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의 사물들
일요일이다. 내내 사물들로만 일기를 쓴 적 있다. 오늘도 한없는 사물에 대한 내 사랑을 가늠하고, 내 멋대로 스승이자 동지로 삼은 프랑시스 퐁주를 떠올린다. 대상이 우리 머릿속의 추(錘)라고 말한 시인, 프랑시스 퐁주. 프랑시스 퐁주. 끝없이 대상이 되는 우리들.
인간은 그 중력의 중심이 그 자신에게 있지 않은 이상한 육체이다.
우리 영혼은 타동사적이다. 영혼에게는 직접 보어처럼 영혼을 즉각 감동시키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것은 가장 심각한 관계의 문제이다(소유의 관계가 아니라 존재의 관계이다).
다른 어떤 인간보다 예술가는 그 짐을 받아들이고, 타격을 받은 표시를 한다.
ㅡ프랑시스 퐁주 「대상이 시학이다」 中
'무엇'을 쓸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라면 글쓰기 전에 '무엇'은 부지불식간에라도 선취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이다. 예술가들은 ‘어떻게’를 골몰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평형이지 않다. 프랑시스 퐁주는 ‘평형추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대상들을 가져와 詩라는 저울에 올린다. 심연에서는 그것이 무용하다는 걸 우리는 안다. 데리다는 『시네 퐁주』에서 퐁주의 주관적이지만 예리하고 무용한 작업을 얼마나 멋지게 분석했던가! 국내 번역은 괴발개발이었지만;
출퇴근 길에 사물에 대한 에세이 『당신의 사물들』을 읽었다. 아무래도 사물에 좀 더 민감한 시인들이 주 필진이다. 사물을 대하는 네 가지 감각 ‘느끼다/보다/듣다/만지다’ 분류 항목에 따라 이 책에 거론된 사물들은 다음과 같다.
1부 느끼다 - 손삽, 숟가락, 사과, 쌍둥이칼, 알약, 오븐, 보자기, 탁주, 은수저, 칫솔, 겨울 양말, 의자, 장롱
2부 보다 – 등잔, 상자, 샤넬, 안경, 엽서, 여권, 팔찌, 꽃병, 전기스탠드, 신호등, 커튼, 클립
3부 듣다 – 콘돔, 베개, 침낭, 지도, 털실과 코바늘, 도장, 꽃, 버스, 우주선, 음반, 크리스마스트리, 우편함
4부 만지다 – 머플러, 봇짐, 바늘, 가발, 팔찌, 연필깎이, 교복, 맨발, 매니큐어, 플랫슈즈, 하이힐
여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물은 없다. 다만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사물은 있을 것이다. 왜?
글을 읽으며ㅡ당연하게도ㅡ놀라운 것은 어떤 ‘전형성’이다. 40년대 생부터 90년대 생까지 필자들의 세대 간격은 넓으나 그들 사유는 한국이란 시대와 정서에 밀착해 있다. 좋다 나쁘다 평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시 나-我라는 갇힌 세계, 시대, 사고 틀의 작동을 보는 씁쓸함이랄까. 그래서 새롭기가 힘들며 쉽게 공감에 기댄다. 하지만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당신의 문장은 당신의 계보와 족적을 남긴다
나는 남녀노소, 어떤 계층, 어떤 국적도 거부하고 싶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구분점에서 달아나고 싶다. 그러나 내가 가져오는 문장도 내 족적을 남긴다.
어제를 살해한 오늘의 태양처럼 빛나고 향기나는 사과들. 사과는 사과나무를 불태운다. 사과나무는 아름답다.
ㅡ 이수명 「사과」 中
얼굴이 붉어진다는 사실을 자각한 아이가 자신의 변화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더욱 얼굴이 붉어지게 되고, 처음 그리되게 만든 동기보다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다는 사실 그 자체를 더 수치스러워하듯이. 그것은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상태로 나를 공포스럽게 하곤 했다.
ㅡ 김경후 「쌍둥이칼」 中
겉면이 살짝 그을린 치즈의 노릇노릇한 문양은 오븐만의 확실한 인장이다.
온갖 가능성를 함축한 미지의 창문을 닫고 시간을 맞춘다. 새로이 도래하는 낯선 세계를 만나러. 오븐은 먼 세계를 향해 출발하는 뜨거운 방이다.
ㅡ 이혜미 「오븐」 中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단칸방이었다. 나에게 독립된 공간이 생길 때는, 가족들이 각자 다른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뿐이었다.
ㅡ 권민경「겨울양말」 中
등불을 보면 ‘생을 마감한 뒤에 남는 것은 그가 쌓아놓은 것이 아니라 나눠줬던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박물관에서 제일 많은 조선 시대 등잔 중에 오드리 헵번을 닮은 등잔은 정말 늘씬했고, 지금의 플래시와 같은 조족등은 신기했다.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의 제등도 있었고, 잊혀간 등잔을 보는 동안 우리 조상이 얼마나 근사한지 감탄했다. 낡아서 더 귀해 보이는 정겨운 등잔. 매혹과 행운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ㅡ 신현림 「등잔」 中
너무 사소하고 간단히 잊히지만 언제든지 무언가를 묶어내는 역할에는 한결같다. 그러면서 이 도구적 존재자의 성실함이 나에게 매번 확인시켜주는 것은 존재의 외로움과 외로움의 빛나는 단면이다. 쓸데없이 자존심이 상하거나 괜한 피해 의식으로 고통스러울 때 클립은 오히려 소슬한 목소리가 된다. ㅡ 김수우 「클립」 中
베개는 잠들고 싶은 머리를 위해 고안된 단순한 물품이라기보다는, 머리가 잠의 문을 찾는 장소다.
‘베개 방랑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시중에 좋다는 베개는 수집하듯이 사서 이것저것 다 사용해보지만, 어느 베개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가령 인간이 돌고래처럼 생겼다면 베개는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일 것이다. ㅡ 김행숙 「베개」 中
매일 밤 죽음을 연습하는 장소였다. ㅡ 안희연 「침낭」 中
내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불러댔다는 이름, 나에게 호명당한 그는 누구였을까? 절박한 순간에 꼭 불러내고 싶은 그 누구, 나에게 그럴 만한 사람이 정말 있었던가? 간호사에게 혹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나도 모르는 그 이름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듯 입안이 얼얼했다. ㅡ 최문자 「꽃」 中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단지 우연의 일치로 이루어진 일에 대해 우리는 더 깊게 해석하고 감응한다. ㅡ 석지연 「버스 」 中
『당신의 사물들』을 덮으며 나는 다짐하듯 생각한다.
어느 날엔가 허탈한 매정함으로 바뀌는 가볍고 편안한 공감을 얻기보다 외롭고 불편한 생각을 세상에 던지리라. 그때 두 손 맞잡지 않아도 우리는 동지가 되리라.
기다렸어요! 미셸 우엘벡 씨, 그래서 우리는 동지입니까, 아닙니까.
하하하. 헛소리하지 말라고요? 맞아요. 아하하하하))))
미셸 우엘벡이 무려 미셸 우엘벡으로 출연한! 영화 <미셸 우엘벡 납치 사건>(2014)을 놓친 게 두고두고 안탑!
이웃 A님이 알려 주셨는데, 우엘벡의 끌레망이 사망해서 눈물겨움...
http://www.30millionsdamis.fr/actualites/article/4401-le-monde-litteraire-pleure-clement-mort-il-y-a-un-an/
§§ 이웃의 사물들
서니데이님 소잉데이지 샵 http://storefarm.naver.com/sewingdaisy/products/251789266
티코스터. 카페에서는 자주 사용해 보았지만 내 돈 주고 사긴 처음이다. 선물하려고 사기도 했다.
티코스터에 대한 에세이를 쓰게 된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쓰게 될까.
익명을 부탁하셔서 밝힐 수 없다.
정말 저렴한 값으로 책을 파셔서 고마웠는데, 책 보다 선물이 더 많아 블록버스터보다 충격과 감동과 당황)))
(공식 알라딘 선물은 빼고- 내 마일리지 주잖아ㅎ!) 공짜 선물이 나는 무척 부담스럽다. 어떻게 갚아야 하나 고심 중...
『벌들의 죽음』여름용으로 딱이다. 헌데 이제나저제나 눈치만;;
§§§ 7월의 책들
이번 달엔 이쯤에서 그만 사야지 하지만.....
김종건 교수 번역으로 조이스 <율리시스> 범우사 제2판을 팔고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제3판으로 재구입했다.
<앤디 워홀 일기>를 물리치고 우리집에서 제일 두껍고 무거운 책이 된 거 같다.
베고 자면 언어의 연금술 꿈을 꾸게 될까?
도스토옙스키도 동서문화사판으로 다시 모으고 있다.
신간으로 산 것은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뿐이다.
다 안 읽어보고 권하는 걸 꺼리지만 <그라피티와 거리미술>은 자료 차원에서 소장 강추~
그라피티를 뱅크시의 작품과 영화<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2010)로 대충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라피티를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책~
페이지마다 가득한 수록 작품들도 모두 훌륭하다!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