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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최재혁 옮김 / 한권의책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인터넷을 어느 정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인터넷 유행어 중에 이런 게 있죠.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이 문구를 넣어 짤방을 만드는 걸 심심치 않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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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mu.wiki/w/%EC%95%84%EB%AC%B4%EA%B2%83%EB%8F%84%20%EC%95%88%ED%95%98%EA%B3%A0%20%EC%8B%B6%EB%8B%A4
설득할 필요도 없이 게으름과 한가함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욕구이자 쾌락입니다. 앙리 베르크손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p58~59)에서, 벗어나기 위해 운동하라는 명령을 ‘고통’, 운동하지 못하게 하는 사로잡힌 무기력을 ‘쾌락’이라고 했습니다.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이라는 부제를 단, 고쿠분 고이치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는 그러한 ‘고통’과 ‘쾌락’의 역학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파스칼은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분전환(Divertissement, 디베르티스망)을 추구하는 불행이 인간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고쿠분 고이치로는 인류가 유목생활에서 정착생활로 넘어가면서 사유재산 같은 소유의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경제적 격차, 계급)이 생겨났고 지루함의 문제도 등장했다고 봅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존재가 국가에, 집에, 관계에, 소유와 분배에, 자아에 골몰하게 된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과 소비사회에 압도되어 있는 우리는 하이데거가 표현한 ‘얼빠짐(마비상태)’, ‘붙잡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현실을 벗어나기도 바꾸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나 ‘헬조선’ 같은 표현들은 우리에게 ‘기분전환’용이기도 할 겁니다. 고쿠분 고이치로는 일상의 지루함과 기분전환이 얽힌 양식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 삶의 본질이라고 하며, “지루함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발로”(p226)란 하이데거의 말처럼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다면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자유도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이론생물학자 윅스쿨이 고안해낸 “환경 세계”는 그 가능성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환경 세계”는 모든 생물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을 살아가고 있다는 개념입니다. 18년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포유류가 발산할 뷰티르산 냄새를 기다리는 어떤 진드기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다릅니다. 18분의 1초가 연속되어야 시간을 감지할 수 있는 인간과 그보다 더 빠른 시간 내에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물고기도 다른 시공간을 삽니다. 해바라기를 하기 위해 바위를 받침대로만 여기는 도마뱀과 감상을 비롯해 여러 용도로 바위를 이용하는 인간도 다르게 세계를 감각합니다. 동물들이 자기 환경 세계에서 ‘충동의 정지’와 ‘충동의 해제’로 안주한다면, 인간은 동물보다 환경 세계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능력이 상당히 발달해 있습니다.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말은, 하나의 환경 세계에 머물러서 살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세계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상당한 자유를 가지고 환경 세계를 이동할 수 있기에 지루해하는 것이다”
ㅡ 하이데거의 지루함론
예술, 결혼, 놀이, 독서, 우주 탐사 등 우리 행위들은 환경 세계를 바꿈으로써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일 겁니다. 행위가 안정되고 습관을 통해 우리는 쾌락을 얻지만 반복의 지루함이라는 불쾌함을 다시 마주해야 합니다. 파경, 무질서, 광기, 노예 같은 상황들은 나쁜 결과에 해당되겠죠.
경험의 반복과 스스로 사고하는 체험 속에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결론은 매우 진부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 이런 삶을 누구나 누리고 살고 있지 않기에 이 결론은 가볍지 않습니다. 또한 이 결론이 타당한 것인지 고쿠분 고이치로가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철학을 두루 살펴 37명이 넘는 인물들의 이론을 탐구하며 말하고 있기에,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저는 고맙기도 했습니다. 제 생각 발전소에 윤활유가 되어 주었으니까요. 지루함과 기다림의 보고서였던 베케트《고도를 기다리며》가 본문 논의에 들어가지 않아 아쉬웠는데, 고쿠분 고이치로가 예상을 비껴가서 저는 살짝 즐겁기도 했습니다. 아, 인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