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시즌이기도 하고 연말의 울적함을 좀 덜어보고자 서재를 환하게 핑크빛으로 꾸며 봤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에서 콩브레 생틸레르 성당의 분홍빛 종탑, 미래에 스완 씨 부인이 되는 분홍빛 여인, 르그랑댕 씨가 도취해서 말하는 분홍빛 구름, 분홍빛 미나레트(회교 사원의 첨탑), 분홍색 산사나무 꽃, 분홍색 주근깨투성이 소녀에게 사랑을 느끼는 화자 등등을 발견하며 내 선택이 마침 잘 맞았군~ 혼자 싱글거리기도 했다.
헌데 생각보다 고품질 고사양 핑크빛 책이 많지 않아 서재 진열이ㅡ보라와 살구빛 사이에서 투쟁 중;;ㅡ흡족하지 않았다. 뭐야! 더부살이 주제에 마치 책방 주인처럼 말하고 있어;; 아동서 외엔 핑크색 책이 많지 않은 것은 가벼워 보일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왜 핑크색은 가벼움으로 생각되는가, 크릉)) 아예 빨간색으로 하면 했지 핑크색은 되도록 피한다. 문득 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은 얼마나 난감했는지... 빨간색 표지에 페이지는 검정 테두리; 꼭 이랬어야 했나 싶은 모양새로, 힘 엄청 줬지만 읽기엔 영 거북했던 책 중 하나였다. 검정 테두리 때문에 지문이 페이지마다 묻어...((악)) 핑크색 칸트 책은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악취미 수집가가 아니라면; 앤디 워홀의 핑크빛 마오는 미적 쾌감만이 아닌 사유의 비상구를 보여준 셈~
내 이 괴상한 서재꾸미기 취미 생활을 ㅉㅉ하며 펼쳐본 스티븐 켈러트 <잃어버린 본성을 찾아서>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의 선호도가 어떻게 좋음과 나쁨을 나누고 현실 체계를 만들어가는지에 대해. 그것은 본성과도 관련된 것인데, 나쁜 것만도 아니다. 우리는 밝은 색상이나 맑은 물 같은 자연물에 미적으로 끌리는 반면, 바퀴벌레, 쥐, 어두운 늪지, 깊은 숲엔 거부감을 느낀다. 병문안을 갈 때 왜 꽃을 선물하는지, 강이나 바다를 바라보는 뷰 포인트 방은 왜 비싼지, 경치가 좋은 곳을 왜 좋아하는지...이러한 현상은 진화 과정에서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연 요소와의 관계를 반영(p45 참조)한다.
다 읽고 나면 리뷰를 쓰겠지만, 제목 때문에 이 책을 골치 아픈 철학책으로 알고 주저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미리 소개한다. 미적인 것에 대한 칸트 <판단력 비판> 이런 걸 가져오는 게 아니라; 현실 적용에 대한 논의 위주다. 유익한 책인데 영 반응이 없어 내가 알리겠소! 우리 동네 도서관에도 신청~ 당신도 도서관에 신청을ㅎ! 책 구입은 도서관에 양보하세요~ㅎ 녹색 표지처럼 논리도 시원시원하면서 안정감이 있다. 수록 이미지들도 좋고 숲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정보를 얻는 기분이다. 번역도 매끄러운데 번역자가 과학 신문 전문 칼럼니스트라 내용 이해도가 깊어서 주석도 꼼꼼하다.
진화심리학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에겐 겹치는 내용이 많겠지만, 스티븐 켈러트가 자연과 일상을 연계해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걸 보는 유쾌함이 있다. 공격적이고 현학적인 과학 책에 두려움을 가졌거나, 오, 다윈! 리처드 도킨스!<(ㅜㅁㅜ)>하며 이 분야 진입을 어려워했던 사람들에겐 접근하기 쉬운 책이다.
스티븐 켈러트와 함께 ˝생명 사랑 정신˝을 진화심리학 이론 개념으로 널리 알린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도 어서 읽어야 되는데...아, 죽기 전에 내 진화는 어떻게 끝날 것인지)) 당장 깊어만 가는 내 서재꾸미기 증상은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사기 치고 다니는 것보다야 건전하지만;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