인 팟캐스트 같은 미디어를 통해 공적 정보를 얻고 신뢰하는 문화도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정부든 실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신뢰를 위해 구축해놓은 객관적 시스템이나 제도적 프로세스가 작동을 제대로 못하니 청와대 국민청원은 늘 문전성시다. 새로운 기술 매체의 등장과 대중문화의 압도적 양상과 전문가의 몰락 현상도 사회적 신뢰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가짜 뉴스는 여러 형태로 진화하며 점점 더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발달해갈수록 기계를 통해 인격적 관계를 맺은 아이들은 감각 프로세스도 그런 식으로 코딩될 것이고 인간 자체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텐데 사회적 신뢰까지 추락된 상황이라면?

 

우리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매뉴얼 없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모든 걸 자동화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해도 인간이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다. 매뉴얼을 넘어서거나 매뉴얼이 무용지물인 상황이 오히려 늘어나는 구조적 ‘위험사회’(울리히 벡)로 향하는 만큼 종합적이고 전체를 보는 눈을 키우며 제대로 된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 필요하다. 후쿠시마의 쓰나미에서 매뉴얼대로 따르지 않고 상황 판단을 해 산으로 간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많이 살아남은 사례는 자율적 판단 능력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이 책이 제안하는 컬처들은 가장 기본이었어야 할 것들이라 새삼 놀랍다. 모나지 않게 처신하며 안정적인 사회적 틀에 맞춰 사는 패턴이 한국인이 바라는 삶이고 행복인가. 진실을 말하자면 사회안전망이 불충분하니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두려움으로 평균적 삶을 살기 위해 인생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악전고투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한국은 미래학교를 가지고 있는지. 아무리 실패하더라도 성숙한 미래 사회로 향한다면 나는 비판적인 시선, 질문과 함께 그 실패에 동참할 의지가 있다. 무수한 실패와 가까스로 얻는 성공은 끝없이 계속되겠지.

 

 

「미래학교라는 건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학교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수능에 전부 쏟아붓는 게 아이의 대입을 결정할지는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학벌로 결정되는 사회가 끝나가고 있어요. 취직했던 회사가 없어지고 직업군 자체가 없어지는데, 일시적 취직이 평생을 보장할 수가 없죠. 자기 주도성은 대입이 아니라 평생을 결정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뭐냐면 자기 스스로 결정을 할 기회가 많다는 것은 그런 결정을 통해서 실패할 기회를 많이 갖는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실패할 기회를 효과적으로 자꾸 만들어주는 학교가 미래학교인 거예요.

이건 동시에 컬처이기도 해요, 잘못된 결정도 해봐야 하고, 거기에서 배우고, 실패할 기회를 주고, 실패를 통해서 다시 배우고, 더 발전된 나를 찾는 그런 기회와 환경을 제공해주는 학교가 미래학교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보다 나은 미래는 실패의 계기, 실패를 학습하는 일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교육 프로세스와 그런 학교를 디자인하는 것이 사회가 한 단계 진화하고 성숙해지기 위한 컬처 엔지니어링이기도 한 것입니다.」(폴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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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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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인간관계와 그 중요성에 대해 숱하게 고민하지만 성공을 약속하는 자기 계발서처럼 나를 위한 이기심에 그러할 때가 대부분이다. 나도 좋고 타인도 좋으면 좋겠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옆 사람의 맘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요즘의 행복이 각자 자기 충족에만 그치는 건 아닌지 싶을 때도 많다. 점점 더 자기 앞만 보고 내달리게 하는 사회에서 오늘 아침 풍경은 좀 달랐다. 이른 아침부터 투표를 하러 가거나 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뒤라 내 맘이 더 복잡한 건지도 모르겠다.

 

 

 

신영복 선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자유를 되찾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감옥에서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결심했다. 당시 교도소 규정 때문에 책을 세 권 이상 소지할 수 없어 현실적인 이유로 오래 볼 책을 고심하다 그리된 것이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했다고 하겠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선생님.

이 책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건설되는 시대였고 사회에 대한 최초의 담론이 쏟아져 나오며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 변혁기였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도 이 시대의 사상가였다. 신영복 선생은 춘추전국시대가 현대 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질서, 무한 경쟁의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은 서양 중심의 질서가 반드시 변화할 때이기도 하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實體性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을 운동 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의 운동 원리가 관철되는 체계입니다. 근대사회의 사회론社會論이란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 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關係網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서양 근대 문명은 유럽 고대 과학 정신과 기독교의 결합(흄과 칸트의 견해) 이었다. 많은 역사서들은 과학과 종교가 기능적으로 조화된 구조여서 서양 문명이 동아시아에 앞서 현대화를 실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축은 서로 모순된 구조라는 게 결정적 결함이다. 비종교적인 과학과 비과학적인 종교. 과학의 압도적 우위로 진리와 선이라는 서양 문명의 기본 구조는 와해되었다. 종교의 역할 축소와 함께 현재 과학은 자본 축적의 전략적 수단이 되어 사회 변화를 증폭하고 미래에 대한 압도적 규정력을 행사하고 있다. 패권 국가의 일방적 세계 전략은 이러한 모순을 더욱 첨예화하고 있다. 신영복 선생은 서구 문명이 도덕적 근거를 비종교적인 인문주의人文主義에 두는 동양적 구성 원리에 가치를 두었더라면 이러한 모순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같은 위기에 처한 지금, 차이가 아니라 공존을 위한 관계망을 강조하는 이 강의는 현실적인 공론을 제시하고 있다. 21세기를 시작하며 많은 미래 담론들이 나왔지만, 신영복 선생은 그것들이 20세기의 지배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저의를 내면에 감추고 있다고 보고 새로운 담론을 위해서는 근대사회의 기본적 구조가 아닌 새로운 구성 원리로 바꾸는 담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양 문명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은 기본적으로 모순 구조를 내장하고 있다. 모든 사상은 대립, 모순, 긴장, 갈등 과정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동양적 구성 원리에서는 그러한 모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중용中庸)이 특징이다. 인본주의 유가儒家와 자연주의 도가道家의 견제도 그랬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할수록 불변의 진리에 대한 탐구가 절실해진다. 공자가 위편삼절(韋編三絶: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읽다) 해 읽은 『주역』의 탄생은 그런 배경이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리의 자리에 정의와 평등과 자유를 두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西周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담론(『논어』)에서 보편적 개념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영복 선생은 『자본론』과 『논어』가 사회관계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적인 책이라고 말한다.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이 사회 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이고 본질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이다. 한국의 문제도 바로 이것 아닌가. 경제 발전과 돈을 좇으며 사람을 함부로 대하던 문제가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형태로 목격되고 있다. 무왕불복(無往不復 : 지나간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주역』 지천태괘地天泰掛의 효사爻辭)을 우리는 더 참담하게 마주하고 있다.

 

「『노자』의 서술 방식은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설辭說을 최소한으로 하는 엄숙주의가 기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선언적 명제命題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는 만연체를 기조로 하면서 허황하기 짝이 없는 가공과 전설 그리고 해학과 풍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두 책의 제1장이 그러한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자』의 제1장은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입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의 첫 구절은 “북쪽 깊은 바다(北冥)에 물고기가 한 마리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하였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로 시작됩니다."

이 첫 구절의 차이가 사실 노장老莊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자는 도道의 존재성을 전제합니다. 도를 모든 유有의 근원적 존재로 상정하고 이 도로 돌아갈 것(歸)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 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그 도와 함께 소요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지요. 『노자』를 우리는 민초들의 정치학으로 이해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읽었습니다만 『노자』에는 그러한 사회성과 정치성이 분명하게 있는 것이지요. 『장자』에는 이러한 차원의 정치학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자』의 정치학은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모색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적 자유와 소요를 장자의 정치적 선언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패권 경쟁을 반대하고 궁극적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자』와 『노자』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자는 노자의 상대주의 철학 사상에 주목하고 이를 계승하고 있지만 이를 심화해가는 과정에서 노자로부터 결정적으로 멀어져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세계, 즉 ‘정신의 자유’로 옮겨갔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도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떻든 노자의 관념화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겸애는 별애別愛의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겸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평등주의, 박애주의입니다. 묵자는 사회적 혼란은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차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나아가 서로 이익이 되는 상리相利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리의 관계는 개인의 태도나 개인의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구조와 제도의 문제임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도적·법제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에는 겸애와 교리의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는 보다 진전된 논의가 없습니다. 애정愛情과 연대連帶라는 원칙적 주장에 머무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학儒學은 객관파客觀派와 주관파主觀派로 나누어집니다. 사회질서와 제도를 강조하는 순자 계통이 객관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개인의 행위를 천리天理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다시 말하자면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 계통이 주관파로 분류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후에 기학파氣學派와 이학파理學派로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순자는 예禮에 의한 통치를 주장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덕德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주관파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주관파에서도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계승하여 예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순자의 예는 공자의 예와는 달리 선왕先王의 주례周禮가 아니라 금왕今王의 제도와 법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안정기에는 예가 개인의 수양과 도덕규범으로 해석되고 사회 변혁기에는 사회질서와 제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략)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악설을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매우 피상적이고 도식적인 이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性은 선악 이전의 개념입니다. 선과 악은 사회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성과 선악을 조합하는 개념 구성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천과 천명을 부정한 순자의 사상 체계에 있어서 본성이라는 개념이 설 자리는 처음부터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교육론과 예론禮論, 제도론制度論을 전개하기 위한 근거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중략)

순자는 예론에서 예는 기르는 것(養)이라고 했습니다. 순자의 예가 곧 법이 되는 것임은 이미 이야기했지요. 따라서 순자는 법이란 무엇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의 잠재력을 길러내는 것이며, ‘법’이란 글자 그대로 물(水)이 잘 흘러가도록(去)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순자의 「악론」편은 대체로 묵자의 비악론非樂論을 비판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화순’和順입니다. 분계와 법과 규범과 제도라는 각박하고 비정한 것들을 음악으로 화순시키는 것입니다.」

 

 

「불교 사상은 해체 철학의 진보성과 무책임성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함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책임성이란 모든 존재의 구조를 해체함으로써 존재의 의미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지요. 마치 언어가 어떤 지시적 개념이듯이 삼라만상이 어떤 지시적 표지標識로 공동화空洞化됨으로써 가장 철저한 관념론으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든 것에 대한 의미 부여가 거꾸로 모든 것을 해체해버리는 거대한 역설입니다. 실제로 수隋 당唐 이래로 선종 불교가 그 지반을 널리 확장해가면서 이러한 의식의 무정부성이 사회적 문제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그 의미를 규정하고자 하는 송대의 신유학이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중략)

문명의 중심을 자처한 중화사상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불교의 전래와 17세기 이후 서구 사상이 도입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그것은 중국 이외에 문명이 있다는 사실에서 받은 충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민족의 지배 기간인 원사元史와 청사淸史마저도 각각 송宋과 명明을 계승하는 정통 왕조로 규정하는 것이 중국의 중화주의中華主義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망’亡이라 하지 않고 도道가 전해지지 않는 것을 ‘망’이라고 할 정도로 중화주의는 초민족적 세계관이며 문화주의적 세계관이었습니다.

중국이 불교에서 받은 충격은 이러한 중화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것입니다. 사이팔만四夷八蠻이라는 세계 인식은 중국 이외에는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며 오만이었습니다.

중국 이외에 다른 문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화주의적 세계관이 무너지는 충격인 것이지요. 불교 철학은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세계관의 변화를 요구할 정도로 대단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불교 사상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유학을 대신하여 사회의 이념 형태를 규정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굳건한 지위를 점하게 된 것이지요. 특히 불교 사상은 개인주의적이며 반사회적인 해체 사상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신유학의 등장은 불교의 이러한 해체주의적이고 반사회적인 사상 영향으로부터 사회질서를 지키고 통일 국가를 만들어가야 하는 현실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송대 신유학과 관련된 논의 중에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송대 신유학에 이르러 비로소 유학의 철학화가 이루어졌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철학 즉 philosophy는 어디까지나 서양의 문화 전통에서 비롯된 특수한 문화 아이템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 이후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거쳐 근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소위 서양 철학은 현실과 이상, 현상과 본질 등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구조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학적 구조라는 것이지요. 존재론적 구조이면서 동시에 신학적 구조라는 또 하나의 특수한 사유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 철학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철학을 인류의 보편적 문화 형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 됩니다. 따라서 철학이라는 지적 활동을 보편적인 것으로 추인하기보다는 그것을 문화 상대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반론의 요지입니다. 철학은 서유럽 중심의 특수한 지적 활동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송대 유학이 철학화했다는 평가는 서양 철학 고유의 범주와 개념을 송대 유학에 적용하여 바라보았을 때만 부분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략)

송대의 유학자들에게 불교 사상은 현실의 물질성을 제거하고 사회 제도 그 자체의 존립을 부정하는 지극히 위험한 반사회적 사상이었으며 비윤리적 사상이었습니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 해탈解脫이라는 관념은 그 자체가 일종의 초윤리적이고 탈사회적인 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탈에는 일체의 사회적 관점이 없습니다. 사회적 책무도 사회적 윤리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사회적 실천과 사회적 업적에 대하여 일말의 의미 부여도 하지 않는 무정부적 해체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송대 유학자들에게 위기의식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주자朱子로 대표되는 송대 신유학자들로 하여금 시대적 사명감으로 『중용』과 『대학』을 장구하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大學은 원래 『예기』禮記 제42편이었습니다만 주자가 그것을 따로 떼어 경經 1장, 전傳 10장으로 나누어 주석했습니다. 경은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기술한 것이고, 전은 증자의 뜻을 그 제자가 기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대漢代 유가儒家의 공동 저작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대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유가 사상 중에서 가장 깊이 있는 내용이라 평가됩니다. …… 『대학』의 내용을 요약한다면 첫째 명덕을 밝히는 것(明明德), 둘째 백성을 친애하는 것(親民 혹은 新民: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 셋째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止於至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세 가지를 3강령三綱領이라 합니다. 그리고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가 8조목입니다.

우리는 『대학』의 내용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주자가 왜 『예기』의 이 부분에 주목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장구하고 주를 달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자 이전에도 사마광司馬光이 『중용대학광의』中庸大學廣義를 지어 『중용』과 함께 『대학』을 따로 다루었습니다. 이처럼 『대학』을 주목하게 된 배경이 중요합니다. 『대학』은 일반적으로 대인大人, 즉 귀족, 위정자의 학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학』은 단지 지식 계층의 학이라기보다는 당대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덕이 있는 사회, 백성을 친애하는 사회, 최고의 선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해탈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송대 지식인들의 사회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反불교적이고 반도가적입니다. 불교의 몰沒사회적 성격에 대한 비판입니다. 『대학』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세계의 건설입니다.」

 

서양철학을 좀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인용을 통해서도 보듯이 동양 사상이 인간 중심의 관계지향적 성찰이라는 게 와닿을 것이다. 동양 사상을 현실적이라거나 논리가 부실하다고 폄하하는 경향도 보는데, 서양철학의 그 치열한 이성 중심주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 같다. 신영복 선생은 강의 말미에서 “한 사람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가슴(heart)”이고 사상과 생각을 결정하는 것도 머리(head)가 아니라 가슴이라고 했다.

 

「시와 산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몇 가지 부언해둡니다.

첫째, 사상은 감성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합니다. 사상은 이성적 논리가 아니라 감성적 정서에 담겨야 하고 인격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성과 인격은 이를테면 사상의 최고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상은 그 형식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의 육화肉化된 사상이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경우에도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은 법제적 정비 수준에 의하여 판단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회 성원들의 일상적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 실현되는 삶의 형태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말이나 글로써 주장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의 사상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주장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삶 속에서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의 존재 형식은 담론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된 것은 검증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 담론의 구조가 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격으로서 육화된 것이 아니면 사상이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책임이 따르는 실천의 형태가 사상의 현실적 존재 형태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상은 지붕 위에서 던지는 종이비행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많은 어지러움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만 문제를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라고 했던 묵자, “바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물(水)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聖人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은 언言에 대하여 말하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깊은 물은 높은 물결을, 얕은 물은 낮은 물결을 일으키는 법이다). 일월日月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군자는 도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법”(「盡心 上」)이라 엄정히 말하는 맹자,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상서尙書』,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것으로 미모美貌보다는 건강健康이 더 중요하고 건강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을 『백범일지』에 쓰고 맘에 새기려 했던 백범 선생처럼 내 맘만이 아니라 많은 맘을 살피는 실천을 잃지 말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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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2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