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법칙 10+1
존 맥스웰 지음, 조영희 옮김 / 청림출판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다. 동화같은 사랑을 하고 싶지만 주위에는 멋진 사람이 없고, 시험을 잘 보고 싶지만 출제자와 나의 생각은 너무 다르며, 인생 역전을 하고 싶지만 로또 숫자는 3개 맞추기도 힘들다.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데 밤늦게까지 해야할 일이 너무 많고, 다이어트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아서 뱃살은 해가 갈수록 늘어간다. 물론, 내가 생각한대로 뭐든지 이루어진다면 그것 또한 겁나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인생살이가 어디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있던가?


'인생은 어렵고 복잡하거든... 생각만큼 쉽지 않지. '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내가 속아왔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확고히 하는지도 모르겠다. 동화속에는 왕자님, 공주님이 대부분이다. 나중에는 개구리도 왕자가 되고 야수도 미남왕자님으로 변한다. 드라마에는 왜이렇게 회장 아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부모없는 고아였다가도 나중에 알고보니 회장 손자인 경우가 아주 흔하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총알을 맞아도 안 죽고 유연한 허리를 이용해 멋지게 피하기도 한다. 그런 동화와 영화와 TV를 보면서 혼자서 즐겁게 상상하다가 부딪치는 현실은 갑갑하고 차갑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나의 인생 경험을 통해서 얻은 현장 지식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에 이 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된다." 이 책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일단, '그렇지 않다' 혹은 '그러기 어렵다'로 책에 접근했다. 저자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례를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예화의 대사 한 마디를 들자면.


"리처드, 자네는 황소를 타기 전에 (그의 머리를 가리키며) '황소'를 타야 해"


머리로, 생각으로 황소를 타는 것이 정말 가치있는 일일까? 황소를 타기 전에 먼저 충분히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할까? 연상 작용을 통해 황소를 타고 난 후에 진짜 황소를 탄다면 훨씬 잘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것은 '황소타기'는 생각보다는 기술이나 연습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황소타기 챔피언은 위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도를 받은 제자는 뛰어난 성과를 보여 주었다.


나는 생각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이 책은 생각하는 방법을 다룬 부분이 70%정도이고 생각의 가치를 다룬 부분이 30%정도이다. 그러나, 책 제목과는 다르게 내게 영향을 준 부분은 바로 '생각의 가치'를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생각이 바뀌면 믿음이 바뀌고, 믿음은 기대를, 기대는 태도를, 태도는 행동을, 행동은 실력을, 실력은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단연코 그 마지막 인생의 성공이라는 결과물은 생각이라는 도화선을 통해 점화하기 시작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고민해보았다.


고민한 결과, 나는 생각에 대한 두 가지 개선점을 찾았다. 첫째, 최악의 상황과 그 다음 상황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생각은 성공과 기쁨에서 멈춘다. '아, 좋은 대학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면 얼마나 좋을까? 능력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보통은 생각은 늘 여기에서 멈춘다. 대학에 떨어지는 경우, 백수 생활을 오래하는 경우, 말도 안 듣고 능력없는 사람들과 일하는 경우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 다음 상황은 더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허둥대고 순간을 무마하려는데 급급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가 쓴 'Failing Forward'라는 책이 있는데, 나는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제목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실패는 분명히 있을 것인데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까지 미리 생각을 해 두면, 넘어졌을 때 좀 쪽팔리기야 하겠지만 그 다음 과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황소타기 챔피언의 제자도 황소에서 떨어지고 다시 타는 것까지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넘어지는 것 자체도 분명 앞으로(Forward) 가는 과정인 것이다. 대개 인생의 목표나 목적은 단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향만 제대로 잡고 있으면 목표지점에 최소한 가까이는 갈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나는 생각을 충분히 해서 생각의 근력을 키워야 한다. 실패는 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실패의 쓴 잔은 음미할수록 더 그 맛이 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말로 위로를 해보지만 잘 먹혀 들어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실패의 경험으로 인해서 포기하게 될 때도 많다. 그런데 분명 포기는 생각으로 먼저 한다. '에이... 거봐.. 안 되잖아.' 이렇게 먼저 생각으로 포기를 한다. 내게 행동의 끈기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생각의 끈기가 많이 부족했음을 느꼈다. 생각의 힘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쉽게 고정관념을 만들어 버리고 장애물 앞에서 뒤돌아서버렸던 것이다. 생각으로 절대 포기하지 않는 힘이 있다면 다시금 도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취미란에 '생각하기'라고 적을까한다. 그 만큼 좋은 생각의 가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책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생각으로 꿈을 이루고 현실을 이겨낸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격려를 받았다. 최종적으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결국은 생각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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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1-17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미란에 '생각하기'라. 호오 이런 책도 있었군요. 그러고보니 이제서야 이 리뷰를 읽어보네요. 부끄러운 마음으로 추천!

stella.K 2004-11-17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리뷰 당첨 되셨네요. 며칠 전 의겸 돌이고 한데 떡 좀 돌리시죠.^^

stella.K 2004-11-17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찬찬히 읽어 보니 정말 잘 쓰셨네요. 사실 이런 류의 책을 그다지 읽는 편이 아니죠. 도전은 되는데 워낙 책에 대한 관심이 한쪽으로 쏠려있다 보니 이쪽 방면으로는 눈이 잘 가지 않더라구요.

전 그다지 생각의 힘을 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게 그렇게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기 보단 회의적인 게 더 많아서. 근데 직감이나 예감엔 또 적중률이 좀 있지요. 그것과 이건 좀 다르긴 한 것 같습니다. ㅋㅋ.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엔 동의는 합니다. 이 책 한번 읽어 보고 싶군요. 그러기 전에 제가 평소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그 생각이 어느 정도 긍정적인지 또는 부정적인지 평가를 내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추천하고 퍼가요.

목적성과 상관없이 좋아서 이러는 거라구요.^^

설박사 2004-11-1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스텔라님, 검은비님, 물만두님... 감사합니다.

역시 늘 관심 갖어주시는 분들이 참여를 해주시는군요... ^^

저는 아무도 참여안해주시면 어쩌나 했습니다. ㅋㅋㅋ

용박사 2004-11-1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축하드립니다....^^;

맑은물 2004-11-19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미란에 '공상하기'라고 적었던 옛 시절이 기억납니다. 위대한 생각은 위인을 만든다고 믿습니다...좋은 생각 많이 하셔서 좋은 사람 되시고,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물만두 2004-11-19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했습니다. 코멘트는 제가 딴곳에다 썼나보군요. 음... 잘쓰셨습니다. 읽어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신뢰 - 하나님께로 가는 거침없는 믿음의 길
브레넌 매닝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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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수학에는 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정답이 있다. 수학 문제의 답과 같이 나는 세상 일에 있어서도 정답을 원했다. 어느 대학을 갈 건지, 어떤 직장을 가질 것인지,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에서부터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 것인지, 택시를 탈 것인지 버스를 탈 것인지, 몇 시에 집에 돌아갈 것이며 언제 잘 것인지 등 하루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나는 정답을 원했다. 그러나, 나는 정답 여부를 알 수 없이 단지 선택을 할 뿐이었다. 때때로, 선택이라는 자유로부터 도망갈 수 있기를 바랬다. 왜냐면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분명히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면서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 안에는 내 선택의 불완전성에 대한 불만과 불안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정답을 알 수 없는 이유는 나의 이성과 판단력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모든 발생 가능한 일을 예측하지 못한다. 내 결정의 영향력을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선택권을 드리기로 결심했다. 하나님이라면 정답을 아실 것이다. 나는 기도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일에서 나의 많은 기도가 응답 받지 못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결재를 내려주시지 않았다. 결국, 나는 어떤 것이 올바른 결정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내 스스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벼랑 끝까지 몰려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나는 성경에 나온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했다. 분명히 그 기도에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기도의 열을 올렸다. 나는 철저하게 나의 최선을 다해 기도했다. 하지만, 나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나는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주춤거리게 되었다. 누구는 5만 번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데 나는 나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기도에도 응답의 조짐조차 받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오랜 시간 많은 부분을 생각했고 하나님과 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와중에 내 인생은 여전히 부족한 나의 결재를 받으며 내가 원하는 멋진 모습과는 많은 거리를 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이 책, 브래넌 매닝의 '신뢰'를 읽으며 나는 또 다시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내 삶이 불완전한 이유, 나의 모습이 내가 상상하는 모습과 다른 이유, 좌절된 기도의 이유,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 고통과 아픔의 이유 등에 대해 수긍할 만한 대답을 얻고 싶었다.

처음에는 나는 신나서 책을 읽었다. 내가 이제껏 찾았던 이유들과 흡사한 대답들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 그 흐름은 끊기기 시작했다. 내 상식과 이해를 넘어선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책의 흐름을 좀 더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논리의 흐름과 매닝이 내 머릿속에 그려놓는 수많은 이미지들로 인해서 놀랐고, 즐거웠고, 마음 깊이 감동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책을 훑어보고 난 후 나는 그의 통찰력과 지혜 앞에서 잠잠히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내가 조각조각 알고 있던 대답들이 하나의 흐름 속에 이어졌다. 나는 매닝에게 별로 뒤지지 않는 대답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책을 거듭 읽을수록 나의 대답의 깊이 없음과 단편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기독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의문이 대상이었던 고통의 문제, 한동안 나의 기도제목이었던 '가봇(주님의 영광)'의 가치, 예술적 작품과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에 대한 존재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 기도 응답의 하나님의 주체성, 겸손의 방법,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민감함, 가차없는 신뢰를 가능하게 하는 법 등이 개별적인 진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하나의 커다란 진리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뢰의 중력장’ 안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삶의 난제들이 해결 궤도를 찾아 질서있게 돌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작은 책 한 권에 수많은 문제를 다 풀어 넣었을까? 까불거리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는 'Ruthless Trust'라는 말을 기억하려고 한다. 나는 처음에 이 제목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Ruthless'라는 단어는 로마서 1장에 나온 타락한 사람들의 최악 정점의 특징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신뢰(Trust)는 기독교 최고의 가치임에 분명한다. '연민없는 신뢰' 이 말 자체가 모순적인 말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 의문점이 풀리는데 연민없는 신뢰란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없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를 의미한다. 그 두 단어의 조합은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가 나의 끊임없는 자기 연민에서 나온 것임을 그리고 나의 시선이 내 안에 머무르고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고통과 보잘것없는 현재 모습에 대한 자기 연민, 좌절된 기도에 대한 자기 연민, 성장기를 지나 점차로 나이 들어 가는 나의 모습에 대한 연민, 경제적 능력의 부족함에 대한 자기 연민, 그 모든 나에 대한 연민의 시선은 신뢰의 장애물이었다.


나 자신의 연민으로 인한 내부 시선의 시간을 제한하고 하나님을 향한 외부로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결정적 단어가 바로 이 단어 'Ruthless Trust'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앞에서, 처절한 실패와 좌절 앞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 앞에서, 나는 내게 이 단어로 말을 걸 것이다. 그리고, 떨리지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싱가폴에 선교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싱가폴 대학에서 한 학생에게 복음을 전하자 그가 내게 "당신은 Brainwash 당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 뜻을 물었다. 그러니까 그 학생이 두뇌를 어떤 특정 지식으로 자꾸 씻어 내려서 그 지식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단지 그 지식을 믿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제서야 그 말이 '세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7년 정도 지난 일인데 나는 아직도 그 단어 'Brainwash'가 가끔 생각난다. 세상의 가치관과 제한적인 지식, 손상된 의로움으로 나는 물들어 가고 있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고 우주의 CEO다. 선과 악은 내가 판단하고 응징한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모든 것은 내 통제 안에 있어야 한다. 그렇게 거침없이 살아가다가 때때로 내게 'Brainwash'가 필요함을 느낀다. 나 자신을 복잡하게 만드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가치관, 모든 신비의 가능성을 말살시켜버리는 유물론적 세계관,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게 하는 자본주의 사상에서 내 삶을 단순하고 겸손하며 깨끗하게 해 줄 정신적인 청결화 작업이 필요함을 느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분명 'Brainwash'의 경험을 했다. 편견과 선입관, 잘못된 인식과 오해의 많은 부분을 씻겨내고 단편적 이해와 깨달음의 조각들을 유기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청결화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안다. 살면서 죽을 때까지 사는 방법을 배우고, 삶의 문제에 대한 정답들을 하나씩 찾아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 중에, 종종 '브래넌 매닝'의 '신뢰'와 같은 책을 다시금 만나는 행운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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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몇 권이나 팔렸을까? 아마 전세계적으로 몇 백만권 정도  팔렸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이제서야 읽어보았다. 사실, 안 읽어봐도 거의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으나 보통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괜한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기웃거리다가 까치발을 딛고 훔쳐보게 된다. 그러나 보통 그렇게 보고 난 후엔 '아... 저거 별거 아닌데 왜 이렇게 사람이 모여있었지'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리곤 한다.


이 책의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다. 예상대로... 재밌으면 짧아서 아쉬운 느낌이 들텐데 그렇지도 않다.우화 속에 엄청난 비유가 숨겨져 있지도 않다. 함축적이고 예리한 풍자도 없다. 우화라기 보다는 우화의 탈을 쓴 교훈서 정도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저자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단순하다. 치즈는 옮겨지게 마련이고 그것을 준비하고 그것에 따라서 움직여야 한다. 즉, 변화에 민감하고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아마, 다른 주제를 골라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려고 했으면 낭패다. 실상 독서란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럴 때도 많이 있지만... 궁극적인 독서의 목적은 내적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경에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지식이 교만하게 한다면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다. 지식은 구원을 베풀 수 없다. 아는 것이 힘이기는 하지만 아는 것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


20세기 위대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독서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 해야한다고 했다.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는 똑똑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용감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생각하게 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책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의 가치를 단지 눈에 보이는 이야기 그 자체로 매겨서는 안 될 것이다. 친절하게 3장에서는 토론하는 예시까지 보여주었는데, 바로 저자의 목적은 이 우화를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놓고 그대로 실천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제목은 잘못 지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누가 치즈를 옮겼는지 나와 있지 않다. 제목만 보면 그 '누구'가 나올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왜 치즈를 찾아야 하는지도 안 나와 있다. 단지, 누군가 치즈를 옮겼고, 우리에겐 치즈가 필요하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혹시 물음표가 없이 'Who moved my cheese.(누군가가 내 치즈를 옮겼다.)' 이렇게 나왔으면 낫지 않았을까? 그러면 분명 치즈를 가져간 존재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기 쉬웠을 것 같다. 아마도 저자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래도 오해를 받기 쉬운 제목이라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여튼 각자에겐 저마다의 치즈가 있을 것이다. 돈일수도 있고, 물질적이지 않은 것도 많을 것이다. 치즈를 찾아다니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세상에는 무소유를 주장하며 세상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이 물위에 떠있는 나뭇잎처럼 그냥 유유자적 흘러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나름대로 멋있기는 하지만, 별로 사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물론, 끊임없는 소유욕은 사람을 병들게 할 수 있지만, 뭔가 나만의 치즈를 찾으러 열심히 돌아다니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나는 '허'와 함께 빈 창고에 주저앉아버린 '햄'을 머릿속에 남겨두면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변화가 두려울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 햄이구나'

아마, 십중 팔구는 햄의 자리에서 박차고 나올 것이다. 뭐, 분명 "그래 나 햄이야" 이러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내가 그럴 것 같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나에게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예언자가 한 말을 할 것이다. 이렇게...

"You can cho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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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박사 2004-10-0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700번째 리뷰 ^^

진주 2004-10-0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의 어려움 중에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도 큰 것 같아요.
흐흐...우리 아들이 옆에서 이렇게 말하는군요. "난 절대 안 옮겼다구용~."

설박사 2004-10-01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ㅜ...감사합니다. 제 리뷰에 코멘트가 거의 여섯달만에 달렸습니다.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네요. ^^
제 아들도 안 옮겼는데...ㅋㅋㅋ 그렇다면... 과연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요?
 
도전과 기회 3C 혁명
강영우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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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강영우 박사가 연설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직접은 아니고, TV로... 분명히 별 말 안했는데, 그리고 영어도 서투른데 끝나고 나서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강영우 박사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소문만 들었는데, 더듬더듬 서투른 영어로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고 '어.. 뭐야? 이상한데.'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 연설 끝의 박수에서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어머니가 목사님의 추천을 받아서 나에게 사라고 명령(?)하셔서 사게 되었다. 시각 장애인으로서 백악관 정책 차관보가 된 사람이 저자이고 책의 제목이 '도전과 기회'라면 안 읽어도 뻔한 스토리가 아닌가? 책의 제목 밑에 '3C 혁명'이라고 쓰여 있는데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책을 조금씩 읽어가면서 내 예상은 빗나갔다. 차라리 '3C혁명'이라는 제목만 가지고 나왔다면 내가 오해하지는 않았으리라.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적인 요소가 다분히 들어있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다. 미국의 최고의 공직자 선정 기준인 최고의 능력, 최고의 도덕성, 최고의 전문성을 교육학적으로 Competence(실력), Character(인격), Commitment(헌신)로 바꾸어서 설명하고 그 기준에 따라 살 것을 독려하는 책이다.


저자의 환경이나 가지고 있는 조건 때문에 편견 없이 책을 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이 책은 교육학 박사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한 '우리의 자녀들, 후배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전문가적인 식견을 적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논리적이고 정교해서 빠져나갈 틈이 없는 그런 류의 책이 아니다. 그리고 학술적인 자료나 분석적인 설명도 부족하다. 그러면서도 문체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식의 독자들의 거부감을 줄이는 문체가 아니다. '이거다', '저거다' 이렇게 딱 잘라서 이야기한다. 사실, 그래서 나도 좀 거부감이 있었다. 아마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이 책은 더 큰 거부감을 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무슨 토를 달 수 있으랴. 그가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마, 누구보다도 포기할 만한 환경에 있었던 사람이 강영우 박사였을 것이다. 중학교 때 시력을 잃고, 그 충격으로 홀어머니도 돌아가시고 강박사를 포함한 세 명의 고아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 정도면 인생 종친 것이다. 그러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의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었던 이유가 실력과 인격과 헌신이라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라고 손을 들 수가 없었다.

카리스마는 하늘이 내려주시는 능력이 아니다. 바로 강영우 박사의 연설을 보라. 정말 어줍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뜨겁다. 그의 말 한 마디에 한 마디에 힘과 진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이론이 아니라 그의 경험이고 인생이다.


솔직히 나는 잘난 사람들의 글을 잘 안 읽으려 한다. 스스로를 비교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꼭 이런 책을 읽으면 저자의 나이를 유심히 본다. 몇 살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몇 살에 차관보가 되고... 그리고 내 나이를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꼭 이렇게 생각한다. '아... 늦었구나.' 훌륭한 사람들은 뜻도 일찍 세우고 배우기도 일찍 배우고 그러는데, 그래야 성공하는 것 같은데 '나는 늦었네' 이렇게 생각한다.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작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내 생각을 뒤집을 힌트를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Compassion', 즉 남의 마음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마음이다. 내가 지금 가장 평범한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것이 스스로를 작게 느끼고 뒤처진 자라는 느낌을 줄 때가 많지만, 바로 내가 느끼는 것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Compassion을 가지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강영우 박사. 나는 그가 부럽다. 무엇보다 그의 카리스마가 부럽다. 말 한 마디에 담겨져 있는 힘을 느끼게 하는 넘치는 카리스마. 인생을 누구보다 진실하게 살아온 그의 정직함이 부럽다. 나도 그의 나이 때 쯤이면 그런 카리스마를 갖게 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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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8 06: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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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란 무엇인가?', '꼭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스스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고 싶어서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날 보니까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별히 삶이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는 더욱 그렇다. 어떨 때는 좀 떨떠름해서 '생명'이라는 예기치 않게 받았던 선물을 뱉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가속 페달을 밟으며 무아지경에 빠진 폰더 씨처럼, 삶과 인생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도 싶다.

 

그렇게 삶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자신을 없애 버리려 했던 폰더 씨에게 7명의 사람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삶을 통해 삶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주요하게 이야기하는 바는 인생의 이유나 목적은 아니다. 삶을 꼭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일단 가정하고,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위대한 폰더 씨라는 장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폰더 씨의 인생 목표나 비젼이 보편적인 인생의 목적이나 이유를 나타낸다고 일반화해서는 곤란하다. 단지 그것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폰더씨 개인의 비젼과 꿈일 뿐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돈벌어서 성공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성공의 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 뿐이고,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고 싶은 것이다.

 

7명이 나와서 7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같다. 먼저 개인은 이 세상 속에 정말 작은 존재임에는 분명하지만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누구나 나비 효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비 효과'란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곧 작은 변화가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론인데, 특별히 7명 중 체임벌린을 통해 강력하게 이러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폰더 씨의 미래 성공 수기의 주인공을 체임벌린이 차지하는 이유는 저자가 그만큼 이 내용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즉, 개인을 독립된 존재로서 인식하지 말고, 공간적 시대적 전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그 중요성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선택할 수 있고, 그리고 그 순간에 용감하게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고 책임지라는 것이다. 폰더 씨가 받은 마지막 쪽지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이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어 넣는다. 나는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큰 힘, 즉 선택의 힘을 갖고 있다.

 

독일 포로 수용소에서 3년을 보낸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마지막 자유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자유이다. 죽음 앞에서도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최후의 자유는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한 그 자유를 연습해야 한다. 평생 살면서 우리는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 책은 우리의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과 그 앞에서 무엇을 택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준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등장하는 쌍칼은 우리에게 용감하게 선택하고 행동하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인생의 태풍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건네준 우산은 태풍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야.' 맞는 말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우리가 태풍을 견디어 낼 수 있는 강력한 내적 자아를 만들 수는 없다.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도 힘들지만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더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풍 속에서 우산이 날아가고 비바람에 옷이 흠뻑 젖는다고 해도 그 경험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견디기로 선택하는 한 번의 시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그 경험은 다음에 비슷한 어려움에 닥칠 때 견디어낼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그런 시도와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내적 자아가 성숙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다소 '뻔한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던져버릴 만한 책은 아니다. 대장금에서 자주 나온 중종의 대사로 한 마디 하겠다.

 

"음...맛있구나.. 늘 먹던 xxx인데, 맛이 다르구나. 무엇이냐?"

늘 새로운 것이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진리나 옳은 것에 대하여 알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행동하느냐 하지 않느냐일 때가 많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 대하여 좋은 자극제이자 행동 지침서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하나하나 배우고 훈련해 나갈 때 어느덧 훌쩍 커있는 내적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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