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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웃었다.
"쇼지 씨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하겠어. 수십 년을 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는걸. 번역이란 거, 지치는 양상도 좀 독특하거든."
디저트와 에스프레소가 나와 얘기가 중단되었다. 엄마의 생각을 요즘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 신기했다. 엄마가 하는 일도.
"다른 사람의 문장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더듬어 가야 하잖아. 하루에 몇 시간이나, 마치 자신의 글을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사고회로에 동조한다는 거, 그거 참 묘한 일이야. 거부감이 없는 선까지 들어갈 때도 있잖아. 그러면 어디까지가 자신의 생각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타인의 사고가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들기도 하고. 영향력이 강한 사람의 글을 번역하다 보면, 그냥 읽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끌려 들어가게 돼."
"……엄마 정도의 베테랑도?"
"최근에는 엄마도 터득하게 되었지만, 번역 일을 시작했을 처음에는, 그게 아마 이혼한 그쯤일 거야. 잘 안됐어. 일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할까.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 헤쳐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그런데 종일 타인의 문장과 씨름을 하고 있으니…… 아, 그래, 고독이라고 해야 하나? 고독에 거의 짓뭉개질 것 같았어. 그리고 기분 전환 거리는 뭐든 상관없었어. 사고를 완전히 중단할 수만 있으면."
"자식을 키우는, 그런 거?"
"자식을 키우는 건 시행착오의 연속이야."
엄마가 웃었다.
"엄마는 겐타마였어."
"응?"
나는 되물었다.
"겐타마(십자 모양의 손잡이에 끈으로 매달린 나무 공을 탁탁 치며 노는 놀이 기구). 아하하,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에는 심각했어. 엄마가 자주 했잖아, 왜."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엄마의 방 닫힌 문 너머에서 '탁, 탁'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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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인생의 많은 것들이 얽히고설켜 그의 내면에 지속적으로 쌓여 간 피로감을 덜어주는 역할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그 사람 인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것, 내게는 매력으로 비쳤던 어두운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나는, 만났을 때 이미 전구가 거의 꺼져 가던 그의 마음속 방에 날아든 나비였다. 위로는 되겠지만, 어둠 속에 낮의 반짝거리는 잔상을 끌어들여 그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을 뿐이다.
그래서 꿈에 그가 등장할 때면 언제나, 지금의 내가 옛날의 그를 만나는 설정인 것이리라. 지금의 나라면 조금은 반짝임 이외의 것을 줄 수도, 즐겁고 고요한 시간을 함께 보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그것도 힘든 일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회하고 있다. 지금의 나로 만나고 싶었다.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런 생각이 남아 있다. 자신에게 과도한 가치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